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라는
분의
글.
[김기춘의
단심丹心]
옛날 포철의 자회사인 광양제철소가 완공되어 년간생산 2천만톤이 됐을 때(90년대초)포철의 영원한 회장인 박태준은 수하 30여명을 데리고 국립묘지 박정희 대통령 유택 앞에 섰어요.
부하들을 도열시킨후 그는 [각하 보고드립니다. 태준은 이제 각하의 명령을 완수했습니다]하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그 때 박태준은 60대 중반입니디. 초로의 남자가 사망한 옛 주군의 묘소를 찾아 20몇년전 주군이 내린 명령을 완수했다고 보고하는 그 장면이 기자들을 감동시켰는지 당시 도하 각신문에는 그 기사와 사진이 톱이었습니다.
우리는 또 장세동이 주군 전두환을 향한 고난을 기억합니다. 충신이란
그렇습니다.20몇년에 걸쳐 주군의 명령을 완수한 박태준이나,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한 장세동이나, 죽음이 눈앞이라도 주군을 향한 단심을 버리지
않는 김기춘 같은 사람이 충신입니다.
김기춘은 청년검사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서 그 딸까지 2대에 걸친
인연을 이어갑니다. 그는 38년생입니다. 나의 큰누나도 38년생인데
38년생이면 우리나이 80입니다.
인생 80이면 귀신도 무섭지 않은 나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 나이가 되면
자유로운 몸이라도 만사가 귀찮아서, 절대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작은
분쟁도 피하는데, 그런 사람을 간신히 몸을 누일 한평 공간에다 24시간을 꼼짝 못하게 가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고문입니다.
20대에 끌려가서 몇날 며칠 극심한 고문을 받는데 그게 너무나 고통스러
우니까 오히려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죽을
기회가 있었다면,아무런 미련 없이 죽었을 겁니다. 실제로 30대인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는 감시자가 한눈판 사이에 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살을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합니다. 절대로 못죽게해요.
지금 김기춘의 고통지수가 진심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극단적일 겁니다.
며칠전 [조윤선 부부의 재발견]이란 글에도 지만. 고통이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어떤 형태였느냐에 따라 달라요. 80평생을 절도와 강도로 험하게 살아온 류의 사람이라면 현재 김기춘이 받는 고통은 치명적이지 않을겁니다. 그러나 평생을 평화와 안정으로 살아온 김기춘에게는 현재의 고통이, 마치 20대가 극심한 고문으로 죽여달라고 호소 할 만큼의 고통일 겁니다.
김기춘은 그런 고통에도 기백를 잃지 않았습니다. 7년을 구형받은 재판정에서, “나를 아무리 족쳐도 나올 말은(대통령을 모함하여 엮을 꺼리)없으니
이제 내가 집에서나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대통령은 절대 항복하면 안된다는 시그널도 보냈습니다.‘나는 죽을 각오가 됐다’는 그의 숨은 말을 대통령은 금방 알았을 겁니다..
김기춘은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결코 대통령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자신들을 살리려고 항복 할까봐 걱정 합니다.
지금 그 분은 부녀 2대에 걸친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겁니다. 그분의 단심이 눈물겹습니다.
17.7.10
손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