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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7시 반의 순환로는 비어있습니다.
도로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에는 <소통원활>이라는 반가운 글자가 찍혀 있습니다.
저는 3주째 주일미사를 바친 후 소통이 원활한 순환로를 달려 친정으로 향합니다.
강변북로로 접어들기 전까지 도로 위에는 세 군데의 무인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장동 방향 진출로 가까이에 있는 첫 번째 카메라는 오래 전
앞자리로 넘어오려는 어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미처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목이 잘린> 제 사진을 찍어서 저를 고발했었지요.
규정 속도 시속 80km를 <겨우> 16km 초과한 그 위반행위는
7 만 원짜리 범죄였습니다,ㅎㅎㅎ.
이제는 무인 단속 카메라의 위치도 정확히 기억하는데다가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도 아닌 그 길에서 저는 유유히 카메라 아래를 통과합니다.
정확히 시속 80km로 말입니다.
그 이하로 속도를 줄이는 것은 왠지 너무 착한 척을 하는 것 같아 낯이 간지럽거든요,ㅎㅎㅎ.
그리고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가변차선 구간이 있는 것처럼 가변속도 구간도 필요해.
이토록이나 한적한 길에서 시속 80km로 달려야 한다는 것은 시간 자원의 낭비라고,
더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것은
이 고가도로가 그 이상의 속도를 장기간 견딜 수 없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근거 없는 억측을 합니다.
그 길 위에서 저는 늘, 한결같이,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순환로를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한양대가 나타나면
저는 그곳에서 재직하시던 돌아가신 교리 선생님을 추억합니다.
그리고 옥수동에 사는 숙현 언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 길 위에서 저는 늘, 한결같이,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저만치 63 빌딩이 보이고 한강대교의 교량이 보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제 다 왔구나 생각합니다.
저는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제한속도 시속 60km를 지켜 그 다리를 건넙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바로 그 시간보다 30여 분 앞서서
저희 가족은 백화점 앞을 지나왔었습니다.
저는 그날 그곳에 들를 예정이었는데
저녁약속이 있던 남편이 약속시간에 늦을까 다른 날로 미루었더랬습니다.
저는 그래서 빌딩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지는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그 다리가
매년 간단한 보수공사만으로 별 문제없이 유지된다는 사실에 경탄합니다.
그래서 그 다리를 아껴 아껴 건너느라 제한속도를 지킵니다.
그 다리는 또 제게 친정집의 지표가 되기 때문에 저는 그 다리가 늘 애잔합니다.
그 다리를 지나며 저는 늘, 한결같이,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다리를 건너 사육신묘 앞을 지날 때면
얼굴도 모르는 한 여자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합니다.
장사를 마치고 내려오던 새벽길 위에서
여자의 시린 옆구리를 파고들던 시린 칼날을 생각합니다.
세상을 저주하던 한 남자가,
누구든 이 길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 복수를 하리라 다짐한 한 남자가 휘두른 칼에 쓰러진
가엾은 한 여자와 그 가족을 생각합니다.
너무나 끔찍한 그 사건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잊혀지지도 않고 떠오릅니다.
그곳을 지나며 저는 늘, 한결같이,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한강대교를 건너기 위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저는 삼주 째 같은 일을 겪습니다.
한 남자가 차창 유리를 똑똑 두드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 나쁜 사람 아니거등요,
문 좀 열고 이 파인애플 한 번 잡숴보이소.
그러면 전 웃으며 손을 내젓습니다.
.
.
.
삶은,
너무나 지리멸렬하고 천편일률이고 구태의연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친정에는 늘 부모님의 생신이나 조카들의 생일 같은 행사가 있었죠.
매년 반복되던 그 <지리멸렬한> 생일축하가 솔직히 그립습니다.
성서에도 <인생은 강건해야 팔십>이라고 했는데 기껏해야 팔십번을 헤아릴까말까 한 그 일들은
지리멸렬로 느끼기에는 너무나 짧은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단 하루 머물렀던 손님에 대한 기억>처럼 사라져가고 아쉬움이 되어 남습니다.
지리멸렬함조차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새로움>이 잉태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겠지요.
지난 삼 주 동안 저는 <새로움>을 잉태한 채 친정을 향했습니다.
삼주 전 저는 아버지를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시켜 드렸습니다.
지난 주에는 떡을 맞추고 음료수를 장만해서 교리 선생님께 가져다 드렸죠.
아버지와 모든 예비자들이
주님의 돌보심으로 영세의 은총을 입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어버지는 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느냐며 저를 나무라시더군요.
그것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부담을 드리려는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교리 선생님께서 딸의 소망을 부담으로 느껴주시기를 바랬으니까요.
일흔을 넘기신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며 영세를 받게 하셨다는 마리아 고레띠 선생님은
아버지께서 먼저 자리를 뜨시자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예전의 당신 생각이 나신다면서요.
그리고는 손수 뜨신 푸른빛과 진분홍빛의 묵주 주머니를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저는 제 힘만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선생님께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성당을 나섰습니다.
아버지께선 성당 마당에 서계셨는데 굳이 미사를 바치지 않으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교리도 받으러 가질 않으셨습니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신 아버지 때문에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오늘 저는 아버지께서 못오게 하실까봐 전화도 드리지 않고
아버지께서 운동을 하고 계시는 공원을 찾았습니다.
등을 제 쪽으로 향한 채 배드민턴을 하시던 아버지께
지난 주 저를 보셨던 동료분들께서 딸이 왔노라 일러주셨습니다.
저를 돌아보시는 아버지 얼굴에 잠시 웃음이 비쳤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곧 난감한 사람의 그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빠, 딸이 예수쟁이가 돼서 이런다고는 생각지 마세요.
아빠와 제가 앞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신앙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이왕 이렇게 왔으니 저랑 같이 가세요.
이런 일 아니면 제가 아빠를 얼마나 자주 찾아뵐 수 있겠어요.
정말 그런 일이 아니라면,
그 지리멸렬한 생일잔치가 아니라면,
한 달에 한 번 아빠와의 점심식사가 아니라면,
제가 무슨 재주로 <일없이> 아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주일마다 모시고 다니겠노라 말씀을 드려도
당신 뜻을 굽히질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급히 돌아가야 하는 제 상황을 핑계 삼아
당신께서 먼저 등을 돌려 가셨습니다.
나름대로 아버지께 전교할 <준비>를 하던 제게
왜 주님은 <쓸데없는>일을 만드셔서 제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지 저는 알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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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했던 고레띠 선생님과의 짧은 포옹이 남긴 긴 여운을 느끼며,
선생님께서 짜주신 묵주 주머니의 부드러우면서도 보송보송한 감촉을 한 손에 느끼며,
가슴 속에 통증을 느끼며,
저는 강변북로를 되밟아 달렸습니다.
운전을 하고 있는 동안,
제게 허락된 호사스러운 그 시간 동안,
저는 늘, 한결같이 <생각>이라는 걸 합니다.
그리고는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떠안았던 고민거리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고민거리를 껴안고 뒹굴면서도,
나름대로 뭔가 <준비>한다고 부산을 떨면서도,
진작 제게 기도가 부족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묵주 성월에 선물 받은 주머니는 평소에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던 제게 뜻 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님께서 제게 묵주기도를 권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루를 지내며 같은 단어와 같은 내용의 기도를 50번 올리기는 힘든 일이지만
묵주기도를 다섯 단 바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의 삼천 배와도 같은 것이라는 걸,
정성과 간절함을 담은 하나의 형식이고 효율이었다는 걸 발견합니다.
고민만 많았고 기도는 없었던 제 생활에
주님은 자상하게도 기도거리를 주시는군요.
아버지께서 즐겁게 교리를 받으러 다니셨다면
제 묵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벽에 걸려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던 스승께서는
오늘 제게도 기도를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저는 서툴게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제가 올리는 기도의 내용이 제 신앙의 지표가 됩니다.
겨우 내 남편과 내 아버지, 내 아이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저의 신앙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습니다.
신앙은 삶과 마찬가지로 건너뛸 수도, 생략할 수도 없는 것인지
저는 제 유치한 신앙을 들통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울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실이 저의 신앙은 22개월, 어린아이의 그것이니까요.
딸을 그렇게 돌려보낸 아버지께서는 밤늦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보고싶으면 내 보러 갈께.
그러나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삶이 우리를 속일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적당히 속아주려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삶이 아버지와 딸의 소중한 인연을 너무 많이 속이지는 않게 해달라고,
저는 이미 아버지의 세례명을 생각해 두었노라고,
사도요한,
신앙으로 인해 성모님과 새로운 모자의 연을 맺었던 그의 삶처럼
아버지와 제게도 신앙을 통한 새로운 부녀의 연을 허락해 달라고,
사랑으로 일관했던 성인의 전구로
아버지의 남은 삶도 사랑으로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10월이 다가기 전에 주님께서 당신께도 고민거리를 안겨주시고
그리하여 기도의 은총 속에 머물게 하시기를 빕니다.
당신의 신앙이 보다 아름답고 훌륭하여
찬미의 기도를 올리실 수 있기를 더더욱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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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지와 딸이 함께 영성체 모실날이 속히 오길 기도합니다....
글라라님께 아름다운 보속을 주셨네요. 지금은 힘들어 보이지만 아마! 주님께서 아버님을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맛보게 하실려구 그러시나봐요. 두분의 믿음이 하나되는날을 기다리며,...
요셉 형제님, 프란치스코 형제님, 고맙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쳐보니 참 좋네요. 잡념이 사라지고,간절한 소망조차도 잡념과 같이 기도 속으로 묻혀버리는 걸 느낍니다.
저와는 반대이군요. 저는 잡념속에 기도가 묻혀버리는디!!!!
어쩔꺼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