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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안나푸르나 BC,푼힐,룸비니 트레킹 12일 [카트만두관광-인천공항](終).
◈ 트레킹코스.
나야폴(1070m)-비레탄티(1025m.입산신고)-수다메(1340m)-힐레(1475m)-틸게퉁가(1540m.1박)-울레리(1960m.)-반단티(2300m.점심)-
나야탄티(2460m)-고라파니(2750m.2박)-푼힐전망대일출(3200m)-고라파니-데우랄리(2999m)-반단티(2520m.점심)-타다파니(2590m)-
출레(2245m 3박)-구르중(2050m .학교있음 )-촘롱(2170m.점심)-시누와(2340m.4박)-밤부(2335m)-도반(2540m 점심)-히말라야호텔(2840m.)-
힌쿠동굴(3100m)-데우랄리(3230m.5박)-MBC(마챠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점심)-ABC(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4130m)-MBC(6박)-
ABC-MBC-히말라야호텔(2840m.점심)-도반(2540m)-밤브(2335m.7박)-시누와(2340m)-촘롱(2170m.점심)-지누단다(1750m.온천.8박)-
뉴브리지(1590m)-SIWAI-샤울리바자르(1170m.점심)-비레탄디(1025m)-나야폴(1070m)-포카라(820m.9박)-사랑코트일출-카트만두-룸비니-
카트만두(11박)-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더르바르광장(Durbar Square)-인천공항.
◈ 일시 : 2010. 10. 22(금).12일째.
◈ 날씨 : 날은 좋은데 아래로 내려오니 기온이 높아 한여름 날씨같이 덥다.
◈ 대원 : 7명(오세춘님.최평칠님.김형식님.정영옥님.이선우님과 우리부부).
◈ 지도 :
카트만두 시내 지도.
◈ 일정정리.
12일 2010.10.22(금).12일째.
07 : 20. 숙소를 출발하여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으로 감.
07 : 40~08 : 20.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라마불교사원.
08 : 40~09 : 30. 더르바르광장(Durbar Square),쿠마리사원.
09 : 40~10 : 50. 카멜거리.점심.
10 : 50~13 : 25. 트리뷰반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수속.
13 : 25~23 : 15. 카트만두를 떠나 인천공항도착.시차 한국이 3시간 15분 빠름.약 6시간 반정도걸림.
<운행개요>.
7시 20분 네팔자이언트숙소를 출발하여 카트만두시내가 잘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는
수와얌부나트 라마불교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을 둘러보고
더르바르광장(Durbar Square)과 살아있는 여신이 사는 쿠마리(Kumari)사원을 둘러보고
걸어서 재래시장과 타멜거리를 둘러보고 타멜거리에 있는 경복궁시당에서 네팔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고
트리뷰반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수속을 하고 1시 25분 인천행 대한항공으로 인천공항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사진으로 보는 운행일지>.
<수와얌부나트 라마불교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카트만두시내.
길은 좁고 매연과 먼지가 많고 소음이 시끄러워 목이 아프다.
라마불교 사원인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원숭이를 조심해야한다.먹을것일줄알고 채가면 낭패다.
네팔의 세계문화유산 8곳중 한 곳이다.
① 카트만두 덜발광장 ② 박타푸르 덜발광장 ③ 파탄 덜발광장 ④ 퍼슈퍼티나트 사원 ⑤ 보우더나트 사원
⑥ 스와얌부나트 사원 ⑦ 창구나라연 사원 ⑧ 룸비니.
사원인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카트만두(Kathmandu)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를 가면 볼록한 언덕위에 흰 스투파(탑,塔)가 보인다.
이 곳이 바로 네팔 불교의 가장 오래된(약 2000여년)사원이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 문화유산 스와얌부나트이다.
스와얌부나트 또는 "스스로 존재함(Self-existent)"라고 불리는 이 사원은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불교 사원으로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네팔불교인 라마교의 성지로, 카트만두의 유래와 관련이 깊다.
전설에 의하면 카트만두 분지는 원래 하나의 커다란 산정호수였다.
그런데 만주시리 즉 문수보살이 그 호수를 여행하던 도중 호수 한 가운데서 밝은 빛을 방사하며 피어오르는 연꽃을 보고
이 연꽃을 참배하기 위해 '지혜의 칼'로 산허리를 자르고 물을 퍼낸 뒤 육지로 일궈냈다는 것이다.
그때 맨 처음 수면 위로 빛을 내뿜으며 떠오른 곳이 바로 카트만두의 성지 스와얌부나트이다.
이 사원으로 오르는 길은 300개가 넘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는데다가 기념품,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 원숭이들로 복잡하다.
실제로 이 사원은 외국인에게는 스와얌부나트라는 이름보다 몽키 템플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할 정도로 야생 원숭이가 많이 살고 있다.
이 스투파의 구성은 흰색 반구체 기단위에 눈과 코가 그려진 금으로 도금된 사면체가 놓여있고 다시 그 위에 원추형의 덮개가 놓여있다.
도금된 사면체에 그려진 그림은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데 양미간에 있는 '제 3의 눈'은
인간의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표시한 것이고,
물음표처럼 보이는 것은 네팔 숫자 1이란 숫자를 형상화 시켜 놓은 것이다.
이것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결국 하나로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면체위에는 도금된 13층의 원추형 탑이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13단계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도금된 종이 있다.
불교인들은 스투파를 한바퀴 돌면 불경을 1천 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 믿고있어 스투파 주변은 참배객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스투파 옆에는 기도용 휠 마니차가 놓여 있어서 순례온 불교인이나 티벳인들이 이를 돌리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카트만두 시내의 전경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라마불교 사원인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라마불교 사원인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횟칠을 하고있다.
금강저 [金剛杵, vajra]
금강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발사라(跋闍羅)·벌절라(伐折羅)·발왈라(跋曰羅) 등으로 음역하고, 금강지저(金剛智杵)·견혜저(堅慧杵) 등으로도 의역된다.
금강저(金剛杵, Vajra)는 원래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인드라)의 무기이다.
금강저의 원어는 바즈라(Vajra)로 번개나 벼락을 의미한다. 제석천은 불법에 귀의한 후에 부처님을 수호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 되어
부처님의 뒤에서 금강저를 들고 호위한다. 또한 제석천뿐만 아니라 금강역사도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열반경>에는 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금강저로 모든 악마를 티끌같이 쳐부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 나라의 신중(神衆)탱화에서는 동진(童眞)보살이 반드시 금강저를 들고 있다.
금강저는 또한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능히 마음속에 깃든 어리석은 망상들을 파멸시키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주로 밀교에서 금강저를 특히 중요시하여 의식과 수행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 금강저는 금강령과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천태종의 종기에도 이 금강저가 나타나 있습니다.
금강저는 금. 은. 동. 철 등으로 만들어지며 불교의 금속공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형태는 손잡이 양쪽이 뾰족한 끗을 가졌다. 모양에 따라 뾰족한 끗이 하나인 것은 독고(獨孤),
2.3.4.5.9 갈래로 갈라진 것은 3고저. 4고저. 5고저. 9고저라 한다.
최초에는 그 형태가 무기형으로 뾰족하고 예리했으나 불구로 사용되면서 끝의 가락이 모아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들중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금강저를 만드는 법과 효능에 대해선 불설다라니집경(佛說陀羅尼集經) 12권. K-308(11-1063).
T-901(18-785) 의 불설발절라공능법상품(佛說跋折 功能法相品)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금강저로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길이 22㎝의 고려시대 청동5고금강저가 가장 오래된 금강저로 소장돼 있으며
일반 사찰에서는 조선 시대의 금강저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경. 변상 도에는 가장자리를 금강저문(金剛杵紋)으로 장엄한 예가 자주 나타나며,
현존 신중 탱화에서는 대부분 금강저를 볼 수 있다.
금강저(金剛杵)의 ‘저(杵)’라는 말은 원래 인도에서 무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금강저란 보리심(菩堤心)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수행할 때 이것을 쥐고 있으면
손에 무게를 주어 묵중하고 엄정한 기분이 감돌아 온갖 잡념과 방해물을 굴복시킴으로써 깨끗한 불성의 세계로 인도된다고 한다.
금강저는 여러나라, 여러 문화에서 존중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되어있는 . 고려시대의 금강저(金剛杵) 다.
금강저(金剛杵)가 표시 되어있는 우리나라의 천태종기다.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
명나라때의 금강저(金剛杵).
오른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왼손엔 금강령을 들고있는 관세음보살.
Liao Dynasty(916-1125).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10세기 금강저(金剛杵).
일본 헤이안시대 (12세기)의; 5고저.
한국 고려시대 금강저(金剛杵) (918-1392).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과 금강저(金剛杵).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에서 건너다 본 구왕궁.
수와얌부나트사원(Swayambbunath Temple.원숭이사원)에서 본 카트만두시내모습.
욕심쟁이 원숭이.
어린자식들이 그렇게 달라고 졸라대도 혼자만 아이스크림을 먹고있다.
카스터먼덮사원(Kasthamandap).
한 나무로 만든사원이라고하며 카트만두란 지명이 이 사원 이름에서 유래됐단다.
흰두교는 만물이 다 신이라서 신의 종류가 엄청많다. 이신은 재물신이란다.
네팔은 국민85%가 흰두교인인데 인구는 2300만명에 신은 3000만이 있단다.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안의 노점상들.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안.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안.
이신은 새들의 신인 고르드 (Gaurd Statue) 로 교통의 신이란다.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소와 비둘기천국이다.지붕위에도 ...
앞의 석주뒤 큰건물에 춘화도인 미투나[mithuna] 가 부조돼 있다.
시바신의 화신인 파괴의신 보이럭이란다.
색은 검은색,흰색,하늘색등이있는데 검은색신을 가장무서워한다나...
이런 사람들은 인도에서 온 사두라는데 거지나 다름없단다.
파슈파티나트 화장장에 있던 사두들과 같은 사람들같다.
정교한 조각품들.
<원숭이신>.얼굴은 항상 천으로가려있단다.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은 고대 네팔 왕궁이 이곳에 있어 허누만 도카 궁전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허누만은 원숭이 신을 의미하는데 궁전의 중앙 입구 오른편에 붉은 칠을 한 원숭이 석상이 있다.
원숭이 신은 더르바르 광장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많은 힌두교인이 찾고 있다.
정교한 조각품들.
세워서 받힌 긴 조각품들 발밑에 일종의 춘화도인 미투나[mithuna]들이 건물을 뺑둘러있다.
정교한 부조 [浮彫, relief ]
춘화도인 미투나[mithuna].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성적 결합을 표현한 인도의 조각 또는 회화로
원래는단순히 손을 잡거나 어깨걸이를 하고 있는 남녀를 나란히 표현함으로써 생산적인 결합을 상징한 데서 시작하였다.
춘화도인 미투나[mithuna].
시대가 흐름에 따라 각양각색의 자태에 의한 남녀의 합환(合歡)이 대담하고도 노골적으로 표현되었다.
미투나의 주요 작품은 인도 카주라호의 미투나(10∼11세기경), 코나라크의 미투나(13세기경) 등이다
문란한 왕궁의 단면이라는설도 있지만
흰두교에서 벼락의신이 꾸마리같은 소녀신이라
이런 낯뜨거운 장면을 보면 벼락의 신이 얼굴을 외면하고 비켜가 피뢰침용으로 만들었다는설도 있다.
쿠마리(Kumari)사원앞의 신왕궁.
<더르바르광장(Durbar Square), 쿠마리(Kumari)사원>.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
네팔의 옛 왕궁인 하누만도카 앞에 있는 광장으로서,덜발 광장(Durbar Square) 또는 바산타풀, 하누만도카라고 부르며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뜻이다.
1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18세기의 샤(Shah) 왕조, 19세기의 라마교 통치자들이 완성하였다.
카트만두 계곡에 있는 3개의 왕궁광장 중 하나로서(나머지 둘은 파탄(PATAN), 박타푸르(BHAKTAPUR)왕궁광장),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하누만도카 등 여러 왕궁건물 및 역사 깊은 사원, 아름다운 내원(內院), 우아한 탑 등이 있다.
광장 남쪽 끝에 처녀신인 쿠마리의 화신(化神)이 살고 있는 쿠마리사원, 500년 전 우물공사 중에 발견된 칼리버이라브상 등이 있다.
살아있는 여신이 사는 쿠마리(Kumari)사원[House of the Living Goddess]정면모습.
정문앞에선 쿠마리의 사진을 판다.
쿠마리.
쿠마리가 사는 3층 가운데창.
매일 10시 10분과 오후 4시 10분에 15초동안 얼굴을 보인단다.
타멜(Thamel)거리.
서울의 이태원에 비유되는 곳이다. 여행자의 숙소, 레스토랑, 등산 장비점, 기념품점, pc방, 여행사 등이 밀집해 있다.
타멜(Thamel)거리.
더르바르광장 [Durbar Square]에서 보던 나무로 지은집들이 많이 보인다.
타멜(Thamel)거리.
편의시설이 많아 편리하기는 하지만 차량과 사람이 많아 시끄럽고 공기가 탁하다
타멜(Thamel)거리.
물가는 한국보다 더 비싸고 짝퉁천국이다.장비는 한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낫다 .
<11회에 걸친 네팔 트레킹기를 모두 마칩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