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김 국 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 자랑스러운 시민상을 받았다. 상금과 부상으로 사랑의 생명나무 증서를 받았다. 시상식이 겨울이었으므로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에 식수일자와 장소를 통보하겠다더니 삼월 중순경 서울시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돌아오는 식목일에 도봉구에 있는 초안산 근린공원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예전에 초안산은 숲이 우거졌던 곳이다. 아이들 데리고 먹골배를 사러 다니던 배 밭은 지금은 모두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 나지막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동네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초안산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하던 언덕배기가 반들반들 닳을 정도로 주민들이 오르내리고, 주변에 쓰레기더미가 쌓이고 숲길이 훼손되었다.
자연환경을 살리려면 숲을 살려야하고 숲을 살리려면 나무를 심어야한다는 구민들의 개선책으로 나무심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시청에서 정해 준 식목일에 초안산으로 올라갔다.
구청직원들이 삽과 나무와 밑거름을 싣고 도착했다. 내게 배당된 나무는 왕벚나무였다. 왜 하필 이웃나라 일본의 나라꽃인 벚나무일까? 그동안 나는 일본의 나라꽃인 왕벚꽃의 자생지가 일본 인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아직까지 왕벚꽃 자생지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수형이 웅장하고 꽃모양이 탐스러운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우리나라 제주도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왕벚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심는 요령을 배웠다. 묘목은 어리지만 앞으로 성장할 것을 감안하여 간격을 넓게 잡고 구덩이는 깊게 파라는 설명에 따라 구덩이를 깊게 팠다. 구덩이에 밑거름을 넉넉히 넣은 다음 흙을 넣고 그 위에 묘목을 세우고 흙을 두둑하게 덮었다. 그런 다음 물이 흘러가지 않도록 둥그렇게 고랑을 파고 물을 흠뻑 주었다.
팻말에 나무이름과 식수일자와 남기고 싶은 문자를 기록하도록 되어있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두꺼운 비닐로 포장된 팻말에 ‘자랑스러운 시민상 수상기념’이라고 기록하고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귀가 길에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를 들렀다.
그 동네는 가옥들이 크고 마당이 넓어서 울안에 정원수들이 많은 게 특징이다. 담장에 덩굴장미가 어우러지고 잘 손질된 수목들은 동네를 한층 풍요롭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살았던 집에도 마당에 화단이 있고 작은 연못도 있었다. 그 곳에서 있었던 추억을 더듬으며 그 집 울안을 기웃거렸다.
화단에 수목이 잘 자라고 있는 걸 보며 떠오르는 일 이 있다. 어느 해 식목일 두 아들과 화초를 심고 중학교 1학년생이던 큰아들에게 향나무 조경을 맡긴 일이다. 제멋대로 자란 향나무를 “네 마음대로 손질하라”며 맡겼었다. 경험이 없는 중학생 솜씨라 삐뚤빼뚤 엉망이었지만, 자신감을 주기 위해 “와! 우리아들 첫 솜씨치고 너무 잘했다!”며 칭찬해주었다.
화초를 좋아하는 나는 아파트로 이사했어도 여전히 화초를 가꾼다. 화단에 있는 화초 대부분이 내 손으로 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주 당시 은행나무, 대추나무, 향나무 같은 덩치 큰 나무만 몇 구루 있었다.
부녀회장 직책으로 식목일이면 영산홍도 심고, 철쭉을 구해다가 심었다. 오월의 여왕이라 부르는 장미를 심고, 무궁화도 심었다. 내가 심어놓은 나무 중에 주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나무는 울타리 옆에 있는 등나무다. 보라색 꽃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등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등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더위를 식히는 만남의 장소로 활용된다.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꽃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꽃을 바라보는 기분도 황홀하지만, 심고 가꾸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내 개인 소유는 아니지만 내 손으로 심고 가꾼 화초가 꽃을 피울 때 제일 기쁘다. 그 기쁨으로 화초 뿌리를 구해 오고 씨앗을 구해다 심었다.
식목일에 기념식수를 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훼손된 초안산이 다시 무성하길 바랐다. 아! 그런데 식목일 저녁 뉴스시간이었다. 산불로 인하여 나무들이 활활 타는 장면을 보았다. 강한 바람과 함께 마을을 덮쳐 가옥이 전소되고, 인명피해와 가축이 타 죽는 엄청난 사고로 번지는 상황을 보며 안타까웠다.
화재 원인은 담뱃불로 판명되었다니 경악할 일이다. 더구나 파괴된 생태계가 회복하려면 무려 50여년 세월이 흘러야 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나무를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꾸고 보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