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도 까다로운데 육아까지 싫어하는 동물이라니, 이러고도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레서판다에 대해 알아갈수록 당황스러웠다. 실제 성격은 어떨까? 야행성이라 낮에는 자고 밤에는 누워있다고 해서 늦은 오후에 에버랜드를 찾았다. 올 봄에 일본에서 온 레서판다 시푸는 나무 위에 올라가 등을 보이고 누워있었다. 움직이지 않기로는 나무늘보 수준이다.
사육사가 잘게 썬 사과를 그릇에 담아와 레서판다 앞에 섰다. “레서판다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사과를 가져 왔기 때문에 이 친구가 제 옆에 와있는 거고요. 다 먹으면 뒤도 보지 않고 멀리 가버릴 녀석입니다.” 레서판다는 사육사가 주는 사과를 '거 참 번거롭게 하는군' 하는 태도로 먹은 후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가 누웠다. 다시 미동이 없었다. 나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세상에. 성격마저 별로야!'
“외모가 귀여워 레서판다를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성격이 과격하기 때문에 애완동물로 키울 수는 없어요.” 레서판다를 담당한 많은 사육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저 귀여운 외모를 가진 귀여운 동물이라고 생각할 때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반전의 모습을 알게 되자 레서판다는 특별한 캐릭터로 다가왔다. 장미를 어린 왕자가 좋아한 것처럼, 잘 모르면 비슷하고 흔한 것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알게 되면 그 대상은 유일한 단 하나가 된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결국은 상대의 ‘의외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점을 유심히 보고, 거기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일이다. 취미나 말버릇, 취향 같은 것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그 위에서 조금씩 서로의 색을 덧입히는 커스터 마이징 같은 것. 이별하고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세상에 남자(여자)는 많다”고 하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모두 단점이 있으며, 빈틈과 약함, 예측 불가한 모습들이 있다. 많은 욕망과 여러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나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그에 맞는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입체적 존재다.
소설가 김훈이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관적인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캐릭터는 의외의 모습들이 모여 독창적으로 완성된다. 저 흉폭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레서판다처럼.
첫댓글 내용 중 일부는 정문정님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발췌.!한 줄 알았더니~정문정님의 네이버 블러그네요~ㅋㅋ
귀엽고 순둥이 같은 판다였는데
반전의 모습이 있었네요~~
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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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만한 게 여간 아닙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