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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학과, 20011087, 손영록>
그랜트 매크래켄/이상률 옮김, "문화와 소비 "
GRANT McCRACKEN, "CULTURE AND CONSUMPTION"
제1부 역사
1. 근대적인 소비의 형성
2. 우리들의 사고에 일찍이 없었을 정도로 소중한"
3. 로이스 로제
제2부 이론
4. 언어로서의 의복
5. 재화세계에서의 의미의 제조와 이동
제3부 실제
6. 소비재, 잰더 구성, 트리클다운 이론의 복권
7. 사물의 환기력
8. 디드로 통일체와 디드로 효과
9. 소비, 변화, 연속성
8. 디드로 통일체와 디드로 효과
무시된 소비의 문화적 측면
디드로 통일체는 소비재의 고도의 일관성이 있는 보완물이다. “디드로 효과”는 그것을 유지하는 강제력이다. 여기서 프랑스 계몽주의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여진 통일성과 효과는 문화가 소비를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다. 디드로 효과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흥미롭다. 그것은 소비자를 그 또는 그녀의 기존의 소비 패턴 속에 머무르도록 구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방식으로는, 그것은 소비자에게 그러한 소비 패턴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하게끔 강제하는 수도 있다. 앞 장과 마찬가지로, 이 장도 소비가 완전히 문화적인 고려에 의해서 어떻게 추진되고 또 제약되는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경우, 문화적인 요소는 의미가 전이가 아니라 개인의 구매행동 범위를 가로지르는 그 일관성의 관리이다. 이장은 디드로 통일체와 디드로 효과, 그리고 광고, 라이프스타일, 소비수요의 엔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그 통일체와 효과의 함의에 주목한다.
디드로 통일성의 효과 : 최초의 주목
여기서 고찰된 통일성과 효과를 상세히 보고한 첫 번째 인ㅂ물은 드니 디드로였다. 『백과사전』의 편집인 겸 집필자로서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의 지식의 편찬 및 전진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이었다. 철학자의 전통과 디드로 자신의 기질이 그로 하여금 중요한 문제들을 위트가 넘치며 가볍게 다루게 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갖고 있는 중대한 발견을 디드로가 “나의 옛 실내복과 헤어진 것에 대한 유감”이라고 제목 붙여진 마음씨 고운 작은 에세이에서 제시하였다는 것은 이 학자와 그 시대 모두의 특정을 나타낸다.
이 에세이는 디드로가 그의 서재에서 생각에 잠겨 우울하게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서재는 변화하였다. 전에는 사람들이 붐볐으며, 초라하였고, 혼잡하였고, 행복하였다. 그것이 이제는 우아하고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게 설비가 갖춰졌지만, 조금은 딱딱한 기분이 들었다. 디드로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그의 새 실내복에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이 변화는 조금씩 단계적으로 일어났다고 디드로는 말한다. 친구로부터의 선물인 실내복이 도착하였다. 새로운 소유품에 기뻐서 디드로는 그의 " 다 헤지고 시시하지만, 편안했던 옛 실내복“을 버렸다. 이것이 복잡하며 결국은 고민케 하는 과정으로의 제일보였다. 실내복이 도착한 지 한두 주 후, 디드로는 책상이 표준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그것을 바꾸었다. 그러자 서재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색색의 실로 수놓은 벽걸이}가 조금은 초라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새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점차적으로 의자, 판화, 책선반, 시계를 포함한 서재 전체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어서 대체되었다.
이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을 그 자신의 우아한 분위기에 맞도록 강제하는 오만한 진홍색의 옷”의 소행이라고 디드로는 결론 내린다. 디드로는 그이 옛 실내복과 그리고 “ 방을 가득 채운 그 밖의 보잘것없는 고물과의 완전한 일치”를 애착과 후회하는 마음을 갖고서 회고한다. 그는 그의 실내복, 고물, 그리고 가장 주요한 것으로는 일치 자체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조화가 파괴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일관성도, 통일성도, 아름다움도 없다” 이 불행한 의외의 새로운 사실은 여기서 “디드로 통일성”과 “디드로효과”라고 불리는 문화현상의 최초의 공식적인 인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디드로 통일성과 사물의 의미
디드로의 곤혹스러운 관찰은 어떤 보완물이건 간에 소비재는 어떤 공통성이나 통일성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디드로의 관찰은 이 사물들이 일종의 조화나 일관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어울린다” 고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일관성을 지닌 사물들을 “제품보완물”이라고, 또한 그 관찰자를 기념해서 "디드로 통일체“ 라고 부를 것이다.
디드로 통일체는 광고주, 갖가지 종류의 디자이너 그리고 물론 개개의 소비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으며 또 이들에 의해서 일상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사회과학자들은 그것을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솔로본과 애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제품의 상호보완성보다는 대체가능성에 훨씬 더 많은 주의가 기울여져왔다. 예를 들어 미시경제이론에 따르면, 제품은 고립(그유용성의 묶음)에서 가치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제품(그것에 다소 필적하는 유용성의 묶음을 나타내고 있는)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다.
상징적인 일관성에 “게슈탈트” 접근방식을 채용한 솔로몬과 애실은 이 문제를 직접 다루는 얼마 안 되는 사회과학자들에 속한다. 그들은 그렇게 통일된 제품들이 모두 역할정보를 전하기 때문에 제품포치가 일어난다고 시사한다. 이 문제에 대한 솔로몬의 중요한 이전의 연구에 따라서, 그들은 재화가 사회적인 역할연기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데 쓰이며 아울러 이 성공은 재화가 그 고유한 배치에 이용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시사하고 있다. 포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개개인이 사회생활의 드라마에서 자신들에게 할당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보완물 전체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유용하지만, 우선 먼저 왜 제품포지나 디드로 통일체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피하고 있다. 이 점에서 대해서는 솔로몬과 애실은 단지 소비자들은 특정한 제품의 의미를 짝이되는 제품으로부터 “읽는다” 고만 주장할 뿐이다.
몇몇 소비재가 “서로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이 문제에는 세 개의 서로 관련된 면이 있다. 소비재의 문화적 일관성은 (1)사물에 들어 있는 의미의 성질, (2) 이 의미가 사물 속에 들어가는 방법, (3) 사물의 의미가 “사물 코드” 에 의해 전해지는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5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비재의 의미는 재화 체계에서의 그 위치와 그리고 문화적 범주의 체계에 대한 이체계의 연관에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롤렉스 시계는 존재한는 그 모든 시계 브랜드와의 관계와 그리고 이 제품 세트가 인격, 장소, 시간, 경우 등의 문화적 범주들과 대응하는(따라서 그것들을 나타내는)방식에서 그 의미를 얻는다. 롤렉스는 시계의 체계와 문화범주의 체계간의 전면적인 대응 때문에 계급, 성, 연령, 경우 등의 특정한 문화범주들과 관련이 있다.
어떤 재화들이 서로 어울리는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문화범주들과 소비재 간의 이러한 대응이다. 모든 제품범주는 동일한 일련의 문화범주와 일치되게끔 조직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모든 제품범주도 또한 서로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각의 제품범주를 그 내부의 구별이 병행되게끔 다른 모든 제품범주와 나란히 정렬시킬 수 있다. 이것이 행해지면, 한 범주의 어떤 브랜드의 구조적인 등가물이 다른 모든 것에서도 분명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시계의 체계와 차의 체계를 서로 맞붙여서 일반적으로 어떤 세계가 어떤 차와 “어울리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시계의 제품 세트를 차의 그것과 맞붙이면, 롤렉스와 BMW가 구조적인 등가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것들은 그 제품범주에서 똑같은 상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체로 서로 견줄만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화와 소비재의 관계를 조직하는 대응체계는 롤렉스와 BMW가 구조적인 등가물인 것처럼 보이며 서로“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틀을 확립한다.
디드로 통일성의 신비에 대한 대답의 두 번째 부분은 의미가 사물속에 들어가는 방법에서 유래한다. 의미가 사물속에 들어가는 방법의 하나는 광고 및 유행체계를 통해서이다. 의미를 사물속에 넣기 위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유행/제품 디자이너들은 구조적인 등가물을 발견해, 광고에 내재하는 의미가 또한 문제의 제품에도 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광고의 범위 안으로 그 구조적 등가물을 끌어들인다. 우리는 이러한 광고방송의 세심한 학도이며, 그 결과 제품 범주들 간의 대응과 거기서 나오는 통일체 모두에 대해서 끊임없이 잘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광고와 유행의 체계는 우선 먼저는 사물 코드의 일관성과 소원해지다가, 그 다음에는 그 일관성에 공헌한다. 그것들은 어떤 사물들이 서로 어울리는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의미할당과정의 두 번째 측면이면서 몇 가지 점에서는 보다 흥미로운 측면은 혁신집단들이 행하는 역할이다. 히피족, 여피족, 펑크족과 같은 집단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고도로 특징적인 소비재의 보완물을 위해서 소비세계를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닐 때 소비의 선택과 조합의 창조적인 행위에 불가피하게 종사한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제품 일관성의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여피족 이전에는, 롤렉스와 BMW사이에 어떠한 강제적인 관련이 없었다. 대응의 일반적인 체계에서, 그것들은 재화와 계급의 문화범주의 대응에서 대체로 서로 견줄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라서 그것들은 서로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불가피한 결합의 감각, 즉 그것들이 특히 서로를 전제하고 있다는 감각은 없었다. 여피족(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매우 습관적으로 조롱한 미디어)은 롤렉스와 BMW에 이러한 상호성울 주었으며, 그것들을 묶어서 하나의 특별한 제품보완물로 만들었다. 여피족과 미디어의 노력에 의해서, 롤렉스와 BMW는 이제 특별한 친밀성을 갖고서 서로 어울리는 재화이다.
제품보완물의 문화적 일관성에 대한 해답의 마지막 부분은 물질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성질에서 찾아야 한다. 4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물질문화의 메시지는 그것들이 “매우 중복되고 서로를 전제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질 대 가장 성공적이며, 새로운 조합으로 이루어질 때는 덜 성공적이다. 이것은 야콥슨에 따르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성질 자체 때문이며, 의복, 주택, 차, 모든 소비재에 똑같이 적용된다. 소비재가 고립되어 있거나 이질적인 집단에 있을 때에는 의미를 별로 잘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재화의 의미는 그 재화가 똑같은 의의를 갖는 재화의 보완물로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잘(때로는 그 때에만) 전달된다. 이러한 보완물 안에는, 보는 사람에게 재화의 의미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한 중복이 있다. 달리 말하면, 물질문화의 상징적인 속성은 사물이 만일 조금이라도 의미를 전해야 한다면 그것들은 어울려서 의미를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품 보완물은 짝이 되는 제품에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정한 재화를 제공하는 연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제품 커뮤니케이션의 성질은 사물들을 서로 어울리도록 고취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그런데 문화적 일관성에 의해 통일된 소비재의 보완물이 있지 않으면 안되는 좋은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 소비재의 문화적 의미의 성질, 기원 및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이러한 일관성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재화들은 대부분 그것들의 상징적인 속성이 그것들을 결합시키기 때문에 “서로 어울린다”. 재화에게 그 비밀스러운 조화를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재화의 문화적 의미 있는 측면이다. 이러한 조화를 개개인의 생활에서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는 문화적인 힘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절에서는 디드로 효과의 논리와 소비사회에서의 생활에 대한 그 논리의 함의를 고찰할 것이다.
디드로 통일체와 라이프스타일 개념
라이프스타일 개념은 거의 똑같은 비율로 도발적이기도 하였고 비생산적이기도 하였다. 카사리안과 쉬펫이 70년대 중반에 말한 바와 같이, 이 개념은 대량의 연구를 발생시켜왔지만 그 대부분은 연습논문과 미발간 원고의 형태로 조락하였다. 10년 후, 앤더슨과 골든은 요점을 보다 강력하게 지적하면서, (탈라스크를 따라서) 만일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렬로 늘어놓는다면 그들은 (a)결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b)모든 방향을 동시에 가리킬 것이라고 말하였다.
소비자연구에서의 이 관념의 호소력은 충분할 정도로 분명하다. 여기에는 시장 세분화의 불충분함을 개선한다고 약속한 관념이 있었다. 그것은 또한 분명히 “계급”파생적인 현상을 이 관념을 괴롭힌 매우 중요한 정의상 및 운용상의 문제들과 싸울 필요없이 다루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였다. 셋째, 그것은 퍼스낼리티 모델의 모든 가정을 포괄할 필요없이 “퍼스낼리티” 논점을 추구하는 방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실증주의적이며 양적인 패러다임이 설명 밖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는 일정한 민족지적 세부사항을 포착하는 방법이었다.
아마도 이 관념의 가장 강력하게 매력적인 측면은 그것이 관찰자에게 소비를 “상호 관련된 패턴이 있는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중심적인 것이었다. 레이저, 레비, 무어, 플루머는 모두 라이프스타일 개념이 관찰자에게 보통은 별개로 취급되었던 자료들을 결합시켜서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상호관련의 패턴을 언뜻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인정하였다. 보다 포괄적인 이러한 견해, 보다 포괄적인 이러한 견해만이 소비에 관한 기본적인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보다 더 야심적인 희망이 여기에 숨어 있었다. 레이저는 “라이프스타일 연구가 소비와 관련된 발견들과 이론들의 통일을 촉진시킬 수가 없는가” 라고 생각 하였다.
그런데 왜 이 개념이 그토록 비생산적인 것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우리는 모든 자료가 상호 연결되고 모든 이론이 통합되는 천국은 언뜻 보아왔지만 이 천국으로의 길은 아직도 결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제의 일부는 분명히 우리에게는 라이프스타일 자료의 성질과 복잡함을 다루는데 필요한 이론적인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라이프스타일 현상의 상호 관련된 성질을 포착하는 데 필요한 이론이 없다.
실제로,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려고 의도한 방법론과 이론 중 많은 것은 라이프스타일 현상의 상호 연관된 성질을 이해하는 데 적극적인 장애로서 가로놓여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종래의 이론과 방법은 자료의 통일성을 무시하고 때로는 심지어 단편화하기조차하는 아이러니한 효과를 갖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를 들면 아직도 널리 쓰이고 있는 AIO(즉 태도, 관심, 의견)방법의 효과이다. 응답자의 생활과 경험에 대한 100개 세부사항이 AIO그물에 걸리지만, 이 방법은 그것들의 상호연관과 상대적인 비중에 대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라이프스타일의 단편들은 그것들의 통일성이 시야에서 완전히 흐려지는 것을 확실하게 하는 형태로 회수된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자료의 단편들을 통일시키는 원리를 심사숙고하면서 그것들을 종합하려고 시도하는 자가 전형적으로 분석가이다.
라이프스타일의 통일체를 포착하는 몇몇 중요한 방법론적 도구가 현재 개발되고 있으며 소비자연구의 영역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 분명하지 않은 것은 필요한 이론적인 작업이 행해 졌는가이다. 애실, 홀브룩, 무어, 솔로몬등과 같은 학자들의 두드러진 예외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영역에서 달성된 업적은 없다. 이것은 특히 라이프스타일 개념이 처음 발전된 것은 바로 자료의 통일된 패턴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이행하면 이상한 일이다.
라이프스타일 통일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디드로 통일체라는 이해를 갖고서 이 연구를 시작해보자. 우리는 그것들을 의미의 구조이론을 이용해서 포착해도 좋을 것이다. 사물들은 그것들의 내적인 문화적 일관성 때문에 서로 어울린다. 제품은 문화가 그것에 동일한 상징적인 속성을 주기 때문에 보완작용을 한다. 이러한 문화이론들은 그러므로 라이프스타일의 상호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디드로 통일체의 이해는 라이프스타일의 성분[기초적인 요소] 들을 해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디드로 효과의 이해는 이 성분들이 그 내적인 일고나성을 어떻게 유지 하는가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 행해지는 바와 같이, 라이프스타일을 둘러싼 소비연구는 거의 순수하게 경험적이다. 우리는 태도, 활동, 소비재, 가족 패턴 등의 묶음이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있으며, 이 묶음을 생활 스타일이라고 이름 붙여서 기술할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이 묶음의 내용이 왜 서로 어울리는지를 이해하는 체계적인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통일성의 성질에 관한 이론도 갖고 있지 않으며 또한 그 묶음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디드로 원리에 대한 어떤 감각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화려하게 장식한 디드로 씨의 고찰로부터 배워야 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디드로 효과 : 그것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정식적인 목적을 위해서, 디드로 효과는 “개인에게 그 또는 그녀의 소비재 보완물에 문화적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고취시키는 힘”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실내복”에 관한 에세이에서 디드로는 우리에게 디드로 효과를 새로운, 다라서 눈에 띄는 형태로 제시한다. 이 경우, 그것은 디드로에게 새로운 재화(즉 실내복)의 문화적 의미를 특권적인 의미의 보유자로 받아들여 그의 그 밖의 모든 소유품을 그것과 일치하게끔 강제하였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디드로 효과는 현존하는 일련의 재화의 문화적 의미를 보존해서 디드로의 “진홍색의 침입자” 와 같은 재화의 진입을 저지하는 작용을 한다. 실제로, 만일 디드로가 디드로 효과의 인습적인 작용에 지배되었다면, 그는 새 실내복을 입고서 “나의 옛 실내복과 헤어진 것에 대한 유감”을 쓰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의 이름이 현재의 명칭목적에 쓰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드로 효과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가지 방법으로 작용한다. 가장 노골적으로 명백한 형태로는 그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소비재들을 전체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문화적 의미를 지닌 사물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작용을 한다. 두 번째의 과격한 방식으로는, 그것은 디드로의 실내복 경우에서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일련의 소비재의 창출을 강요하는 작용을 한다. 세 번째의 능력으로는, 디드로 효과는 개인에 의해 상징적인 목적에 의도적으로 조작되어 이용된다. 이것들 각각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디드로 효과 : 연속성에의 함의
인습적인 형태로는, 디드로 효과는 개인들을[그들의 생활을] 동요시키는 사물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 침입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 그것은 그들을 그들의 경험 속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념을 가져와서 이 경험을 그자신의 청사진에 따라서 재형성할 우려가 있는 그 어떤 사물로부터도 보호한다. 이러한 한에서는 디드로 효과는 물질세계의 문화적 일관성의 유지에,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개인의 경험과 자아관의 연속성에 공헌한다.
개인에게 속하는 소유물들은 그 또는 그녀의 정서세계의 객관적인 상관물을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이 세계의 실체화, 그 진실성의 증거, 그 현실성의 증명으로서 놓여 있다. 로버트 해스가 “집”이라는 제목을 붙인 시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나는 나 자신이
어떤 건물의
주민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
커피와 베이컨과 헨델과
이층에서 잠자고 있는 나의 아내
(1973:54-55).
해스는 어떤 사람의 생활의 건물이 불가피하게 그 사람의 생활의 전제라는 것을 올바르게 시사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사물에 둘러 싸여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또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잘 알고 있다. 우리 자신의 사물에 둘러 싸여서, 우리는 우리자신의 과거에 뿌리박고 있으며 시각적으로도 우리 자신의 과거와 연속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사물에 둘러싸여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로운 개념, 습관, 경험으로 편향시키는 많은 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이 힘들은 우리 자신의 상상력, 다른 사람들의 해석, 개인적인 비극의 충격, 단순한 부주의를 포함한다. 아렌트가 시사한 바와 같이, 사물은 우리의 밸러스트[선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배의 밑바닥에 싣는 석탄, 돌, 쇠, 따위의 물건]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과거를 생각나게 함으로써, 이 과거를 우리의 현재의 사실상의 실질적인 일부로 만듦으로써 우리를 안정시킨다.
디드로 효과는 어떤 간섭자, 어떤 반대자, 그 밖의 의미의 어떤 웅변가에게도 사람의 경험 속에 몰래 들어가 디드로의 실내복이 그에게 한 것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지 못하게 조처함으로써 사물의 연속성 형성의 기능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디드로 효과는 새로운 위험한 관념으로 가정경제를 감염시킬 수 있는 맹독의 도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것은 몰래 교활하게 통제하려고 하는 치안방해적인 의미를 우리의 생활 속에 집어넣는 “트로이 목마”선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일 개인의 생활에서 어떤 사물이 그 생활을 그 자체로 돌려보내며 되돌아가게 하는 데 끊임없이 도움을 준다면, 그때에는 그렇게 할 수 있게끔, 즉 우리의 소유품에서는 가장 순수하며 가장 깨끗한 시그널만이 나오게끔 개인의 생활을 유지하는 작용을 하는 것은 디드로 효과이다.
디드로 효과와 제품보완물의 변형
디드로의 경우처럼 디드로 효과가 과격하게 작용하면, 그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대에는 그것은 그 사람의 생활을 전면적으로 변형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도입의 순간부터, 새로운 재화는 새로운 짝이 되는 재화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최초의 요구에 동의하는 개인은 백 개의 다른 요구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디드로 효과의 원동력인 일관성에의 충동은 만족을 모른다. 그 주위의 짝이 되는 재화 모두가 그것[새로운재화]이 말하는 대로 말하는 새로운 것들로, 말하자면 주인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임으로써 자신들의 주인을 존경하는 “예스 맨들”로 대체될 때까지는 일고나성에의 충동이 충족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다. 어떻게 해서 보통은 제품보완물을 보존하는 힘이 갑자기 변형의 동인이 되는 것인가? 왜 디드로 효과는 보수적인 힘에서 혁신적인 힘으로 변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정한 구매행위와 일정한 제품점주의 특별한 성질을 중심으로 한다. 개개인이 때때로 “충동”구매라고 불리는 것을 하는 데에는 분명히 일정한 구매행위가 있다. 이 개념은 몇 가지 대답되지 않는 질문들이 아직도 그 주위를 돌고 있는 골치 아픈 개념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충동구래를 계획하지 않은 구매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의 난점은 계획이 실제로 행해졌지만 의식적인 지각의 역[자극에 대해 반응이 시작되는 분계점] 이하에서 그렇게 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충동구매의 또 하나의 정의는 그것을 통상적인 비용과 이득의 계산을 나타내지 않는 구매로 취급한다. 이 틀에 따르면, 소비자는 보통 개래할 때마다 손일을 주의 깊게 계산하면서 완전히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합리성이 갑자기 “포기될”때(스테이션 왜건을 찾고 있다가 스포츠 카를 구입하는 경우처럼) 그 구매는 “충동”구매라고 선언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도 비슷한 반론에 부딪힌다. 즉 충동적인 결정은 그것을 체계적이며 예측 가능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모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은 수준에서 처리되는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반론에 부딪힌다. 어느 경우에서든 간에, 충동구매에 대해서는 진실로 “충동적인” 것이 있는지를 의심하고, 따라서 그 개념을 무효화할 소지가 있다.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이 범주의 행동을 “출발 구입”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마도 더 유용할 것이다. 출발 구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보통의 소비 패턴 즉 현재의 디드로 통일체에서 출발하였다고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현존하는 소비재보완물에서 전례가 없는 구입은 그 어떤 것도 출발 구입의 행위로 규정된다. 그때, 소비자로 하여금 출발구입을 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세련된 광고, 판매촉진 활동, 제품개발, 디자인과 같은 요소들이 출발구입에의 자극제 구실을 할 수 있다. 분명히 마케팅 장치는 “출발구입”을 고취하는 작용을 끊임없이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아래에서 주목할 점이다. 그렇지만 또한 앞 장에서 논의한 전이효과가 이 구매범주를 고취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이 그 또는 그녀의 이상의 안전한 은신처를 찾고 있을 때, 적절한 소비재가 현재의 제품보완물에는 없는 것일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개인은 또한 새로운 환경과 사건에 의해서 출발구입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 라이프사이클의 진전, 전직, 이혼, 사람의 죽음, 갖가지 종류의 혼란은 출발구입이 그럴듯하게 보이며 또 어쩌면 심지어는 강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문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격한 디드로 효과의 창출에 있어서 최대의 기회 중의 하나는 선물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바로 디드로의 생활에서 일어난 것이다. 근본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실내복은 구입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출발선물”은 여기서의 고찰에서 중요한 범주이다. 지금은 선물이 종종 - 고의건 고의가 아니건 간에 - 받는 사람을 조종할 목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되고 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선물이 그것을 받는 사람의 인생에 트로이 목마로 작용할 것을 의도하고 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의 제품보완물에 새로운 의미를 전해서, 그곳에서 은밀하게 새로운 소비기준으로 작용하도록 의도되고 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보완물의 변형이 그 소유자의 변형을 가져올 것을 바란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과격한 디드로 효과가 받는 사람의 생활을 휩쓸 것을 바란다.
마지막으로는, 특히 도발적인 출발기회가 되는 특별한 재화범주가 있는지를 물을 가치가 있다. 몇몇 범주의 소비재는 디드로 효과의 방어를 빠져나가 제품보완물로 미끄러져 들어가서 내부반란을 주도하는데 특히 적합한가? 차, 의복, 오락설비, 가구 또는 화장품이 이 영역에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가? 어떤 재화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과격한 디드로 잠재력을 갖고 있는가? 어떤 사회집단은 그들의 선택의 출발재화로서 일정한 재화, 또는 보다 특별하게는 일정한 브랜드를 채용하는 경향이 있는가? 이 영역에 대한 조사는 없다.
디드로 효과와 개인적인 실험
『럭키 짐』에서 킹즐리 에이미스는 “비즐리”라고 불리는 남자와 그의 “격자를 기어오르는 덩굴처럼, 그 둘레에서 자신의 개성을 가꾸려고 하고 있는, 니켈 줄무늬가 새겨져 있는 곡선 모양의 파이프”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디드로 효과가 일정한 생활에서 작용하고 있는 세번째 방법에 대한 소설가다운 관찰이다. 분명히, 몇몇 사람들은 디드로 효과를 즐거운 마음으로 깨뜨리면서,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의미가 있는 소비재를 끊임없이 찾는다. 그들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관찰되고, 시도되고, 채용되거나 처리되는 개인적인 실험과정의 일부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출발구입은 실험적인 것, 즉 그 사람의 경험의 공인좌표축을 일시적으로 떠나 전혀 다른 것을 관찰하는 기회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서, 이 새로운 재화들이 그들의 제품보완물과 생활의 철저한 변화를 준비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출발구입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소비세계의 손재주꾼으로서,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의미요소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그것들을 끌어 모아 새롭게 배열한다. 그들은 새로운 구입 - 파이프, 시게 또는 차 - 이 그들의 제품보완물 안에서 반란을 주도하기를 바란다. 그들의 희망은 이 반란이 물질세계와 자아를 변화시켜 그 둘 모두에게 완전히 새로운 상징적인 속성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나”를 시도되지 않은 소비선택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문화에서는, 디드로 효과를 이용하려는 이 의도적인 시도가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생에서 이처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고 잠재적으로는 소외시키는 힘을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개인주의의 어떤 한계이며 현대 서양사회의 기묘함이다.
디드로 효과와 소비기대의 상승
디드로 효과의 “구르기”판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판에서는, 이 효과는 점점 늘어나면서 작용하기 때문에 지출수준을 끊임없이 상승시킨다. 굴러가는 디드로 효과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개인이 그 어떤 제품범주에서든 새로운 구입을 할 때, 그는(소득이 허락한다면) 자신이 그의 제품보완물의 바로 정상에서, 어쩌면 그것을 넘어서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인습적인 형태의 디드로 효과에 구속받으면, 그들은 기존의 보완물 내에 머무르지만, 마케팅의 자극에 휩싸이면 바로 그것을 넘어서 손을 내민다). 그렇게 해서 구입된 재화는 그때에는 과격한 형태의 디드로 효과에 따라 작용해, 주위의 사물들에게 보다 높은 그 분위기에 따를 것을 강제한다. 출발재화는 보완물에 대해서 일종의 인력작용을 하기 때문에, 다음의 구입이 행해질 때에는 그것은 그 이전의 구입품의 분위기에 맞게끔 선택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씩 대체되어 제품보완물 전체가 첫 번째 구입품과 어울리게 된다. 이 단계가 완료되면, 새로운 출발구입이 행해져서 순환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이 계단식의 굴러가는 디드로 효과이다. 그러나 굴러가는 디드로 효과의 보다 더 역동적이고 “나선형적인” 판이 있을 수도 있다. 나선형식의 디드로 효과는 구입할 때마다 보완물들을 끊임없이 끌어올리는 작용을 한다. 이 판에서는 매번의 신규구입이 바로 전의 그것보다 더 높게 설정되기 때문에, 보완물 전체가 첫 번째의 출발구입을 “뒤쫓아갈”수 있는 시간이 결코 없다. 이 패턴에서는 각각의 구입이 설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그 다음의 구입에 의해 거부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끊임없이 상승하는 소비의 나선형에 갇히게 된다.
디드로 효과와 래칫효과
과격하며 굴러가는 식의 디드로 효과는 소비지출에 대해서 분명한 “래칫”[톱니바퀴의 역회전을 방지하는 미늘, 제동기] 의 함의를 갖고 있다. 그것은 소비수준을 상승시키고 후진운동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구매력이 계속 급상승할 때에도 소비 패턴이 언제나 구매력을 넘어서는 것 같다는 소비자들 사이의 공통된 불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이 래칫의 힘이다. 우리는 바로 1,2년 전만 해도 우리를 더없이 행복하게 만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소비수준을 획득해도 만족감이 없다고 불평한다. 이 수준을 달성하자마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더욱 높은 수준을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토프스키는 이 과정을 편안함과 즐거움 사이에서의 우리의 혼란의 인위적인 산물로 설명하였다. 점점 더 높아지는 소비수준은 즐거움의 장소로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단지 지루하고 따분한 편안함을 제공할 뿐이다. 어절 수 없이 우리는 불행하며, 따라서 보다 많은 소비가 약속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지만 또 다시 실망할 뿐이다. 이 훌륭한 설명은 불만의 일부와 “즐거움 없는 경제”의 래칫 패턴을 설명하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아마도 또한 우리는 디드로 효과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소비에 불만족해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과격하며 굴러가는 식의 이 디드로 효과는 소비만족의 획득을 막는다. 그것은 재화의 충분함, 일단 획득되면 완전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소유의 보완물 등과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대는 그것이 실내복이고, 어떤 때는 새 차이며, 또 어떤 때는 새 파이프지만, 계속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제품보완물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서 우리를 새로운 지출수준에 들어가도록 강제하는 사물이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오는 것을 인정한다. 때로는 우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비수준을 달성할 것이다. 그렇지만 디드로가 그랬던 바와 같이, 종종 우리는 결국 우리의 자아관 및 세계관과는 아무 필연적인 관계가 없는 재화의 새로운 보완물로 둘러싸일 것이다. 그 급진적이고 굴러가는 식의 디드로 효과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킬 수 있다.
결론
디드로 통일성과 효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화현상이다. 개인소비자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보수적인 함의와 급진적인 함의를 모두 갖고 있다. 그것들은 변화와 단절로부터 보호해서 생활을 보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들은 내면적인 사고와 정서를 실체화하고 밸러스트를 공급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것은 개인이 개인적인 비극의 희생자이며 갑자기 자신의 새로운 정의에 상처받기 쉬울 대에는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은 개인이 자기가 그것에게 일련의 판에 박힌 종속적인 자기정의를 강요해온 민족, 인종, 종교 또는 성별집단의 구성원임을 알 때에는 그리 좋지 않다. 이 개인에게 있어서는, 디드로 통일성과 효과의 연속성 창출이 그를 가두며 아울러 그 자신을 재 정의하려는 그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그들의 물질세계에서 종속적인 지위를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디드로 통일성과 효과가 일종의 [교도소]간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디드로 통일체와 효과는 또한 생활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엔진일 수도 있다. 이것을 하는 것은 디드로의 새 실내복처럼 제품보완물에 있는 모든 소비재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것을 요구하는 작용을 할 때이다. 이것도 역시 기묘하게 반대의 함의를 갖고 있다. 디드로가 한 것처럼 단지 세계에 대한 그 사람의 현재의 정의, 사물에 대한 그 사람의 익숙한 감각에 머물러 있는 것만을 바랄 때에는, 급진적인 디드로 효과는 파괴적이며 소외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 자신이 자신들의 주류와 그들 자신의 자아개념에 갇혀 있다고 (또는 단지 한정되어 있다고)느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디드로 효과가 일종의 선물, 그 사람이 열망하는 자기정의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가장 자비로운 경우에는 디드로 효과는 파괴에도 불구하고 연속성의 잠재력을, 억압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가장 자비롭지 못한 경우에는 그것은 친숙한 것의 파괴와 억압된 것의 억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마케팅 체계에 있어서도 그 함의는 인상적이며 또 다시 이중적이다. 디드로 통일성과 효과는 취향과 선호를 변화시켜 새로운 소비패턴을 만들어내는 기회로 쓰일 수 있다. 일단 소비자가 최초의 출발구입을 하기로 설득되었다면, 일련의 구입 전체가 뒤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예를 들어 1950년대의 마케팅 노력은 구입할 때마다 지난번의 구입을 능가해서 소비자가 신규구입 때마다 사물에 대한 친숙한 감각에서 광적으로 멀어지는 소비 패턴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렇지만 디드로 효과가 소비자를 마케팅 영향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것은 디드로 통일체와 효과가 일관되고 변화하지 않는 소비패턴을 고취시킬 때 일어난다. 디드로 효과에 완전히 지배되고 디드로 통일체에 완전히 사로 잡힌 자는 새로운 소비패턴을 조장하려는 가장 교활하고 정교한 시도로부터도 안전하다. 이 개인은 고의이건 아니건 간에 전혀 침투불가능하다.
요약하면, 디드로 연구의 의외의 새로운 사실은 소비연구에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각 개인의 소유물들에는 그것들의 문화적인 의미에서 나오는 내적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더욱이 제품보완물들이 그것들의 현존하는 의미를 보존하거나 아니면 그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어떤 효과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시사한다. 디드로 통일체와 디드로 효과는 우리들이 지금 소비의 문화적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 이용하는 관념의 목록에서 한 자리를 차자할 가치가 있다. 그것들은 그 조명을 디드로의 연구를 훨씬 넘어서 투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