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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리봉의 추색
몇 개 남은 잎들은
재잘거린다
가지 끝에서
--- 최영숙, 「나목」중에서
▶ 산행일시 : 2010년 10월 9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6명
▶ 산행시간 : 13시간 22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9.3㎞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랜덤도엽 기준)
00 : 33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30 ~ 05 : 18 - 한계령, 산행시작
07 : 27 - △1,087.2m봉
08 : 33 - 1,228m봉
09 : 08 - 가리봉(加里峰, △1,518.5m)
10 : 09 - 1,312m봉 슬랩 트래버스
10 : 40 - 촛대봉 안부
10 : 52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느아우골
11 : 12 ~ 11 : 38 - 안부, 점심식사
12 : 12 - 삼형제봉(1,232m) 안부
12 : 53 - 1,246m봉
13 : 40 - △1,226.5m봉
15 : 45 - 임도
16 : 07 - 1,044.6m봉
17 : 08 - 다시 1,044.6m봉
18 : 40 - 인제군 기린면 덕적리(德積里) 상덕마을, 산행종료
22 : 58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귀때기청봉
▶ 가리봉(加里峰, △1,518.5m)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국도로 느릿느릿 간 한계령 도착시간 03시 30분. 한계령휴게소는 장
날을 방불케 한다. 주차장은 입추 여지없이 만차여서 갓길에 긴 주차행렬이 이어져있고 울긋
불긋 차림한 등산객들로 부산하다. 확실히 가을이다. 다 어둠 속 설악산을 오른다. 1시간쯤
지나자 썰물 빠지듯 그 많던 차량도 등산객도 빠져나갔다.
우리는 어찌할까? 04시 38분. 잠시 숙의하고 행동 개시한다. 철조망 느슨한 틈으로 백두대간
과 가리봉 능선이 만나는 △1,003.6m봉을 더듬어 오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무례한 짓. 차로
한계령 고갯마루 넘어 필례약수와 현리 가는 길로 이동한다. 차안은 등화관제, 아예 소등한
다. 점봉산 들머리에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 차가 서 있다. 무심한 척하며 지나친다.
그 공단 차가 우리 차 속도에 맞춰 뒤따라온다. 백두대간 길 점봉산을 오를 수 있는 사면을 두
루 경계하려는 것이리라고 짐작한다. △1,003.6m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785m봉 끝자락
을 돌 때 공단 차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속히 산속으로 잠입한다.
헤드램프는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일제히 숲속 땅바닥에 고정한다. 가파른 사면의 잡목
숲 헤치느라고도 긴다.
옅은 지능선 붙들자하니 암릉이 막는다. 가은 님 척후 보내 동정을 살핀다. 장갑 벗어 맨손으
로 암사면 매만진다. 양손바닥 밀착하여 힘껏 끌어당긴다. 돌파한다. 이윽고 능선. △962.7m
봉 넘은 지점이다. 한계령이 바로 아래다. 공단직원에게 들킬라 헤드램프 소등하고 발소리 말
소리 숨소리조차 삼간다. 어둠 속 더듬거리며 나아간다. 주변 지형지물이 이내 눈에 익는다.
날이 부쩍부쩍 샌다. 고개 들 때마다 다른 세상이다. 한계령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건너편
귀때기청봉이 그 웅자(雄姿)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어 설악산 서북주능에 매달린 상투바위
를 위시한 무수한 지능선들이 너도나도 존재를 과시하기 바쁘다. 누군가 저기가 상투바위골
이고 저기는 장군바위골이고 저기는 대승폭포 무릉도원 한계고성 등등 가리키는데 나로서는
도시 분별하기 힘들다.
점봉산은 동해에서 해일로 밀려드는 운해에 위태롭게 자맥질한다. 거친 파고가 한편으로는
장려하다. 눈 돌려 등로 살피려니 눈부신 그 잔상으로 어질어질하다. 간밤에 비 내렸다. 풀숲
이 흠뻑 젖었다. 축축한 산죽지대를 지난다. 길 뚜렷하여 내닫는다. 1,102m봉 넘고 평탄한 숲
길이 이어진다. 풀밭에 삼각점이 보인다. △1,087.2m봉이다. 설악 430, 2007 재설.
전망바위에 다가가 곧추선 1,228m봉을 자세히 본다. 적상(赤裳)으로 화려하게 단장하였지만
그 뒤태는 만추다. 바위 내려 약간 떨어졌다가 오른다. 되게 가파르다. 지나온 능선은 안개에
잠기고 나도 그에 이내 쫓긴다. 1,228m봉 넘고 저 앞 준봉(1,416m봉)을 가리봉 정상으로 여
기고 조금만 더 가자하며 쉬지 않고 간다.
감악산 님이 짊어진 탁주 2병을 헐자고 사정하여 목추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고지가
저긴데 참고 또 참는다. 드디어 1,416m봉에 올라선다. 그러나 가리봉 정상은 멀었다. 거기까
지 도상 760m 아직도 준봉 3좌를 넘어야한다. 등로 살짝 벗어나 전망바위에 들린다. 베일 펄
럭이듯 안개 속 언뜻언뜻 드러나는 가리봉 연봉자락을 오래도록 감상한다. 안개에 묻혀버리
자 자리 떠난다.
슬랩과 리지성 바윗길에는 홀더가 충분하다. 이나마 없다면 퍽 심심할 뻔했다. 안개 속을 간
다. 가리봉 정상. 먼저 오른 등산객들이 있다. 02시 30분에 한계령에서 올랐다고 한다. 물론
헤드램프 켜지 않고서. 가리봉 정상에는 햇볕이 내리쬐지만 가을의 서늘한 기운으로 심신이
상쾌하다.
사방 안개에 가려 전혀 볼 것이 없으므로 둘러앉아 족발 안주하여 정상주로 탁주 분음하며 조
망 트이기를 기다리는데 가리봉 남봉(소가리봉)만이 과감히 안개 벗어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
다. 아연할 뿐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걱봉은 끝내 가렸다. 아쉬운 발길 돌린다.
3. 귀때기청봉 아래 상투바위
4. 설악산 서북릉 사면
5. 안산(鞍山, 1,430m)
6. 가리봉 관문 격인 1,228m봉
7. 지나온 능선, 1,228m봉에서
▶ 주걱봉(1,386m), 삼형제봉(1,232m)
가리봉 정상 내리는 길은 슬랩 가장자리로 가파르지만 발자국 계단이 튼튼하다. 한 걸음 내리
다 주걱봉 바라보고 또 한 걸음 내리다 주걱봉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한참 내린 등로에서 느
닷없는 2등 삼각점을 본다. 설악 23, 2007 재설. 가리봉 정상에 설치해야 할 것을 삼각망 안이
라는 이유로 대충 설치하였나보다.
가리봉 중턱 전망바위에서다. 안개 걷히고 주걱봉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바라볼수록 묘한 모
습이다. 그 앞 촛대봉도 첨봉으로 가경인데 주걱봉의 빼어난 위용에 가려 눈여겨보는 이가 드
물다. 모처럼 오지산행에 한 이빨의 등장을 예감한다. 가브리엘 님이다. 정색하여 나에게 좋
은 사진을 찍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말하기에 신중히 경청하였더니 피사체라는 문자까지
써 가며 거기에 자기가 들어가면 된다나. 딴은 맞다! 포즈 취할 줄도 안다.
촛대봉 전위봉인 1,312m봉 슬랩을 트래버스 한다. 남은 술기운 빌어 용감히 덤빈다. 좁은 테
라스로 엉금엉금 돌아 오르고 지도에도 표시된 밧줄 달린 슬랩을 내린다. 슬랩이 젖어있어 한
층 짜릿한 스릴을 느낀다. 1,312m봉을 완전히 돌아 넘기까지 맘 졸인다. 그다음 아찔하게 깊
은 협곡인 가리골을 오금 저리게 내려다보고 촛대봉 자락을 돈다.
주걱봉 오르는 길은 아무 인적이 없다. 우리들의 숙제다. 다만 한번 우러르고 가파른 사면을
우르르 내린다. 느아우골 갈림길. 옥녀탕으로 떨어지는 느아우골은 큰비 오던 해 산사태로 무
너져 내려 참혹한 몰골이다. 주걱봉 사면으로 20m쯤 오르면 촛대봉을 거침없이 바라볼 수 있
다. 배낭 벗어놓고 하늘재 님과 다니러간다.
뚝뚝 떨어지다 슬랩에 멈춰 나뭇가지 사이로 변발한 삼형제봉을 우러른다. 주걱봉 내린 안부.
2열 횡대로 마주앉아 이른 점심밥 먹는다. 가을은 입맛 나는 계절이다. 하도 먹어 어께 들썩
여 숨 쉰다. 급히 내린 만큼 급히 오른다. 부른 배로 옆구리 결리고 아프다. 긴 너덜 길. 땀 뺀
다. 왼쪽 산허리 가로질러 수월하게 넘는 수가 있지만 어느 해 가랑비 내리던 봄날 멋모르고
삼형제봉을 오른 그 벅찬 감동을 가까이에서 반추하고자 한다. 안부. 그때 우리가 삼형제봉
오른 길은 흔적 없다.
8. 가리봉 남봉(소가리봉, 1,331m)
9. 가리봉 남봉(소가리봉, 1,331m)
10. 가리봉 남봉(소가리봉, 1,331m)
11. 주걱봉(1,386m)
12. 주걱봉(1,386m)
▶ 1,044.6m봉, 상덕마을
삼형제봉 안부 내리고 1,246m봉 오르는 길은 암릉이다. 등로 벗어난 1,246m봉 정상은 천하
경점이다. 주걱봉을 주걱모양답게 볼 수 있다. 멀리 가리산 오대산은 이견 없고 다수결로 대
암산이 향로봉이다. 이제는 부드러운 능선 길, 육산의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교통호 넘고 넘
어 1,184m봉 오르고 한껏 늘어진 뒷짐 진 걸음으로 △1,226.5m봉이다. 삼각점은 설악 309,
2007 재설.
여기서 괜히 나 혼자 부지런떨어 선두로 직진하였다가 일행들의 외치는 소리에 아차 싶어 지
도 들여다보고는 잘못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되돈다. 추초(秋草). 낙엽은 곱다만 풀숲 등로가
쓸쓸하다. 미역줄나무덩굴은 앙상하다. 그런 1,144m봉이다. 이다음 1,112m봉 내림 길은 층
층 절벽이다. 오른쪽 사면의 이끼 낀 너덜로 돌아내린다.
1,007m봉 내린 안부. 설악산국립공원 경계다. 국립공원을 벗어난다. 야트막한 961m봉 넘으
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는 왼쪽으로는 잠시 구불대다가 하덕으로 내리고 오른쪽으로는 산허
리 굽이굽이 돈다. 그런 줄 몰라 직등한다. 1,044.8m봉 중턱에서 임도 따라온 일행과 만난다.
임도에서 바라보는 양구 쪽 첩첩 산 조망이 장관이다.
사진 찍으려고 어깨에 둘러맨 카메라를 꺼내려는데 허전하다. 이런, 카메라 든 가방이 없다.
머리가 쭈뼛 서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다. 어디서 잃었을까? 잡목 헤치
느라 흘린 줄 몰랐을까? 발맞추었던 더산 님 부조로 기억을 더듬는다. 1,007m봉 내린 안부인
설악산 국립공원 경계에서 쉴 때다. 대간거사 님이 등로 벗어나 오른쪽으로 50m쯤 떨어진 사
면의 죽은 참나무에 높이 달린 노루궁뎅이버섯을 발견했다.
그 버섯을 따고자 갔다. 스틱을 암만 길게 늘려도 닿지 않고 마침 곁에 비슷한 높이의 가느다
란 죽은 나무가 있었다. 뽑았다. 더산 님과 함께 나뭇가지를 들어 올렸고, 버섯을 건드려 떨어
뜨렸다. 이때 카메라 가방이 거치적거려 벗어놓았다. 버섯만 챙겼지 카메라를 다시 맨 기억이
없다. 바로 거기다.
나 혼자 (혹은 동행동고할 한사람 붙여) 찾으러 가겠으니 제발 원통으로 가려는 당초 목적 산
행을 이루시라 하소연해도 막무가내. 원통을 원통하게 단념하고 모두 카메라 찾으러 가자고
한다. 산행을 망쳐버리다니! 나에게는 과분하다. 그저 진한 악우애에 감읍할 따름. 다시
1,044.8m봉에 올라 배낭 벗어놓고 일부 일행 남겨두고 카메라 찾으러 간다. 온 길 그대로 간
다. 거기까지 도상 1.33㎞다.
961m봉 내린 사면에 카메라 가방이 놓여있다. 그새 반갑다. 다 같이 환호한다. 다리 힘 풀려
다시 오르는 1,044.8m봉이 멀다. 왕복 1시간이 걸렸다. 하산은 상덕마을이다. 원통까지 산행
했을 경우와 거리를 비교해보았다. 1,044.8m봉에서 원통까지 4.97㎞이고, 1,044.8m봉에서
카메라 찾으러 가고 온 거리 2.66㎞, 1,044.8m봉에서 상덕마을까지 2.32㎞이니 합하여 4.98
㎞로 원통보다 10m가 더 길다!
황혼의 사광(斜光)으로 발길이 어지럽다. 금방 내릴 것 같던 하산길이 827m봉 넘고 돌연 심각
해진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암릉 암벽을 몇 번 뭉개 내리고 더 내릴
수 없는 절벽에 다다른다. 옆 지능선에서 송주 님이 길 좋다며 부른다. 트래버스 하여 다가갔
더니 좋아하기는 일렀다. 협곡과 슬랩의 연속이다. 송주 님과 스틸영 님이 뚫는다. 두 분은 바
위꾼이다.
바위꾼의 본색이 나온다. 유일한 길 교묘히 개척한다. 송주길이다. 솔잎 깔린 슬랩 내리는 중
에 송이를 발견한다. 활짝 핀 갓이 너무 커서(손바닥만 하다) 앞서 간 일행은 몰라봤다. 이건
새끼였다. 정작 낭보는 뒤따랐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가브리엘이라고
하였다 한다. 실증한다. 내 생전 그렇게 큰 송이는 처음 본다.
줄기는 애호박만큼 굵고 갓은 조금 과장하여 솥뚜껑만 하다. 어둑한 절벽에서 가브리엘 님이
발견했다. 그것도 같은 크기 두 개나. 다투어 그 공을 높이자 ‘이게 순전히 대장님이 길을 잘
인도하신 탁월한 영도력 덕분’이라고 하여 약관(?)에 세상 사는 이치까지 터득했음을 보여주
었다. 이 송이는 원통 음식점에서 우리 입을 즐겁게 했다.
다 내리려면 멀었다. 암릉 소연해지고 덤불 숲 뚫어 마른 계곡 너덜로 떨어진다. 계곡 너덜로
내린다. 계곡이 울창한 덤불숲으로 막히자 우리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키 작은 아카시아
나무 숲속이다. 헤드램프 켜고도 몸부림할수록 가시에 마구 찔린다. 식겁하여 다시 계곡 건너
소나무 숲속으로 피한다. 무덤 나오고 비로소 길이 열린다.
상덕마을 위다. 다리 건넌다. 교명 불 비춰 보니 영광교다. 우리 차가 오는 동안 아까 딴 송이
흐뭇이 구경하며 한 귀퉁이 뜯어 그윽한 솔향 음미한다.
13. 촛대봉(1,348m)
14. 주걱봉(1,386m)
15. 촛대봉(1,348m)
16. 삼형제봉(1,232m)
17. 삼형제봉 안부 오르는 중
18. 주걱봉(1,386m)
19. 삼형제봉(1,232m)
20. 주걱봉(1,386m)
첫댓글 이세진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말에도 역시 산행을 하셨군요..총동문회에서 뵙고 싶어는데 보이질 않더니...내년에는 총동문회에 참석하여 우리 후배들의 멋진 모습들을 찍어 훌륭한 글과 함께 올려주세요..그리고 사진 공모대회에도 올려주시고요...부탁드립니다
삼형제봉 암벽덩반 하려다 빵꼬나고 영서암 오색암 봉정암 백담사로 왔는데 단풍은 많이졌더군요 선배님 사진으로 단풍구경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