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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장 주석
성전 파괴 예언 (마가복음 13:1-4)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Ⅰ.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외관상 크게 보이는 것들을 우상화하고 신성시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이 성전으로 하여금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음에 대해서 노여워하심을 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전 안에 남아 있는 강을 근절하지 못한 채 그 곳에서 떠났을 때에 그들이 성전의 웅장한 구조에 대하여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그 성전을 사랑하실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나이까?"(1절)하였다.
Ⅱ. 그리스도께서는 외관상으로만 화려하지 진정한 순결미가 결여되었을 때에 귀하게 평가하시지 않으신다. "여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2절). 건물의 화려함에 안전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 예수께서는 그 건물에 동정심을 나타내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귀한 영혼들의 멸망함에 대하여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시었고 그들을 위해서 우셨고 그들에게 대하여 존귀한 평가를 하시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웅장한 건물의 황폐됨에 대해 동정을 나타내심을 볼 수 없다. 예수께서 성전 안의 부정을 규탄하다 성전에서 나왔을 때에 그 일은 그에게 별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별스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셨다. 성전의 중력은 큰돌들로 지탱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돌들이 무너지면 계단 하나도 남지 않고 기억을 되살릴 만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만일에 건물의 일부라도 그대로 서 있다면 그것을 복구할 가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않고 무너진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Ⅲ. 우리가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고 싶어하고 그 이루어질 때를 알고 싶어함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보다 그 일들에 대해서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들이 선생님의 궁전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들 자신들이 존귀하게 되고 영광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곳으로 생각하였던 성전의 함락에 대한 이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과 홀로 있게 됨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볼 때까지 고민을 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베다니로 돌아오시는 길에 "감람산에서 성전을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보고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었다"(3절). 그들은 무리와 떨어져서 조용히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4절)하는 것이었다.
재난의 때 (마가복음 13:5-13)
우리 주 예수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그들의 생각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시어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시기보다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하였다"고 희미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속히 임할 일들을 대비하여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Ⅰ. 이제 곧 나타날 미혹자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심(5,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미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참 메시야를 찾지 못하게 하고 참 메시야를 찾은 자들도 미혹하여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온다고 함은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참 그리스도를 버리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전례 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6절). 많은 사람이 미혹을 받게 될 때에 우리는 미혹되지 않도록 경성 하여 우리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Ⅱ. 그들이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에 당황하지 말고 말세에 대한 경고로 삼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7, 8절). 죄는 전쟁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전쟁들은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다른 때보다 나라들이 더 많이 전쟁으로 혼란하고 황폐케 되는 것이다. 그런 때가 이제 온다는 것이다. 대체로 평온한 때에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시자 곧 전쟁이 있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될 것인가? "전쟁 무기의 부딪치는 소리 가운데는 율법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시었다.
1. 예수께서는 아마 이런 뜻으로 말씀하시었을 것이다. "너희는 놀라지 말라. 너희가 미리 예기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남도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유대인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목적하신 일을 더욱 더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사가 조셉푸스(Josephus)는 자세하게 설명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악함에 대하여 형벌 하시려는 것이다."
2. "너희는 두려워 말라. 마치 너희가 재산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너희의 사업이 전쟁으로 파업되는 것처럼 두려워 말라. 그런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일로 인해 어떤 손해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세상의 미소를 경시하고 세상의 그러한 향락을 탐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의 노에 대해서도 경시하고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만일에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일어나려고 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침몰하는 그런 일들과 더불어 침몰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3. "그런 일들을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징조로 생각지 말자. 세상 끝은 아직 아니니라(7절). 이런 전쟁들이 세상 끝을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끝과 만물의 마지막 사이에는 이루어질 중간적 경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끝날을 위해 너희를 예비케 하고 그 합당한 때에 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계획인 것이다."
4. "마치 그 전쟁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내리신 것으로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활에는 더 많은 화살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핍박자들을 대하여 재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전쟁의 소문을 듣게 될 때에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재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로 인해 당황하지 말고 더 심한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처처에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집들과 같이 삼켜 버릴 것이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 일로 인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굶주림과 고생과 소란으로 죽어갈 것이다. 세상은 근심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었다. 밖으로는 전쟁의 소리 내부로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 자기들의 잘못만 아니라면 ─ 모든 사람들이 큰 소란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Ⅲ.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이 직면해야 할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금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자신들을 조심하라(9절). 비록 너희들이 이웃보다도 전쟁의 칼을 잘 피했다고 하더라도 ─ 그것은 대중들의 싸움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정의의 칼 앞에 서게 될 서이다. 너희는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며 연합하여 너희를 대적하던 자들보다 너희가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니 번영하리라는 희망과 너희가 꿈꾸는 현실의 왕국에 대하여 스스로 속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필요치 않은 근심에 사로잡히거나, 너희 재간으로써 그런 것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너희의 언행에 주의하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하에서 이 문제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1. 그들이 예기하지 않으면 안 될 고난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보라.
(1)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온유한 심령에 슬픔이 되는 것이다. 증오의 열매는 계속적인 괴로움인 것이다. 악을 즐기는 자들은 불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미움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거나 그들로 말미암아 잘못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미움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그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2) 그들의 친족들이 그들을 배반할 것이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인척관계가 있으며 그들에게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그들이 배반한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그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12절). 만일에 어떤 아버지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본성적인 애정을 떠나서 강퍅한 마음에 사로잡히어 자기 자식을 박해자들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다(신 8:6-10).
(3) 교회 관리자들이 그들을 핍박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함이라." 교회의 포병들이 그 장교들의 배반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비난을 듣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4) 관장들과 임금들이 그들에게 대하여 권세를 부리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죽게 할 권세가 없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를 충동하여 헤롯이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해하게 한다. 마치 로마 제국에 대하여 반역한 자같이 그들을 죽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이러한 크고 심한 고난 중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1) 그들이 당하는 이러한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부름을 받은 그 일을 수행해야 했고 반영케 해야 했다(10절).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그 소문이 사방에 퍼지기 전에 그들은 유대 나라에 뿐만 아니라 온 지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비록 그들이 좌절되고 압도당한다해도 복음은 그럴 수 없고 복음은 그 거점을 확보하고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 그들의 맡은 일이 방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고난이므로 더욱 그 일은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 함이다"(9절). 그들이 박해를 당하여 죄수들이 끌려 왔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 네로 앞에 서게 된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는 대로 그를 심문하던 자들이나 집행관들에게 그가 무죄할 뿐 아니라 우수한 자들인 것이 판명됨으로 그들에게 증거가 된 것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와 하늘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거가 되는 것이니, 만일 우리가 복음을 받으면 복음이 우리를 위해 증거 하는 것이다. 그 복음이 우리를 외롭게 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만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복음이 심판 날에 우리에게 반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
(3)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넘겨졌을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와 자신들을 위해서 변호할 말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모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11절). 그들에게 어떻게 답변을 할까 또는 어떻게 그들의 호의를 입게 될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심문을 당하는 것이므로 의롭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답변할 말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입에 주시는 말을 해야 하며 그 말의 결과에 대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지혜나 판단이나 사고를 힘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대변자가 되도록 부르신 성령께서는 지혜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의지해야 되는 것이다.
(4) 하늘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새롭게 하여 주신다.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에 있어서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달게 닫도록 하라. 당신에게 축복이 나타날 것이며 당신의 증거가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인내는 면류관을 얻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약속된 구원이란 악으로부터 구원보다 더 큰 구원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고난 당한 일에 대한 풍성한 보상으로 허락하시는 영원한 축복인 것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는 마태복음 10장 17절 이하에서 볼 수 있다.
말세의 징조 (마가복음 13:14-23)
유대인들은 한편으로 로마에 대한 반역과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에게 대한 박해로 그들 자신의 파멸을 유효하고 기이하게 재촉하였고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대적이 된 것이다(살전 2:15). 지금 우리는 여기에 이후로 40년 내에 그들에게 임할 멸망에 대한 예언을 대하게 된다. 전에 마태복음 24장 15절 이하에서 본바 있다. 이하에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Ⅰ. 그 일에 대하여 여기에 뭐라고 예언되었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로마군이 유대땅을 점령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포위할것에 대해서 예언이 되었다. 그 군대는 "멸망의 가증한 것"인데 유대인들이 "가증하게" 여겼고, 그들로 인해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되리라"(사 7:16). 가증한 일은 멸망밖에 초래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증한 것이다. 그들은 구원이 될 그리스도를 가증스럽게 여겨 버렸으므로 멸망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그들의 멸망이 될 가증스런 것을 그들에게 보내신 것이다(단 9:27).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과 헌물 드리기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군대들은 그들에게 합당치 않은 곳에 즉 예루살렘 성 안팎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예루살렘 성은 이방 군대들이 접근하거나 접근하려 노력하는 것도 합당치 못하였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교회가 애석하게 여기는 말씀이 예레미야 애가 1장 10절에 나타나 있으니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죄가 이런 불행을 초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영광은 떠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침입하여 금지된 곳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예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예언의 말씀들을 우선적으로 서로 비교하면서 연구함으로써 가장 잘 깨달을 수 있으며 마침내는 예언된 사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 로마군들이 유대 나라에 침입해 왔을 때에 아무 곳에도 안전할 수 없었으므로 나라를 버리고 가능한 한 도망쳐야 하였던 것이다. 그들과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은 헛수고이고 희생만 더할 뿐이다. 그들은 대항하기에 너무나 힘든 적수들이다. 숨어도 소용없다. 그들이 찾아내게 될 것이다. 항복해도 소용없다. 원수들이 그들에게 구명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명이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유대땅에서 나와서 산으로 도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첫 번 경고를 받았을 때에 자기의 살 길을 예비해야 되는 것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그 곳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고 적이 침입해 오는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며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재물보다 더 귀한 자기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밭에 있는 자는" 그 곳에서 적의 접근을 살피고 그 곳에서 도피하여야 하며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한다(16절). 자기의 생명을 구원받은 자는 덤으로 받은 줄 알아야 한다. 비록 그가 아무 재물을 건져내지 못했다 하여도, 그가 가난하게 되었다 해도 생명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3. 그때에는 아이 밴 여인과 젖먹이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큰 고난을 당하게 된다.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17절). 그런 여인들은 낯선 땅으로 피난하기가 어렵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동을 민첩하게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젖먹이를 가진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집에 남겨두어야 할지 데리고 떠나야 할지 당황하게 될 것이다.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가볍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피조물의 공허함을 말해 준다. 즉 가장 큰 위로가 때로는 가장 큰 고난의 시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겨울에" 도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마찬가지로 큰 고난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길이 험할 때에, 길로 통행하기가 어려운 때 특히 그들이 산으로 피할 때에 그 고충은 큰 것이다. 여기에 대한 어떤 구제책이 없고 그러한 환난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 우리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거든 환난이 완화되도록 모든 사정들이 질서있게 이루어지도록 바라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일들이 두서없이 혼란에 처해진다면 더욱 사태는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피난을 해야 함은 불행이지만 "겨울에" 피난을 해야함은 더욱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4. 유대 나라 전체를 통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파멸과 황폐함이 나타나게 된다.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9절).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환난은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다. 유대인 전체에 대한 대 학살을 위협하는 환난인 것이다. 대단히 잔혹하게 그들은 서로를 삼켰고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다 삼켜 버리려 했다. 그러므로 이 환난이 좀 더 계속됐다면 "살아 남을 아무 육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노 중에 하나님께서 자비를 기억하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끝장을 내시기 전에 당신이 노하심을 멈추신 것이다. 교회나 나라에 있어서 그 파멸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특별한 사람들은 그 중에서 그들의 생명을 덤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2)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20절). 그들 중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그들 중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두려워하는 소수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중한 것이다. 남은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며(사 10:22),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그들을 다 멸하시지 않으신다는(사 65:8) 약속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들은 마땅히 성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이 "밤낮으로 간청하므로" 그들의 간구 하심을 응답되고야 마는 것이다(눅 8:17).
Ⅱ. 이 대답을 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지시하시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1.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 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포위되면 원수들이 곧 퇴진할 것이라는 말이나 그들과 곧 타협을 볼 것이라는 말에 속지 말고 지체없이 피하라는 것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4절).
2. 그들은 그들의 영혼의 안전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잇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세상 끝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믿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짓 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미혹케" 하는 것이다(22절). 복음의 왕국이 건설될 때에 사탄은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서 자기의 온 힘을 다하여 그리고 갖은 계교를 다하여 방해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의 성실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사람들의 위선을 찾아내기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거역한 사람들을 혼미케 하려고 사탄의 이런 방해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들이 그들을 전한다. 또한 그 거짓 그리스도들은 그리스도가 되지 않으려는 척하면서 선지자들로 등장하여 칭찬되어질 일들을 예언하며 표적을 보이고 기사를 말할 것이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던" 것이다(살후 2:7). 그리고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며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아주 그럴 듯하게 가장하고 그들은 아주 부지런히 날뛰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진취적이고 근면한 종교인들을 포섭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는 아무 것도 유효하지 못하고 다만 변치 않고 확실한 하나님을 근거로 서 있는 것뿐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자기의 것인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질 때에 보존되는 것이다(딤후 2:18, 19).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택함을 받은 자들은 유혹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롬 11:7). 그러나 이 일을 고려하여 제자들은 그들이 신임하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시었다. "너희는 삼가라"(23절).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택함을 입은 자들임을 아시었고 그들이 미혹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아시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삼가라"고 당부하시었다. 인내에 대한 확신과 배교에 대한 주의 이 두 가지는 서로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의하라고 부탁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내할 것에 대한 의심에서 그렇지 않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내가 확실하다 해도 그렇다고 그들이 주의를 필요치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특유한 방법으로 사용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겠지만 그들도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들에게 미리 말하여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미리 경고를 받고 미리 무장을 하게 하려함이다. 주께서 그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게 미리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리 그 거짓된 선지자들을 식별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며 그들의 예언에 속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그러한 가장한 선지자들의 말에 속지 않게 하는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주의 재림 예언 (마가복음 13:24-27)
이 성경 귀절들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에 대하여 가르친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끝에 대해서 듣고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세상이 존속할 때까지는 존속해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 성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그들이 물은 바 있는 "세상 끝날,"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 세상 심판의 날은 환난이 있은 후에 나타나고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님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유대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사는 사람들은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지 않을 것이니 주의하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그 때에 그렇게 임하시지 않고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오신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천체의 변동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 예언하심. 전연 변동이 없을 것 같은 광대한 천체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24절) 그것은 왜냐하면 인자의 영광이 광채에 천체의 빛이 약해지기 때문이다(사 24:23). 태초부터 제 위치를 지키며 규칙적인 운행을 해 오던 하늘의 별들이 추풍낙엽같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권능들, 천체들, 별들이 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2. 세상의 심판에 대한 사명을 띠고 그리스도께서 눈으로 볼 수 있게 재림하신다는 것이다(26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오시는 그 사명에 적합하도록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것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이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게" 될 것이다(계 1:7).
3. 택하신 자들을 사방으로부터 자기에게 모으신다.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살전 4:17). 그 택하신 자들은 세상의 한 편에서 다른 편에까지 사방으로부터 그에게 모여들며 아무도 이 성회에 낙오자가 없도록 하시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먼 지상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지만 아주 분명하고 아주 민첩하고 아주 쉽게 이동하며 잘못 들림 받는 자도 없는 것이다. 신실한 이스라엘인들 즉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안전하게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날을 예비하라 (마가복음 13:28-37)
우리는 여기에서 이 예언적 설교에 대한 적응을 대하게 된다. 올바른 태도로 앞을 내다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Ⅰ.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속히 임할 것을 말씀하심.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28절). 자연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 적합한 차서와 시간에 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29절). 유대 나라가 전쟁으로 혼란에 빠지고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에 이하여 미혹을 받고 로마군들의 불쾌한 행동이 이스라엘인들에게 가해지며 특히 그들이 주님으로 인해 박해를 가하게 되면 그들이 주님이 죽음을 당할 때에 그를 처형하려고 그들이 일어 선 것처럼 그 일을 반복하고 있으며 그들의 범죄의 그릇을 채우게 된다. 그 때에 저들은 멸망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악한 날이 오기 전에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그 후세들이 그 날을 볼 것을 대비하여 교훈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뒤에 남긴 이런 가르침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30절). 이 멸망의 날이 임박했고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일은 확실한 것이다.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단 9:27). 그리스도께서 이런 일들을 단순히 저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 일들은 하나님의 예정된 목적이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니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1절). 이런 예언들의 한 마디도 이루어지지 않을 말씀은 없는 것이다.
Ⅱ. 세상 끝 날에 대해서 어느 때 그날이 임하느냐고 묻지 말아야한다. 왜냐하면 그날은 물어보기에 합당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32절)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알 바가 아니다. 그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은 어떤 성경 말씀에 의해서 지상의 사람들에게나 하늘의 천사들에게나 계시되지 않았다. 천사들은 그날에 수종들도록 준비하라고 때에 알맞는 경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에게는 나팔소리로 경고하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인간들이나 천사들은 오늘날 그들에게 맡겨진 알맞은 일을 섬기도록 그날에 대한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전연 알려 주시지 않으시고 비밀로 하시는 것이다.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라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모르실 만한 것이 있을까? 우리는 실로 성경에서 "어린양이 인을 떼시기까지 두루마리 책이 인봉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인을 떼시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모르신단 말인가? 기독교 초기에는 이 본문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도 되시기 때문에 모르시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도 모르시는 것이 있다함은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으로서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실 수 있었다는 말과 같이 어리석은 소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많은 정통적인 교부들도 이것을 인정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 견해와는 다릴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일에 관해서 더 말씀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처세 방법에서 그렇게 말씀하시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서 초대 교회의 어느 분은 말하기를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다"하였다. 대주교 틸로츤(Tillotson)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구세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의 인성과 교통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은 때로는 어떤 것에 대해 모르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지혜가 자랐다고 하였다(눅 2:52). 만일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의 신성과 연합한 미덕으로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그의 지혜가 자랐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 하였다. 라이트푸트(Lightfoot)박사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메시야로 부르신 것처럼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러한 메시야는 아버지의 종으로서(사 42:1) 아버지에 의해서 보내지고 임명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자주 아버지의 뜻과 명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순종하였으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요 5:19).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시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다(계 1: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우수함과 인성과 신성간의 인격적인 연합으로부터 비롯된 그의 완전함을 구분하리라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성령의 기름부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인성으로부터는 그의 무한한 인격의 위엄과 모든 죄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낳게 하였고 그의 신성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되어질 미래사에 대한 예지를 얻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의 교회에 계시된 것을 인성과 신성의 연합에서가 아니고 성령의 계시로부터 된 것으로 인정하시기를 원하신다. 그 성령의 계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아직 그 때를 모르고 다만 아버지께서만 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틸로츤 주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성자와 성령을 구별하는 뜻이 아니라 신성의 근원이 되신 "성부"를 말하는 것이다.
Ⅲ. 우리가 행해야 할 두 가지 의무는 "깨어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하기 위하여 그 시간을 비밀로 하시는 것이다(33절). "주의하라." 주님의 강림에 대한 신앙을 방해하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생각을 복잡케 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주의하라고 하신다. "깨어 있으라." 주님의 강림에 대비하여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 언제 오시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리고 주께서 어느 시에 오실 지 모르므로 매일 준비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 우리의 주인이 멀리 떠나가시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맡겨 주시었는데 우리는 그 책임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34절).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우리의 주님께서 당신의 집을 지상에 남겨두고 당신의 종들에게 사무를 맡기고 오랜 기간을 멀리 떠나 계시는 것인데 어떤 종들에게는 사무를 살필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어떤 종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군이 되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큰 권세를 받은 자들이 가장 귀한 사무를 맡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일을 맡겨 주신 그 사람들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주인께서 떠나는 마지막 마당에서 "문지기에게 깨어있으라 명한"것이다. 그가 돌아올 때에 그에게 문을 열어 드리도록 항상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주인께서 멀리 계시는 동안에도 문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는데 그것은 주인의 친구들과 종들에게는 문을 열어 주어야 하지만 도적이나 강도들에게는 문을 열어 주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 주님 예수께서 멀리 하늘로 올리어 가실 때에 당신이 계시지 않는 동안에 그들이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당신이 돌아오실 때에 당신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기를 기대하면서 당신의 종들에게 모든 일들을 수행하도록 맡기신 것이다. 모든 자들이 일하도록 임명을 받았고 어떤 자들에게는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다.
2. 우리는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면서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35-37).
(1) 우리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오시되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간" 집주인이 돌아와 그의 종들과 그들이 사무에 대해서 회계하기 위함과 같이 오시는 것이다.
(2)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하는 고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깨어 준비하게 하시려고 대단히 현명하게 돌아오시는 시간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늘 개어 기다리는 것이다. "집주인이" 저녁 때 올는지, 저녁 아홉시에 올는지, 밤중에 올는지, 닭 울 때에 올는지, 새벽3시에 올는지 새벽 6시에 올는지 모르는 것이다(35절).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나 우리의 죽을 때에 주님께 모든 자들이 받는 심판에 대해서 적응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 인생은 다른 시대 사람들에게 비한다면 밤과 같다. 깊은 밤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밤 몇 시경에 주님이 오실는지 모르는 것이다. 젊은 날에 주님이 찾아오실는지 중년에 오실는지 노년에 오실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자 마자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고 죽음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우리의 큰 관심은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그가 우리를 잠들어 있는 것을 보시거나, 우리의 경계를 소홀히 하고 스스로 안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보시거나, 우리의 일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안일과 태만에 스스로 빠져 방종하고 있는 것을 보시거나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을 보시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지 않으신다 하거나 나는 주님을 만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4) 주님께서 오실 때에 갑작스럽게 오시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잠자는 자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재림은 실로 큰 놀람과 두려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오심은 그들에게 마치 한밤중에 도적이 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
(5)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의무는 각성하고 깨어 근신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절). 주님께서 몇 몇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들은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을 통해 이 말씀을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고 주님은 거듭해서 당신의 재림을 대비하고 기대되어 주님이 오실 때에 흠 없고 점 없이 평화 가운데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