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뜨락>
입춘에서 곡우, 그리고 입하까지
김 목(남도문학 발행인)
사계절의 첫 계절은 봄이다. 농경민족이었던 우리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굳어진 관념이고 현실이다. 그래서 봄은 새봄이라고 하나, 여름부터는 ‘새’ 자를 붙이지 않는다.
봄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의식주의 한 축, 옷을 짓는 뽕나무가 새움을 틔우는 때여서 ‘뽕’이 봄이 되었다 한다. 얼음장 아래 물고기 입에서 올라오는 물방울 ‘뽀금뽀금’이 봄이 되었다 한다. 눈 녹은 바위틈새, 퐁퐁 솟는 샘물의 ‘퐁’이 봄이 되었다 한다.
불의 옛말 ‘블(火)’과 ‘오다’의 명사형 ‘옴(來)’이 합해진 ‘블+옴’에서 ‘ㄹ’받침이 떨어져 ‘봄’이 되었다고도 한다. ‘보다(見)’라는 동사의 명사형 ‘봄’에서 온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입춘이 봄의 대길을 알리고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이 풀리면 앙상한 가지와 굳은 땅에서 새움이 불쑥, 불끈 솟아 온 산천을 덮는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벌, 나비들이 춤을 추고, 땅바닥엔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멧새들이 부르는 짝을 찾는 사랑의 노래는 새보금자리가 된다.
인간인들 다르랴? 춘분을 지나며 길어지는 낮만큼 더 움직이며 삶의 의욕이 충만해진다.
하지만 인간만사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2017년 새봄에도 ‘춘래불사춘’이라며 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어김없이 있었다.
‘한나라 국운 처음에는 융성했으니/조정에는 무신도 넉넉했다네/어찌 꼭 박명한 여인이/괴로움을 겪으며 먼 곳까지 화친하러 가야 했던가.’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에서 이 ‘춘래불사춘’은 유래한 말이다.
한나라 궁녀 왕소군이 정략결혼의 희생으로 흉노 땅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 왕소군의 슬픔을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하고 시인이 위로해준 것이다.
헤아려보면 왕소군의 그 슬픈 봄은 마음에 절절이 와 닿는다. 그러나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들이 ‘춘래불사춘’ 운운하며 억울해하는 데는 어이가 없다. ‘법적다툼이 남았네, 선고되기 전까지 무죄네’ 하고 궤변을 늘어놓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들을 이미 유죄로 인정하고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청명은 말 그대로 맑은 날씨다. 다행히 올해 청명 4월 4일은 맑은 날씨였다. 당나라 시인 두목은 ‘청명’을 이리 노래했다.
‘청명 맑은 날에 궂은비 흩뿌려/길 나선 나그네의 애를 끊나니/묻노니/주막집은 어디쯤이냐/목동이 손을 들어/살구꽃핀 마을을 가리켜주네.’
청명은 맑을 거라 믿고 길을 나섰는데, 비가 왔으니 얼마나 심숭샘숭이었겠는가? 다행히 주막집 있는 마을에 살구꽃이 활짝 피어 마음도 환해졌으리라.
그동안 우리는 청명한 세상을 바라고 살았다. 하지만 법과 원칙을 외치며 자신의 실책을 덮는 세력, 걸핏하면 종북을 내세우고 블랙리스트로 겁박하던 세력에게 우리는 궂은비보다 더한 북풍한설의 길에 있었다. 주눅이 들어 끓는 가슴 달랠 길도 없었다. 그런 자들이 또 춘래불사춘 운운하며 희생양인 척, 호시탐탐 뒤집기를 시도하니, 우리에게 살구꽃 핀 환한 마을을 알려줄 목동은 누구이며 어디 있을까?
다행히 올해 곡우, 4월 20일에는 비가 내렸다. 곡우비는 황금비요, 단비요, 약비다. 마른 대지는 촉촉해지고, 새움은 왕성해지며 꽃송이를 만들고 열매 준비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어렵게 일궈낸 이번 5월 9일 대통령 선거는 우리에겐 살구꽃 핀 마을이고, 당선자는 목동 아니겠는가? 시기는 비록 입하를 지나 여름이지만, 또 여름에는 ‘새’ 자를 붙이지 않지만, 올 여름은 꼭 ‘새 여름’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