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씨의 사랑 이야기
장 원 태
1) 미화씨의 손길이 바쁘다. 오전만 근무하는 방문 요양보호사로 어르신이 식사한 후 설거지하는 참이다. 아침부터 카톡이 울리더니 택배가 온다고 난리다. 올 곳도 없는데 연락이 오니까 무척 궁금했다. 출근한 남편에게 문자를 넣었더니 자기한테는 올 물건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출가한 아들이 낮에 잠시 텅 빈 집에 들렀는데 문 앞에 커다란 택배가 와 있다고 문자가 왔다. 엄마 이름으로 왔는데 보낸 곳이 제주도이며 수산물 같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조*구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미화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2) 조*구는 30년도 더 된 그 옛날에 한동안 따라다닌 동네 친구이다. 미화씨는 그 판자촌에서 가장 부잣집 딸이었고 그는 동네 가장 안쪽에 다 허물어져 가는 움막 같은 곳에서 여러 형제와 함께 살았다. 사춘기 시절 동네에서 이쁘기로 소문난 미화씨는 또래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었던 그도 동네 남학생들처럼 그녀를 짝사랑했다. 성격 좋은 미화씨는 두꺼운 안경에 작은 키, 남루한 옷차림의 그를 쉽게 내치지 못했다. 손이라도 한 번 잡으려는 다른 남학생들에게는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는 예외였다. 그가 너무 착하고 순수했기 때문이다.
3) 그는 만날 때마다 뭔가 들고 와서 손에 쥐여 주곤 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조잡하고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직접 수놓은 손수건이나 머플러, 베게 홑청 장식, 단추나 나무젓가락 세트 같은 것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기 집에서 부업으로 작업했던 물건들이었다. 한번은 한복 저고리에 달린 옥구슬을 가지고 나왔고 또 한번은 희귀한 모양의 나무젓가락을 이쁘게 포장해서 주기도 했다. 아무튼 그는 뭔가를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그것들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처음에는 자꾸 받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항상 들고 오는 바람에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받았다.
4) 미화네 가족이 그 판자촌을 이사 나오면서 연락이 끊겼다. 풍문으로 들은 그에 대한 소식은 아주 평범했다. 공고를 나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해 성실한 샐러리맨으로 잘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는데 봉사활동이 모범이 되어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월급 일부를 꼬박꼬박 교회의 십일조처럼 요양원에 현금과 물품으로 헌납했고 주말마다 노인들을 돌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 한결같이. 미화씨는 우연히 그 기사를 발견하고 조*구의 심성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5) 그런데 그가 미화씨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광역 시의원으로 출마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주위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 주민들이 출마를 권유했고, 여당 일색인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지역 언론에서는 ‘샐러리맨의 신화’라며 화제성 기사를 연일 올렸다. 그가 선거 운동할 때 꼭 한번 찾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깜박 놓치고 말았다. 늘 마음속으로 응원하면서 그의 동정을 살폈다.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고 혼자 작은 서민 아파트에 살며 봉사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게 꼭 자기 탓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6) 택배 상자 안에는 싱싱하고 커다란 옥돔 여러 마리가 황금 두꺼비를 쌓아놓은 듯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봉투 한 장이 있었는데 편지였다. ‘미화야’라며 정감있게 시작된 손 편지에는 의원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못 본 것이 아쉬웠다. 조만간 밥 한번 먹자. 제주의 저녁노을을 보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는 잘나가는 신랑과 결혼했고 이미 장성한 아들 둘이 출가했다는 소식도 풍문으로 들었다. 늘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전달하고 간 비타 500 잘 먹겠다. 네가 놓고 간 손때묻은 쿠빅 박힌 옥구슬을 보면서 너와 즐겁게 지내던 옛날 생각이 났고 억지로 주소를 수소문했다. 부담 갖지 말고 맛나게 먹어라. 옥구슬은 그 옛날 내 마음의 징표이기 때문에 다음에 만나면 다시 돌려줄게.
7) 재가(在家) 요양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미화씨는 그 편지를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리는 걸 느꼈다. 그가 시의원에 당선되어 모처럼 만의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그려졌고 응원하고 싶었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당선된 후 찾아간 것이 너무 속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초라한 추억 속의 그가 성공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 내 일처럼 자랑스러웠다. 오늘 신문에도 그의 기사가 대문짝만하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녀 회원들과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 실렸는데 그는 밝은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8) 신문을 내려놓고 저녁밥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집에 들어선 남편은 부엌에서 일하는 자신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혼자서 툴툴거린다. 회사에서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냉장고 문을 열더니 같이 먹자는 말도 없이 캔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남편은 매사가 자기중심적이었다. 처음에는 집안 좋지, 키 크고 잘 생겼지, 돈 잘 벌지 어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대학 4년 동안 졸졸 따라다녀서 결혼했는데 살아보니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관대했지만, 남에게 인색했다. 외부적인 조건을 우선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 그의 그런 행동이 하나하나 불편했고 싫어졌다.
9) 그런 그가 방금 내가 보던 신문을 집어 들더니 혀를 끌끌 찬다. 어중이떠중이 다 시의원 되는 세상이네. 전문대학 밖에 안 나온 사람이 시의원이라고 설치는 꼴이 기가 차네. 여보! 이런 사람도 시의원 하는데 나도 한번 나가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신경질적으로 부엌에 있는 라디오 소리를 높였다. 유명 가수 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가 애잔하게 흐른다.
‘인간아! 인간아! 너는 아직 멀었다’
첫댓글 단락마다 번호를 매긴 것이 눈에 뜨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장면 전환용인지요?
궁금합니다^^
합평할 때 얘기하기 좋으라고 매겨 놨어요^^
@장원태 예, 선생님 잘 읽고 참석하려고 출력해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정숙 졸작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회초리 맞을 준비할게요~~
첫사랑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는군요.
남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걸랑요. 번호 매긴것은 잘하신것 같아요.ㅎ
감사합니다^^선생님!!
우리 회원 미화씨가 있었는데 ㅡ
밝은 꽁뜨수필 입니다.
미화씨는 제 와이프 이름입니다...ㅎㅎㅎㅎ
@장원태 아~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