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시| 김선희
어느 천문학자에게 외
나는 그를 쫓아간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꼭대기다 그는 그곳을 올라 어떤 큼직한 건물 둥근 돔을 열고 밤하늘을 들여다본다 그는 열심히 별과 별들의 이웃사촌 별 밭을 헤치고 그 동네의 비밀과 숨은 법칙과 줄줄이 엮여 내려온 전통과 전 생애에 걸친 풍성한 잔치와 빛의 눈물과 화려한 폭발과 기우는 목숨의 숨결과 찬란한 조락凋落까지 다 들여다본다
나는 그가 부럽다, 산꼭대기 바람 부는 바위 벼랑에 삼각대 하나 걸쳐놓고 영하의 밤바람에 떨며 나그네별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한밤의 그가 부럽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신성神聖의 길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산 아래 불빛을 싫어했고 완벽한 어둠을 사랑했다 나날이 어둠 속에 걸어가는 꽃들의 발뒤꿈치를 영상으로 베꼈다 그는 수 세기를 거기서 먹고 자고 살며 스스로 빛을 열어가는 무한한 하늘을 가졌다
나는 그를 흠모했다, 그가 누구이든, 마음이 한 방향으로 향하는 이를 만나면 감격의, 환희의, 악수를 청한다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는 그의 등 뒤에 한아름 꽃을 뿌려주고 싶다 뒤늦은 회한의 눈물도 보여주고 싶다 저만치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발자국이 가슴으로 쿵쿵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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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을 바라보며
모든 존재는 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떤 천문학자는 땅을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했다 유전자 정보를 담은 DNA의 이중 나선 사슬과 수천억 개에 달하는 뇌의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기 위해 수소와 헬륨보다 더 복합적인 요소가... 우주가 만들어 낸 거대한 별이 폭발한 초신성 이후, 우리는 어떤 요소들을 끌어모아 완벽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 냈을까, 그 시스템 속에 고유한 꽃술처럼 탄생한 하나하나의 영혼들, 나와 무한 시공의 별이 연결되는 무한 사색의 광장은 밤마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 내는 기막힌 조화 속에 모든 존재를 하나로 만들어 버린다
너와 나의 존재의 근원은 하나라는 어떤 말씀 속에 왜 그들은 또 무기를 만들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 46억 년 전에 태어난 태양의 신비 안에
짧디짧은 시간밖에 갖지 못한 자의 넘치는 욕망 때문일까,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 신비의 시간 앞에 선다 먼 영원을 사색해 볼 수 있는 어둠의 시간이다 낮은 영혼의 꽃들이 자라고 서로를 비춰보며 황홀해 지지만 밤은 행성과 별과 은하가 흘러가는 시간이다 그들의 근원을 캘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다 무한히 작은 너의 눈빛이 먼 우주를 향해 거대한 직물을 짠다 너는 수천만 광년의 그 빛들과 연결되어 있고 고독한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별에서 태어나 별빛을 바라보며 별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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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1987년 《부산MBC》 신인문예와 1991년 《문학세계》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고호의 해바라기』, 『꿈꾸는 실크로드』, 『내가 거기 서서 끝없이』, 『오랜 숲길』, 『세상의 나무』, 『달빛 그릇』, 『아홉그루의 밤나무』, 『가문비나무 숲속으로 걸어갔을까』, 『금성에 관한 소문』, 시선집 『섬과 호수의 바람』, 수필집 『내 마음 속에 잠자는 그리움이 있다』, 『자연과 더불어』 외 여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