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옛날 한국에서나 통했다. 요즘 미국에선 암탉이 큰 소리로 울어야 집안이 흥한다. 지난 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한 백악관 안주인 미셸 오바마가 이를 입증했다. 만년 서민인 남편이 4년 더 대통령으로 일하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그녀의 열변이 막바지로 치닫는 박빙의 선거전에서 ‘만루 홈런’을 날렸다.
미셸은 이날 오스카 시상식장의 배우처럼 어깨가 드러난 화려한 핑크 드레스 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자기 부부의 소싯적 고생담을 털어놨다. 청년 오바마가 문짝에 구멍이 뚫려 길바닥이 보이는 고물차를 몰고 데이트하러 왔고, 발 사이즈보다 반문이 작은 중고품 구두를 신고 뒤뚱거렸으며, 쓰레기통에서 티 테이블을 주워들고 입이 벌어졌었다고 했다.
그녀는 상수도 수원지 기능공이었던 아버지가 심한 근육경색증으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결근하지않고 열심히 일해 자녀를 대학에까지 보냈고, 그것을 부모의 도리이자 보람으로 여겼다며 “얼마나 많이 버느냐보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아버지에게서 배웠고, 이 교훈은 지금도 대부분 서민 가장의 교훈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미셸은 퍼스트레이디보다 주부(mom-in-chief)의 역할을 더 중시한다며 백악관 주인이 된 가족이 달라질까봐 걱정했다고 털어놓고 “남편이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숱한 난관에 봉착했지만 4년전이나 우리가 처음 만난 23년전이나 한결같다”며 앞으로도 결코 변치 않을 서민 대통령에게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얼핏 ‘팔불출’ 같은 퍼스트레이디(또는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의 남편 치켜세우기 선거연설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이젠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의 단골메뉴가 됐다. 베티 포드(제럴드 포드 대통령 부인)는 “누구나 퍼스트레이디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퍼스터레이디가 됐다”고 말했지만 언변 없는 여자는 퍼스트레이디 되기 어려운 세상이다.
퍼스트레이디 없는 홀아비대통령도 있었다. 토마스 제퍼슨, 마틴 뷰렌, 제임스 부캐넌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부인과 사별해 각각 딸, 며느리, 질녀가 역할을 대행했다. 백악관 마님을 마다한 퍼스트레이디도 있었다. 마가렛 테일러는 남편(재커리 테일러)의 낙선을 위해 기도했고, 제인 피어스는 남편(프랭클린 피어스)에게 정치를 그만두라고 채근했다.
역대 가장 훌륭한 퍼스트레이디로 꼽히는 엘레너 루즈벨트도 “해본 사람이 아니면 믿지 않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부인 자리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고, 정신질환을 앓은 매리 링컨은 “나는 공인이 아닌 가정주부다. 내 사생활에 공인들이 간섭말라”고 요구했다. 레이디 버드 존슨은 “나는 남편 단 한 사람에 의해 선출된 무보수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퍼스트레이디 아닌 퍼스트젠틀맨도 있다. 여대통령, 여주지사 등의 남편을 위한 호칭이다. 워싱턴주의 크리스 그레고어 주지사 남편(마이크)은 지난 8년간 공식석상의 부인을 그림자처럼 지켰다. 그는 내달 부인의 한국 공식방문도 수행한다.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남편(토드)도 직장(정유공장)을 쉬면서 퍼스트젠틀맨의 외조에 충실했다.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전에 현 영부인이나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이 연설하지 않는다. 이들은 “남편과 가족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재클린 케네디), “가장 작은 최선의 주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루크레티아 가필드) 등의 퍼스트레이디 역할론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하긴, 청와대 안방에서 엉뚱하게 뇌물접수 창구역할을 맡은 영부인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암탉 울음소리가 수탉들을 압도하고 있다. 괜한 걱정이지만 만약 독신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퍼스트젠틀맨 역할은 누가 맡나? 그런 건 약과다. 앞으로 미국에서 게이대통령이 나올 경우를 가상하면 끔찍하다. 그의 파트너를 퍼스트레이디로 불러야할지, 퍼스트젠틀맨으로 불러야할지 역시 괜히 걱정이 된다.
9-8-12
첫댓글 요즘 TV 보면 재미있어요, 오바마 선거 캠패인을 많이 들었거든요, 클린턴 연설 재미있었죠.
요즘은 암탉 울음소리가 나야 집안이 된다고 합니다. 게이가 대통령 되면 역활에 따라서 퍼스트젠틀맨이 되든지 퍼스트레디가 되지겠만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홀로서기는 좀 쓸쓸해 보입니다. 지미있게 읽었습니다.
늘 생각이 앞서가시는 눈산님의 글이 호쾌합니다. 저야 퍼스트레이디 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그건 자유롭습니다. ㅎㅎ 서민 가장의 기를 세워준 미셸 오바마가 많은 표를 모을 듯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