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아유타야 왕국의 유적지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태국 편
3일간의 태국여행기 (3)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왓 차이 왓타나람
태국 ‘담마카야’ 사찰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면서 태국 순례 첫날은 담마카야 사찰 탐방, 둘째 날은 방콕 유명사찰들 방문,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은 아유타야를 방문하기로 했다.
아유타이는 담마카야 사찰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었다. 오전에는 담마카야 사찰에서 설립한 불교대학을 방문하고 오후에 유적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안내는 담마카야 사찰에서 수행을 하면서 자원봉사자로 15년째 일하고 있는 실리포니 보살이 맡았다. 실리포니 보살은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현재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아유타야는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의 한 곳으로 1351년부터 1767년 까지 417년간 시암의 수도였다. 번창하던 왕조는 1767년 버마의 침공으로 멸망한 왕국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고려말 ~ 조선 영조시기와 비슷하다. 33명의 왕을 배출했으며 이 시기의 타이 역사는 보통 아유타야 왕국으로 불린다. 아유타야 역사의 흔적은 1991년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크메르 왕조가 번성했던 시기에 크메르 변방에 있던 아유타야 왕조는 크메르 왕조의 신왕사상과 브라만 사상을 융합한 사원들을 건축했다.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사원들은 왕조가 성립되고 150년 안에 지어진 사원들이다. 이 곳의 주요사원으로는 ‘왓 프라 씨 싼펫(Wat Phra Si Sanphet), 왓 프라
마하 탓, 왓 라차부라나, 왓 차이 왓타나람, 왓 야이 차이몽 콘(Wat Yai Chaimongkhol)등 이 있다. ‘왓 프라 씨 싼펫는 아유타야 왕궁 내에 자리했으며 아유타야에서 가장 큰 사원이었다고 한다.
아래는 인터넷 검색으로 뽑은 글이다.
방콕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아유타야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견되는 도시다. 아유타야는 태국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으로 둘러싸인 섬으로, 무너진 돌무더기와 흙더미 속에 수많은 불상과 불탑, 그리고 폐허의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야외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사실 무너져버린 돌탑과 여기 저기 머리가 잘려 나간 불상들만이 남아 있는 유적을 보다보면 옛 왕조의 화려한 영화 보다는 폐허의 느낌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 폐허에 400년 동안 이어져 온 아유타야 왕조의 영광과 슬픔,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태국 야유타야 지도
태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을 누렸던 왕조
아유타야 왕조는 1351년 당시 태국 북부를 지배하고 있던 수코타이 왕조를 합병해 새로운 왕조를 연 후, 1767년 미얀마의 침략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400여 년 동안 번영을 누리던 왕조였다. 왕조의 수도였던 아유타야 역시 예술과 건축은 물론, 인근 국가들과의 교역 중심지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17세기에는 동남아 최고의 무역 도시로 아시아는 물론, 유럽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를 하며 부를 축적했다. 이런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400여개에 달하는 사원과 탑을 건설하였고,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도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모든 영광과 번영은 그 끝이 잊기 마련. 그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유타야 왕조의 번영도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그 끝을 맺고 만다. 이유타야 왕조는 이웃 국가인 미얀마와 20여 차례가 넘는 전쟁을 거치면서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1767년 미얀마의 침공을 받아 아유타야가 함락되면서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미얀마군의 약탈로 아름답던 왕궁과 사원들은 모두 불타 버렸고, 수많은 불상들의 머리와 손이 잘려 나갔다. 같은 불교국가에 의해 무참히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들을 보면 전쟁으로 점철된 야만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왕조가 몰락한 후 버려졌던 아유타야는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활기찬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사방에 산재되어 있는 사원과 불상
아유타야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사원과 불상이다.
400여 개에 달하는 사원이 있던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그 수도 많지 않고, 훼손의 정도도 심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남아 있는 유적만으로도 충분히 그 당시의 번성하던 시기를 상상할 수 있다. 아유타야를 상징하는 최고의 볼거리는 '왓 마하탓(Wat Mahathat)'라고 한다. 이 사원은 14세기 말에 도성의 중심사원으로 지어진 곳으로 거대한 탑의 잔해와 머리와 손등이 잘려진 불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이 사원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아유타야를 소개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머리만 남은 불상을 넝쿨나무가 휘감은 부처상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불상은 그 독특함으로 인해 아유타야에 찾는 사람이면 꼭 봐야하는 필수코스로 여겨지고 있다.
아유타야 시내
아유타야 시내는 한국의 소도시 같은 분위기였다. 시내에 들어가니 입구에 아유타야 왕조 시절에 조성된 탑이 오랜 세월을 견디고 우뚝 서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내는 비교적 한가했다. 나는 이곳에서 왓 차이 왓타나람(Wat Chai wattana ram)과 왓 야이 차이몽 콘 (Wat Yai Chaimongkhol) 두 사찰을 방문하였다. 시내와 관광지에는 자전거를 타고 이 지역을 돌아다니는 젊은 관광객들도 가끔씩 보였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관광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아유타야 부근의 이곳 저곳에도 사찰들이 많이 보였고 아유타야 시절의 사찰과 탑들도 곳곳에 많이 볼 수 있었다 .
왓 차이 왓타나람 (Wat Chai wattana ram)
오후 2시경에 ‘왓 차이 왓타나람’에 도착하였다. 관광객들은 많지 않았는데 서양인들이 많았지만 태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가끔 보였다. ‘왓타나람’이라는 간판 맞은편에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에서 코코넛 한 개를 사 마신 후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하였다.
이 사찰은 프라삿통왕이 1630년경 자신과 그의 후손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건축한 크메르 형식의 사원으로 종교의식과 화장의식이 거행된 사원이다.
왓 차이 왓타나람 유적지
왓 차이 왓타나람은 아유타야 왕조의 26대 왕인 쁘라삿텅에 의해 세워진 사원으로 옛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사원이라고 한다. 중앙의 커다란 탑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계단을 통해 중앙의 탑으로 올라가면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다. 목이 잘린 불상도 있고, 손이 잘린 불상은 이 곳 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탑은 두 가지 양식이 있었는데 스리랑카 양식과 크메르 양식이라고 한다.
왓 차이 왓타나람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