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無錢長壽의 旅路
김 주 석
「서울약령시장」은 청량리 경동시장과 청과시장이 어우러져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원하는 한약재를 구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전국은 물론이고 중국 및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의 약재 집산지이다.
까칠한 얼굴에 꾸부정한 진국씨가 무리 속에 섞여 단골로 다니는 「한국토종약재상」에 들어서자 약재상에서는 드물게 젊고 예쁜 여사장이 진국씨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그간지방에 다녀오느라고 찾지 못했습니다.”
진국씨도 마주인사를 했다.
“지난번에 구입하신 천마는 달여 드시고 효과가 있었는지요?”
“아 예, 아직 절반도 먹지 못해 잘 느낄 수 없네요.”
“뇌 질환이라 단번에 약효를 보기는 어려우므로 꾸준하게 복용 하셔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항산화작용 및 피부점막을 보호해주는 자소엽(차조기)과 뇌혈관및 기억력회복에 좋은 원지를 구입한 후 여주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잔 병치래 없이 건강을 자신하다 일 년 전 예고 없이 갑작이 두통이 찾아온 것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바늘로 머리를 꾹꾹 찌르는 듯이 아프고 열이 나면서 온몸이 나른해져 안구가 충렬 되어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의도 하지 않은 병마와 마주하면서 모든 것이 심드렁해져 힘을 잃고 축 늘어지면서 몸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에다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각종 암과 고질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하는 공포가 겹쳤다.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살이고, 알 수 없이 찾아드는 게 병마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만사를 제쳐두고 서둘러 종합병원을 찾았다. 여러 종류의 시험과 약물검사를 한 종합결과에 의해 담당의사는 '두피성 두통'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CT촬영에 나타난 하얀 점을 가리키며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 우측 뇌에 조그마한 혹이 생긴 것이라 설명해주었다. 앞으로 담배를 피우면 더욱 두통이 악화 되고, 이 시간이후부터 절대 금주를 해야 한다는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또한 처방된 약을 먹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통은 씻은 듯이 없어져 처음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의학의 혜택에 깊이 감사했다.
통증에서 벋어나면서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으나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 했다. 3개월 동안 약을 먹어도 치료가 되지 않고 약을 먹을 때만 아프지 않았다. 점차회의가 들기 시작하면서 약의 부작용으로 위가 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정신의 꼿꼿함으로 육체의 노쇠를 거부한다는 생각은 한낱 허구가 아닐까하는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금 병원을 찾아가 담당의사에게 지금까지 경과를 설명하고 처방약의 부작용으로 장기복용하기 어려움을 상의했다. 그리고 처방된 약이 어떤 약인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 약은 아픈 것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소염진통제이고, 치료약은 아니라고 했다. 약을 복용하기 어려우면 어쩔 수 없이 하루에 2번씩 주사를 맞아야 진통을 멈출 수 있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지긋지긋한 병을 옆구리에 끼고 살아야 하는 것이 끔직 하기만 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든 현대의학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어쩔 수 없이 위장약을 함께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고 있었다. 그러든 지난봄 약령시장안에 있는 한의원을 찾았다 나오는 길거리에 우연히 과거 직장동료로 친하게 지냈든 강석씨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면서, 퇴직 후의 고단한생활상과 동료들의 근황을 알아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5년 전 폐암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폐암은 치유가 어려운 난치성질환으로 폐를 절반가량 잘라 내는 힘든 수술과 6개월 이상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후 병원 문을 나섰을 때는 세상에 홀로 내팽개친 외로움과 죽음을 눈앞에 둔 처절한 상황에 내몰렸다고했다. 잠시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고 나서 생과사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든 월남전에서도 살아온 목숨인데 쉽게 생명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강한의지가 솟아났다. 기대고 등 부빌 곳이 없어진 말기암환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벼랑 끝에 매달린 절박한 심정으로 한의학과 자연치유의 방법을 찾는데 매달렸다고 했다. 이어서 이병에 걸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고향의 친척을 찾아가 암 극복의 비결을 듣고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홀로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치유법을 실행에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폐질환에 가장 중요한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오전11시 이후부터 피톤치드가 풍부한 침엽수인 편백나무와 소나무숲속에서 산림욕을 하고, 식생활을 개선하여 검은콩, 수수, 현미, 율무, 들깨, 고구마를 먹는 한편 강력한 항암작용을 하는 개 복숭아 효소를 중심으로 겨우살이, 머위, 개미취, 와송, 도라지 등을 달인 약물을 수시로 복용하면서 생명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화학약물과 항암주사로 인해 지치고 쇠약해진 몸이 3개월 이후부터는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후3년 간 치열한 투병생활 끝에 지금은 거의 완치단계에 들었다면서 긴 치료과정을 들려주었다.
이외에도 강석씨는 대학병원이나 대형종합병원 주변에는 말기 암, 심혈관질환, 뇌질환 등의 절박한 환자들에게 접근하여 이름난 대체의학으로 완치할 수 있다며 바람을 잡는 전문 브로커들이 많이 있으므로 특히 주의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작년 이맘때쯤 MBN종편방송천기누설프로그램에서 항암제약보다 1.200배가 넘는 개똥쑥 효능으로 암을 완치했다는 사람이 방송에 증언을 하면서, 개똥쑥은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지면서 제기동의 한약방과 약제상은 물론이고 노점상들조차도 길거리에서 최고의 몸값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JTBC종편방송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영돈 PD가 개똥 쑥을 먹고 암을 극복했다고 증언한사람을 추적하여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사람은 암에 걸린 사실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개똥 쑥을 파는 장사꾼이 이었음이 밝혀졌다. 개똥 쑥의 약효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이후 개똥 쑥은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주스, 올리브유, 소금을 혼합하여 잠자기 전에 먹으면 용변시노폐물이 진흙처럼 빠져나온다는간청소법으로 기생충을 제거하여 암과 에이즈 등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허위 선전이 광범위하게 우리사회에 퍼져나갔다. 여기에다 이들은 정통의학계로 부터탄압을 받고 있으며 천연재료를 쓰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간청소법은 의학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미국식품의약안전청으로 부터 사기성이라고 판정을 받았다.
의학정보의 홍수 속에 현대의학의 한계성을 파고들어 벼랑 끝에 선 절박한 환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의학사기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술을 우리모두가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파듯이 가난한 진국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치유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강석씨가 참고자료로 전해준 의학 및 침. 뜸 서적을 샅샅이 살펴보는 외에 각종방송에 나오는 건강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언론매체에서 셀 수 없이 솟아져 나오는 건강비법과 의학정보를 기록한 내용이 대학노트 2권이 넘었다. 진국씨의 두통원인은 머리에 몰린 기혈이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한 기혈순환장애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막힌 곳을 뚫어주어 뇌혈 순환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혈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황금, 치자, 독활, 행인, 강활, 구인 등의 약재를 사용하여 달여 먹었으나 진통효과는 있지만 아직은 치료가 되지 않고 있다.
한의원에서 뜸을 뜨고 침을 맞아보았으나 별다른 효과를 볼 수 없는데다 원기를 돋우어야 한다며 고가의 경옥고와 공진단을 구입하기를 권하는 부담감으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작년 말 우리나라100세 이상 노인이 14.942명이라고 발표하였다. 오래살고 싶지 않아도 오래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는 고통 속 연명수준으로 오래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장수의 품격이 중요한 것이다.
늙음과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없는 숙명이지만 건강은 인간의 모든 가치 중 최우선이다 .오래 살아 복을 누리고 건강하여 마음이 편안한 수복강녕(壽福康寧)은 인간이 가장 염원하는 꿈이다.
병이 있으면 반드시 치료약이 있다고 했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우리 곁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진국씨는 그 약을 찾기 위해 먼 나그네 길을 걸어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