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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想 의 都市 던펌린
Reminiscences of Dunfermline
1998 Mar 14th
영국 Scotland 에서 근무 중
金 나그네가 (Written by k o kim)
2010 12 08일 에 추가로 쓰는 한 말씀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글이란 써놓고 뉘어 놓으면 쓸모 없으니 서로 공유하고 싶은 게 욕심이라 하겠다.
역마살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몇 년 몇 십 년 동안을 해외로 국내로 돌아다니면서 겪은 애기들을 간간히 올리오니…….
글 쓰는 사람들 축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저 올리오니 그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띄엄띄엄 읽어 주셔도.
AA
Dunfermline
제가(kokim) 근무하고 있는 던펌린(Dunfermline) 이라는 곳은 UK(United Kingdom-대영제국) 중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Forth강 위의 철교를 지나 북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Scotland의 Fife주(州)의 주도이다. 고대켈트(kelt)족 게일릭 언어로 던펌린 (Dunfermline) 이란 “바위 언덕과 강어귀”가 있다는 말로 미루어, 고대 BC 8세기부터 켈트족이 거주했음을 뜻한다고 한다. 켈트족은 한국의 제주도 방언 같은 게일릭 언어를쓴다. 알아듣기 힘든 억양 과 모르는 지방언어 때문에 회의시간에는 죽을 맛이었었다.
던펌린 (Dunfermline)은, 고대영국 통일 시 에딘버러(Edinburgh) 라는 신도시로 수도(AD 1437년 정도)를 바꾸기 전까지 약 700 여 년 동안 고대 스코틀랜드 의 수도 이었으나, 우리나라의 잊혀진 부여, 백제 시대의 공주 모양 몇 군데의 왕궁고적과 역사만으로 옛날을 회상하는 정도 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부심 만 은 오늘날에도 대단하다.
그런데 조용하던 시내에 중국인 음식점에서 몇 명만 보던 시내에 100여명의 동양인(korean)이 나타나서 소동이었다. 그것도 낙후지역에 투자를 한다고 반도체 공장을 지어준다 하니 엄지가 매일 올라가는 날들이었으나... 초라하게도, 끝이 패전이었다. 한국의 IMF 와 그룹의 재정과 형제의 분란 때문에……슬프게도 미완 이었다.
흔히들 기록 문화, 문화 보존의 상징 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나라에서 조차 11 세기 이전의 기록 역사는 거의 없다는 것으로 (분실 이유?) 판명되고, 유적이 많지 않은 것은 이들이 유목 생활하의 왕정과 왕궁을 가졌었기 때문에 고대의 수도 유적을 책에서 조차 보기 어려움 이다. 근래에 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영국내의 성 과 왕궁 등은 근세기에 축성된 석축 건물 들이다.
Scotland 및 Dunfermline 의 왕정 역사는 세계적 문호라는 섹스피어의 소설에 등장하는 맥베스(Macbeth)가 죽인 던컨 왕의 아들인 King Malcom III (1024년) 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왕비 퀸 마가렛 Queen Margeret(나중에 1250 년 Saint 로 諡聖/시성 st. 받음) 으로 부터 시작된다.
옛 던펌린의 회상은 현재 시내의 도로명 과 마을이름에서도 가능 하다. 어느 민족이 점령했는지에 따라서 도로명이 바뀌고 유래되고 동네 이름과 사람이름이 달라졌었다. 지금은 성의 담축의 잔흔(ruin)만이 남아 있는 왕궁 터 와 몇 번 의 파괴와 증개축을 해오면서 버티어오고 있는 Abbey (Church, Minster, Monastery, Convent, Cathedral- 교회당이나 왕권과 종교가 바뀔 때 마다 이름을 달리 했음)등에서도 충분하다. 이 Abbey에는 King Malcom III 와 전쟁의 영웅 King Robert The Bruce 를 포함한 8명의 왕 과 5명의 왕비 그리고 8명의 왕자와 공주들과 많은 유지들이 건물 내부 와 외부에 묻혀 있다,
우리 한국인은 이승 과 저승을 엄격히 구분하여 탄생과 죽음의 절차 와 예식도 분리한다. 반면에 영국 런던의 West Minster Abbey (교회) 에도 많은 왕들과 유명 인사들이 묻혀있으며, 이곳에서 왕들의 대관식을 거행하며 결혼식 또한 치러지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다름이다. 영국각지에 있는 교회의 내부 바닥은 무덤이다.
던펌린 시내의 모나스터리 Monastery Street에 위치한 Abbot House (수도원 원장집)는 1100년 이후 부터 개, 보수 증축을 해오면서 많은 내전과 종교적 파괴 속에서도 견뎌온 석축 및 토담 건물로 근래 까지 주거했던 옛 사람들을 포함 많은 이들의 유물과 사연들을 안고 있다. 노란 색깔의 건물로써 일 년에 이틀을 제외하고 유료 개방 하여 노객들의 친절한 쉼터가 된 곳 이다, 번역이 미비해도 한글로 복사된 안내서가 구비 되어 있어, 한국인에게 이곳에 대해 이해를 쉽게 해준다,
BB
Whisky
IMF 시대(?) 이전의 한국이 영국술 위스키 (Scotch Whisky/ 맑은 물이라는 뜻) 의 소비국 1위 이었었다 했는데 이 술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한다,
증류(Distilled) 방법과 재료(Fruit과실 / Grain곡류)에 따라서 생산된 술의 종류와 이름이 달리 붙여진다. 해서 Whisky 라 함은 Barley(밀, 보리)를 증류한 술을 말하며, Malt Whisky 라 함은 곡류(Grain)를 Malt(麥芽맥아-엿기름)를 시킬 때 화산 땅에서 캐낸 Peat(泥炭니탄)를 태워서 독특한 연기를 쐬서 만든 향기 있는 술을 말한다. Single Malt는 한 가지 곡물만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Multy는 잡곡으로 만든 술이다. 해서 위스키에서 탄내가 나는 것은 석탄 훈제 냄새 때문이다. 그리고 Brandy/ Branding 이라 함은 곡물 아닌 과일 로 만든 것을 말하며, 또 다른 의미는 술의 섞음을 말함이다.
물론 포도Wine 도 일찍이 있어서 1202년 에는 근처의 세인트 앤드류 (Saint Andrew/ 전 세계 골프의 고향) 라는 마을의 William 이라는 Bishop(주교)은 수도승(Monk)들이 저녁 식사 후 에 마실 Wine을 충분히 공급치 않는다고 그들의 할당량을 제한한 기록도 보인다. 술 취한 수도승이 있어 벌을 내린 기록도 있다.
현재의 이곳 동네 나의 담당 의사의 얘기는 영국의 암 환자 중 많은 환자가 Whisky 음주 에서 기인 한다고 하니, 애주가들은 새겨들을 만한 깊은 말인 듯싶다. 하루에 20분씩 16명만 진찰하는 영국의 의사 아저씨들 응급 외에는 한 달 전 예약을 하여 진찰 받을수 있고 넉달 정도 전에 수술 예약을 해야 하는 의료 보험제도 이다. 치아외는 모두 무료인 나라이다.
CC
Pub /음주 문화 /청소년 문화
전 유럽에서도 그렇지만 금요일 과 토요일 밤의 존재를 확실히 확인 할 수 있는 곳이 영국이다. 리단위 시골 마을 마다 에는 오락기구 및 Karaoke 도 준비된 대중을 위한 조그만 Pub과 레스토랑/ 식당이 있다. 그리고 읍면동 단위에는 젊은이를 위한 Discotheque 이 추가로 있어 주로 금, 토요일에 만 열어 대성황을 이룬다. 시골에서 엄마 아빠들이 운전 하여 몇십리 의 읍 면 동 단위의 거리에서 시내로 안내 해준다. 성인 디스코텍에 못가는 소녀들이 화장으로 옷치장으로 잔뜩 엄마 어른 흉내를 내면서 성인 디스코텍을 서성이면 경찰은 이 무리들을 몰아 내느 라고 서로 숨바꼭질 하는 풍경이 매주 벌어진다. 유럽의 청소년들의 신체가 어른이라 구분이 어려운 상태라 경찰도 헤깔려 한다.
폭주/과음보다 무서운 잔술에 취한 휘청거리는 알콜릭 주민들의 뒷모습에서 선진국의 허영을 발견할 수 가 있어 알코올물질이 정신을 지배함을 슬퍼함이다,
간간히 자유사랑 중매 매체의 산실로 등장하는 Pub과 Discotheque 에서 그들은 Booking 후 목적적/행선지 (Sex)의 시발점을 만든다. 남녀와 나이에 관계없이(성년 후) 공허한 사람 / 짝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공통 이해점(Sex)을 찾아 뭉치고 헤어짐을 연속한다. 성인용 디스코텍 파티 시에는 짖궂은 벌거숭이(Naked)도 깜작 등장한다. 꽤나 개방적이다.
하룻밤 사랑(Free sex)의 부산물(?)인 어린이들은 편 가르기를 해서 진 쪽이 양육비를 부담하도록 법은 말하고 있다. 해서 이러한 이혼한/갈라선 집의 어린이들은 양쪽을 이해하는데/오가는 데에 익숙해져 있고 눈물 없이 미워하지 않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편모 편부하의 아픔은 평생 마음의 치유가 되지 않는다 하니 이혼을 부추기는 이웃과 가족들은 그 업을 대신 할 것 같으니 함부로 이혼을 재촉하기보다 다시 이해하고 대화방법을 찾아서 뭉쳐야 함이다.
성년이 되자마자 20세 정도에 바라지 않는 자식 을 갖는 급했던(?) 준법의 성년들이 있다. 그리고 동거와 결혼(식을 올린 경우)을 구분하는 이곳에는, 동거녀도 미스라 불리기를 원하는 영어의 모순 속에 우리의 유교적 사고력은 개방적 편의성에 묻히어지고 만다. 준법을 지키자.
DD
Andrew Carnegie 앤드류 카네기
우리는 출. 퇴근길에 언제나 카네기 홀을 지난다. 왜? 카네기는 미국사람인데 카네기 홀이 미국에 있는데 지점을 낸 걸까? 의아심 의 발길은 카네기 생지/생가에 이르면 곧내 해소된다.
1491년부터 시작된 Dunfermline의 양털 능직천(Damask) 과 1825 년에 도입된 Jacquard (프랑스인)직조기에서 생산된 직조천은 영국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로 수출 되어 이름을 떨친 유서 깊은 품목이었으나, 1985년 생산성과 경제성을 이유로 중단한 채 지금은 개조된 아파트 만 남아 있다. 이 직조천의 수출은 카네기 부모의 미국이민의 계기가 되었단다.
지금도 카네기 생가의 1층 바닥에는 1800년도에 카네기 부모가 사용하던(현재도 사용 중) 직조기/방직기(Loom)가 있다.
1848년 14살에 미국에 이민 온 후 전보배달을 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하던 때의 도서관(주인)을 못 잊어서 몇몇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도서관을 지어주었고, 또 의료시설, 교육시설, 음악당을 지어서 헌납했다. 한국에만 카네기와 연관이 없나보다. 사업을 할 수 있는 나이 (60세)에 모든 주식(철강 회사) 을 팔아서 84세에 죽을 때까지 전 세계 카네기재단에 헌납한 멋쟁이 아저씨!! 더러는 미국에서는 사후에 정치적으로 혹평을 받은 아저씨다.
그리고 어려서 친척이 운영하던 집 옆의 던펌린에 있는 공원(Pittencrieff) 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30 세의 나이에 그 공원을 사서 모든 시설(공원 기능으로서는 세계 제일 이라 함) 을 만들어서 던펌린 시민에게 헌납했던 Andrew Carnegie 아저씨!!!
주민들은 동상을 만들어서 미국의 그에게 봉정 했고 그는 지금도 공원에서 책과 옷자락을 손에 들고서 세상을 이야기 한다. 도서관과 낭만과 노력을 그리고 물지게 때문 에 매일 지각했던 학창시절의 고향―던펌린을 사랑했고, 세계 제일의 갑부로 만들어준 미국을 사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100년 전에 지어 헌납 된 카네기 레저센터 에는 Turkish bath(터키탕) 와 Aeratone bath(공기탕기계) 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그는 영원한 멋쟁이 아저씨 로 남아 있다.
EE
축구 와 골프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축구 시합 시간 에는 휴전이 될 정도로 축구가 영국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스포츠이다. 또한 이 축구 붐에 일조 하는 것이 잔디 시설의 전용 구장 그리고 자발적인 연고지 인들의 응원, 그리고 박진감 있게 돌아가는 시합 내용 모두가 맞추어진 3 박자이다. 이중에서 골프장이든 축구장 이든 이 요술의 잔디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안고있다.
축구이야기
유럽의 축구는 우리와는 반대로 7월 부터 시작해서 다음해 5월에 모든 경기의 결승전이 치루 어 지고, 두 달은 휴가 기간이다. 홈팀 원정팀으로 구분 된 응원단의 절대적인 응원가 (초청가, 응원가, 야유가, 광란가, 골 축하가, 애석가 등)는 하나의 광란적 대합창이다. 누구든 한번이라도 경기장 에 가게 되면, 200-400년 동안 내려오는 이 함성 에서 큰 마력 속의 일원임을 느끼게 하는 무서운 힘을 발한다. 눈비에 아랑곳없이 게임에 임하고, 열심히 뛰어 다니는 선수들, 응원객들 모두가 축구만을 위해 사는듯하다. 던펌린에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프로축구팀 Dunfermline Athletic FC 가 있고, 1970년대에 한국으로 친선 원정 오던 던디 유나이티이드 축구팀도 옆 동네에 건재하다. 이들은 매년 경기 결과에 따라서 1부 12팀에 남든지 2부로 격하 되든지 이고, 2부가 되어도 애정과 관람객수는 변하지 아니 한단다.
몇 백 km 의 원정 경기에도 팬들은 전세 버스로, 기차로, 자가용으로 이동을 하면서 토요일을 소비(14 파운드)한다 또한 경기 후 응원 객 들의 또 다른 거리에서의 응원은 그대로 장관이다. 해서 이런 천연적인 도움이 없는 한국 축구의 현주소는 놀랄 만하고 칭찬 받을 만 하다고 생각되어 지기에 비난과 불평 보다 지원과 사랑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여겨진다..
김칫국을 마시던 사연 하나를 소개 하련다. 어느 날 자재 기기 납품 협력사에서 접대를 한다고 했다. 몇 몇 이 공식적으로 보고하고서 모여 보니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의 축구장에서 레인저스/ Rangers 와 하는 경기장이었다. 시간이 되니 접대사 직원이 가져온 다발로 묶어진 ticket을 받고 보니 한 50여장 이 되는 듯 하여 걱정이 생겼다. 구장이 멀기도 하지만 이 많은 티켓대로 1년내 구경 하려면 벅찬데... 누구주어야 하나??? 매표소 앞에서 몇 번 페이지거을 뜯어 내세요 하여 시키는대로 내고서 쇠창살을 통과 하여 입장하였다. 경기장 꼭대기 정도에 나의 티켓에 있는 좌석 번호 이었는데 좌석을 자세히 보니 접대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른곳을 보니 개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 시즌 티켓을 사면 지정좌석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경기당일 매표소 앞에서 티켓 번호를 부르는 것은 암표 방지이고, 쇠창살을 통과하는 것은 훌리건 행동을 방지 하기위함 이고 나가는 길이 쇠로된 50미터 길이 자동차 주차장 까지 이어진 것을 패싸움 하지 못하게 원정팀 보호 차원 이었다. 경기를 보느라고 내려다보니 급경사 좌석 이라 어질어질 할 정도에서 보고 있었다, 굉장한 함성 상대방 응원단에 야유 와 노래는 대단 했다. 휴식 중 내려가니 토스트와 차 한 잔을 내주었고, 경기가 끝나니 다시 식당에서 뷔페 음식을 내주고 아까 나누어 주었던 테켓 뭉치를 업체 직원이 다시 수거 해가는 것으로 김칫국을 토해야 했다.
일찍이 영국은 부정 부패 없는 접대법을 만들어서 서로간의 상업적 예의를 다했었다.
골프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스포츠 이야기는, 기록에 의하면 1561년에 스코틀랜드의 왕 James VI는 골프를 무척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현재는 Golf Course 가 8Km 내에 3-4 개 있을 정도의 나라이다.
우리 동료 직원들도 물 만난 고기모양 매주 토요일 마다 세계 골프 발상지 Golf course 세인트 앤드류에서 근처에서. 한국 돈 1만원으로 18홀을 마치고 빵 한조각 스프에 낙을 즐겼다. 하숙집에 돌아와서는 고스톱 한판 때리거나, 동네 에 있는 인도어(Range-이것도 필드에다가)에 가서 골프 연습 하는 것이 휴일을 소화 하는 방법이었다.
농약 오염 없이도 관리가 가능한 잔디의 위력, Summer, Winter Season 일 년 내내 개장하는 골프의 나라이다. 근처에 있는 Saint Andrews의 8 개 Link Course 는 골프의 본 고장답게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부 터 많은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음이다.
골프 김칫국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매주 1만원으로 즐기던 8인 멤버는 이번에는 바로 옆 동네에 있는 전 세계 유명 골프인 이 모이는곳, 우즈가 와서 PGA를 경기를 하는 골프장에서 치려 하니 세인트 앤드류 골프장 바로 옆에 있는 링크드 골프장에서 핸디 즉 90타 내를 친다/쳤다는 자격증명(certification)을 받아오면 이 골프장에서 칠 수 있다 하여서 일부동료는 가능 하였지만 모두가 아니 되기에 포기한 김칫국 사연이다.
FF
이솝의 우화 와 영국의 Gypsy
우리가 어려서 “Fables of Aesope(이솝우화)” 는 읽고 들어서 더러 알고 있다. 이 그리스 우화를 영어로 번역(1540) 한 사람은 이곳 던펌린 출생의 중세기 최고의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Robert Herryson 라한다.
그의 업적은 왕정사를 보좌한 사람으로 또는 소급된 역사를 작성한 사람으로 또는 시인으로 높이 평가 되어 지고 있다. 이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사람들이 있다. 이곳 에서 우리가 먼 길 을 가다 보면 Gypsy 무리를 볼 수 가 있다한다. 본래 옛날 이집트 에서 동유럽을 거쳐서 왔다는 Gypsy 들은 무학(無學)을 무기 로 하여 난장/묘기도 부리고 장사도 한다. 가끔은 남의 것을 슬쩍(?) 하기 도 하는 재주도 갖고 있는 이들은 오늘도 스코트 랜드의 전역을 옛날의 마차 대신 밴을 타고 다니면서 고단한 낭만을 노래한단다. Gypsy! Gypsy! Gypsy!
GG
눈과 비와 바람 그리고 구름과 햇님
우리가 입고 있는 양모(Wool)의 산지는 여러 국가에 걸쳐 있지만, 이 나라 또한 양모의 산지이다. 중동 지역의 양들은 뙤약볕의 상온(50 도)에서도 사막의 풀을 뜯지만 , 이곳의 양들은 비, 바람이건 영하(30도)의 날씨건 낮이건 밤이건 관계없이 부지런히 들판의 풀을 뜯는다. 역경을 이겨내려는 사람들 같이……. 매일 해를 볼수 없다가 해가 나기에 해가 보인다 라고 소리를 치니 옆에 있던 여직원이 내 손목을 잡아서 내리면서 쉿! 조용히 하란다, 소리치면 구름이 시샘하여 다시 햇님을 가린단다. 음산한 날씨 꾸무레한 기후가 이들의 365일 환경이다.
겨울철 혹은 여름철이라도 태양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적은 나라이기에 , 눈, 비, 바람 속에서도 모든 이들은 일상생활을 영유하는데 숙달 되어 있다. 눈, 비, 바람 속에 우산도 없이 억척스럽게 걸어가는 여인들의 풍습적 모습에서, 그리고 눈 비속에서 아랑곳 하지 않고 생산 능률을 올리는 건설 현장에서 우리는 그들의 저력을 보게 된다. 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ë)의 소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의 실제 고장이 옆 동네이다
어디서 건 쉬지 않고 미소 속에 담소(조크 와 위트)하는 생활에서 결코 큰소리로 싸움 하는 것을 볼 수 없는 나라 차량이건 사람이건 절대적 양보만이 있는 나라 그러나 타인의 잘못은 가차 없이 지적하는 지적 문화를 가진 나라이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의 English 와 서운 했던 점을 지적 을 한다. English 는 그다지 Scotish 를 평하지 않으나, Scotish 는 오늘도 마음의 편 가르기를 한다. 이 나라의 국화인 엉겅퀴(씨슬/ Thistle- 내전에서의 승리상징) 잉글리시와 싸울 때 사용하여 승전을 올린 엉겅퀴의 사연으로 몇 세기의 앙금을 가슴에 담고서 사니 말이다.
나라마다 지방마다의 서러운 사연 있다. 고대 잉글리시 군대가 끊임없이 스코티쉬를 괴롭힐 때 쳐들어오는 잉그리쉬 군대 가 오는 골목에 엉겅퀴를 깔아 놓고서 후퇴 하는 척 매복 작전을 펴다가 잉글리싀 군대가 발에 박힌 엉겅퀴 가시 때문에 앉아서 가시 빼면서 지체할 때에 모두 죽여서 이긴 전쟁사를 기념하면서부터 엉겅퀴(Thistle)를 국화로 지정하게된 슬픈 이야기이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하려 하나 무엇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너무나 많은 양보심을 가진 이들과 결코 서둘지 않고 줄을 서있는 이들 Scottish에게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HH
영국의 과거와 현재 라 함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역사 이전의 석기, 청동기, 철기 즉
1.선사시대(BC 25000—BC 55) 를 지내오다
2.로마군(Julius Caesar) 의 침공 과 철수 (BC 55—BC 54) 후 100여 년 동안 평정을 맞았었다(BC 54—AD 43). 그리고 다시
3. 로마인 (Roman) 의 재정복/거주(AD 43-AD 410)가 있었고 특히 종교 (Cathosricism) 의 전파가 있었던 것이 특징 이고 그들은 다시 재 철수를 했다.
그 후
4. Saxson(북 독일인)의 침입(AD 410) 과
5. Viking(스칸디나비아의 해적) 의 노략질은 계속 되었고 끝내는 정복(AD 870)하여 지배를 하였다. 지배 중 계속되는 내분으로 인해 외부 원군을 요청했었다.
6. Norman(프랑스 북서인) 원군의 승리 후 위대한 정복자 윌리엄 왕으로 시작되는 노르만 왕조(1066-1154)의 지배가 계속 되었다. 그 뒤
7. Medieval(중세기)이라 불리는 시대(1154—1485)를 지내는 과정에 100년간의 장미의 전쟁 등등 내전과 독립 전쟁 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후 내전의 승리자인
8. 튜더(udor) 왕조(1485—1603) 중에 헨리8세의 바티칸(Catholic) 과의 종교 갈등으로 인한 성공회(Protestant)로의 개종 후의 번복되는 종교 문제(Blood Mary) 들도 있지만 해상/ 해군의 발달과 식민지에서의 교역 활성화로 지지, 않는 해를 바라 볼 수 있었다. 그 후 Scotland의 왕 제임스 6 세가 영국의 왕 제임스1세가 되면서
9. 스튜어트(Stuart) 의 왕조(1603-1714)는 시작되고 이중에도 캐톨릭 과 성공회 와 의 갈등으로 야기되는 숱한 전쟁 이야기와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사와 미국 이민사의 시작 등이다. 그리고 다시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시대로 들어서는
10. 조지언(Georgian) 왕조(1714-1901)는 트라팔가(Trafalgar) 와 워터루(Waterloo) 의 전쟁들도 치렀지만, 특히 장원제도 하의 노예 폐지(Abolition of Slavery) 라는 업적도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다시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 라는 여왕을 가진
11. 윈저(Windsor) 왕조(1901—1998-)의 연속 중 세계 1,2차 세계대전도 겪었다. 그리고 의회 제도의 활성화도 있었던 반면에, 노동운동의 후유증 과 영국 경제의 어려움(1977 년 IMF의 도움)등이 있었으나,
12. 대처 수상의 활동적인 대처로 1998년 현재 소생한 채 현재의 영국이 굳건한가 보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지내면서 느끼는 것은, 런던 이라는 도시는 영국에 있지 않고 잉글랜드에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하고, 각 나라(England, Scotland, Wales, Ireland-N 북아일랜드)가 민족적 /감정적(?)으로 굳건하게 따로따로 이 존재함이다. 역사에서 반추하듯이 어느 외세 민족의 지배를 받았느냐에 따라서 성명, 지명, 언어, 감정(?) 등이 달랐고 , 또한 어느 종교가 파급 되어 유지 되었느냐에 따라서 정치 및 건축 기술이 달리 발달 되었고 전쟁이 발발 했었다.
하나의 산물이라면,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는 성공회 교도, 그리고 스코틀랜드에는 장로 기독교 교도가 주를 이루나 켈트족은 어느 나라에서건 주로 Catholic 교도이다. 사람들의 성명을 보면 그들의 선조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름의 철자를 확인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점은 영어권에서 흔히 겪는 일이기에 우리는 한글의 수월한 점을 비교할 수 있음 이다.
II
St. Margaret and King Malcom (세인트 마가렛과 말콤왕)
마가렛의 아버지는. 잉글랜드의 King Edmond Ironside의 아들이었으며, 위대한 정복자 윌리엄 왕이 왕좌를 장악(AD1066)하게 되어 유배자가 된뒤 그의 아버지는 헝가리 고향에서 생을 마쳤다. 난민이 된 그녀의 가족들이 던펌린 에서 난파선 위에서 구조되어 환대를 받고 지내다가, 그 후 상처 당한 홀아비 King Malcom III(47세) 와 Margaret (24세)은 결혼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녀의 헌신(고아들에게 밥을 주고, 거지들에게 옷을 주고, 병자의 발을 씻기우고 등 등) 적인 백성들 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왕 과 백성들을 위해서 금식기도 까지 하게 되어 바람을 피우는 줄 알고 왕의 오해 까지 불러 일으켰으나.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왕과 백성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 이다. 그리고 Malcom 왕이 큰아들과 전투에서 죽게 됨에(1093) 금식 속에 비통해 하다 4일 후 숨졌다는 것이다. 그 후 왕이 된 손자들의 5 년 동안의 노력 끝에 Saint 라는 시성 (諡聖 St.)을 받게(1250) 되었다. 지금도 그녀가 기도하던 읍내 주차장 옆 조그만 동굴은 St, Margaret’s Cave 라하여 성지 순례자들의 발길을 받고 있다.
JJ
영국 / 영국인
관광온 미국인이 Scotland 북쪽의 가게에 들렀다가 영어 불통으로 우유하나 못 먹고 돌아섰다 했다. 우리도 이제는 회의 시간에 익숙 해진 듯하지만,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던 English/ Welsh/ Scots / Irish (단어와 뜻이 서로 다른 것이 많음)의 발음은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었었다. 이제는 어딘가에 묻혀 버렸을 남의 LITTER(휴지통) 통에 들어가 버린 나의 LETTER(편지)는 오늘도 영어와 주인을 원망 하고 있을 것 같다. 좀도둑 마약 자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경찰 아저씨 들이고, 더욱이 경찰서 에서 조차 벨을 눌러야 나오는 조용한 아저씨들이나, 사건 해결에는 기동력, 수사력있는 관록의 세계적 경찰 아저씨들이다.
16 세기에 신대륙 에서 가져 왔다는 감자는 식탁의 주인이고 담배는 여성들의 필수품 이다.
던펌린 시내 중심에 서있는 400 여년 이 된 마을 주민들의 알림 장소 이었으며, 보부상들의 이정표 이었던 Mercat Cross(장대동상)는 오늘도 내일도 역사는 존재한다고 역사의 사통팔달을 Memory 하고 있다.
일부 전 세계의 현대적 건축 공사의 설명서를 만드는 (Engineering) 이 나라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콘크리트 건축물이 배제 된 채 목조와 석축 으로된 삐꺽 거리는 2층 건물을 지어 옛날의 억새풀 초가지붕을 대신한다. 권리와 의무, 자유와 책임이 따르는 것이 영국의 가족 중심의 생활이다 .
실업 수당의 보장, 무료 의료 시설혜택의 보장, 어린이비용(최소 40 파운드/ 월) 의 보장, 이러한 혜택을 이제는 외국인 에게는 1년 전부터 줄여 가는 듯하다.
우리는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배워 왔고 일컬어 왔다. 그러나 자주 실망하고 때때로 칭찬하는 대신에 우리는 모여서 조심스럽게 이런 정의를 가정해 보았다.!? 영국/인 이란 경제 와 돈이 결부 되지 않은 것에는 무척 조심스럽고 예절 있는 신사, 숙녀 들 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 반대의 행동/ 성격 과 결과를 외부인은 맞이해야 한다고...!!!
결코 서둘지 않는 나라, 더디다고 느껴질 정도이나 한번 결정 된 것 은 결코 시행착오적 답습을 하지 않는 모범 답안을 만드는 나라이다.
지독히도 듣고 얘기하고 적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이다. 반면에 지독히도 숙달이 안 된 적는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대한국민이다.
우리와의 공동 작업시 서로의 장 단 점 이 다르고 완급이 달라서 문제도 있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더러는 경험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박력과 추진력이 대견스럽한다.
조금은 빈곤해 보일 정도의 청교도적 생활의 소유자들, 과거에 어려움을 많이 겪은 나라, 절약하여 여행을 다니는 가난하지 않은 나라 청빈 낙도국이다.
급진을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많은 위험을 안아야 하는 반도체 산업 같은 사업을 미루어 왔던 나라이다. 그러나 오늘도 국회의사당에는 수상 토니 블레어의 연설에 야당적군도 여당아군도 모두다 영국인임을 자랑한 채 웃음과 야유를 뒤섞는다.
KK
B & B (아침만주는 숙박업소 )
Van(레져 휴가차) 이라는 놈은 발달은 영국에서 해서 사용되어지는 것은 넓은 미국 땅 위에서이다. 노년의 미국 연금보호부부 들은 Van(레져자가용) 생활을 즐기며 세상을 노래한다.
유럽 또한, 영국 또한, Scotland 의 북부 땅 위 또한 Van 의 행렬이 휴일을 메운다.
여관이라는 개념보다 깨끗이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B & B (비앤비/ Breakfast & Bed)라는 뉘앙스가 좀 더 좋을 듯하나 나그네의 여정에는 청,장년을 가릴 것 없는 고독 이라는 외로움 이라는 사치스러운 단어들이 빈 시간들을 헤집고 들어온다.
B & B 의 겨울 밤, 긴 북 유럽의 밤의 나그네의 공허함은 오늘도 이어진다. 이야기 좋아 하는 스코티쉬 아주머니의 노래도 도움이 아니 되련다
LL.
인연
처음 런던에 출장차 가서 묵었던 곳이 지사 사무실이 있는 햄머스미스(Hammer smith) 지역이다. 그러다가 휴일이 되면 바빠서 못 갔지만 몇 번 피카디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광장에서 증명사진을 박은 것이 1981년 2월 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던펌린 근무 동료 하숙생 6명 모두 모여서 년말과 신년에 걸쳐서 자동차로 영국 일주를 할 때 1998년 12월 30여년 만에 다시 같은 장소 런던의 중심 피카디리에서 다시 증명사진을 박았었다.
1981년 런던에서 특급 열차를 서해 유럽을 바라보면서 10시간 타고서 에딘버러에서 갈아타고서 처음 스코틀랜드 북쪽 석유도시 과학 교육도시 아버딘(Aberdeen)의 친구를 찾아 추운 땅을 방문하였었다. 해안 바닷가 집은 2Km 마다 있는데 잔디 축구장은 그사이 사이에 있던 부러운 풍경과 해안가에 자주 보이던 포대 진지와 레이더가 인상적이었었다.
3시에 해 뜨고 8시에 해지는 세상을 보았었다. 이때 처음으로 무역을 하는 러시아 선원들을 보았었다. 껌을 잔뜩 사서 걸어메고 가던 소련 선원도 보았다. 껌장사를 한단다. 북한사람과 공산주의 국가사람들은 얼굴에 뿔이 난줄 알고 살던 시대 이었다. 친구 미스터 잉글스(Ingls) 가족과는 카타르, 싱가포르, 말레이 다시 스코틀랜드에서 긴 인연이었다. 점잖으신 잉글스 아버님을 뵙고 져 3차례나 먼 길 여행을 가서 식구들을 찾았었다. 잉글의 모친, 부인 루실라, 딸내미 쉴라, 사위 데이비드, 그리고 방문했던 애버딘의 그램피언(Grampian) TV방송국은 인연의 장소였다.
MM
별남 과 다름
하숙을하는 하숙인들은 별 물건이 필요하지 아니하나 가족 모두가 살림 하는 동료직원들은 토요일 장을 충분히 보아야 일주일을 견딘다. 카드보다 현금휴대가 많던 초기에 하루는 직원 부인이 돈 50 파운드(1파운드당 2000원)를 계산대에서 내는 동안에 좀 서투른 언어 소통이 겹쳐져서 문제일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점원이 누굴 부르고 또 누가 오고 다시 어디서 이 지폐를 취득 했느냐 하면서 불빛에 대보고 다시 만져보면서 벌인 50파운드 지폐 사건이 있었다. 모두들 20파운드 짜리 지퍠를 처음 본단다. 카드만 쓰거나 큰돈을 소지 하지 않는 국민들 이었다. 미국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비슷하다.
어느 날 한국인 전 직원은 조그만 경찰서 강당으로 모이라 했다 ,40여명이 모여 영국의 교통 법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왜냐 하면 한국인들(하도협력사 직원도 합치면 100여명) 이 오고난후 한국인 상대 충돌 사고가 늘었다는 것이다. 요지는 당신들은 정차중 로터리나 횡단보도에서 전조등으로 깜빡 깜박 거리드니 느닷없이 달려 나와서 우리의 차와 충돌 하곤 한다. 왜들 그러시냐? 모두들 의아 한데 누가 솔로몬 지혜는 아니어도 각국의 습관을 물었다, 아마 영국인은 깜빡 깜박여 주는 것은 너 먼저 가라! 의 양보인데 아마 성질 급한 저급의 한국인은 나 먼저 갈 테니 너 기다리세요! 의 협박 알림 같다고 하니 모두 그러 하다고 동의하여 영국 경찰아저씨로부터 다음부터는 양보 하세요를 주입 받았다.
어느 날 통장 개설을 위해서 Royal scotland bank에 들렀다. 한국의 천정까지 오픈 개방된 은행 창구와는 달리 꽁꽁 막아 놓고서 한명 업무를 보는데 창구 안에 있는 은행 직원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적어서 안 들리고 은행 용어라서 잘 못 알아 듣던 차에 통장 개설해서 집으로 송달 하거나 문자를 메일로 보내는데 2주간 걸린다 했다. 에이 이건 무슨 소리인가 금융의 도시가 있는 영국에서,,,, ?! 중동국가 에서도 이러 하지가 않다고 하자 못 믿겠단다. 더욱이 한국에서 20여분 만에 통장을 개설 받는 것은 거짓말이라 했다. 그러면 증명 해보이란다. 본인들이 영국에 있으니 본인 것 외에 부인 것을 만들어 모레 팩스로 받아서 여기로 가져 오거나, 직접 팩스로 서울에서 보낸다 했다. 다행이 시차가 있어서 다음날 증명 해주었는데도 이것은 가짜란다. 해서 다시 그러면 재한국 영국 대사관 에 전화 걸어서 확인 하세여 해서 전화로 확인 하니 모두 사실이서 알겠다고 하더니 은행 본사에서 모든 회의를 통한 개선하여 3개월 후 1주일로 줄었다고 통보를 해주고 선물로 아주 멋있는 우산을 주어서 지금도 사용함이다. 그 후 또 빈정 거려서 건의하니 3일로 다시 줄었었다. 그리고 한국인의 위상이 무지 하게 올라가던 일화 이었다.
삐걱 거리는 계단을 올라가면 춥디추운 북극의 겨울을 온몸으로 막아야하는 개인 방이 있다, 딱딱 거리면서 소리( steam water hammer sound)내는 라디에타는 밤 10시에 1시간정도 만 돌게 하니 새벽의 추위는 죽을 맛이었다. 비염을 앓던 몇 몇 동료는 괴로운 밤을 맞고 했었다. 한국의 온돌방이 그리운 시절 이다.
이들 영국인들은 매우 검소하다 자동차 경우 수동 이 95% 이고 자동이5%이며 중고차 판매시 자동은 잘 안 팔리는 정도이다, 점심 도시락을 보면 토스트 한쪽, 사과 1/4쪽, 귤 1개, 상추 조금이 이들의 점심이다. 전화국 직원도 문제가 생겨서 부르면 이틀 뒤에 오는 것이 흠이지만 땅위에 신사복 바지를 꿇고서 성실히 깨끗하게 일을 한다. 직업의 소중함을 안다.
이 글을 쓰느라고 토요일 오후에 도서관에 출근을 했었다. 아 자원봉사자 제도가 익숙한 나라이다 물론 다른 유럽국가도 그러 하지만 도서관 관장님 과 사서와 총무 한명을 제외 하고는 무급 자원봉사 중 은퇴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다.
토요일 일요일 과 휴일에는 대중 공중교통에 종사 하는 분들이 모두 쉰다. 단 다만 1/3 운전사만이 근무를 하면 이날만 차표 없이 직접 버스운전기사에게 현금을 내는데 20%가 평일보다 비싸다. 노동자 보호 차원이다 모두 다 쉬어야 한단다. 물론 1980년대의 영국의 노동자 파업은 유명한 일화인데 이걸 대처 수상이 때려잡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모두 평정하고 특히 광산 노조 및 직장을 그 뒤로 폐쇄 한 사연이다. 물론 그 당시 런던 시내도 7시 넘으면 주요소에서도 기름을 넣을 수가 없었다, 오픈한 주유소는 몰매를 맞던 노조파워 시대였다. 다만 마트만 열었다.
마트에는 모두 집을 스스로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자재가 다 있다. DIY 코너도 많다. 작은 꽃조경 도 DIY에서 해결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몇 년 혹은 십여년 집을 짓는다.
호수가 많은 나라라서 시인이 많은 것과 연관이 있는 나라이다.
마트에가면 전세계 와인 종류만 70여가지 있는 나라.. 못먹는 와인 시음하느라 위가 고생을..
흩날라는 눈이 금새 녹는 나라
안개가 많은 나라
구름이 햇님을 많이 가리는 나라
자동차 핸들이 오른쪽에 있어 많이 혼동속 당황하게 하는 나라
언제나 등을 굽이고 여전사처럼 바람을 안고사는 여자의 나라
코트에 두손 넣고 겨울을 나는 나라
노벨상 과학자 세기의 발명가가 많은나라...이다
NN
우리 대한국인 은...
우리는 일정 기간 동안 지내면서 이 나라의 일면을 보고 표현함이니 비평이나 불평이 아닌 문화의 차이 등을 얘기함이다. KOKIM 이 만났던 절친했든 어느 국가 주재 한국 대사의 말씀대로 전 세계인 모두를 사랑하는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말이다.
우리는 허리띠를 줄이지 말고 풀어 놓고 일하자.
고용 창출을 더 갖자.
더 노력하자.
나의 허물을 반추하자.
언제나 아픈 역사는 어제로 흘러가듯 내일을 바라보고 가자.
허나, 나보다도 더 아빠의 회사(HDEC)를 사랑하는
서울의 막내 고슴도치(準鎬)가 더욱 보고 싶어지는 까닭은…….
1998 Mar 14th
영국 Scotland 에서 근무 중
金 나그네가 (Written by k 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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