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제20호.hwp
평창문예대학 제 20 호(2014.08.27)
나눔 마당 - 名詩 ‧ 名文 감상
아름다운 소리들/손광성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또 어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어야 하고 다른 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어떤 베일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들어야 좋은 소리도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우리의 곁을 떠난 친구와도 같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소리도 있다.
폭죽과 폭포와 천둥소리는 여름에 들어야 제격이다. 폭염의 기승을 꺾을 수 있는 소리란 그리 많지 않다. 지축을 흔드는 태고의 음향과 '확’ 하고 끼얹는 화약 냄새만이 무기력해진 우리의 심신에 자극을 더한다. 뻐꾸기며 꾀꼬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폭염 아래서는 새들도 침묵한다. 매미만이 질세라 태양의 횡포와 맞서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힘찬 기세에 폭염도 잠시 저만치 비껴 선다.
낮에는 마루에 누워 잠을 청해본다. 야윈 잠결. 문득 지나가는 한 줄기 소나기.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가 상쾌하다.
밤에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물가를 거닌다. 달이 비친 수면은 고요한데 이따금 물고기가 수면 위로 솟았다 떨어지면서 내는 투명한 소리. 그 투명한 음향이 밤의 정적을 지나 우리의 가슴에 가벼운 파문을 던진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이처럼 절실한 것을.
흔들리는 아지랑이 속으로 아득히 비상하던 종달새의 가슴 떨리는 소리는 언제나 꿈, 희망과 같은 어휘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상아빛 건반 위로 달려가는 피아노 소리는 5월의 사과꽃 향기 속으로 번지고,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는 나른한 졸음에 금속성의 상쾌함을 더한다. 이런 소리는 초여름의 부드러운 대기 속에서 들을 때 더 아름답다.
대체로 청각은 시각보다 감성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 호소하는 힘이 크다. 때로는 영적이며 계시적인 힘을 지니기도 한다. 향기가 그러하듯 소리는 신비의 세계로 오르는 계단이요,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그만큼 소리와 향기는 종교적이다. 신자가 아니면서도 성가가 듣고 싶어서 명동성당에 들어가 한참씩 차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독경 소리가 좋아서 출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성가는 나의 마음을 승화시키고 독경 소리는 나의 마음을 비운다. 가을 하늘처럼 비운다.
나는 특히 사람의 소리를 좋아한다. 파바로티의 패기에 찬 목소리를 좋아하고, 휘트니 휴스턴의 소나기 같은 목소리도 좋아한다. 그녀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한꺼번에 여섯 개의 트로피를 안고 화면 가득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와 케니 지의 소프라노 색소폰 소리를 좋아한다. 애수 어린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내 나이를 잊고, 내 차가 낡았다는 사실을 잊고 젊은이처럼 빗속을 질주할 때가 있다.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대금 소리와 거문고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림자가 비친 창호지 저쪽에서 들려오거나, 아니면 저만치 떨어진 정자에서 달빛을 타고 들려올 때가 제격이다. 적당한 거리는 베일과 같은 신비로운 효과를 낸다. 그런 간접성, 그것이 아니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국악인지도 모른다.
음악뿐이겠는가. 그림도 그렇고 화법(話法)도 그렇다. 산수화를 그릴 때는 안개로 산의 윤곽 일부를 흐리게 함으로써 비경(秘境)의 효과를 얻는다. 같은 지령적인 언어라도 완곡어법을 우리는 더 좋아한다.
새소리를 들을 때도 그렇다. 온전히 깨어 있을 때보다 반쯤 수면상태에서 들을 때가 행복하다. 풀잎에는 아직 이슬이 맺혀 있고, 아침 햇살은 막 퍼지려고 하는데,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그 청아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난밤의 악몽에 시달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새소리로 열리는 새 아침은 언제나 새 희망 속에 우리를 눈뜨게 한다.
봄이 꽃과 새들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낙엽과 풀벌레의 계절이다.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잠들 수 없는 긴 밤과 텅 빈 가슴을 마련한다.
누구였더라? 가을밤에는 은하수에서도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던 사람이.
그러나 문득 이 모든 소리를 압도하는 하나의 소리가 있다.
빈방, 창밖에는 밤비 내리고
어디선가 산과(山果) 떨어지는 소리
빈산에 떨어지는 산과 한 알이 문득 온 우주를 흔든다. 존재의 뿌리까지 울리는 이 실존적 물음을, 천 년 전에는 왕유(王維)가 들었고 지금은 내가 듣고 있다. 이런 소리는 빈방에서 혼자 들어야 한다. 아니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겨울은 무채색의 계절. 자연은 온통 흰색과 검정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소리는 그렇지 않다. 겨울에는 겨울만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가 있다. 싸락눈이 가랑잎에 내리는 간지러운 소리와 첫눈을 밟고 오는 여인의 발자국 소리. 이런 소리는 언제나 나를 향해 오는 것 같다. 얼음장이 ‘쩡’하고 갈라지는 소리와 지축을 흔드는 눈사태의 굉음과 굶주린 짐승들의 울부짖음. 이 모든 소리는 겨울이 아니면 들을 수 없다.
눈이 많이 오는 나의 고향에서는 아름드리 원목을 실은 기차가 가파른 함경선 철로 위를 오르지 못해서 밤새 올라갔다가는 또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런 날 밤은 언제나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도 기차는 올라갔다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그러나 아침에 깨어서 나가보면 기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소리 가운데는 언제 들어도 좋은 소리가 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 소리와 반쯤 졸음 속에서 듣는 속삭임 소리가 그렇다. 병마개를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술병에서 나는 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리도 드물다. 그것은 가난한 시인에게도 언제나 ‘꿈, 꿈, 꿈’ 하고 노래한다. 그리고 여인의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조용히 미닫이가 열리는 소리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찾아올 이도 없는 빈 하숙방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 이런 환청에 놀라 뒤를 돌아다보던 그런 젊은 날도 있었다.
그리고 한때는 우리 가까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그래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그리운 소리들이 있다. 다듬이 소리, 대장간의 해머소리, 꿈 많던 우리에게 언제나 ‘떠나라! 떠나라!’ 외쳐대던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 목이 잠긴 그 소리가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가. 그리고 울긋불긋한 천막과 원숭이들과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외발 자전거를 타던 난쟁이가 있던 곡마단의 나팔 소리. 나의 단발머리 소녀는 아직도 아득히 높은 장대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데 내 머리칼은 벌써 반이나 세었다.
안개 낀 어느 항구의 썰렁한 여관방에서 홀로 듣던 우수어린 무적(霧笛)소리와 한 떼의 갈까마귀들이 빈 밭에서 날아오를 때 내던 무수한 깃털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하늘 한복판을 유유히 지나가던 기러기의 아득한 울음소리.
이제 이 모든 소리들이 그립다. 돌이킬 수 없는 유년의 강물처럼, 우리 곁을 떠나버린 옛 친구의 다정했던 목소리처럼 그렇게 그리운 것이다.
손광성( ) 수필가. 함경남도 흥원 출생. 서울시립대학 시민대학 문예창작반 강사. 제33대 국제 펜클럽 부이사장,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고문 등 역임. 16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달팽이』, 『한 송이 수련 뒤에 부는 바람처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