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을 이렇게 엉망으로 꾸려가도 파산지역에 이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정부여당 연석회의같은 국회,물가등귀,페르시아만사태에도 불구하고 마구 낭비하는 에너지정책,증권시장의 혼란 등등 어리석고 멍청한 짓만 골라하는데도 나라살림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 멀쩡하게 굴러가는데 별나게 느껴진다.
 그 까닭은 뭣인가.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존귀하지 않은 무명민초의 끈질기고 성실한 노력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들이 애쓰고 힘들인 덕분으로 이 나라가 이나마 지탱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 구체적인 예증을 서울 종로소방서 세종로파출소 고기종소방장의 순직에서 본다.
바로 이런 분들 덕분으로 우리는 이 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고씨는 지난 19일 밤 불이 난 서울 중구 의주로 2가 녹지대 안에 있는 지하 송변전실에 뛰어들었다가 11m아래로 떨어져 순직했다. 소방생활 23년이 그렇게 마감됐다.
고씨는 지난 72년 12월 서울시민회관 대화재때 당시 처음 도입된 굴절사다리차를 수십차례의 시도끝에 화단을 넘어 건물벽에 바짝 접근시켜 60여명의 학생을 구출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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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진) 1972년 세계보도사진전 은상, 박태홍 기자, 서울 광화문의 시민회관 대화재 당시 4층 회전창틀에 다리가 낀 채 매달려 있는 조수아양을 소방관이 구출하고 있다. |
고씨는 이에 앞서 71년 12월의 대연각호텔 화재,74년 10월의 뉴남산호텔 화재,74년 11월의 대왕코너 화재 등 대형 화재현장에서 소방특공대로 수십명의 인명을 구해냈다.
노부모와 부인 중고생 자녀와 함께 월급 46만원으로 고씨는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남편의 참변소식으로 부인은 실신,병원에 입원중이고 중풍으로 누워 있는 칠순의 아버지는 병석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우리는 고씨의 죽음 앞에서 부끄럽다. 이런 무명민초의 착하고 끈질긴 노력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시한 채 호사를 즐기고 누리지 않았을까.
열악한 근로환경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진즉 결딴나고 부서지고 깨어졌을 것이다.
위험수당이랍시고 월 1만1천원이 소방관들에게 지급된다. 국민의 생명의 손실과 재산의 소실을 막기 위해 목숨을 잃어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도 못한다.
 군인이나 경찰과는 달리 소방관의 경우 임무에 대한 구체적 명시가 법제화되어 있으나 생명 신체에 대한 보훈(순직 공상)에 대해서는 특별규정이 없다.
또 소방관은 연말연시 설날 대보름과 석탄일 성탄일 등 공휴일이면 으레 비상화재 특별경계근무에 임하게 된다. 차례나 성묘도 못한다. 그런데도 시간외 근무수당이나 공휴근무수당이 별도로 계상되지 않고 있다.
보통사람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고씨와 같이 박봉으로 생명을 걸고 온힘을 쏟아 이 사회를 지탱해가는 사람을 눈여겨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의 헛구호일 뿐이다.
고씨의 순직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깊이 이 사회의 지주에 대해 경의와 애도가 있어야 한다. 정치 경제 엘리트의 참회와 반성이 거듭되어야 한다.
1990년 9월 22일 동아일보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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