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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10일 주일 썬쓰리 피드백♥
말 씀 : 장 미 영 목 사 님
이 시간 말씀가운데 더욱 집중하여서, 삶 가운데 필요한 말씀 다 흡수하고, 꼭 필요할 때 그 말씀이 생각나서, 삶속에서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기 원합니다. 인격이란 남들을 무시할 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주고 따라주고, 하나님께서 앞에 세운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귀 기울여줄 때, 우리의 인격이 완성됩니다.
저희들 피곤한 가운데 있지만 성령의 피로회복제 허락해주시어서, 30일 회개 캠페인을 마감하는데, 저희들 받은 은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주의 종 되기 원합니다.
더욱더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주의일 열심히 하다가, 주님 오라 하시면 몸과 마음 시간 주를 위해 잘 쓰다왔다고 칭찬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심판대가 두려운 날이 아니라 기다리는 날이 되기 원합니다.
오늘 보신 드라마가 여러분에게 수준이 낮을 수 있습니다. 유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만든 내용입니다. 주일 차임에 이 내용으로 드라마 보고, 말씀 듣고, 서로 피드백하고, 분반공부하며, 일주일을 삽니다. 드라마로 거의 10년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성경을 읽어봐서가 아니라, 시청각 교육을 하니까 성경에 대해서는 두 번째 교회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날 저는(장미영 목사님) 분반공부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유치부 아이들이 한국말 발음도 잘 안 되는데, 성경 속 인물 이야기 하고 있으면, 진짜 주님이 지금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주일날이 제일 행복합니다. 바쁜 시간 가운데도 시간을 할례하여서 드라마를 보고 말씀을 나누는 것은, 우리 교회 유초등부아이들이 어떤 말씀 듣고 있나, 또한 여러분들이 일주일간 자녀들과 함께 할 때, 대화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식탁에서 만나면 아이들과의 공감대라는 것이 필요 할 텐데, 그 때 오늘 보고들은 드라마와 말씀을 가지고, “우리 몸을 죄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의의 병기로 사용하자. 죄의 편에 서지 말고, 죄와 싸워서 이기자. 혹여나 죄와 싸워 지더라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성령 받아서 다시 일어나자.” 이렇게 서로 서로에게 힘내자고 하면서 한 주간을 살아가는 주의 가정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 의 저자 “최하진” 선교사님에 대해서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들어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꾸만 자살을 합니다. 과학에 관해서는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자살하는 모습을 보면 참 의아합니다. 나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잘 사는데 쟤네들은 왜 자살을 하는지 말입니다. 저렇게 명성이 높은 학교를 다니며, 나라에서 연구비 다 지원해주고, 키워주는데도 계속해서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오늘 속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카이스트 교수님이 자살했다는 뉴스였습니다.
학생들이 자살한 이유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가는 카이스트 안에 꼴지가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는 겁니다. 보통대학에 다녔다면 머리할만한 아이인데, 머리들만 모아놓아서 석차를 가리다보니, 카이스트 총장님이 학생들에게 성적순으로 차등해서 학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적이 좋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비가 젤로 비싸게 나옵니다. 이들이 왜 공부를 못하냐면, 집안이 어려우니 다른 쪽으로 학비라도 벌려고 과외라도 해서 돈을 벌어보려고 하다 보니, 성적이 부진하게 되고, 오히려 학비가 높아지고, 학비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다보니 확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시작으로 최하진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분도 카이스트 출신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스탠포드 대학 포스트 닥터였습니다.(원래 연구원으로 가기 전에, 의사로 이야기하면 레지던트 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열심히 공부해도 줄을 잘 타지 않으면 개인병원을 하거나 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포스트닥터는 나라에서 연구비를 다 지원해주고 기업체에서 좋은 대우받다가 기간이 끝나면 진짜 연구원으로 죽을 때까지 명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분이 그 좋은 자리 다 버리고 밑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했다고, 박사고 뭐고 다 내려놓고 중국 광야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열방학교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학교를 세우라고는 했지만, 문제는 돈도 아무것도 안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돈을 주실 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 이뤄지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움직였더니, 그 때부터 학교를 세워나가시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일을 해나가시는데, 얼마나 스릴 넘치는지 모릅니다. 30일 캠페인 마지막 날에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 (핸드폰으로)속보가 들어와서, 오늘 이렇게 최하진 선교사님을 소개 시켜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그 속보내용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오후 3시10분쯤, 카이스트 생명공학과 52살 박 모 교수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에 있는 박 씨의 아파트였는데요, 경찰은 박 씨가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박 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일단,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 지 등을 적은 간단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박 교수가 최근 잇따라 발생한 학생들의 자살 문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경찰은 최근 박 교수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연구비 관련 감사를 받았던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학교측으로부터도 중징계가 예상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동료교수들도 박 교수가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감사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뒤, 학교 관계자들을 상대로, 박 교수의 정확한 사망 동기에 대해 집중 조사할 계획입니다. 박 교수는 지난 2002년부터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를 지내왔으며, 지난해에는 올해의 카이스트인 상도 수상했습니다. KAIST에서는 지난 1월 8일 전문계고 출신 1학년 19살 조모군이 저조한 성적 등을 비관해오던 중 학내에서 자살하는 등 올해 들어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금까지 YTN 황보현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연구박사로 있으면서, 그 감사 때문에 덜덜 떨다가 자살까지 할 것은 뭡니까. 최하진 선교사님은 좋은 것들 다 내려놓고 중국까지 가서 이름만 교장이지, 지금 뭐하냐면 열방학교에서 청소부 겸 수위아저씨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일을 섬기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박사에, 스탠포드 대학 포닥하고 있던 중에, 하나님께서 “너의 꿈을 버려라. 나의 꿈을 가져라. 나는 네가 박사로 있는 것보다 내 말씀을 전하는 무명인이 더 좋다”는 이 한마디에, 알았다고 박사 교수 다 띠고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이분의 모토는 우리가 찬양 많이 하는 [사도행전 20:24]입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분은 아직도 사명을 몰라 머뭇머뭇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귀 막고 눈 막고 있으면서 일부러 안보면서 안 들린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에 관해 발견을 못했을 뿐이지, 이 세상에 주님 믿는 사람 중에 사명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십니다. 세상에 상식이 있습니다. 배운만큼 혜택을 누리는 것이 바로 세상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최하진 선교사님을 보고 사람들은 상식을 역류하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최하진 선교사를 보면서, 그가 배운 지식, 멋진 박사직분으로 잘나가는 그 모습으로 주님 전하는 것이 더 좋은데, 굳이 다 버리고 바닥까지 내려와서, 그 바닥을 기면서 왜 그 고생을 하느냐고, 돈도 없으면서 간당간당하게 불안하게 사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생각에 집중해서, 하나님 생각대로 살아야한다고 합니다. 스텐포드 대학 포스트 닥터로서 명예를 뒤로 하고, 장래가 보장된 포스트 연구원자리 버리고, 광야로 가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마 최하진 선교사님도 사도바울처럼 같은 것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빌립보서 3:5-6]
“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사도바울은 자신의 잘난 점 7가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1) 팔일 만에 할례 받았다. 유대인이라는 겁니다.
2) 이스라엘의 족속이다. 이방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은 이방인이나 믿지 않는 자와 근본부터 다르다는 겁니다.
3) 베냐민 지파이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고, 두 아들 있었지만, 첫 번째 아들 요셉은 국적 바뀌어서 애굽인 되었고, 나 베냐민지파는 메이커 지파라는 겁니다.
4)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다. 피가 안 섞여서 사마리아인과 피 자체가 다르다고 합니다.
5)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구약성서를 독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라를 중심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는 겁니다.
6) 열심으로는 교회 핍박했다. 나는 유대인인데 갑자기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 기독교를 세워놓고, 죽고 부활했다고 하니,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 정통이기에, 이단인 기독교를 열심히 핍박했다는 겁니다.
7)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다. 자신의 배경과 경력이 율법적으로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할 정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구절에 바울은 깜짝 놀랄만한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 3:7-8]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고 이익이 되었던 그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모든 것을 다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버리고 나서 얻은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다.
[빌립보서 3:9]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어지는 다음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잘났다고, 7가지 홈런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나 이제 그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 버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도바울은 자기가 과거에 해놓은 학식 혈통적으로 대단한 뿌리에서 났으며, 열심히 놓고 봤을 때 굉장했지만 그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괜찮은데, 교수님이 왜 목숨을 끊고 왜 자살을 하는지, 왜 최하진 선교사님은 그 좋은 자리에서 내려와, 광야길 공산주의 국가로 가서 공안 눈치 보며,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청소년을 살리겠다고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것입니까. 열심의 정도로 봤을 때 세상적인 이 모든 것들은 정말 굉장했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가져다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 한마디 해답을 드린다면, 그것이 진짜 의인 줄 알았는데, 의가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 가져다 버렸다는 겁니다.
의라는 것, 옳은 의, 옳기도 하지만, 관계의 의, 형제까리 싸우면 의절했다 의가 상했다고 합니다. 바로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의절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오셔서 회개라는 것을 알려 주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죄에 대해서 근본을 해결해주기고, 그리고 이 땅 가운데 살면서 구원받은 목욕한 자는 그때그때 발을 씻는 것, 즉석회개라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의절했던 관계가 의로운 관계가 되어 집니다. 그런데 그 의로운 관계로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의인 줄 알고 달려가며 반평생 인생을 바치고, 잠 안자가며 공부하고 노력하며 맨땅에 헤딩하며, 바리세파 열심히 교회 핍박하고, 멀쩡한 사람 죽이고 능욕하며 스데반 옷 맡아가면서, 가편투표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 죽여라 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좇아간 것이 의인 줄 알고 갔는데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개똥으로 여기고 다 가져다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여기지 못하고, 예수님 가슴 아프게 하고, 교회를 핍박을 하니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구나 하십니다. 알고 보니 그 학문이 예수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더 많은 장애가 되어서,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배움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모실 수 없다면 버리겠다고 합니다. 의인 줄 좇아간 길이, 의이기는 고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욕하고 핍박해서 지옥 갈 길이었다는 겁니다. 별거 아닌 정도가 아니라 완전 정내미가 뚝 떨어져서 갖다 버립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이 바로 이 고민을 함께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참된 성공, 진정한 승리의 길, 그는 깨달았습니다. 이 길이 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짜 길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4:6]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짜 길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과학자, 교수, 포닥되고, 잘나가는 학교에 교수직하며 다 누려 봤지만, 그것이 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남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 아까운 것들을 버릴 수 있느냐고 해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난 의로우신 예수님이 가라는 길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 버렸습니다. 다 버리고 가난한 자리까지 내려왔습니다. 돈 1,000만원이 아니라 10만원 때문에 울기도 되고, 박사라는 사람이 왜 그리 궁상맞게 사냐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면 먹고 안주면 굶습니다.
공산주의 무신론에 세뇌가 되어있는 중국 청소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최하진 선교사님은 중국에 열방학교를 이미 세웠고, 학생들과 한솥밥 한 이불 덮고, 먹고 자면서 그냥 막 섬기면서 삽니다. 누가 교장이냐 선생이냐,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봐도 학교 청소부나 수위아저씨처럼, 학교 지키고, 아이들 지키고, 아이들이 밥은 먹었는지 챙겨주는 그런 사람정도로만 보입니다. 학생들과 한 이불 덮고 한솥밥 먹으면서 주야로 그들을 섬기는 가운데, 드디어 아이들 입에서 선생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냐고 묻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가진게 있든 없든 무조건 베풀고, 그 아이들 마음가운데 공산주의보다 더 힘세고 대단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생겨질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여줄 때까지, 복음에 마음을 열게 될 때까지, 내가 먹을 것 안 먹으며, 그 아이들 섬기면서, 이 아이들이 자라나면 이 땅의 기둥이 되어, 공산주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는 그날을 소망하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만 해주는 사람들한테 이미 지쳐있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몸으로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의 리드에 호응을 해주어야 합니다. 말만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을 몸으로 한 번 실천해주고자, 광야가운데 최하진 선교사님 서있습니다. 그는 중국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다가 “dawn mission”, “새벽미션”이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 해가 떠오르기 전 가장 어둡지, 해가 떠오르기 전 그 미명이 떠오를 때, 이 새벽이 지나면,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 비록 이 시대는 공산주의지만, 시대를 바꾸는 청소년 아이를 기르는 그 아이들이 새벽이다. dawn mission이다. 그 사명을 가지고 중국에 그렇게 열방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방학교를 세우신 분이 설립자일 뿐, 공식적인 직책도 없습니다. 학교의 청소부 겸 수위아저씨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박사님이 아닌, 아저씨로 그렇게 더 친근해져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렇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꿈은 제2,3의 열방학교 계속 세워서, 새벽미션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길러서, 그 아이들 입에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전파 영혼구원이 펼쳐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최하진 선교사님은 더 이상 박사님이 아니라 청소부의 모습으로 수위아저씨 모습으로 오늘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나면, 여기저기서 오라고 초청하고 비행기 표만 보내주면 간다고 합니다. 가서 지금까지 본인을 이렇게 이끌어주신 드라마틱한 하나님에 대해서 사방으로 다니면서 본인자랑 안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 하나님 자랑만 겁내 한다고 합니다. 그는 광야에서 오늘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가운데는 나라와 의를 구하며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최하진 선교사님은 자녀도 있고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다 버려두고 “네 꿈 말고 내 꿈을 이뤄라. 네 생각 말고, 내 생각. 네가 먼저 마음을 갖춰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최하진 선교사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 붙들고, 십자가 붙들고 나아갑니다. 그 분은 책 가운데 이런 고백을 합니다. 진짜 광야에 길이 나고, 만나가 떨어지고, 반석에서 샘이 터졌으며, 하나님께 다 공급받았고 목격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 인생을 걸 때, 어떻게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지 그 분을 통해 생생히 증거 하시는 내용을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10년 전의 그 사건, 주님의 부르심으로 중국에 온지 6년이 된 이후 교회에 올 수 없는 중국아이들을 위해서 새로운 선교지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비전을 “dawn mission”이라는 이름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새벽미션”, 청소년이야말로 미래의 하나님나라의 인재이고, 이 땅에 떠오르는 새벽별, 곧 대낮에 태양처럼 빛날 새롭고 신선한 존재들입니다. 그들 안에 믿음이 심겨지면 그들의 삶에 새벽 미명이 밝아올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 사역을 dawn mission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잠시 우리가족은 LA를 거쳐 "dawn mission"의 사역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꼭 짓겠다고 공포는 했지만 당장 하나님의 도움심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주 뭘 하라고는 하는데, 돈을 안주십니다. 하라고 하면서 사랑도 안보내주십니다.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소득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학교를 지으라고 하셨으니, 누굴 통해 돈을 주시고, 누가 어느 땅을 사라고 하면 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날을 기다리고 있던 중 12월이 되었습니다. 12월엔 뭔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 크리스마스가 있으니, 예수이름을 알린다고 한다는데, 학교 지으라고 하면서 돈도 사람도 땅도 안주시는 우리 하나님, 하지만 12월 달은 안 넘기시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소득은 없었습니다. 12월이 지나가는데 초초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잠을 자려는데 잠도 오지 않고 깨버렸습니다. 하나님! 돈도 안주시고 사람도 안보내주시고 땅도 안주시고, 그렇다고 그 학교에서 가르칠 선생님을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맨땅에 헤딩하라고, 13억 인구 있는 그 넓은 땅덩어리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중국선교 6년간 소극적으로 해왔지만 더 이상 앞이 안보였습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것이 뭡니까. 저를 망신시키려고 작정하셨습니까.” 카이스트 정도나 되니 이렇게 이야기 하지, 저는(장미영 목사님) 일이 꼬이면 하나님 정말 잘못 많이 했다고 기죽어서 사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분이 혼자 그렇게 따지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깊은 곳으로, 하나님께서 음성을 보내주셨습니다. “네 믿음을 보여라. 네 믿음을 보여라.” 서늘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했습니다. 아까까지는 흥분해서 따졌지만, 하나님 음성이 들리고 나니, 정신이 바짝 듭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움직이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그 말씀을 계속 입술로 되 내였습니다. 한참 되풀이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호수아서 3장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처음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놓고 가라고 했습니까. 뒤에는 애굽병사, 앞에는 홍해가 있고, 초초한 가운데 죽었다 싶었을 때, 갑자기 지팡이를 들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그리고 40년 후 모세는 죽었지만, 요단강이 갈라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단강 다 갈라놓고 주님이 건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법궤를 맨 제사장이 요단강에 발을 내딛었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더 이상 돈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움직이자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여호수아 3장에 믿음으로 먼저 그 발을 요단강에 담그자 강물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감격에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 그 장면이, 그날 밤 감격스럽게도 선교사님의 머리와 가슴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맞아 요단강이 갈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으로 발을 떼어야지 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학교를 지으려면 학교부지 얻어야하니 땅을 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부지구입하기 위해 중국에 가는 비행기표를 사야겠다고 합니다. 당시엔 중국에 6년 동안 선교 중에 있었지만, 잠시 LA에 가서 열방학교 준비하려고 나와 있었으며, 들어갈 때는 뭔가 큰 것을 주면 가야지 하고 머뭇머뭇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중국에 들어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비행기 출발하기 전까지 적어도 6000만원이 있으면 땅부지에 대한 착수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주시겠지 하고 기도를 하는데, 출발할 날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돈을 안주십니다.
아까 같은 마음이었으면 하나님께 따지고 들면서, 이제 출발하는데 안주시면 어떻게 하냐고 할 텐데, 이제는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로 물고 늘어집니다.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중국 갈 날짜를 맞춰 계속해서 준비를 합니다. 12월 달에, 언제 출발할까 계속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때면 돈도 주실 것이니,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1월10일에 출국하자고 생각하고, 출국날짜를 정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한 달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1월 10일 비행기에 태워서 중국에 보내실 것이고, 믿고 기도합니다. 돈이 없든지 있든지 무조건 중국 간다고 하면서, 6000만원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니 제발 주시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비행기표를 구입했는데, 아무 소득 없이 10일이 그냥 지나갑니다. 12월 20일, 누구에게도 연락이 없으며 통장에 돈도 없습니다. 지극히 평안합니다. 이제 20일 남았는데, 학교 세우라면서 부지를 사야하는데, 출국하면 다시 나올만한 비행기 표 살만한 돈도 없는데, 12월 21일 오후,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가 오길 바랐지만, 안와서 본인이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쪽에서 뭐라고 하냐면,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하나님께서 날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는데, 나도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해야 하겠다고 기도를 하면서 선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전화를 주셨다고 하며 헌금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 사람도 어렵게 사는 사람인데 원터치로 6000만원을 주시려는 거 아닌가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받아보니 100만원이었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20일 남겨두고 100만원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일주일전에 실직당하고, 본인도 살기가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고마운 것 표현해야 하는데, 가진 게 없어 있는 거 다 털어서 100만원 드리는 것인데, 있는 이들의 수십억보다 더 큰돈이었습니다. 감격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당신의 귀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저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헌금이 종자돈이 되어서 “dawn mission”사역을 크게 일으키실 거라며 고맙다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바쁘게 움직이셨습니다.
나는 기도하고 기다렸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이래저리 하나님께서는 1월 9일까지 5000만원을 채워 주셨습니다. 1월 10일까지 6,000만원이 있어야 하는데, 1000원이 부족하면 부지를 구입 할 수 없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출국 전까지 5,000만원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놀랍게 채워주신 것이 어딘가,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그냥 하나님 은혜에 감격스럽고 눈물이 나고 가슴이 뭉클 코끝이 찡했습니다.
1월10일 00시 20분 출국 비행기였습니다. 공항으로 가기 전 최하진 선교사님 부부는 한바울 목사님 사모님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가라고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식사하고 바로 공항가면 비행기타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바울 목사님은 캐나다 열린 집회에서 우연히 안 다음 그냥 알고지내며, 영적아버지 정도로 닮고 싶은 분이었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결이 되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후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사모님이 하얀 봉투를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최 박사, 얼마 없데이.” 나는 잘 다녀오라는 편지와 함께 10만 원 정도 들어 있겠거니 하면서 봉투를 뜯었습니다. 예상대로 편지가 들어 있었고, 개인수표 한 장이 반으로 접혀 있었습니다. 수표를 펴 보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내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돈은 1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이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비행기가 떠나기 세 시간 전에 우리가 기도했던 새벽미션 학교부지 착수금 6,000만 원을 정확하게 20일 3시간 전에 다 채워주셨습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본인이 박사로 잘나갈 때였다면, 아무것도 아닌 돈이지만,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나님 힘으로만 살겠다고, 주면 먹고 안주면 굶겠다고 생활한지 벌써 몇 년인데, 이제는 내가 박사인 것도 잊고, 대책 없이 학교를 세우겠다고 선포했던 그 때는, 제가 거대한 폭포 사이에 외줄타기 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불안해합니다. 저는 거대한 폭포사이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봉을 달아놓고, 그 위를 걸어갑니다. 폭포아래에서 나를 보며 가슴을 졸입니다. 저러다 떨어질 텐데, 위험한데, 못 봐주겠네, 불안해서 그렇지만 전 떨어지지 않습니다. 불안해 보이겠지만, 그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잡고 계시기에 나는 이 커다란 폭포사이를 가로지르는 외줄타기를 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나를 붙잡고 계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절대로 떨어지지 않음을 믿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사람이 볼 때, 절대 불가능한 학교를 세우면서,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4:6-7]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당시 스가랴서에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던 백성들에게 사마리아인들과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16년 동안이나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멈춰졌던 성전재건의 착수가 늦어졌다가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힘내라고 하십니다. 스룹바렐아 내가 함께하니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방해책동이 큰 산이라 할지라도, 네 앞에서 평지가 되게 해주리라는 그 약속을 최하진 선교사님이 열방학교 세우는 과정에서 해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손 붙잡고 있다는 것 믿고, 가다보면 우리도 외줄타기 하지만 떨어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겨자씨 하나만큼의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긴다고 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마테복음 17:20]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신명기 31:6]
“6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하나님이 많이 의지되십니까. 외로우십니까.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떠나지도 아니하실 그 하나님 손 꼭 붙잡고 완전 승리하는 주의 종 되기 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자꾸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두려워하지 않기 원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자꾸 뒷걸음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뒷걸음질 치지 않기 원합니다. 방향을 모르고 길을 모르니, 조금만 어려운 일 닥쳐도 그 좋은 자리 있는 학생이나 교수처럼, 그 귀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살시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길도 모르고 목표도 없고 왜 사는지 왜 공부하는지 모르는 이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 그냥 죽어버리면 되지 다른 방법이 있냐고 합니다. 같은 길을 걸은 카이스트, 교수, 박사로서 그 좋은 명성의 길을 걷다가, 주님이 내 길을 걸으라고 하니, 세상이 좋다는 것 다 내려놓고, 바닥까지 내려와서 청소부 수위아저씨가 되기까지, 가난하고 어려운 어른들 섬기기도 어려운데, 가난한 아이들 공산사상을 교육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알리는 일에 착수하는 것에는 물질부터 어려운 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구 감동이 됩니다.
이 분과 우리와의 공통점은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는 겁니다. 죽으면 천국 갈 것인데 이 땅에서 죄와 싸우다가 자주 넘어지고 회개안하면 지옥 가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주시고 무너져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은혜의 역사에, 오늘 이 사람, 최하진 박사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고 열방학교 수위아저씨로 아이들을 섬기는 예수님 닮은 섬김의 지도자로 서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최하진 선교사님에 대한 대단함을 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대단한 위치에서 바닥까지 떨어지고 질질 끌고 다니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다 대단한지, 하나님의 존경심에 대한 신묘막측함에 고개가 마구 숙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얼마든지 주장하고 잡아끄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자유의지 주셨습니다. 발 달린 짐승이기 때문에 때로는 강권적으로 끌어주시면 되는데 왜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날 6째날, 하나님은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를 만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리에서 하나님 보다 부족함을 알고, 연약함을 알고, 그의 가슴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목말라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 그 가슴의 매세지가 나의 두 다리 몸을 쳐서 복종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많은 사람을 펼쳐주시고, 인큐베이터에서 금방 나온 아이나, 뱃속에서 금방 나온 아이나 다 젖몸살을 앓는 엄마의 젖을 빨면서 유지하는 것은 다 그 귀한 생명 때문입니다.
거듭난 우리들이 영적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씀 공급을 항상 받아야하기에, 말씀 듣는 자리에 와야 하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로봇이 아닌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기를 바라시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기다리십니다.
때려야 말을 듣는다면 동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맞아서 아파서 욕을 얻어먹어서 말을 듣는다고 한다면 때리지 않고 욕을 안 하면 다시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인격체들에게 그저 가슴에 있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먼저 보이고, 실천하고, 하나님께 먼저 한바가지 물을 떠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펌프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펌프의 물맛을 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속에서 작은 용기를 내라고 합니다. 삶 속에서 크리스천인 것을 표현하고 사는 것, 손해가 있지만, 핍박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는데, 그 예수님을 창피해 하고,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도 제대로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작은 용기도 못내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위해 순교를 하겠습니까.
내일부터 우리 모두 있는 그곳에 용기 내어서, 날 위해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그 능력을 위해, 최하진 선교사님의 그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 때문에 바닥까지 내려간 그 열심이 우리들에게도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선생님처럼 그 자랑스러운 빌립보서의 그 대단한 홈런 7가지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겼던 것, 그것이 의인 줄 알고 갔는데, 아니어서 다 가져다버리고 내가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능력의 이름이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나사렛 촌뜨기 밖에 되지 않지만, 그 능력의 이름이 바로 나를 살렸고 나를 천국까지 인도하실 능력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다음 한 주를 살며, 또 다음 두 번째 캠페인으로 돌아갈 때까지 믿음과 은혜를 지키기 원합니다. 캠페인이 끝났다고 이제까지 하지 않고 참아왔던 것들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놓은 분들이 있다면 다 내려놓기 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싫다고 하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삶속에서 결단을 이번 주부터 실행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부인하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삶속에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천국 오는 날 나도 너희를 하나님 앞에서 모른다고 하십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늘 알고, 기억하고 있어서,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 이름들이 발견되어서 완전 기쁘고 감격 넘치는 심판대의 그날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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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든것의 승리 무엇에? 오직 예수그리스도
주님 이외에 모든것은 다 배설물로 여기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최고이십니다
아~멘!!!`저희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순종주셔서~ 모세의기적을~삶에서 만나길 간절히원합니다~~!
심판대가 두려운 날이 아니라 기다리는 날이 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