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로 하혈(下血)이라고 하면, 항문으로 나오는 변혈(便血)이나 요로로 나오는 뇨혈(尿血)까지도 포함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하혈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주로 생식기에서 나오는 출혈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 여성에게 하혈 증상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당연히 생리와 임신 출산과도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숙종 6년 7월 24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왕비의 하혈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왕대비(王大妃)가 약방(藥房)에 하교하기를, “왕비가 여러 달 동안 포태(抱胎)의 징후가 있었는데, 갑자기 침전에서 도깨비를 보고 그로 인하여 놀란 나머지 하혈하고 낙태(落胎)한 사고가 있으므로, 매우 놀랍고 걱정되어 여러 번 다른 곳으로 옮겨 거처해야 한다는 뜻으로 힘써 권하였는데, 대전(大殿)에서는 불가하다고 하며 한결같이 미루기만 하니, 약방에서는 모름지기 이러한 뜻을 알고 또한 힘껏 청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숙종은 대비의 이러한 지시를 받은 약방 어의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왕비의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왕비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하혈을 하고 결국 낙태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임신을 한 여성에게 있어서의 하혈은 매우 위험한 증상이다. 출혈(出血) 자체가 위험한 징조일 뿐만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유산(流産)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시급하게 태를 안정시키는 한약처방을 투약해야만 한다. 다행히 2013년 4월부터 개정된 ‘고운맘카드’ 덕분에, 임신 유지가 불안할 때 처방되는 한약은 개인부담 없이 정부가 지원해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 자궁근종이나 기타 물혹 또는 자궁내막증 등의 구조적인 이상 때문에 출혈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요 근래 건강검진이나 초음파 진단의 발달로 인해 자궁이나 난소 등에 근종이나 물혹 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출혈이나 통증 및 개수나 크기 증가 등의 변화가 없는 경우에는 손대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출혈이나 통증이 있는 경우에는 수술을 고려하게 되는데, 물론 이때도 한의원을 찾아와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면역체계나 순환계통을 보강시켜 자연스레 치료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경우에는 한의원 치료가 적합하다.
임신이나 자궁근종처럼 구조적인 변화가 없는 데도 하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를 ‘기능성 자궁출혈’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증상이 한의약적 치료가 가장 큰 장점을 보이는 경우이기도 하다. 물론 여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생리불순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생리와 상관없이 출혈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육체적 피로나 정신적 피로가 근본 원인인 경우가 많다. 특히 과도한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를 교란시켜서 이차적으로 호르몬 조절에 이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한의학적으로는 음혈(陰血)과 관련 있는 비(脾)와 간(肝)과 신(腎)을 치료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혈(氣血)을 보하기도 하고 허열(虛熱)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수시로 하혈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더 큰 병이 되기 전에 미리 한의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해두는 것이 좋다.
만약 하혈 증상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와 하혈량이 많아 어지럽고 창백해지는 경우, 심한 복통을 느끼는 경우에는 즉시 가까운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치료해야만 한다.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