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 터득에 걸린 20년 고난의 세월
선생님은 1931년 경남 진양군 나동면 귀곡리에서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남의 논을 부쳐 생활해야 했던 가난에 일본의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수탈까지 겹쳐 그야말로 굶기를 밥먹듯이 해야 했던 시대였다. 초등학교도 갈 형편이 못되어 어린 나이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고 품을 팔았다(머리가 좋아 글을 어깨너머 귀동냥으로 익혔다).
그러나 그 덕에 자연을 저절로 배우게 되었으니 길게 보면 그것도 하늘의 원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소년 이성호가 오래된 도라지를 만나는 기연을 맺게 되는 것이 산에 꼴 베러 가서였음에서부터 벌써 드러나고 있다.
14세쯤이었을까. 초여름 어느 날, 한 마을에 살던 아저씨와 함께 나무하러 가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기관지천식과 폐결핵을 고질병으로 앓고 있어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입냄새도 심하여 53세가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고 있었다. 나무를 하다가 아저씨가 무언가 캐서 먹고 있는데, 보니 아주 크고 오래된 도라지였다.
아저씨는 그것을 칼로 벗겨 한 뿌리를 다 먹고 나더니 바로 잠이 들었다. 소년이 나무를 한 짐 해 놓고 아저씨를 흔들어 깨웠으나 도통 깨지 않았다. 해가 지도록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년은 할 수 없이 혼자 나무를 지고 산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이틀이 지나 다시 그곳에 나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3일 전 모습 그대로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흔들어 깨워 보았으나 되질 않았다. 다시 나무를 한 짐 해놓고 저녁이 되어서 흔들어 깨웠더니 그제야 일어나면서 “아~함! 한숨 잘 잤다.”하는 것이 아닌가. 사흘 반나절을 정신없이 자고는 한숨 잘 잤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건 아저씨였다.
도라지를 먹고 나니 무척 졸려서 잠깐 잔 것 같은데, 그새 사흘 반이 지났다니! 그런데 몸이 아주 개운하고 날아갈 것 같이 가볍다고 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그때부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그 아저씨는 더 이상 기침도 하지 않고 피를 쏟지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니 가래도 싹없어지고 혈색이 돌면서 기운이 펄펄 나는지 일을 더 많이 하였다.
동네 어른들은 이를 보고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낫다”거나 “저 양반, 불로초 먹었군” 하였다. 후에 더위도 추위도 타지 않는 건강체질로 바뀐 아저씨는 장가들어 자식도 낳고 80세까지 장수하였다. 소년은 어린 나이지만 그 놀라운 일을 통해서 오래된 도라지의 신비하고도 충격적인 약효를 체험하였다.
26살에 군대를 제대하여 살길을 찾던 선생님은 사람으로 태어나 국가사회와 후세를 위하여 한가지 좋은 일을 해 놓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 하에 어려서 체험했던 ‘산삼보다 낫다’는 그 도라지를 길러서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각오를 한다.
이름 없는 초목도 저마다의 수명이 있건만, 존귀한 사람의 생명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갖은 병으로 죽어 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 5천 평의 밭에 도라지를 심었다. 그런데 3년 정도 아무 탈없이 잘 자라던 도라지가 뿌리가 썩어 들어가며 죽었다.
한 포기도 캐 내지 못하고 밭을 갈아엎었다. 다시 5천 평의 밭에 도라지를 심었다. 이번에는 거름도 충분히 주고 제초제도 뿌려가며 더욱 정성껏 길렀다. 그런데 또 3년이 되기 전에 전부 썩어버렸다. 그렇게 수없이 도라지를 심고 썩어서 내버리기를 15년을 반복하였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번번이 3~4년째가 되면 어김없이 썩어버렸다.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도라지 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많이 했다. 도와주던 친척들도 차츰 외면하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동네 아이들까지 ‘도라지 또라이’라고 놀렸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생활은 물론 5남매의 아이들 공부도 뒷전이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번갈아 찾아와 미친 짓 그만 두고 포기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죽어야 하는 안타까운 생명을 구하자. 그 길은 오로지 오래 묵은 도라지를 길러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라는 의지가 더 생겼다. 41세. 빚 때문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동네에서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 혼자서 야반도주를 했다. 어느 정도 자란 도라지와 씨앗, 솥단지 하나와 소금 한 자루만 달랑 들고 혼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 보낸 그 삼신산 중의 하나가 지리산 아니었겠는가 싶어 그곳에서 도라지를 제대로 다시 한번 키워보자는 결의였다. 지리산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사람의 발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움막을 치고 먹을 것을 산에서 구했다. 가재, 개구리 따위를 잡아먹거나 나무껍질, 칡뿌리, 솔잎 등 먹을 수 있는 것을 다 식량으로 삼았다.
겨우 연명할 정도만 먹으며 도라지 씨앗을 여러 군데 나누어 심었다. 맨손으로 흙을 파헤쳤다. 대화할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이 외로움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눈뜨고 나서 해질 때까지 산도라지를 캐서 옮겨 심거나 온갖 방법으로 도라지를 키우고 관찰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어느새 머리는 길대로 길어 치렁거리고 가져간 옷도 다 헤져 말 그대로 거지꼴이었다.
산열매를 따먹고 기르다 망친 생도라지를 한 광주리씩 삶아 먹고 견뎠다. 특히 겨울에는 소금 한줌과 계곡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머리는 하얗게 세어 어쩌다 약초꾼이나 땅꾼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이 선생님의 괴상한 몰골에 놀라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몇 해 동안 대화할 상대가 없어 말을 잃어버릴까 싶어 저녁이면 혼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두고 온 처자식 생각과 죄책감에 밤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모질게 맘을 다잡아먹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 따지고 보면 내 식구는 몇 명에 불과하지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로 생명을 구할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 될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외로움과 죄책감도 도라지에 대한 열망을 꺽지 못했다.
누구나 사람의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생각하니 죽자고 달려든 그 일 외에 다른 길은 애초부터 없었다. 험한 산짐승도, 살을 에는 추위도, 끝없는 굶주림도 사람의 굳은 심지보다 무서울 순 없었다. 그렇게 도라지를 키우는데 신명을 다 바쳤다.
그러나 지리산에서도 3년쯤 되자 도라지 뿌리가 썩기 시작했다.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후회와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괴로웠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더 미친 듯이 도라지를 돌보고 이것저것 실험을 계속해 나갔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 오면 ‘내가 하는 일은 결코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십 년이 걸리든 백 년이 걸리든 반드시 죽지 않는 도라지를 키워내리라 거듭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막힌 발견을 한다. 불과 한 달 전에 옮겨 심은 움막 옆 황토, 시뻘건 황토, 거름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 도라지는커녕 잡초도 자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옮겨 심은 그 곳에 새순이 무성하게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 옮겨 심은 것보다도 생기 있고 탐스러웠다. 조심스레 뿌리를 캐보자 도라지는 썩은 상처를 밀어내고 새살을 돋아내듯이 뿌리가 새로 생겨나고 있었다. 엄청난 발견이었다. 온갖 정성을 다해 좋은 흙에 심은 도라지는 뿌리가 썩어 다 죽었는데도 황토에 심은 도라지는 썩지 않고 자란 것이다. 황토는 다른 식물이나 씨가 자라지 못하는 땅인데 도라지만은 건강하게 자란다.
마침내 비밀을 흔연히 깨달았다. 도라지는 땅의 기운을 먹고살지 거름기를 먹고사는 식물이 아니었다. 오로지 땅의 기운을 흡수하여 그 성분을 자신의 뿌리에 영양분으로 고스란히 쟁여 놓는다. 따라서 뿌리가 썩지 않도록 키우려면 거름기 없는 척박한 땅에 심고 비료와 거름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고도 3년쯤 지나면 땅의 기운을 도라지가 모두 흡수해버리므로 다른 땅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그리고 줄기가 지나치게 자라지 못하도록 가끔 줄기를 잘라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수십 년, 수백 년을 키워도 뿌리가 썩지 않는다. 이토록 간단한 원리를 20년 각고의 세월, 그 숱한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 끝에 찾아내었구나.
선생님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크게 고함을 지르다가 마침내 땅바닥에 주저앉아 실성한 사람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46세 때의 일이다. 선생님은 그 때의 일을 뒤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은 듯 하다고 한다.
#한의학 공부에 또 10년
장원급제한 사람의 심정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깡마른 몸에 호호백발이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였다. 집안 꼴도 말이 아니었다. 자식들 공부는 고사하고 겨우 빌어다 먹는 처지에 빚쟁이들의 성화가 대단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장생도라지를 맘껏 내다 팔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도라지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고 그 성분이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궁금했다. 사람들이 물으면 자신 있게 설명해주고 혹시 전문가를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고 싶었다. 그래서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1981년에 1억7천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빚쟁이들에게서 하루가 멀다고 고소장이 날아들고 멱살잡이를 당하고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수시로 불려 다니는 형편에서도 한의학 공부를 했단다. 『동의보감』『방약합편』 등의 옛날 의서를 옥편을 뒤져 한자를 배워가며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다.
진단법, 인체의 구조와 생리작용, 갖가지 질병의 원인과 증상, 온갖 약재의 성분과 효능 등을 공부했다. 빚쟁이를 피해 숨어 지내면서도 손에서 노트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쯤하고 나니 웬만한 이치엔 통달했다 싶을 만큼 자신이 생겼다. 그 동안 만든 노트가 370권이었는데, 거기에 적힌 분량은 3,700권 깜이었다.
돈이 없어 공책 한 권마다 깨알같은 글씨를 귀퉁이까지 여백이라고는 없이 빽빽하게 썼기 때문이다. 한의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 묵은 도라지가 정말 귀한 물건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죽음 직전에 체험한 21년생 도라지의 약효
선생님은 도라지로 실험을 해보고 싶어 묘안을 짜다가 1년생부터 21년생까지 연차별로 따로 유리항아리에 담아 술을 부었다. 그런데 2개월쯤 지나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몸을 돌보지 않아 엉망이었던 것이 다 터져 나온 것이다.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고 몸져누웠다. 짐작에 병명이 수십 가지 될 것 같았다.
꼼짝없이 누워서 앓기를 열 달, 스스로 생각해도 나을 가망이 없었다. 절망감이 엄습했다. 지칠 대로 지쳐 죽을 준비를 하고 싶었다. 제 죽은 뒤는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 동안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정리해둔 공책 370권을 가지고 산골짜기로 들어가 모두 불살랐다.
그리고 다음날 도라지 술병을 모두 폐기 처분하려고 방 안쪽에 있는 비밀창고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1년생부터 20년생까지의 도라지가 든 술병은 색깔이 모두 같았으나, 유독 21년 묵은 도라지가 든 술병은 진한 노랑색의 황토빛을 띠고 있었다. 20년생까지의 도라지 술은 빛깔에 변화가 조금도 없는데
단 1년 차이인 21년생 도라지의 술만 완전히 다른 빛깔이다? 참으로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그 도라지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그 약효가 어떨지 좀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밝혀야 할 일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시 가슴속에서 열기가 끓어올랐다. 일단 21년생 도라지의 술을 마셨다. 한 달간 매일 그 술을 조금씩 마셨다. 그러는 동안에는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온 몸이 쑤시던 것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달 쯤 지나자 몸이 훈훈해지면서 기운이 나고 살 것 같았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다리에 힘이 생기고, 마침내 거뜬히 일어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8개월을 꾸준히 먹었다. 나날이 몸이 좋아지면서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머리숱이 늘기 시작했다.
체력도 무척 강해져서 피곤한 줄 모르고,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하늘이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고 싶으니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빛을 보다
장생도라지를 키울 수 있는 비법을 개발했고 약효도 스스로 확인했다. 그런데 그 도라지를 세상에 전하려면 뭔가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로 하고 1년생 도라지와 25년생 도라지 2뿌리를 들고 전국의 유명한 한의원과 약재상과 박사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25년생 도라지를 보고 오히려 “이게 도라지가 맞습니까?”하든가 도라지가 25년을 살 수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신기해 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2년 가까이 그렇게 전국을 돌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의 소개로 법률신문사를 찾아가 사장을 만났다. 한 달을 따라다녔다. 〈법률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팔리기 시작했다. 가져간 사람들마다 효험을 보았다며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어 자연히 홍보가 되었다. 경상남도 생약연구소 소장인 경상대 교수 성환길 박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박사는 도라지를 보더니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1년 동안 여러 가지 기초실험을 했다. 그 결과 20년 넘은 도라지에는 일반 도라지와는 전혀 다른 성분이 들어 있고, 그런 성분이 혈액순환장애와 당뇨병, 고혈압, 만성위염, 폐결핵, 피부염, 기관지 천식에 탁월한 효능을 있음을 밝혀냈다.
그 반향은 참으로 커서 박대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방송에도 여러 번 초청 받아 나갔다. 전문가들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연구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석·박사 연구원들이 다양한 연구를 했다. 장생도라지에 관한 석·박사 논문도 적지 않게 나왔다.
지금까지도 연구가 끝나지 않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비밀이 이 도라지에 숨겨져 있나 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동인당한방병원, 대구 중앙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도 임상에 장생도라지를 활용하여 많은 성과를 보고 있다.
60세가 되던 1990년 ‘성호장생도라지’ 상표를 등록했다. 그리고 주요 일간지 27개 신문에 ‘20년생 도라지의 약리 성분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1991년에는 ‘다년생도라지 재배법’으로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영농기술로서는 국내 첫 특허다. 1993년에 국립 경상대학교와 진주전문대학 등 4개 기관을 연계한 ‘다년생도라지연구소’를 운영하게 되면서 체계적인 사업에 나섰다.
1995년에는 ‘성호장생도라지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도라지 뿌리를 자연 그대로 판매하다가 1997년에 현대식 가공공장을 만들어 추출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1998년 장생도라지 추출물로 4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항균성 및 염증성 질환 치료제, 고지혈증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암 치료제. 그 추출물이 항균활성작용, 지질대사개선작용, 혈당강하작용, 암세포접착저해활성작용, 면역증강작용, 항관절염작용 등에 있어서 기존 약제나 2~4년근의 일반 도라지에 비해서 월등한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1999년 주식회사 장생도라지를 설립했다.
일본 도쿄, 오사카, 홍콩에 총판을 설립했다. ISO 9001 국제품질인증을 획득하고 벤처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애틀란타, 뉴욕 등 3곳에 지사를 설립하고 하와이에 총판을 두고 대미 수출을 시작했다. 이는 호놀룰루에 있는 한·양방 종합병원인 고려종합한방병원이 장생도라지를 이용하여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의 기관지 천식 환자를 5개월여 만에 완치 단계에 이르게 한 임상결과를 얻고 나서이다.
그리고 ‘장생도라지 재배법’을 국제특허 출원했다. 그해 10월 경남 우수벤처기업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농림부와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세계농업기술인상’ 대상을 받았으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2년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제12회 ‘일가상’(민족을 일깨우고자 헌신하신 일가 김용기 선생의 유지를 기려 제정한 상)을 받았고, ‘장생도라지 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장생도라지연구회도 발족하였다.
경상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 성낙주 박사, 대구 중앙요양병원장 송국평 박사, 서울 동인당한방병원장 김관호 박사, 한국화학연구원 생명의학연구부 김영섭 박사와 천연물연구실 유시용 박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질대사연구실장 이현선 박사, 진주국제대학교 식품생명과학부 정영철 박사, 조선대학교 약학대학 정혜광 박사, 장생도라지 생명과학연구소장 노성환 박사 등의 쟁쟁한 전문가들이 국내연구진으로 포진하고 있고, 일본과 미국의 해외연구진도 있다.
2003년 4월 선생님은 대구중앙병원, 중앙요양병원, 한중한방병원의 상임고문 겸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그해 10월에는 장남인 (주)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이사가 제1회 경남과학기술대상을 수상했다. 지역특화산업으로 지정되어 정부지원을 받아 2005년 공장과 사무실 건물을 신축했다. 현재 서부경남 진주 근방 230여 농가 15만여평에 위탁재배를 하고 있고, 1년에 지급하는 영농비가 6억여원에 이른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겸손한 노력
세계에서 유일한 휘귀한 생명 신소재를 손에 쥐었다. 세상의 인정을 받고 외형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렇게 되면 보통 안일에 빠지거나 향락을 누리거나 씨족적 아성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대부분의 경향일 터이다. 그런데 장생도라지는 이러한 해이로부터의 자기관리가 엄격하기 이를 데 없다.
오래된 도라지로 세상을 살리겠다는 그 초심이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전개되고 있을 뿐, 한 치의 헛점도 없다. 이는 장생도라지의 재배단계부터 완제품 출시와 판매의 전 과정에 그대로 배어있다.
우선 위탁재배를 하면서도 도라지 재배과정부터 이성호식 재배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한다. 3년 이후부터 20년이 넘기까지 각각의 시기마다 민감한 기술적 요소들은 물론, 하나 하나의 재배이력을 세밀하게 관리한다. 채 갖추어지지 않은 10년, 15년 짜리 저년근이 유통되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도라지 추출액을 만드는 가공공정도 엄격하기 짝이 없다. 식품을 만드는 과정은 치밀하게 설계되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 하에 항공기 생산방식에서 도입한 선진적인 공정관리 방식을 구축하여 품질과 위생의 모든 요건을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다.
이 방식은 일반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작업표준보다 진일보한 적극적인 공정관리방식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작업을 하더라도 공정의 기준이 지켜지고 일정한 품질이 생산될 수 있도록 한다. 제품생산이 이루어지는 전체 공간은 위생상의 문제 요소들을 사전 차단하는 폐쇄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원료 및 반제품이 노출되는 공정은 밀폐된 특별구역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며, 먼지가 발생할 수 있는 포장공정은 전처리실과 최종포장실로 구분되어 있다. 추출공정의 경우, 유사제품을 생산하는 식품공정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추출탱크와 포장기를 위생배관으로 연결하고 센서를 부착하여 추출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이송되어 포장되도록 개조하였다.
이는 재공중인 원료용액이 공기중에 노출되어 위생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장생도라지 제품의 가공공정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 설계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과정을 거쳐 나온 추출물도 최종적으로 선생님의 입맛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말짱 도로묵이 된다.
추출탱크가 한번 작업을 마치면 50명이 한달 동안 먹을 추출액(가격 7,500만원 상당)이 생산되는데, 그 액을 선생님이 먼저 한 국자 떠서 먹어 보고 맛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가차없이 폐기해버린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선생님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생산된 완제품은 아직 수요에 비해 물량이 부족하다. 재배기간이 2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한정된 물량을 배분하는데도 기준이 있다. 급한 환자 먼저, 내국인 먼저다. 하루 일정 중에서도 가장 우선인 것이 환자 면담이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보더라도 환자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오면 바로 사무실로 달려간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하루 5시간 이상 자지 않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본인 스스로 나이를 잊고 산다고 하신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러하다. 장생도라지의 무궁무진한 비밀을 더 밝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짧을 뿐이라고 한다. 주식회사 장생도라지의 사훈은 ‘자연사랑 인간존중’이다.
#‘과학’이 밝혀낸 약성
장생도라지의 뛰어난 약성은 그 동안 많은 학자들과 의사들, 대학과 연구소들이 다양하게 연구하여 상당히 밝혀냈고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그 결과의 일단만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일반도라지와 장생도라지는 인삼과 산삼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20년이 지나면 그냥 먹어도 쓴맛이 없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향기도 산삼의 향기와 비슷하다.
장생도라지의 주성분은 인삼과 마찬가지로 사포닌이다. 21종의 사포닌이 들어 있다. 이눌린도 장생도라지의 주성분인데, 특이하게 GF2와 GF3 함량이 높은 이눌린이 검출된다. 사포닌과 이눌린의 구조와 함량이 6년근 도라지와 다르다. 특히 보통 도라지에는 들어 있지 않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고, 아직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물질도 들어 있다.
이는 장생도라지의 성분이 기존의 과학으로는 밝혀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으로, 서양식 분석과학의 한계를 드러냄인 동시에 장생도라지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성분들이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을 깨끗이 청소해 주고 중성지질을 분해하는 등 노폐물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피를 맑게 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것이 어떤 병도 낫게 하는 근원이다. 여기에 나쁜 균을 죽이는 항균작용까지 있어 염증을 없애고 세포들을 활성화시키는데 탁월하다. 면역력을 크게 증강시켜 면역세포가 늘어나게 하고 T-임파구 등의 정상세포를 활성화시킨다.
기관지천식에 백발백중이고, 기관지확장증, 기관지염, 페결핵도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고 잘 나으며 고혈압, 동맥경화증, 협심증 등도 치료효과가 높다. 항암작용이 우수하면서 독성과 부작용이 없어 이상적인 천연 항암약물로 친다(특히 폐암에 두드러진 효과가 있다). 암 전이를 억제하고 암환자의 통증을 가볍게 해주는 효과도 분명하다.
어떤 진통제를 써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던 말기 간암 환자가 장생도라지만 5일분 먹고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경우가 있다. 2~4년생 보통 도라지도 상당한 항암작용이 있지만 장생도라지는 몇 배 더 뛰어나다(22년생 도라지가 2년생 도라지에 비해 면역증강 활성이 5배 이상 높다).
『동의보감』에는 도라지가 정력을 감퇴시킨다고 적혀 있으나, 이는 보통 도라지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20년 이상 된 도라지는 그 성질이 판이하게 달라져서 오히려 찬 성질을 덥게 하는 보양제가 되어 정력을 높여준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활성이 높다. 그래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의 치유에 그만이다.
보통 1개월이면 기력을 회복시키고 2~3개월 안에 증상이 사라지게 한다. 빠른 경우는 복용 4~5일 만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맞던 인슐린 주사를 끊을 수 있을 정도로 혈당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선생님은 당뇨병이 심해져서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손발에 염증이 나서 진물이 날 정도로 악화된 환자도 복용 6개월쯤 지나면 거의 완치에 가깝게 낫는 걸 많이 보았다고 한다.
아무리 심한 당뇨병 환자라도 1년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낫고, 재발 방지를 위해 2~3개월 더 복용하면 그 이후로는 장생도라지를 안 먹어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이다. 이는 장생도라지가 단순히 혈당치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췌장의 기능을 정상화시켜줌으로써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유시켜주기 때문이다.
장생도라지에는 음양이 화합되어 있다. 일반 도라지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도라지가 20년 이상 되면 그 성질이 바뀌어 더운 성질과 찬 성질을 함께 지닌 약초로 변하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은 따뜻하게 해주고 몸이 더운 사람은 열을 식혀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해도 소위 말하는 ‘과학’은 생명의 신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이렇게 과학이 이르지 못하는 영역은 오히려 경험과 실증이 말해준다. 선생님은 장생도라지를 연구하면서, 그리고 온갖 난치병 환자를 접하면서
경이로운 일을 무수히 경험했다고 한다. 과학적인 검증보다 앞선 이런 사례들을 통해 장생도라지의 무궁무진한 치유능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든 질병들 외에도, 관절염, 신경통, 골다공증, 만성 간염, 간경화증, 중풍, 산후증, 냉증, 부인병, 우울증, 아토피성 피부염, 무좀, 재생불량성 빈혈, 중이염, 늑막염, 비만증, 변비, 불면증, 두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갖가지 난치병들이 치유되거나 호전되었는데, 탈모, 충치, 백납 외에는 모든 병이 낫더라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다. 장생도라지 회사에는 요즘 의사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그들의 병원에서는 치료되지 않는 환자가 장생도라지를 먹고 분명히 살아나니까. 이렇게 탁월한 약효를 가진 장생도라지도 고발을 당한 적이 있다.
대구 약전골목에서 집단으로 고발을 했단다. 선생님은 수사를 받으며 수사관에게 이렇게 따졌다고 한다. “물에 빠진 사람 1명만 구해도 영웅이 되는 세상인데 나는 병원에서 못 고치고 내버린 쓰레기들을 구해 놓았는데 뭘 잘못했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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