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 어머님이 백수를 맞았다
시골집에서 아직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신다. 자식들이 그만하라고 아무리 말려도 마당은 호박이며 땅콩, 배추, 대파, 들깨등 없는게 없다
애호박 대신 조선호박이나 심으면 훨씬 쓸모있으련만 가끔 투정도 하지만 환갑넘은 지인은 여전히 살갑다.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도 자주 들여다보며 밭일도 돕고 한여름 대구서부터 수박하나를 끙끙대며 들고갔다가 스스로 미련하다 자책도 하는 귀여운 막내딸이다.
이번 백수 잔치를 막내딸이 주관했다. 오빠 언니들이 주문만 하고 움직이질 않는다지만 나이를 듣고 나면 그럴만도 하다. 대부분이 팔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직접 음식을 주문하고 선물을 마련하고 축하글귀도 적었다
“삽작거리 목단꽃이 백번을 피고지는 사이 ㅇㅇㅇ 여사가 상수를 맞았습니다…”
스스로도 흐뭇했다 한다.
잔치야 별거없었다지만 동내 어르신과 경로당에 몇날며칠 드실 음식을 가득 장만해 드린걸 보면 어머님이 가장 뿌듯한 날이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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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옛집에 가다>/ 이상국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만한 생을 펼쳐 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 몸으로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리 가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 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