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은 다사함 김명식 선생님으로, 내가 1980년 첫사랑과 헤어져 방황하고 있을 때 시를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나의 문학 스승님이죠. (1944년 제주도 애월읍 하귀리 출생)
오후에 카톡이 왔는데 열어 보니 닉네임은 낯선데 내용을 보니 선생님이었습니다
전기와 전화를 개설해 주겠다는 해당 기관의 제안을 거부하신 터라 당연히 냉장고도 티비도 휴대폰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카톡을 보내셨을까요? 누구의 휴대폰인지 카톡은 누구를 시켜 보냈는지 알 수 없네요.
사진에는 여러 매체에 발표된 작품 사진들도 있는데 불투명해서 제외하고 얼굴 사진만 올립니다.
우리 나이로 일흔아홉이신데 신체 중 주름은 감출 수 없어도 정정해 보입니다.
「김명식은 1976년 은밀하게 배포한 <10장의 역사 연구>에서 미국을 한반도를 “동강내는 마귀”로 부르며 미국인들을 “코 크고 노랑내 나는 놈들”로 묘사했다. 당연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다」
출처 : 통일뉴스
선생님은 유신정권이 무너지면서 출소하셨는데 몸을 추스리기 위해 오신 곳이 내가 살던 이웃이라 현재까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죠. 이후 나는 취업차 그곳을 떠나게 되었고 서로 연락처를 몰랐는데 80년대 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우연히 재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90년 대 초 선생님은 전기도 수도도 없는 첩첩산중(강원도 화천)으로 떠나신 후 다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지난 2015년 인터넷으로 주소를 확인하고 당시 총무국장(오혜숙)과 함께 직접 찾아뵀는데 아마 12년 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때 11회 '문학의봄 한마당'에 강연을 요청했는데 당대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문인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시가 상품입니까?… 목숨을 걸지 않는 시는 이땅의 시가 아닙니다"... 벌써 7년 전의 일이군요. 동영상을 보시려면 행사기록(1) 317번 글 29분부터, 또는 320번 글을 재생하시면 됩니다. (행사 시간표에 따라 중간에 잘림)
첫댓글 강연을 좀 더 들었으면 했는데 행사 시간 때문에 중간에 자른 게 아쉽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신 분이네요ㆍ일흔아홉 정정하시네요ㆍ
멋있네요^^^ 진정한 시인이십니다.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