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하지 않기로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새로 넣었습니다.
이 노래는 80년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모든 이들이 함께 불렀습니다. .
프랑스혁명 당시 시민군이 불렀고 지금은 프랑스의 국가가 된 "라 마르세이예즈"와 비슷한 시대적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서워서 연주를 하지 않기로했나 봅니다. 치졸함의 극치를 보여주네요.
아래 글은 이 노래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네이버에서 퍼온 것 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04년 5·18 기념식 때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 등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지에 참배했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이 악보를 보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합창을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한 때 반체제 노동가요로 찍혀 금기시되기도 했다. 그런 노래를 군악대가 공식적으로 연주하기는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운동권 출신이 아니어도 386세대들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노래로 사천만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 그만큼 민중가요 중에서는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곡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동영상이 각 포털사이트의 화제가 되었을 때, 네이버의 ldsmj 님은 "여느 민중가요가 그러하듯 이 노래 역시 같이 따라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학창시절 군부독재 타도를 외칠 때도 사랑받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하여 노동운동의 시위가 있을 때도 사랑받았던 노래입니다. "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386세대, 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격동의 80년대를 거쳐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손짓과 몸짓 등의 율동을 동반한 이 노래는 8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집회나 시위, 그리고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불리어왔다. 이른바 운동권 가요 가운데 최대 히트곡인 셈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만, 홍콩 등의 민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애창되면서 아시아의 민중 노래로 승화되었다. 특히 노동운동·빈민운동 등 본격적인 민권운동이 태동단계에 있던 동남아 국가의 운동가들 사이에서 이 노래는 큰 반향을 이르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시아 민권운동의 선진국인 한국의 상징이 된 것이다.
80년대 말에 서울에서 아시아 도시빈민 대회가 열렸었다. 그 대회에 참석했던 외국의 민권운동가들은 수천명의 민중들이 똑같은 몸짓을 하며 장중하게 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을 보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율동을 함께 하는 동안 그들도 강한 연대의식과 감동을 느꼈다. 노랫말의 뜻을 모르면서도 이심전심의 동지애는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 후 <임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애절한 사연이 알려지고 중국어와 동남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애창되면서 이 노래는 동남아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의 [묏비나리](1980년 12월)에서 가사를 따 왔다. 원래의 시에서 노래 가사 부분은 다음과 같다.
(앞부분 줄임)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리리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뒷부분 줄임)
이 노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82년에 제작된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부터이다. <빛의 결혼식>은 광주 민주화 운동 때인 80년 5월 27일에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윤상원(당시 30살,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과 역시 그 무렵 노동현장에서 산화한 박기순(당시 21살)의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굿 테이프이다.
이 노래는 <빛의 결혼식>에서 윤상원과 박기순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작곡되었다. 기타와 괭과리의 반주가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는 호탕하면서도 투쟁적인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두 열사가 '지금 우리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고 부르는 마지막 구절에서 비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원래 이 가사는 '앞서서 가나니'였다는 점은 이 노래의 맥락을 짐작하게 한다. 즉 두 영혼이 '우리가 앞서서 가니, 살아 있는 자들이여, 기운을 내어 뒤를 따르라.'고 독려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승리를 다짐하는 내용인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광주항쟁 직후의 패배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고 승리의 의지와 투쟁적인 힘을 획득해 낸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에게 광주항쟁은 '항쟁'이라기보다는 '대학살'로 다가왔다. 신군부 일당의 만행으로 인한 엄청난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넘어 주체할 수 없는 패배감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괴감과 죄의식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패배감과 좌절감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까지 진보적 지식인들을 짓누르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으 그 패배감과 자괴감을 올바르게 극복해내는 길을 알려줌으로써 새로운 노래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넋풀이- 빛의 결혼식> 책에는 작사와 작곡 모두 백기완씨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씨가 노랫말을 짓고, 광주지역 문화운동가 김종률씨가 작곡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탄압 받던 노동자들은 집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너나 없이 치솟는 감동을 느꼈다.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을 불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민중을 단결시키고 결의를 다지게 한 서사시가 된 것이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을 어둠속에서 깨우며 굳세게 단결시킨 횃불이었다. 반면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수족같이 부리며 농락하던 노예를 옹골차게 의식화시킨 예리한 비수이며, 무디어진 양심을 일깨우는 예언자의 외침이기도 했을 것이다.
* 자료 출처 : 2004. 5월 신문 기사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상식 등을 정리하여 작성했습니다.
첫댓글 제작년오늘, 남진원,이재근과 함께 광주에 내려가 금남로를 행진하고, 민노당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마시며 토론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어찌나 이 노래를 불러댔는지,, 전주와서도 몇일 흥얼댔다는..
기사를 보니 올해도 대통령이 불참한데다 아 노래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로 치뤄졌다는데,,밑에 달려있는 네티즌들의 리플들이 참 과관입니다.
진보고 보수고 떠나서 같은 민족끼리 서로 사랑하며 살수는 없을까요?
이제 다신 돌이킬 수 없는,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큰 재앙이 되어버린걸까요?
잘 지내고 있지? 전화했더구나.
받지는 못했지만, 오래 통화한 것 처럼 따스하다.
날씨가 더웠다가도 비가내리니 감기 조심해라.
체력이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