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생활만 10년 넘게 한 우 대표가 직장을 관두고 외환경영컨설팅을 창업한 건 이달 초. 지난해 말 있었던 키코 본안소송 1심 판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재판부는 "키코가 환헤지에 부적합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기업들이 적어도 일부 승소는 할 줄 알았어요. 결과가 허탈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민사 소송 시효가 3년에 불과해 아직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기업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없어진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어요. 억울한 기업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 엄밀한 논리와 은행 관련 실무 지식 부족이 패소 원인이라는 생각에 회사 설립을 결심했습니다."
외환경영컨설팅 창업은 한 전직 은행원의 뒤늦은 양심선언인 셈이다. 그가 과거에 몸담았던 금융권으로서는 여간 거북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 대표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이 결정이 필연적이었다고 말한다.
우 대표는 1992년 외환은행에 입사해 은행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 시절을 포함해 재직기간 9년 중 절반 이상을 외화자금부 소속으로 딜링룸에서 보냈다. 2001년 퇴사한 뒤 헤지펀드를 거쳐 2003년 카이스트 금융공학연구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 대구은행에 스카우트돼 파생상품 업무를 맡았고, 이후 외환선물에서 근무하다 외환경영컨설팅을 창업했다.
키코와 관련을 맺은 건 대구은행에서였다. 외국계 은행 영업사원들이 서울에서 KTX를 타고 대구까지 내려와 키코 영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지시 때문에 할 수 없이 키코를 하나 팔아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싶어 키코에 가입하겠다는 기업은 다른 은행으로 보내버렸다"고 우 대표는 말했다. 키코 문제에 대한 그의 고민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했다.
"키코가 신문지상에 매일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키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장내 파생상품 활성화가 답이다, 달러옵션이라는 상품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런데 달러옵션은 거래소 상품이라 은행에서는 다룰 수 없었어요. 그래서 선물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 대표는 키코에 대해 "은행이 팔아서는 안 될 상품을 부당한 방법으로 팔았다"고 말했다. 가격의 적정성, 헤지 적합성, 설명의무 이행 중 어느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키코는 명백히 환헤지에 부적합한 상품이고, 은행은 판매 과정에서 이 같은 점을 고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수수료까지 챙겼다는 것이다.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제 과거 동료들도, 같이 일했던 외국계 투자은행 직원들도, 학계에 계신 분들도 개인적으로 얘기해보면 키코가 잘못된 상품이라고 얘기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안데르센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이 떠올라요. 남들이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 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진실을 말한 아이 역할을 제가 하고 싶습니다."
[노현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