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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에 담긴 뜻은……
죽비거사 소연 정중화
죽비를 만들면서
내가 죽비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무슨 특별한 연유가 있는 것도 아니
다. 늘 산에 다니면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나무들을 대할 때마다, 저것들을
어떻게 손질하여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취미삼아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하여 만들면서 간절한 염원이 하나 더 곁
들여졌다.
다시 말하면, 이 혼탁한 세속에서 우리 모두가 죽비에서 우러나오는 깨침
의 소리를 듣고 진리 광명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죽비’라면
대나무로 만들어야 하지만 작업상 일반 나무로 만들어 ‘죽비’라 이름하였
다.).
그래서 나는 시간 나는 대로 나무를 구해다가 온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다.
일정한 작업실을 가지고 만드는 것도 아니고, 옥탑방의 처마 밑에서 쭈그리
고 앉아 만드노라면 여간 제약이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비나 눈이 와도 못
하고, 춥거나 더워도 못하였다. 이러다 보니 변변찮은 솜씨(수작업)에 능률
이 오를 리 없다. 그리고 남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열 몇 번의 심혈
을 기울인 작업과정을 거쳐 나온 작품(?)이다. 무엇보다 인두로 글씨를 새
길 때는 그야말로 일심일념一心一念으로 임해야 한다. 만약, 잘 못되면 큰
화상을 입기 때문이다. 특히, 사포질을 할 때는 힘도 들지만 거기서 나오는
나무먼지가 골칫덩어리였다. 옥탑에서 날아온 먼지는 온 집안을 뒤덮었다.
따라서 집사람의 불평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죽비를 만든 지가 어언 여섯해째가 된다. 내가 만든 죽비에는 여러
가지 서체로 부처님의 명호, 경전의 여러 글귀와 고승들의 게송偈頌 등을
새겨, 이 죽비를 가진 사람이 대할 때마다 깨침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1999년 3월 안국동 웅전갤러리에서 ‘죽비전’을 가진 후 나에게는 ‘죽비거
사竹비居士’란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죽비를 만들면서도 나 자신을 깨치게 하지 못하고 아
직도 어둠에 묻혀 있다. 이래서야 죽비를 억만개를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
으랴! 정말 딱한 노릇이다. 하루빨리 어둠에서 깨어나야 할 텐데 말이다. 이
럼에도 불구하고 그뒤 여러 곳에서 죽비전 개최를 제의해 왔으나 사정이 여
의치 않아 응하지 못했다.
죽비에 대하여
나는 종종 내가 만든 죽비를 가지고 다닐 때가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물건에 의아심을 가지고 묻는 이도 있고 그저 보고만 있는 이도
있다. 심지어 스님 들 중에도 무엇이냐고 물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죽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참고로 적어 본다.
죽비란 선가禪家에서 선수행이나 법회 때 수행자를 지도하기 위하여 사
용하는 불구佛具이다. 죽비자竹비子라고도 한다. 40~50cm의 대나무를 3분
의 2쯤 두 쪽으로 갈라 사이를 비게 하고 오른손으로 손잡이 부분을 잡고 갈
라진 부분을 왼손바닥에 부딪쳐서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그 기원은 자세하지 않으나 중국의 선림禪林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법
회 때 수행자 및 대중의 좌(坐:자리에 앉음)ㆍ입(立:일어섬)을 알리고, 공
양의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좌선할 때 입선(入禪:참선하러 방에 들어가는
일)과 방선(放禪:참선을 쉬는 일)의 신호로 사용하기도 한다.
참선중에 조는 수행자에게 경고를 주는 데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때 사용
하는 것은 길이가 2m 정도나 되어 장군죽비라고 부른다. 또, 경책사警策師
가 이것을 가지고서 어깨 부분을 쳐서 소리를 내어 경책하는 데도 쓰인다.
죽비의 표면을 깎아 대나무잎을 새기는 등 장식을 가한 예들도 전하며, 현
재는 나무로 만들어 부처님의 명호, 경전 및 고승들의 게송 등을 새기기도
한다.
다음에는 내가 만든 죽비로 인하여 일어난 일들 중에서 몇가지를 골라서
적어 볼까 한다.
죽비로 맞고 싶다
1999년 3월 10일, 유사 이래 처음 맞는 죽비전시회인 ‘죽비전’이 열리는 날
이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일년 여 동안 애써 만든 것들이 비로소 외부세계로 나
와 모습을 나타냄과 아울러 준엄한 평가를 받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매우 여건이 좋지 않은 때였다. 얼마 전에 벌어진 조계
사에서의 불상사로 불교계가 사회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전시장엔 불교계의 원로분을 비롯하여 많
은 스님들, 그리고 유관기관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기대 이상으
로 빛내 주었다. 정말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지 나 자신 몸둘 바를 몰랐다.
그리고 몇분의 격려사를 겸한 축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설악산 영시
암에 주석하시는 도윤스님의 말씀은 아직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죽비를 대할 때마다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정말 나 자신이 ‘죽비전’에 와서 죽비를 대하기가 매우 부끄럽습니다. 우
리 스님들이 차마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 없는 때에 이런 전시회가 열려 더
욱 낯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마 이 죽비로 우리 스님들이 실컷 두들겨
맞고 정신 좀 차리라는 뜻인가 봅니다. 정말이지 내가 먼저 이 죽비로 실컷
두들겨맞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정말 가슴 찡한 말씀이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 모른다. 우리는 우
리 스스로를 알기 위하여 깨쳐야 한다. 나의 행동은 다 옳고, 남이 하는 행동
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은 항상 갈등과 시비가 판을 친
다. 우리도 도윤스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 스스로 이 죽비로 두들겨맞고 우
리 자신을 깨쳐, 갈등과 시비를 없애고 이해와 애정이 가득한 부처님의 세
계로 함께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따름이다.
‘죽비춤’을 기다리며
‘죽비전’ 때의 일이다.
복잡한 전시장에서 유난히 죽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만져보
며 쥐었다 놓았다 하는 여자분이 있었다. 나는 그 행동이 너무나 진지해 보
이기에 다가가서, 죽비에 대해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
니, 그는 모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는데 ‘죽비창작춤’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으
며, 이곳 인사동에서 발표회도 가졌고, ‘KBS국악한마당’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나무로 만든 죽비는 연습하다 보면 잘 망가져서 오래 쓸 수 없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나무로 만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중이라 하였다.
이렇게 죽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에게 여기에서
‘죽비춤’을 한번 시연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응해 주었다.
전시장의 좁은 공간에서의 시연이었지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죽비로 몸을 치며 그 소리와 함께 팔을 비롯한 몸놀림은 신비에
가까웠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죽비가 필요하면 내
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제공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연락처도 알려 주었
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롯데호텔의 어느 축하연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우
리춤의 권위자인 대가 한 분을 만났다. 여러 이야기 끝에, 내가 취미삼아 죽
비를 만들고 있는데 ‘죽비춤’에 대해서 한번 연구해 보실 생각이 없느냐고
했더니, 기꺼이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뒤 내가 만든 죽비로 예
술의 한 분야가 개척되리라 믿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만든 죽비를 그분에게
전했다.
그 죽비의 한면에는 ‘천하제일성 죽비성天下第一聲竹聲’이라 새기고 다른
한면에는 ‘천하제일무 죽비무天下第一舞竹舞’라고 새겼다.
이러한 염원이 언젠가는 이루어져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로 승화되기 바
라며, 또한 많은 ‘죽비춤’의 연구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죽비 때문에 집 다 망쳤어
전시회 때 한 친구가 오더니, 재질材質이 제일 단단하고 소리가 청명한 것
을 하나 골라 달라고 하여, 단단하면서 가장 잡기 편한 것을 하나 골라 주었
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골라가지만 이 친구는 유난히 재질을 따졌
다. 그래서 나는 아마 이 친구가 집에서 수행 때 사용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
고 있었다.
그뒤 몇 달이 지나 그 친구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만나
자마자 나에게 “죽비 때문에 집 다 망쳤어……”하며, 항의(?) 비슷한 말을
던졌다. 나는 의아해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날 골라간 죽비를 집에
가지고 가서 손바닥에 대고 따악~, 따악~ 치니까, 한집에 사는 손자가 그
걸 보고 그 소리가 신기한지 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할 수 없이 주었다는 것
이다.
그랬더니 그 작은 손바닥에 아무리 쳐도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마룻바닥ㆍ
벽ㆍ문짝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치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러는 통에 죽비
를 친 곳마다 자국이 나고 깨지고 성한 곳이 하나도 없게 되어, 죽비 때문에
집을 다 망쳐 버렸다는 말이었다. 더욱이, 그 친구 손자녀석은 그 죽비를 한
시도 손에서 놓치 않는다는 것이다.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일어나자마자
치고 다니므로, 한번은 죽비를 숨겼더니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대로 치고 다니라고 내버려 둔다고 하였다.
정말 듣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잘 되었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내
가 만든 죽비 때문에 그랬으니 미안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야
이 사람아, 자네 집에 앞으로 크게 깨친 불자 한 사람이 나올 것이야. 그러니
손자더러 더 열심히 치라고 하게. 죽비가 망가지면 내가 또 만들어 줄 테
니……”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우리 집에서는 ‘깨순이’라는 애완용 암캐 한 마리를 키운다. 정말 영리한
개다. ‘깨순이’란 이름은 하루빨리 깨치라는 뜻에서 ‘깨’자를 넣어 주었다.
지금 만 한 살이 조금 지났는데 반복되는 행동의 말들은 제법 알아듣는 편
이다.
간혹 집안에서 깨순이와 같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깨순이는 나에게
귀찮을 정도로 놀아달라고 애를 먹인다.
그래서 나는 깨순이에게 죽비를 치면 어떤 반응이 올까를 생각했다. 처음
에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였고, 더욱 가까이 가져가면 달아나기도 하였다.
이러기를 수없이 반복함에 따라 비로소 자기를 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치게 되었고, 이제는 죽비소리만 나면 다가와 두 발을 곧추세우고 달라붙
어 기쁨을 만끽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깨순이에게도 불성이 있구나! 불성이 없고서야 어찌 이 죽비소리를
듣고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또 깨순이에게 한가지 신기함이 있다. 집사람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집
안에서 기도와 아울러 백팔배를 한다. 그때마다 깨순이는 닫아 놓은 방문
앞에 꼼짝도 않고 앉아, 기도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
래서 집사람은 기도 때마다 우리 깨순이가 내세에는 훌륭한 인간으로 태어
나서 지복을 누릴 것을 염원해 주고 있다.
우리는 깨순이 혼자 두고 집을 비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깨순이에게
잠만 자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때마다 깨순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약간 시무룩해하면서도 초롱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
다. 정말 기특한 깨순이다.
오늘도 우리 깨순이는 내 죽비소리를 들으며 좋아하고 있다. 좋아서 뛰기
도 하고, 가만히 앉아 소리만 듣고 누웠다가 잠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마
음속으로 우리 깨순이에게 불성이 더해감을 느껴본다.
죽비교향곡
내가 만든 죽비는 재질에 따라 소리가 다 다르다. 이 소리가 다 어우러지
면 그야말로 훌륭한 음악적 요소가 될 것이다.
백 사람이 치면 백 소리, 천 사람이 치면 천 소리, 만 사람이 치면 만 소리
가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훌륭한 음악적 요소를 지닌 죽비를 나도 만들고
너도 만들어 하루빨리 시방세계에 널리 퍼뜨려야 한다. 그리하여 삼천리 금
수강산 방방곡곡 집집마다에서 죽비소리가 울려 퍼질 때 이는 바로 훌륭한
‘죽비교향곡’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죽비교향곡’이 울려 퍼져 우리 모두의 가슴에 와 닿을 때, 진정
이 땅에는 너와 내가 없고, 위도 아래도 없고, 성냄도 미움도 없는 불국정토
가 이룩되어, 지복을 한껏 누릴 수 있는 부처님의 세계에 안주하게 될 것이
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죽비교향곡’의 지휘자이신 부처님을 예경함과 아
울러, 온누리 삼라만상에 죽비소리 더욱 드높여 울려 퍼지게 함으로써, 더
욱 성스럽고 훌륭한 ‘죽비교향곡’이 되어, 온 인류 전체가 우러러 감상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염원하는 부처님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 모두 죽비소리 들으며 회향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2002년 가을 염불과 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