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 이야기/ 전 성훈
라오스 여행을 떠나는 날, 아들 녀석이 수락산 공항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약속 장소인 M16에 가니 여행사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어딘가로 연락을 하더니 모임 장소가 M16에서 정반대쪽인 A16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살기 힘들다는 우리나라 경제 현실이 먼 옛이야기인 듯 강변의 수많은 모래알처럼 출국 대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항공사 카운터에서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 티켓을 발급받고 짐을 수화물로 부치고 나서 출국심사장을 통과하였다.
t'way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공항 전철을 타고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출국장으로 갔다. Gate28에서 한 동안 대기하다가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전 좌석이 승객으로 꽉 차서 빈자리가 없었다. 오후 8시 30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공항계류장이 혼잡하여 10여 분 가량 대기하다가 무사히 이륙하였다. 기내 식사 시간에 승무원이 삼각 김밥을 나누어주었는데 컵라면을 끊여먹겠다고 스튜어디스에게 뜨거운 물을 달라는 승객들이 있었다. 그런 광경을 처음 본 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들으니 장거리 항로에서는 컵라면을 제공하는 항공사도 있다고 한다.
<< 비엔티안>> 약 5시간 30분 정도 비행한 끝에 현지시각 오전 0시 30분 경 도착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공항은 우리나라와 시차가 2시간이다. 짐을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입국수속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군복같은 제복을 입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보다 간단하게 입국 심사를 하였다. 우리 일행 16명은 현지 한국인 가이드 안내로 호텔로 이동하여 투숙하였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잘 들지 않아서 선잠을 잤다. 아침에 TV를 틀어보니 흑백 전쟁영화가 나왔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월남전 같았다.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컬러 방송인데 우리나라보다 선명도가 훨씬 떨어졌다. ‘하나의 사회, 하나의 공동체’라는 영어자막이 보였다. 라오족이 65% 이상 차지하고 여러 소수민족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주의국가인 라오스도 종족 사이에 상당한 사회적 진통과 갈등이 있는 것 같았다.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하는 국내선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호텔근처 사원을 구경하였다. 라오스에는 인도의 힌두교 신화와 불교가 혼합된 문화유산이 있어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여 대부분 공동묘지 납골묘에 모신다. 그러나 기부나 시주를 많이 한 사람은 사원 안의 납골묘에 안치되기도 한다. 경제력에 따라 죽은 자의 누울 자리가 정해지는 것은 우리나라와 다름이 없다.
<<루앙프라방>>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루앙프라방 지역은 197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왕국이었다. 첫 방문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왕궁으로 프랑스정부가 라오스를 점령하면서 지어 준 서양식 건물인데 볼거리가 별로 없다. 이곳 사람들은 옛 왕들을 존경한다. 때문에 박물관에 입장할 때 반드시 신발과 모자, 선글라스를 벗어야하며 사진도 찍을 수 없다.
교통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에서 자동차들은 서로 양보하며 달린다. 경적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날로 과격해지는 우리 운전문화와 비교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연 환경에 순응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다음 날 이른 새벽, 닭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꼬꼬댁하는지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아침 공양을 하러 탁발을 나서는 스님들 모습을 보려고 호텔을 나섰다. 소승불교인 라오스에서는 남자는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절에 들어가 스님 생활을 한다. 스님에게 보시하는 전통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많은 외국인들을 불러들인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고 서양인과 중국인의 모습도 상당히 눈에 띤다. 맨발의 탁발승들은 얻은 음식과 과일, 과자들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준다. 탁발승 옆을 따라가는 꼬마들의 바구니나 종이박스에 탁발 음식을 듬뿍 넣어준다. 나눔의 미학? 아니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를 실천하는 것일까? 탁발한 음식은 그날 오전까지 먹고 오후부터 다음 날 탁발 때 까지는 금식을 한다. 불교신자들인 이 곳 사람들은 우기에는 물론 요즈음처럼 쌀쌀한 건기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음식 공양을 한다. 스님의 가사(옷) 색깔은 황토색이다. 황토색은 인도의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민’들의 전통 옷 색상으로 부처님께서 낮은 자세로 불교를 전해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이 옷을 차용했다고 전해진다.
<<방비엥>> 탁발스님 행렬과 새벽시장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가 조촐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라오스 최고의 관광지 방비엥으로 가려고 짐을 꾸렸다. 15인승 승합차 두 대에 8명씩 나누어 타고 해발 1500-2000m의 우리나라 ‘한계령’ 같은 고갯길을 4시간 정도 달려서 ‘방비엥’에 도착하였다. 라오스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대로 우리나라 남북한 면적보다 조금 넓다.
자동차 이동 중 잠시 쉴 때 보이는 것은 하늘과 산뿐이었다. 산기슭에서 죽을 끊이고 있는 가족이 보였다. 가이드가 ‘라오스 극빈층은 옛날 우리나라 화전민들처럼 깊은 산 속에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집에서 맨 땅에 나뭇잎을 깔고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틀을 머문 방비엥 리조트 시설은 형편없었다. 특히 화장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행 중 어떤 이는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다른 방으로 옮겼는데 그 곳도 마찬가지였다. 커피포트, 헤어드라이어도 없고 목욕탕 타월은 침대에 큰 목욕타월 한 장 씩 뿐이었다. 오랜 시간 자동차를 탄 탓에 피로가 밀려와서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방안에 가득하였다. 날씨는 덥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서 푹푹 찌는 더위는 아니었다. 리조트 옆에 그다지 깊지 않은 하천이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수영을 하거나 카약을 타거나 꼬리가 긴 보트를 타고 있었다. 하천과 주변의 리조트들 그리고 수많은 산과 석양의 노을이 아주 잘 어울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같았다. ‘꽃보다 청춘’이라는 우리나라 TV프로에서 ‘방비엥’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셋째 날은 간이트럭에 의자만 설치한 자동차를 타고 비포장 길을 신나게 달렸다. 흙먼지가 엄청나게 일어나서 입을 꼭 다물고 얼굴을 숙이고 있었지만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전에 아담한 공원과 코끼리 동굴을 구경하고 하천으로 이동하여 아내와 한 조를 이루어 카약을 타고 노를 젓는 물놀이를 하였다. 물놀이가 끝나고 라오스전통 소주에 야채와 돼지고기를 번갈아 꼽아서 구운 꼬치구이를 먹었는데 향이 진하고 그 맛이 독특하였다. 오후에는 튜브를 타고 허리 깊이 정도의 물속 동굴 탐험놀이를 한 다음에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블루라군’지역으로 옮겨가서 짚라인(도르래를 타고 하강하는 코스)을 탔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아내가 익숙해지더니 매우 즐거워하였다. 도르래를 타고 내려오는 아내의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여행 마지막 날,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돌아가 귀국하는 날이다. 방비엥에서 비엔티안까지 거리는 약 150km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렸다. 라오스의 1번 국도인데 비포장과 포장도로가 뒤섞여있어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먼저 찾은 곳은 몽족 마을이다. 몽족은 월남전 당시 미군에 협조한 것이 원죄가 되어서 라오스 정부로 부터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마을에는 아낙네들과 아이들만 보이고 성인남자들은 돈을 벌려고 나가고 없다. (주로 고무나무 수액을 채취하거나 산나물 채취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데 먹을 것을 더 받기 위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따라다니는 맨발의 사람들. 그 모습을 보니 옛날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군들이 나누어주는 껌과 초콜릿을 받으려고 미군을 따라다녔던 슬픈 내 자화상이 떠올랐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은 소금마을로 바다가 없는 라오스에서 암염을 만드는 곳이다. 이곳 아이들은 정확한 발음으로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한다. 아내가 준비해 간 학용품을 나누어주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아이들이 두 손으로 멋지게 포즈를 취한다. 그 모습이 아주 귀엽다. 비엔티안에 도착하여 독립기념문 광장과 사찰을 구경하였다. 정부재정이 어려워 경찰공무원에게 몇 개월 분 월급을 주지 못하는 바람에 경찰들이 한국인 가이드를 검문하면서, (라오스 법률상 외국인의 관광가이드 행위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뜯는 행위가 만연되고 있다.
우리 일행 중에는 혼자 떨어져 돌아다녀서 가이드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낮부터 술과 안주를 손에 들고 술 마실 자리를 찾아다니는 남자,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신다고 식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참으로 대단하신 부인, 처남 매부지간에 함께 와서 누나와 남동생이 크게 언쟁을 하여 옆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 여행 일정이나 자동차와 음식에 대하여 투덜거리는 사람 등 60대 이상의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정말 다양했다. 모처럼 해외여행을 나와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과 볼썽사나운 이미지만 보여준 그들의 행태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얻은 값비싼 반면교사(反面敎師)이다.
여행기간 내내 왼쪽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인간이 숨 쉬며 살고 있는 지구 어디서나 사람들은 그 곳 자연환경에 맞추어서 그들만의 방식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미지의 다른 세상의 자연과 그 고장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여행은 늘 허전한 내 마음의 양식이자 욕망에 찌들어 허허로운 내 영혼의 쉼터이다. (2015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