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가르침
나에게는 삼총사, 사십 년 지기 초등친구 세 명이 있다. 그중 숙이란 친구는 한때 죽음이란 어두운 동굴을 체험한 중환자였다. 십 년 교사생활을 마감하고 운영자로서 건물을 짓고자첫 삽을 뜨던 날, 뜻밖에 친구의 입원 소식을 들었다. 병 문안 간다는 나에게 친정엄마는 펄쩍 뛰었다.
“좋을 일 앞두고 상스럽지 못한 곳에 함부로 드나는 게 아니다.” 엄마의 주술 성 선언에 친구 얼굴도 못 본채 발길을 돌렸다.
목련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는 얼굴과 마음 모두 목련꽃처럼 예뻤다. 초등학교부터 그림을 잘 그렸지만, 홀어머니가 육 남매를 키우다 보니 그림공부는 그림의 떡이었다. 어느 여름, 음식 탓인지 친구는 구토와 설사를 여러 날 했다. 온몸이 늘어져 운신할 수 없었다.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진단 결과 병명은 '길리안바레증후군'이었다.식중독균이 인체에 침투하여 근육을 해체하는 희귀병으로 치료 방법이 어렵단다. 겨우 사십대 중반인데...
병상에 있는 그녀를 찾았을 때 식물인간인간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미라 처럼 누워있었다.
"숙아 괜찮니. 기운 차려. 곧 나을 거야." 소리는 들리는지 야윈 볼 위로 눈물만 길게 매달았다. 착한 친구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비위관 삽관을 한 친구는 경관 급식을 하고, 링거를 꽃은 채 중환자실에서 여섯 달 이상을 보냈다. 한 병원에 오래 있을 수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을 몇 달씩 옮겨 다녔다. 의사는 회복될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정리를 주문했다. 남편을 먼저 보낸 처지에 딸 둘을 남긴 채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중환자실 체험을 통해 천사와 악마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녀가 겪은 중환자실의 실태를 조심스레이 술회한다.
“환자님, 머리 감겨 드릴게요. 구름처럼 몸이 가벼워질 거에요.” 천사 같은 간호사가 있는가 하면, 인격을 무시한 행태에 육체의 고통보다 심리적 모멸감이 견디기 힘들다고.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했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간호사 목소리만 들어도 나이팅게일 정신을 점칠 수 있다는 등.
중환자실의 상황은 긴장의 연속이다. 그곳에 신음, 기침 소리, 무시로 발작하는 소리들. 어디선가 파리 한 마리가 친구 콧잔등에 앉았다. 온 신경이 코끝에만 있었고, 날려보내지 못해 몹시 괴로웠단다. 파리 한 마리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지만, 좌설해서야 하겠는가. ‘그래, 생각을 바꾸자.' 내 코에는 파리가 없어.’ 최면술을 걸었다. 놀랍게도 증상이 사라졌단다.
친구가 말하는 병실의 풍경이다. 환자들이 가장 원하는 자리는 창가 쪽이다.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체가 지리한 병상생활에 활력소가 되리라. 무심코 바라본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흐르는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하루 속히 중환자실을 벗어나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보리라. 그녀는 병마를 이길 수 있다는 집념의 불을 지폈다. 이를 악물고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지나친 치료에 주위에서는 과유불급이라 걱정했지만, 굳은 의지가 그녀를 지배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작은데서 큰 것으로 시나부로 근육을 깨워나갔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對天命이라 하였던가. 그녀에게 드디어 정신이 육체를 이기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발목 부분을 제외하고 모든 근육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 신발을 신고 발목에 보호대를 차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제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녀의 말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친구는 '길리안바레증후군' 의 전설적인 존재로 남았다. 그녀는 퇴원 뒤에도 그 병원을 자주 찾는다. 비슷한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돌려줄 것도 너무 많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란 말을 덧붙힌다. '오늘도살며사랑하며' 란 자선 단체에 참여하여 제2의 삶을 꾸리고 있다.
친구의 집념을 나에게 접목시켜 소중한 무형의 자산으로 삼고 싶다. 사랑과 배려로 체화된 그녀가 우둔한 나를 일깨운다. 친구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