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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경찰(Ordnungspolizei)은 1936년부터 1946년까지(나치 독일 패망 후 질서유지에 투입됨) 존재한 나치 독일의 공식적인 경찰조직이자 준군사조직이었다. '치안경찰'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며 치안 질서 유지, 순찰, 시위 진압 등 경찰 무력을 담당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는 질서경찰이 아닌 형사경찰이 맡았다.
질서경찰은 특히 전쟁 말기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SS의 일부로 취급받았지만, 독자적인 계급을 사용하고[7] 다른 제복을 입는 등의 차이점은 있었다. 다만 최종적으로 1944년 8월을 힘러의 명령으로 모든 질서경찰 간부들이 무장친위대 계급도 같이 받게 되면서 두 조직간의 차이점은 사실상 소멸한다.
이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질서경찰의 제복은 국방군이나 무장친위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정모 주름테(정모 중앙 부분)에 특유의 독수리 배지가 들어가며,•[9] 크라운(정모 위쪽 부풀어 오른 부분)에도 국가수리가 들어가지 않고 대신 독일 제국의 흑백적 3색기 코케이드를 패용한다.[10] 친위대처럼 정모 오른쪽 가슴 부분에 국가수리 문장이 없으며, (사진이 잘려서 나와있지 않지만) 왼쪽 팔에 부착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질서경찰은 주로 초록색 띠가 들어간 계급장을 패용하고 초록색 제복을 입었으며, 심지어는 기에도 초록색이 들어갈 정도로 질서경찰은 색에 있어 초록색을 자주 사용했다. 그래서 질서경찰은 Grüne Polizei(초록 경찰)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렸다.[11]
3. 전쟁범죄[편집]
자세한 내용은 독일 친위대의 전쟁범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반적인 의미의 경찰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나치 범죄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고, 전쟁범죄에 참여한 친위대 간부들이 질서경찰 계급을 보유했기에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질서경찰은 중장년층에 대한 소집 권한이 있어 이들을 주병력 공급원으로 하여 500명 규모의 예비경찰대대 101개를 만들었는데, 이 중 13개 대대는 폴란드 총독령, 7개 대대는 독일에게 합병된 폴란드 지역, 10개 대대는 점령된 체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보호령, 6개 대대는 노르웨이, 4개 대대는 네덜란드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해당지역에서 유대인 학살을 담당한다.
경찰예비대대의 장교들은 나치 당원들로 군 출신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을 보고 선발 후 장교 교육을 받았으며, 하사관들은 직업경찰 또는 전쟁 이전부터 경찰대대에 근무한 자 중에서 선발되었고, 병들은 대체로 전쟁 이후 소집된 중장년층이었다. 1개 대대는 3개 중대, 중대는 3개 소대, 소대는 4개 분대로 구성되었다. 하사관과 병 중에서도 나치 당원 또는 친위대 출신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담당한 지역에서 유대인을 찾아내어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노동수용소로 보내고, 노인, 병자, 여자, 어린이 등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가장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것은 9예비경찰대대로 무려 18만 7600명을 학살하였으며, 320경찰대대[12]는 6만 6700명 학살, 45예비경찰대대는 6만 5000명 학살, 3예비경찰대대는 6만 2500명을 학살하였다. 61예비경찰대대의 경우 1100명을 학살하고 30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강제이송했다.
4. 게슈타포의 동의어?[편집]
게슈타포는 일반 경찰이 아닌 비밀경찰이었고 따라서 일반적으로 불리는 명칭인 게슈타포도 번역하면 '비밀국가경찰'이 되며 정식명칭은 친위대(SS) 국가보안본부(Reichssicherheitshauptamt, RSHA) 제4국(Amt. IV)-비밀국가경찰국(Geheimes Staatspolizeiamt, Gestapo)이었다. 그래서 비밀경찰답게 정식명칭도 '제4국'이라는 특정되지 않은 명칭을 사용했다.
그에 비해 질서경찰은 나치 독일의 특성상 사실상 비밀경찰 업무를 어느 정도 도맡기는 했지만 친위대가 아닌 내무부 소속으로서 기본적인 치안 유지나 소방 활동 등 경찰/소방대의 역할을 도맡은 집단이었다는 차이가 있다.[13] 게슈타포들은 신분을 대놓고 노출하는 국장 등 고급 간부나 본부 청사 경비대 등을 제외하면 사복 혹은 위장 신분용 타군 및 타 SS 부대의 군복을 입고 근무했지만, 질서경찰은 수사를 위해 사복 근무하는 형사 정도를 빼면 제복 근무가 원칙이었다.
이 외에도 경찰기구로는 살인, 강도, 조직범죄 등 강력사건 수사 담당인 형사경찰과[14] 국방군 육군, 공군에 편제된 경찰기구인 비밀야전경찰(Geheime Feldpolizei, GFP)이 있었다. 다만 GFP는 소속이 육공군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반 경찰기구보다는 야전헌병 예하 군사경찰 조직이었고, 구성원들도 장교 대우 군무원이었다.
사실 이런 혼돈은 질서경찰이 미디어에 거의 안 나오기 때문에 생긴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질서경찰이 나온 미디어 매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나와도 게슈타포와 합쳐져서 애매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게슈타포는 나치 시대 배경이라면 한 번쯤은 꼭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네 프랑크와 그 가족을 체포한 조직도 질서경찰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안네 프랑크와 그 가족은 보안국(SD)[15]이 체포했고, 보안국은 게슈타포와 같이 친위대 국가보안본부 산하에 있었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게슈타포에 더 가깝다. 보안국이 게슈타포 산하였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게슈타포가 보안국의 하부기관으로 잠시 있었다가 후에 동등기관으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5. 역사[편집]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며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친위대를 이끌던 하인리히 힘러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찰 조직을 탐냈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찰 시스템은 각 주의 내무부 장관의 지휘하에 있었는데 힘러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경찰을 차근 차근 자신의 휘하에 편입하였다. 1933년 3월 9일 뮌헨 경찰청 대리 청장에 임명된 힘러는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삼아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설립하였으며 4월 1일 바이에른주 내무부 장관 대리였던 아돌프 바그너를 뮌헨 경찰청 제4부에서 분리되어 창설된 바이에른 정치 경찰 사령관에 임명했다. 힘러는 자신의 수족이자 보안국(나치 독일) 수장이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바이에른 정치 경찰청장에 임명하였다.
바이에른 정치 경찰 사령관에 부임한 힘러는 뮌헨 경찰 청장직을 돌격대 소속의 아우구스트 슈나이드후버에게 이임했는데 경찰력을 SS 휘하로 편입시키고자했던 힘러와 슈나이드후버는 극렬하게 대립했다. 결국 힘러와 하이드리히는 슈나이드후버가 에른스트 룀과 함께 반역을 꾀한다고 모함했고 결국 슈나이드후버는 장검의 밤의 시작과 동시에 처형되었다.
바이에른에서 자신의 경찰력 장악에 막을 자가 없어진 힘러는 비슷한 시기 헤르만 괴링 휘하에 있던 게슈타포 국장직을 받아냈고 전체 경찰 조직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던 빌헬름 프리크와의 권력 다툼 끝에 승리하여 1936년 6월 17일 내무부 소속 독일 경찰청장을 임명하는 것에 대한 법령(Erlass über die Einsetzung eines Chefs der Deutschen Polizei im Reichsministerium des Innern)을 통해 전체 독일 경찰 조직에 대한 통솔권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내무부 소속 독일 경찰청장 임명법에 따라 경찰 조직들은 내무부 소속이었지만 실질적으로 힘러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지휘권을 장악한 힘러는 기존 경찰을 질서경찰(Ordnungspolizei, OrPo)과 보안경찰(Sicherheitspolizei, SiPo)로 나누었다. 질서경찰은 주로 기존 경찰 조직들로 구성되었고 보안경찰은 형사경찰(Kriminalpolizei, KriPo)과 비밀국가경찰(Geheime Staatspolizei, Gestapo)로 나눠졌다. 형사경찰은 국가 내의 일반범죄를 담당하는 이름 그대로 형사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이었고 2차 대전 발발 후 RSHA로 통합되는 비밀국가경찰, 즉 게슈타포는 주로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찰 조직중 정치 및 방첩 업무를 수행했던 부서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졌다.
1939년 9월 27일, 보안경찰(SiPo)과 그 산하기관들(KriPo, Gestapo)이 행정편의를 위해 친위대(SS)의 방첩조직인 보안국(SD)과 함께 친위대 국가보안본부(RSHA) 산하로 통폐합되었다. 그에 맞추어 보안경찰의 경우 입대를 위해서는 친위대의 입대 기준을 충족하고 친위대에서 정한 교육을 수료한 이후, 친위대의 계급을 수여받았다. 따라서 2차 대전 내내 질서경찰은 독일 내에서 유일하게 친위대에게서 독립된 경찰 기관이었다. 이는 1938년 1월 18일자 힘러의 회람 훈령에 잘 들어나는데 여기서 힘러는 제 6조 1항에 질서경찰과 SS간의 직무 관계에서 경찰 업무가 우선된다고 명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질서경찰이 친위대나 나치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조직이 절대 아니었다. 1933년 2월에 헤르만 괴링에 의해 공포된 법률에 따르면 나치당원 및 산하 당 조직 소속 인원이 질서경찰 지원 시 우선권을 부여받도록 하고 있으며, 얼마 후 쿠르트 달뤼게는 경찰과 당 조직 사이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비밀 명령으로 친위대와 돌격대 대원이 대위 이상의 계급을 가진 경찰관으로 소속이 전환될 시 8~10주에 달하는 세뇌 교육을 강조했다.
1936년 경찰권을 장악한 힘러는 경찰들을 SS 대원들로만 채우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경찰 채용의 기본 조건인 군필 SS대원들에 대해서 힘러는 질서 경찰에 지원할 것을 적극 독려했다.질서경찰에 지원한 자들은 친위대 모병소에 지원서를 제출하여 친위대가 정한 신체 검사 기준을 만족해야만 했다. 기존의 질서경찰 구성원들에게는 당초 과거 나치당의 조직에 가입한 이력이 있거나 친위대에 후원한 경력이 있어야만 친위대에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힘러는 보안경찰이 친위대의 산하에 들어갈 즈음 질서경찰 역시 친위대에 편입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938년 6월 질서경찰은 나이와 키, 그리고 아리아인 혈통 증명 없이도 친위대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40년 루돌프 헤스는 더 이상 질서 경찰 인력들은 SA에 소속되지 않으며 오로지 SS로만 전출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또한 제4SS경찰기갑척탄병사단 출신 병사들은 원칙적으로 '질서경찰 고용 우선 순위'로 분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경찰은 제도적으로만 친위대로부터 독립된 조직일 뿐 실질적으론 친위대에 소속된 것과 다름 없었다.
힘러와 달뤼게는 국가사회주의 이념과 군사적 성향을 결합한 경찰 조직 문화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나치 이념 주입에도 열을 올렸는데, 1935년에는 독일 경찰 전우회(Kameradschaftsbund der deutschen Polizei) 조직이 만들어졌다. 비록 독일 경찰이 군국주의적 성향을 띄긴 했지만 SS처럼 나치 이념을 매개로 한 충성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념 교육에 힘썼으며, 모든 독일 경찰관은 정기적으로 정훈 교육 과정에 참여해야 했는데, 행정경찰(Verwaltungspolizei)[16]과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일반 제복경찰(Schutzpolizei) 역시 각 역할군에 맞는 교육을 받았다.[17] 이는 독일 각지와 점령지에 위치한 경찰 조직에서도 거의 그대로 실시되었다.
6. 패망[편집]
당연하겠지만 이들 또한 게슈타포와 무장친위대처럼 국가 지도자를 잘못 만난 데다 본인들의 전쟁범죄 및 정치 탄압 이력도 만만치 않았기에 이들도 처벌을 면치 못했으며, 전후 기소돼 극형을 받은 인물들도 꽤 된다.
7. 예하 조직[편집]
행정경찰: 말 그대로 질서경찰을 총괄한 조직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질서경찰 조직 전체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또한 이들은 자체적으로 예하에 "건축경찰", "상업경찰" 등의 민간활동을 단속하는 조직을 두고 있었다.
대관구 방위경찰: 대관구(Gau)의 치안담당과 방위를 담당한 조직이었다. 이들은 주요 도시나 규모가 큰 마을에 파견되었다.
지자체 경찰: 대관구 방위경찰보다도 한 단계 아래의 조직이었다. 이들은 주방위경찰이 파견되기에는 규모가 좀 작은 마을에 파견되었으나 간혹 가다가 주방위경찰이 관리할 레벨의 큰 마을에 배치되기도 했다.
수상경찰
교통경찰
소방경찰: 말 그대로 소방관의 역할을 했으며 전근대에는 경찰과 소방이 한 기관에서 겸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습보호경찰
기술긴급구조대
라디오보호경찰
보조경찰
출처
8. 매체에서[편집]
더 크라운에서 사고로 죽은 헤센 대공가의 장례식 행렬을 슈츠슈타펠과 함께 호위하는 역으로 등장한다. 자세히 보면 정복을 입은 고위 간부도 행렬에 끼어 있다.
작전명 발키리에선 실제 역사대로 고위 간부였던 볼프 하인리히 그라프 폰 헬도르프와 휘하 경관 몇이 반 히틀러 세력에 가담한다. 반대로 나치 정권에 충성하는 경관들 또한 롤란트 프라이슬러의 재판을 보조하는 식으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러시아 영화 T-34에선 한 질서경찰 소속 경관이 수용소에서 탈출한 주인공 일행을 보고, 지레 겁먹어 항복한다. 이때 항복의 의미로 준 Kar98k 한 정은 이후 주인공들이 쏠쏠하게 써먹는다.
넷플릭스 다큐 중, 이들을 다룬 작품이 있다. 제목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 잊힌 홀로코스트'다. 예비역으로 질서경찰에 합류한 이들이 아주 평범한 배경에도[18] 어째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는지 조명하고 있다.
2002년작 영화 피아니스트에선 틈만 나면 유대인 게토에 들어와, 게토 내의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을 괴롭히는 역할로 나온다.
콜 오브 듀티: 뱅가드에선 질서경찰 소속의 전투원 하나가, 나치 측 주요 인물인 야닉 리히터 대위를 호위한다. 해당 전투원은 야닉이 호주군 소속의 루카스 이병을 심문하던 중, 루카스가 몰래 숨긴 단검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죽고 만다.
대체역사물인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선 슈츠슈타펠 산하의 블랙가드에 흡수되었단 설정이나, 흔적은 남겼는지 작중 등장하는 베를린 경찰차에 이들의 문장이 떡하니 그려져 있다. 차량 도색 또한 이들의 상징인 선녹색이다.
마찬가지로 대체역사물인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슈츠슈타펠 및 게슈타포의 부속품으로 전락, 제복마저 친위대의 그것이 되었다. 그래도 구색은 건져서 주인공이 경찰 소속으로 활동하며, 원 역사에서 질서경찰을 이끌었던 아르투어 네베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 1943년 민스크에서 무장 질서경찰 병력들을 사열 중인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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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식(Common Sense / Common Knowledge상식,판단력을 구하고자 올린것,사건속에서 판단력을 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