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도 |
구 분 |
신 청 |
승 인 |
성 사 |
1989 |
북한방문 남한방문 |
1(1) - |
1(1) - |
1(1) - |
1990 |
북한방문 남한방문 |
7(199) 5(306) |
6(187) 5(306) |
3(183) 4(291) |
1991 |
북한방문 남한방문 |
12(244) 3(175) |
11(243) 3(175) |
10(237) 3(175) |
1992 |
북한방문 남한방문 |
17(303) 4(113) |
8(257) 3(103) |
8(257) 3(103) |
1993 |
북한방문 남한방문 |
6(21) 2(6) |
5(19) 2(6) |
4(18) 2(6) |
1994 |
북한방문 남한방문 |
12(78) - |
7(54) - |
1(12) - |
1995 |
북한방문 남한방문 |
64(563) 1(7) |
58(543) 1(7) |
52(536) - |
1996 |
북한방문 남한방문 |
50(249) - |
35(170) - |
28(146) - |
1997 |
북한방문 남한방문 |
156(1,194) - |
149(1,172) - |
136(1,015) - |
1998 |
북한방문 남한방문 |
402(3,980) - |
387(3,716) - |
340(3,317) - |
1999 |
북한방문 남한방문 |
886(6,199) 1(62) |
862(5,997) 1(62) |
822(5,599) 1(62) |
2000 |
북한방문 남한방문 |
865(8,070) 10(706) |
845(7,737) 10(706) |
804(7,280) 10(706) |
계 |
북한방문 남한방문 |
2,478(21,101) 26(1,373) |
2,374(20,096) 25(1,365) |
2,209(18,601) 23(1,343) |
특히,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래, 정경분리원칙등을 바탕으로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방북인원이 크게 증가하였다. 1998년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북한을 방문한 남한주민은 총 16,019명으로 1989년부터 1997년까지 9년간의 방북인원 2,405명의 6배를 넘는 것으로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남북간 인적교류가 크게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북한주민의 남한방문 현황을 보면, 2000년 한해동안 706명이 남한을 방문하여 지난해 62명에 비해 11배 이상 늘어났다.
1990년 이후 2000년까지 남측을 방문한 인원은 총 1,343명으로, 방문 인원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 291명이었으나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남한방문이 없다가 1999년 62명, 2000년에는 706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 금강산 관광사업 관련 방북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한 이래 2000년 12월말까지 관광선이 총 670회 운항되어 371,637명(외국인 828명, 영주권자 184명 포함)이 금강산을 관광하였다.
2000년에는 「금강」․「봉래」․「풍악」호가 차례로 매일 운항되고 「설봉」호가 추가 투입됨으로써 월 평균 15,000여명 이상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또한 금강산 관광 및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현대관계자 등 실무인력의 방북이 계속되어, 2000년에는 2,148명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다. 경제분야 관련 방북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경제분야와 관련한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은 신청 477건(1,904명), 승인 426건(1,702명), 성사 370건(1,376명)이며, 2000년에는 신청 139건(688명), 승인 130건(633명), 성사 125건(543명)이 이루어졌다. 이는 전년도에 비하여 방북인원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1992년 10월 남포 경공업단지 투자실무조사단의 방북 이후 한동안 중단되었던 기업인의 방북은 1994년 11월 8일 「남북경협활성화조치」 이후 재개되었으나, 북한의 무장잠수함 침투사건 등 남북관계의 상황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위축되기도 하였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남북경협의 추진과 1998년 제2차 남북경협활성화조치로 대기업 총수의 방북이 허용되면서 같은 해 10월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협의하였고, 1999년에는 금강산 관광사업과 서해안공단 조성사업에 관해 북한의 고위층과 직접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경제협력에 관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남북경제협력의 기반구축을 위한 당국간 협의를 위하여 11월에 22명, 12월에 35명의 정부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당국간 경제협력 협의를 하였다.
이와 함께 협력사업의 추진과 협의를 위한 우리 경제인들의 북한방문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현대와 한국토지공사 관계자가 공단 조성사업 협의를 위해 세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공단조성 후보지인 개성에 조사단을 파견(2000.11.1112. 5), 측량 및 지질조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삼성전자의 임가공사업 및 전자복합단지 조성 협의,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담배임가공사업 추진, 평화자동차의 자동차 수리개조 사업 추진, 녹십자의 의약품 개발 사업 등을 협의하였다.
라. 사회문화분야 관련 방북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사회문화분야와 관련한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은 신청 257건(2,047명), 승인 231건(1,918명), 성사 180건(1,496명)이며, 2000년에는 신청 102건(949명), 승인 98건(934명), 성사 79건(674명)이 이루어졌다. 이는 전년도에 비하여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특히 언론․출판과 체육분야에서 많은 증가가 있었다.
사회문화분야에서의 북한방문은 남북 국악인 서울․평양 공연, 남북통일축구대회 및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단일팀 평가전 등 남북공동행사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1992년부터는 종교인 등의 개별적인 북한방문이 성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6년까지는 북한이 체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사회문화분야 교류를 기피함에 따라 이를 위한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7년 중앙일보의 북한문화유적 답사․조사를 위해 방북이 재개되고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 사회문화계의 대북 교류 열기가 고조되면서 지난 수년간의 실적을 능가할 정도로 사회문화교류를 위한 방북이 증가하였다. 특히, 제3국에서의 접촉위주로 이루어지던 사회문화교류가 평양, 서울 등 한반도 내에서 직접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학술․체육분야의 방북은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 현재까지 신청 105건(1,114명), 승인 100건(1,091명), 성사 81건(840명)이며, 2000년에는 신청 67건(628명), 승인 65건(624명), 성사 53건(451명)이 이루어졌다.
2000년도 주요 방북사례로 선문대 이형구 교수, 동국대 김동현 교수가 개성 영통사지 조사 및 복원계획을 협의하기 위해 방북하였고,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일제 강제병합자료 전시회 개최와 학술교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초청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또한 우인방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약칭 아태), 민족화해협의회(약칭 민화협)가 통일염원 금강산자동차질주경주대회를, 삼성이 아태와 통일탁구경기대회 평양경기를, 부산광역시가 아태와 금강산 성화 채화를, 현대와 아태가 평양실내종합체육관 건설사업을 위하여 우리측 관련인사와 건설근로자들이 방북하는 등 학술․체육분야에서 북한 방문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언론․출판분야 방북은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38건(253명), 승인 32건(228명), 성사 27건(206명)이며, 2000년에는 신청 16건(167명), 승인 15건(160명), 성사 12건(146명)이 이루어졌다. 언론․출판분야에 있어서 방북은 취재․보도를 주목적으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점과 정보를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보다 추진이 어려웠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언론사 사장단 방북이 성사되면서 향후 남북언론교류 전망을 밝게 했다. 언론사 사장단은 방북시 「남북언론기관간 합의문」을 채택하였으며, 북한 언론기관대표의 서울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2000년도 주요 방북사례로는 KBS가 9월 추석날 백두산에서 북한측 방송인들과 생방송을 실시하였으며 또한 10월에는 SBS가 방북하여 취재내용을 생방송으로 보도하였다. 또한 한겨레신문도 10월 방북하여 취재보도하였으며 그 외 MBC, 주간동아, 월간 말 등이 방북취재하였다.
종교분야에서의 방북은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57건(231명), 승인 49건(194명), 성사 36건(146명)이며, 2000년에는 신청 10건(49명), 승인 10건(49명), 성사 9건(47명)이 이루어졌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방북인원이 20% 증가한 것으로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 각 교단에서 활발히 종교교류를 추진한 결과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31건(346명), 승인 26건(314명), 성사 17건(235명)이며, 2000년에는 신청 6건(91명), 승인 5건(87명), 성사 3건(25명)이 이루어져 전년도에 비하여 감소하였다.
2000년도 주요 방북사례로 임권택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의 방북(11.1118) 등을 들 수 있다.
마. 대북경수로 건설사업관련 방북
1995년에 부지조사단 및 의정서 협상을 위한 대표단이 방북한 이래 경수로건설사업의 진전에 따라 관련 인원의 북한방문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1997년에 부지정리 등을 위한 초기 현장공사가 착공되고 1998년에는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공사관계자 등의 북한방문이 크게 증가하였다. 1999년 한해 동안 911명의 남한주민이 경수로사업 추진을 위해 방북하였으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금호사무소 인원, 한전 및 합동시공단의 건설인력 등 공사관계자들이 신포부지에 장기체류하고 있다.
2000년도 대북경수로건설사업관련 방북은 신청 194건(2401명), 승인 191건(2,280명), 성사 187건(2,231명)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전년도와 비교하여 1.4배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증가는 1999년 12월 15일 본공사 계약(TKC)이 체결됨에 따라 2000년부터는 경수로건설사업 관계자들의 북한방문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 2000년도 분야별 방북 현황 >
(단위:명)
구 분 |
관 광 (실 무) |
경 제 |
사 회 문 화 |
경수로 사 업 |
대 북 지 원 |
이산가족 (교류주선) |
기타 |
계 |
방북인원 |
2,257 |
543 |
674 |
2,231 |
751 |
348 |
476 |
7,280 |
바. 북한주민의 남한방문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은 신청 26건(1,375명), 승인 25건(1,365명), 성사 23건(1,343명)이며 2000년에는 10건(706명)이 신청되어 모두 승인․성사되었다.
지금까지 성사된 북한주민의 주요 남한 방문사례로는 남북고위급회담(19901992)을 위한 북한대표단 서울방문, 남북통일축구대회(1990) 및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평가전(1991) 서울경기 참석, 산업시찰을 위한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 일행의 남한방문(1992) 등이 있다. 그러나 1993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서울에서 개최한 두만강개발계획 관련 통신분야 전문가회의(1.271.30)와 자원․산업․환경분야 전문가회의(11.810)에 각 3명씩 참석한 이후로 1998년까지 북한주민들의 남한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은 1999년에 들어와 「제2차 통일농구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측 농구단 및 관계자 62명이 서울을 방문(12.2225)함으로써 재개되었다.
2000년에는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이 현격히 증가하여 1989년 이후이루어진 전체 남한방문수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인원이 남한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방문의 급격한 증가는 사회문화교류의 증가와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남북간 협의를 위한 회담의 회수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 분야별 남한방문 현황>
(1989.6.122000.12.31,단위:명)
구 분 |
남북회담 |
체 육 |
문화예술 |
경 제 |
학 술 |
이산가족 |
기 타 |
계 |
인원(명) |
420 |
210 |
369 |
34 |
15 |
287 |
8 |
1,343 |
주요 남한방문사례로는 평양학생소년예술단 공연 (2000. 5.2427)에 102명, 평양교예단 공연(2000. 5.276.11)에 102명,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2000. 7.2931)에 25명,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2000. 8.158.18)에 151명, 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2000. 8.1824)에 132명, 김용순 특사 방문(2000. 9.1114)에 8명, 제1차 남북경제협력실무접촉(2000. 9.2426)에 15명,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2000. 9.2426)에 13명, 제3차 남북장관급회담(2000. 9.2730)에 22명, 제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2000.11.3012. 2)에 136명이 남한을 방문하였다.
2. 북한주민접촉
가. 개 황
남한주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22,511건(39,394명), 승인 22,099건(37,820명), 성사 6,041건(13,43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2000년도에는 신청 2,831건(4,950명), 승인 2,812건(4,899명), 성사 1,710건(2,468명)이 이루어졌다.
북한주민접촉은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등을 겪으면서 199년에는 237건(691명)으로 일시 감소하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 이산가족 및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1998년부터는 금강산 관광사업 추진 등 경제분야에서 북한주민접촉 신청이 급격히 증가되었으며, 그 이후 사회문화 및 이산가족과 관련하여 꾸준히 접촉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주민접촉은 이산가족들의 재북 가족과의 서신교환, 기업인들의 교역․투자상담, 학자․종교인들의 제3국 개최 공동행사 참석 등의 형태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0년도 북한주민접촉의 경우 1999년도에 비해 감소하였는데, 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당국간 협력을 통한 이산가족 문제해결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제3국을 통한 개별접촉 등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2000년도 분야별 북한주민접촉은 경제분야 272건(400명), 관광분야 2건(7명), 사회문화분야 165건(668명), 대북지원 21건(115명), 이산가족 1,239건(1,239명), 기타 11건(39명) 등이다.
< 연도별 북한주민접촉 현황 >
연도 |
신 청 |
승 인 |
성 사 |
1989 |
36(70) |
21(22) |
- |
1990 |
235(687) |
206(652) |
62(377) |
1991 |
753(2,195) |
685(2,047) |
266(1,173) |
1992 |
801(2,420) |
744(2,250) |
238(1,015) |
1993 |
1,172(2,220) |
1,148(2,182) |
313(707) |
1994 |
1,338(2,864) |
1,261(2,673) |
237(691) |
1995 |
1,011(2,769) |
1,007(2,703) |
494(1,222) |
1996 |
729(2,338) |
692(2,029) |
465(1,003) |
1997 |
1,387(2,969) |
1,340(2,850) |
516(1,191) |
1998 |
4,628(6,714) |
4,567(6,623) |
856(1,890) |
1999 |
7,590(9,198) |
7,616(8,890) |
884(1,698) |
2000 |
2,831(4,950) |
2,812(4,899) |
1710(2,468) |
계 |
22,511(39,394) |
22,099(37,820) |
6,041(13,435) |
나. 관광사업 관련 접촉
관광분야에서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173건(552명), 승인 165건(524명), 성사 49건(152명)으로 집계되었다. 2000년에는 신청 7건(28명), 승인 7건(28명), 성사 2건(7명)이 이루어졌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해서는 1998년부터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현대와 아태 관계자간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관광분야의 교류는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하여 대부분 국내여행사 등이 접촉 승인을 받고 접촉을 시도하였다. 우리측은 주로 북한의 문화유적 및 관광지 개발과 남북관광분야 협력방안을 논의하고자 하였으나, 북측과의 실질적인 협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 경제분야 접촉
경제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3,960건(9,586명), 승인 3,869건(9,342명), 성사 2,045건(3,441명)에 이르고 있다. 2000년에는 신청 504건(943명), 승인 515건(951명), 성사 272건(400명)으로 전년도와 비교하여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물자교역 및 남북경협 협의목적의 북한주민접촉은 베이징, 홍콩 등 제3국에서 꾸준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접촉을 시작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업인의 방북 등으로 이어져 남북경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0년도에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중소기업 대북투자 협의(4.29, 베이징), 중견기업연합회의 대북투자협의(6.13, 베이징), 중소기업인 정선개발(주)의 대북사업 협의(12.17, 베이징) 등 대북투자 상담과 교역관련 협의를 위한 북한주민접촉이 성사되었다.
라. 사회문화분야 접촉
사회문화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학술, 문화예술, 체육, 종교, 언론․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학술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말까지 신청 556건(3,923명), 승인 508건(3,273명), 성사 180건(2,036명)이 이루어졌다. 2000년도에는 신청 77건(300명), 승인 67건(267명), 성사 26건(60명)으로 전년보다 접촉신청 건수가 2배 가까이 증가하였으나, 성과 건수는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다. 남북간의 학술교류와 관련하여 북한주민접촉은 중국지역의 동포학자․단체들의 북한과의 교류경험을 활용하여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중국지역에서 공동학술행사를 개최하거나, 국제학술회의에 남북이 동시에 초청되는 방식으로 주로 추진되었다.
2000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세계 속의 한국어 대비연구 국제학술토론회(8.11~13, 베이징), 조선장학회창립 100주년기념 고대사 심포지움(11.24, 도쿄), 남북한 그리고 중국 조선족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토론회(12.19~20, 연길) 등이 있었다.
문화․예술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의 신청 400건(1,694명), 승인 350건(1,597명), 성사 134건(902명)으로 집계되었다. 2000년에는 신청 62건(213명), 승인 62건(217명), 성사 36건(155명)으로 전년에 비해 약간 증가하였다.
2000년도의 주요 접촉사례로는 배달문화교류회의 하바로브스크 아리랑 콘서트 참가(8.1416, 하바로브스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코리아통일예술축전 개최 협의(11.2812.1, 베이징) 등이 있으며, 특히 일본에서 「조총련」과 「민단」이 함께 주최하는 공연행사 등에 참가하는 사례도 늘어났으며(원코리아페스티발), 조총련계 예술인(김홍재, 이철우 등)을 초청하는 경우도 잦았다.
체육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224건(1,071명), 승인 214건(1,031명), 성사 73건(585명)이다. 2000년에는 신청 32건(144명), 승인 33건(149명), 성사 15건(67명)의 북한주민접촉이 이루어져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2000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서서울청년회의소의 한․일 친선축구대회 참가(7.288.1, 교토), 충청대학의 국제태권도대회 참가(8.2429, 연길), 현대노장축구회의 노장축구친선경기 및 회의 참가(9.36, 연길), 체육과학연구원의 아시아스포츠 과학학술세미나 참가(11.2024, 베이징) 등이 있다.
종교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374건(1,788명), 승인 318건(1,638명), 성사 135건(993명)으로 나타났다. 2000년에는 신청 43건(185명), 승인 41건(187명), 성사 21건(118명)이 이루어져 1999년에 비해 접촉 성사건수는 다소 증가하였으나, 접촉인원은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 주요 접촉사례로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하얼빈세미나(10.2426), 기독자 후꾸오까회의(12.1215) 등을 들 수 있다.
언론․출판분야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 말까지 신청 338건(973명), 승인 296건(871명), 성사 109건(393명)이 이루어졌다. 2000년에는 신청 70건(273명), 승인 67건(268명), 성사 55건(246명)이 이루어졌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하여 언론의 대북접촉이 활발해진 데 따른 것이다.
2000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언론사들의 취재협의 및 프로그램 제작협의 등이 있었다. 또한 남북언론 교류차원에서 남북신문교환이 합의되고 일시적이나마 진행되었던 것은 언론교류에 있어서 의미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출판분야에서는 삼성당과 현암사, 규장각, 고려사, 동방미디어 등의 북한출판물 국내 출간 협의를 위한 접촉이 진행되었고, 국내 출간도 일부 이루어졌다.
과학․환경분야에서의 북한주민접촉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말까지 신청 231건(875명), 승인 220건(857명), 성사 57건(311명)이 이루어졌다. 2000년에는 신청 32건(80명), 승인 31건(79명), 성사 12건(22명)이 이루어져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첫댓글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앞두고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11월 18일 시작 2000년 12월말에는 총 371,637명(외국인 828명, 영주권자 184명 포함)이 다녀온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남북평화통일의 시작을 온 누리에 알렸던 2000.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