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로 본 논술] 6.2지방선거, 여론조사의 문제점
강방식 동북고 교사·EBS 사고와 논술 강사
오락가락·들쭉날쭉… 여론조사, 너를 조사한다
◆여론조사, 출구조사, 득표율
지난 6월 2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선거 1주일 전 발표한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의 차이가 너무 크게 나타났다. 방송3사가 선거 1주일 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울시장의 경우 오세훈 후보가 50.4%, 한명숙 후보가 32.6%로 17.8%의 차이가 났다. 실제 득표율에서는 47.4%: 46.8%로 단지 0.6%의 근소한 차이를 보여줬다. 인천과 강원도, 충청도 등의 경우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투표 마감시간인 저녁 6시에 발표되는 출구조사도 방송사별로 크게 차이가 났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오세훈 후보:한명숙 후보'의 득표율을 '47.4%:47.2%', YTN은 '52.1%:41.6%', MBN은 '57.4%:36.4%'로 나타났다. 도대체 어느 조사가 맞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민들은 새벽까지 박빙 승부를 펼치는 선거구에 끝까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여론조사가 가진 근본적 결함에 대해 문제제기가 많아졌고, 바람직한 여론조사의 방안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다.
의사결정에 있어 강자나 다수파가 택하는 것을 추종해 결정한다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나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며 이들이 언젠가는 강자를 이겨 주기를 바라는 현상인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 같은 투표심리 말고 여론조사의 근본적인 통계적 논리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찾아보자.
◆실제 득표율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
첫째, 신뢰도 높은 표본을 확보하지 못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는 집 전화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다보니 조사가 진행되는 낮 시간대에 20~40대는 대부분 집 밖에서 활동하고, 집에는 가정주부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최근에는 핸드폰과 070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표본을 정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응답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예전에 30%대에 이르렀던 응답률이 이제는 5~15%대에 그치고 있다. 응답률이 높거나 낮은 연령 및 계층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평균을 내면 민심이 정확히 반영될 수 없다.
셋째, 여론조사에 응답한 내용과 실제 투표한 내용이 서로 차이가 많다. 여론조사는 모든 유권자가 투표에 응한다는 것을 기본 가정으로 받아들인다. 대체로 50~6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20~40대 유권자의 투표율보다 높은데 매 선거마다 연령별 투표율의 차이가 발생할 경우는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이번 선거에서도 2006년 지방선거보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오르고, 60대 이상의 투표율이 낮아졌다.
넷째, 여론조사에서 질문하는 방법의 차이에 의해서도 결과는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 똑같은 전화조사의 경우에도 진보매체의 언론과 보수매체의 언론이 주최가 된 여론조사는 그 차이가 심하다. '최근 한명숙 후보에 대한 검찰 조사가 법원에 의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이번에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 중에서 누구를 뽑을 예정입니까?'와 '이번에 한나라당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가 당당히 당선됐습니다. 당신은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 중에서 누구를 뽑을 예정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동일한 유권자도 성향이 다른 질문에 따라 선택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다
6월 2일 오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가 치뤄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의 한 투표소에서 출구조사원들이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시민들에게 설문지를 받고 있는 모습 / 이준헌 객원기자
미국은 1916년 세계에서 최초로 여론조사를 통해 어느 후보자가 승리할 지 예측하는 일을 시작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잡지를 구독하는 독자에게 엽서를 보내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 보도하면서 여론조사가 선거 운동의 중요한 사업이 됐다. 그런데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루스벨트가 공화당 후보인 랜던에게 패한다는 예측을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당시 유권자 4~5명 중의 1명을 조사한 방대한 작업이었지만 오히려 그 표본의 2천분의 1에 해당되는 표본만 조사했던 갤럽이 정확하게 예측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는 전화번호부, 자동차 보유자 명단, 리터러리 다이제스트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들 중에서 표본을 뽑았다. 알고 보면 당시에 잡지를 구독하고, 전화와 자동차를 소유할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은 공화당 계열에 가까운 표본으로 투표자 전체를 대표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표본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본 추출 방법이 문제였다. 이외에도 1948년과 1952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예측한 것과는 반대의 결과가 발생했다. 이후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은 응답률을 높이고 다양한 계층의 표본을 골고루 얻기 위한 방법을 개선시키고 있다.
◆민주주의와 관계는…
정부와 언론 매체는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수정 등 정부의 각종 굵직한 정책에 대해 수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의 문제점이 크게 드러난 것을 바탕으로 야당 정치인은 지금까지 전화조사 방식의 여론조사는 아무리 공정하게 실시된다 하더라도 보수 성향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이를 통계에서는 '편향된 통계자료의 오류'라고 한다. 통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본을 근거로 어떤 결론을 내릴 때 그 표본이 모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라야 한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라는 책에서 보면 '통계는 사기꾼이 가지고 노는 사전'이라고 했다. 여론 조사에서 표본이 왜곡되는 원인을 뚜렷이 찾을 수도 있지만 왜곡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여론조사는 속임수까지 쓰면서 억지로 조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표본 그 자체가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저절로 왜곡되어 버릴 뿐이다. 약간의 화장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들 듯이 통계는 여러 사실들을 전혀 다른 것들로 꾸며낼 수가 있다. 즉, 여론조사는 국민의 밑바닥 정서를 확인하는 만능의 장치가 아닌데 작금의 정치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공천하고, 단일화 후보를 정하는 등 여론조사 정치가 대세다. 그러나 설령 여론조사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소수의 정치 엘리트에 맞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도구'로서의 역할은 간과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20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