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남도 향토․전통 음식의 대모(大母) 이 애섭 선생을 만나다!
“전통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최근 입맛을 반영한 음식 연구에 힘입는 중,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뿌듯.”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단 고성훈(2기, 서울취재)
3월 중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 속에 어려운 발걸음을 하게 된 광주는 서울과는 달리 따스했다. 음식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에는 따스한 햇볕보다 오히려 광주 지역 특유의 따뜻한 정이 물씬 풍겨왔다. 길을 물어 다다른 한 가정집, 바로 광주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 애섭(68) 선생이 계신 곳이었다. 대문 앞에서는 정겨운 말소리가 새어 나왔고, 벨을 누르자 다른 분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다 나왔는지, 손끝에는 물기가 촉촉이 남아있었다. 보자마자 내 마음까지 촉촉해진 지금 이분을 만나 남도 향토 음식에 대한 모든 궁금점을 해소 해보고자 한다.
Q: 반갑습니다. 대문 밖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나서 맞게 찾아왔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한데, 먼저 간략한 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예. 지난 2006년 2월 9일부로 광주무형문화재 남도의례음식장 제17호로 임명된 이 애섭 입니다. 여기서 ‘무형문화재’라는 단어는 여러 음식을 종합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가령, ‘명인’이나 ‘신 지식인’의 경우는 한 가지 음식만 특출하다는 뜻이 되니 착오 없으셨으면 합니다. 지난 98년 제5회 남도음식축전 음식부문에서 수상한 경험 이래 각종 전통음식 수상 및 강연을 통해 꾸준한 경력을 키워왔고, 현재는 전라도 전통음식 보존연구회 회원이자 광주여자대학 식품영양학과 객원교수, 남도향토 음식박물관 강연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오늘날 향토․전통 음식을 만들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동기 및 시행착오가 남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저희 친가는 독립운동가 서 재필 선생의 가정입니다. 독립 이후 높은 손님들이 자주 왕래를 하곤 했는데 어머님의 어깨너머로 많이 먹기도 하고, 보기도 했고, 커서는 도와드리게 되면서 조금씩 음식 조리법에 대해 자연스레 익혀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음식을 발전시키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로 문화재청을 통해 무형문화재 등록을 요청했으며,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단기로 달성했던 쾌거를 이뤘습니다. 보통 문화재청에서 심사하게 되면 검증을 통해 5대 선조까지 조사 합니다. 그러면서 추가로 서류를 요구하면 첨부하는 식으로 수십 번을 반복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음식을 접해왔던 집안 배경이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남도 향토․전통 음식의 차이와 특성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남도에는 ‘남도 전통음식’과 ‘향토 음식’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나뉩니다. ‘남도 전통음식’의 ‘남도’는 남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하여 그 지방에서 전수되는 조리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유성과 다른 지역에서 맛볼 수 없는 공간성, 남도 지방 행사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음식이라 의례 성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음식들은 농경사회가 배경이 되어, 우리나라 전통 대가족 중심의 가족 제도에서 생겨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남도 전통음식’은 서해와 남해를 모두 끼고 있어 해산물과 대륙지방의 농산물 음식재료가 다양하다 못해 사치스러운 편에 속합니다. 반면 ‘향토 음식’은 해당 고장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입니다.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그 고장의 독특한 조리법으로 조리하여 과거부터 먹어 온 음식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지역주민이 선호하고, 해당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특유의 조리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표1 참고)
Q: 남도지역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조차도 각 지역의 전통음식이나 생활양식 등을 낱낱이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남도 전통음식이나 향토 음식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현재 광주 북구에 남도향토 음식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꾸준히 강연을 합니다. 특히 광주광역시에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필수 여행코스로 지정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광주시에서 외국인들에게 한정, 무료로 재료 및 실습비용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이 지방이다 보니 다문화 가정주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로 외국인 주부들이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우러 오게 되는데, 이러한 기회를 통해 여러 우리 음식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답니다.
Q: 최근에는 젊은 층들의 입맛이 서구화되어 있는 가운데에서도, 참살이(Well-Being) 열풍으로 우리 음식을 많이 찾는다는데 사실인가요?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강의하러 가보면 젊은 사람들이 여럿 보입니다. 서구화된 입맛으로 말미암아 비만이라든지 성인병, 고혈압, 심지어는 암과 같은 질병들이 끊임없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에 식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분들을 보며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현재 무형문화재라는 저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낍니다. 저 역시 젊은 분들을 배려하여 간이나 양념 등의 지나친 전통 방식을 자제하고, 우리 전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요즘 젊은이의 입맛을 최대한 고려하여 충족시키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엊그제 부모님 슬하에 요리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었네요. 무형문화재로서의 제 본분인 우리 음식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싶고,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제자들을 많이 양성하여 비법 전수를 하고 싶습니다. 또한, 해마다 부천에서 여러 문화재를 전시하는데, 작년 그곳에서 음식 문화재 부분에 또 다른 광주무형문화재인 최 영자 선생과 함께 참가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 한해 역시 참가하여 남도 음식을 홍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Q: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최근 젊은 층들이 우리의 전통 음식을 찾는 추세이긴 하나, 아직도 외국 음식만 찾고 거기에 입맛이 표준화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여 우리 음식을 더욱 널리 알리는 데 노력합니다. 우리 음식이 국내에서조차 외면을 받는데 어떤 방법으로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까? 먼 옛날부터 우리 선조는 전통을 지키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으며, 이제는 우리 세대가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널리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도지역을 대표하는 사항에는 ‘향토 음식’, ‘소리’, ‘남도지역만이 가진 전통’으로 총 세 가지로 분류한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공통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 아닐까. 추후 아시아문화전당이 설립되어 한-아세안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대표 음식들을 소개해주어야 하는데, 지역 특성상 가장 먼저 남도 음식을 접하게 되리라 본다. 취재가 끝나고 나서도 시종일관 우리 음식을 널리 알리는데 힘써달라며 부탁을 하는 선생의 모습에는 향토 음식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짐작하는데 수월했다. 아울러 요리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없다면 절대 못한다는 말씀으로 미루어봐 인내와 열정, 끈기가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먼 발걸음을 하면서 궂은 날씨에 내심 후회도 했으나 이분을 만나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오히려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가슴 벅찼다. 문밖을 나가면서 자신이 손수 만든 깨강정을 싸주시는 모습에는 지역 사람들만의 특유의 정이 물씬 풍겨왔다. 또한, 상업적인 요즘 시대적 배경과는 달리 순수하게 음식을 만들고,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고자 하는 모습은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표1> 남도 전통음식 및 향토 음식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