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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그 기원에 대하여
(출전: 스피노자 <에티카/정치론>, 추영현 옮김, 동서문화사, 2016)
사유는 신의 속성이다. 혹은 신은 사유하는 것이다.
개개의 사상, 즉 이 사상 저 사상은 신의 본성을 일정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양태이다. 그러므로 신에게는 하나의 속성이 귀속된다. 그 속성이란 그것의 개념이 모든 각 사상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이들 사상이 이해되는 속성을 말한다. 따라서 사유는 신의 무한히 많은 속성 가운데 하나요, 그것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한다. 혹은 신은 사유하는 것이다. (…)
연장은 신의 속성이다. 혹은 신은 연장된(공간적인) 것이다.
신에겐 신의 본질적인 관념(직접 무한양태)과, 그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사물들의 관념(간접 무한양태)이 반드시 존재한다.
신은 무한히 많은 것을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사유할 수가 있다. 혹은 스스로의 본질적 관념과, 그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사물의 관념을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신의 능력에 포함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신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신의 능력을 신의 자유의지 및 만물에 대한 신의 권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물들을 우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우리들은 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함과 같은 필연성을 갖고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신의 자기인식이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처럼, 신이 무한히 많은 것을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행하는 것도 똑같은 필연성에 의해 일어난다. 우리는 신의 능력이 곧 신의 활동적 본질임을 밝혀 두었다. 따라서 신의 비활동성에 관한 사고는 신의 비존재에 대한 사고와 같은 것이므로 불가능하다. (…)
무한히 많은 것을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생겨나게 하는 신의 관념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무한 지성은 신의 속성과 그것의 변체變體 이외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은 유일하다. 그러므로 무한히 많은 것을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생겨나게 하는 신의 관념은 다만 하나뿐이다.
관념의 형상적 존재는, 다만 사유하는 것으로 고찰되는 경우의 신을 원인으로 하고, 다른 속성에 의해 설명될 때의 신을 원인으로 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신의 속성의 관념도, 개물個物(개체個體)의 관념도, 관념화된 자신(대상 자체) 혹은 지각된 것 자체를 동력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유하는 경우의 신을 동력인으로 인정한다. (…)
모든 속성의 양태는, 자신이 나타내고 있는 속성을 근거로 신이 고찰되는 경우에 한해 신을 원인으로 한다. 그것은 다른 속성을 근거로 고찰되는 경우의 신을 원인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속성은 다른 속성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그 자체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모든 속성의 양태는 그 속성의 개념을 포함하고, 다른 속성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양태는, 자신이 나타내고 있는 속성을 근거로 고찰되는 경우에 한해 신을 원인으로 하고, 다른 속성을 근거로 고찰되는 경우의 신은 원인으로 하지 않는다.
사유의 양태가 아닌 사물의 형상적 존재는 신의 본성이 사물을 이미 인식했으므로 신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관념의 대상물은 관념이 사유의 속성에서 생겨나는 것과 같은 방법과 필연성에 의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속성에서 생겨나고 또 도출된다.
관념의 질서 및 연결은, 사물의 질서 및 연결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각 사물의 결과로서의 관념은, 그 결과를 낳는 원인의 인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신이 사용하는 능력은 신이 활동하는 현실적인 능력과 같다. 바꾸어 말하면 신의 무한한 본성에서 형상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은, 신의 관념에서 같은 질서와 같은 연결에 의해 신 안에서 객관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으며 무한 지성에 의해 지각되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실체에 속해 있다. 따라서 사유하는 실체와 연장하는 실체는 같은 실체이며 어것이 어느 때는 이 속성, 어느 때는 저 속성으로 이해된다. 마찬가지로 연장의 양태와 그 양태의 관념은 같은 것이며, 다만 그것은 두 방법에 의해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 자연이 연장의 속성으로 생각되건, 사유의 속성으로 생각되건, 혹은 다른 어떤 속성으로 생각되건 상관없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질서를, 혹은 여러 원인의 동일한 연결을, 즉 동일한 것이 상호 계기繼起(잇달아 일어남)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신은 오로지 사유하는 경우에 한하여만 원의 관념의 원인이며, 또 다만 연장하는 경우에 한하여 원의 원인이다. 곧 원의 관념의 형상적 존재는 그것의 최근 원인으로서의 다른 사유의 양태에 의해서만 지각되고, 이 후자(최근 원인)도 역시 다른 사유의 양태에 의해서 지각되며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그 결과 사물이 사유의 양태로 고찰되는 한, 모든 자연의 질서 혹은 여러 원인의 연결은 사유의 속성에 의해서만 설명되어야 한다. 또 사물이 연장의 양태로 보이는 경우에는, 모든 자연의 질서는 오로지 연장의 속성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한다. 이런 사실은 다른 여러 속성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무한량의 속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 실제로 그 자체로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원인이다.
존재하지 않는 개물이나 양태의 관념은, 개물이나 양태의 형상적 본질이 신의 속성에 포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의 무한한 관념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 이 귀결로 개물의 존재가 신의 속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만 존재한다면, 그 개물의 객관적 존재 혹은 관념도 신의 무한한 관념이 존재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개물이 신의 여러 속성 속에 포함되어 존재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지속된다고 일컬어질 때에도 존재한다면, 개물의 관념도 역시 지속된다고 불리는 존재를 포함하게 된다.
(…) 원圓은, 그 안에서 직교直交하는 모든 직선의 선분으로 이루어진 도형이 서로 닮았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원 안에는 서로 닮은 무한량의 도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도형은 원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도형의 관념 역시 그것이 원의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을 때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무한히 많은 도형에서 두 개만, (…)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그런 도형의 관념도 다만 원의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존재할 뿐 아니라, 그런 도형의 존재를 포함할 경우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그들 도형의 관념은 다른 도형의 관념으로부터 구별된다.
실제로 현존하는 개물의 관념은, 무한한 경우의 신을 원인으로 하지 않고 실제로 현존하는 다른 개물의 관념으로 변양한 경우의 신만을 원인으로 한다. 또 이 관념도 다른 관념으로 변양한 경우의 신을 원인으로 하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실제 현존하는 개물의 관념은 사유의 어떤 특수 양태이며, 다른 양태로부터 구별된다. 따라서 그것은 사유하는 존재인 한에서만 신을 원인으로 한다. 그러나 그 신은 절대적으로 사유하는 신이 아니고, 오히려 다른 유한한 사유의 양태로 변양했을 때의 신이다. 그리고 이 사유의 양태의 원인도 다른 것으로(유한한 사유의 양태로) 변양했을 때의 신이다.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그런데 관념의 질서 및 연결은 원인의 질서 및 연결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개물의 관념의 원인은, 다른 관념 혹은 다른 관념으로 변양했다고 간주될 때의 신이다. 그리고 이 관념의 원인도 다른 관념으로 변양한 경우의 신이다.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모든 관념의 대상 안에서 생겨나는 것에 대한 인식은, 신이 바로 그 대상의 관념을 소유하는 경우에 한하여 신 안에 존재한다.
각 관념의 대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그 관념이 있다. 그러나 그 신은 무한한 신이 아니고, 개물이 다른 관념으로 변양했다고 간주되는 신이다. 그런데 관념의 질서 및 연결은 사물의 질서 및 연결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개개의 대상 속에서 생겨나는 것에 대한 인식은, 신이 오직 그의 대상에 대한 관념을 가질 경우에만 신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는 실체적 존재가 귀속되지 않는다. 다른 말로 실체는 인간의 형상을 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체적 존재는 필연적인 존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인간의 본질에 실체적인 존재가 귀속된다면, 실체가 존재함과 더불어 인간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 말은 불합리하다.
같은 본성을 지니는 두 개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형상을 구성하는 것은 실체적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이 실체의 다른 특질로 미루어 보아도, 즉 실체가 그 본성상 무한하고, 불변하며, 불가분적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명백하다. 이런 사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신의 속성의 어떤 양태적 변체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실체적 존재는 인간의 본질에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 안에 내재하고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생각될 수도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신의 본성을 일정한 양식으로 표현하는 변체(변양=변화상태) 혹은 양태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신의 존재가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생각될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이 모든 것의 본질이며 유일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신이 모든 생성에 관해서뿐 아니라 존재에 관해서도 사물의 원인이란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 존재할 수도 생각될 수도 없는 이유를 사물의 본성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신의 본질이 피조물의 본질에 속한다고 믿든가, 혹은 신 없이도 피조물이 존재하거나 생각될 수 있다고 믿든가, 혹은 이런 문제에 관해 충분한 확신이 없든가,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입장에 빠진 원인은 대체로 그들이 철학적인 사색의 질서를 지키지 않았기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 선행하여 관상觀想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인식의 순서상 최후의 것으로 믿고, 감각의 대상을 모든 것의 최초의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연물을 관상할 때 신의 본성에 관해서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후로 신의 본성을 관상하려 할 때에는, 자연물의 인식을 구성할 때 근거로 삼았던 최초의 온갖 상상물像想物(관상물)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런 상상물은 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도처에서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다.
(…) 개물은 신 없이는 존재도 사고도 불가능한데, 사물의 본질에는 신이 속하지 않는다. 그것이 주어진다면 사물이 정립되고 그것이 제거된다면 소멸되는 것, 혹은 그것 없이는 사물이 존재할 수도 생각될 수도 없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바로 그런 것이 사물의 본질을 필연적으로 구성한다.
인간 정신의 현실적 존재를 구성하는 최초의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물의 관념이다.
인간의 본질은 신의 속성의 양태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유의 양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모든 사유의 양태에서 관념은 본성상 최초의 것이다. 그리하여 관념이 주어진다면, 다른 나머지 여러 양태는 같은 개체 안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관념은 인간 정신의 존재를 구성하는 최초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관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땐 관념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념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관념이다. 또한 그것은 무한한 것의 관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것은 항상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그런 말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의 현실적 존재를 구성하는 최초의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물의 관념이다. (…)
인간 정신을 구상하는 관념의 대상 속에 생겨나는 모든 것은 인간 정신에 의해서 지각되어야 한다. 혹은 그 사물에 대한 관념은 인간 정신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만약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이 신체라면, 그 신체 안에는 어떤 일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관념의 대상 속에 생겨나는 사물의 인식은, 신이 그 대상의 관념으로 변체 혹은 변양했다고 간주되는 한, 즉 신이 그 사물의 정신을 구성하는 한 신 안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존재물에 관한 인식은,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 안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 인식은 필연적으로 정신 속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정신이 그것을 지각한다.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이다. 혹은 실제로 현존하는 연장의 어떤 양태이다. 이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이 외부의 것을 인식할 때 그것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신체를 통해 인식한다.)
신체가 인간 정신의 대상이 아니라면 신체의 변체變體(변화상태)에 대한 여러 관념은, 우리들의 정신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 안에는 없을 것이다. 그 관념은 오히려 다른 사물의 정신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 안에 있을 것이다. 즉 신체의 변체(변양=변화상태=변태)에 대한 여러 관념은, 우리들 정신 안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체의 변체에 관한 여러 관념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이다. 게다가 그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신체이다.
다음으로 만일 신체 이외에 정신의 대상이 있다면, 결과가 생겨나지 않는 원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대상의 결과에 대한 관념은 우리들 정신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관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 정신의 대상은 존재하는 신체이며,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로 구성되며, 또 인간 신체는 우리가 그것을 감지(지각, 인식)하는 그대로 존재한다.
(…) 그리고 정도의 차가 어떻든 간에 모든 개체에는 영혼이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신 안에 있으며, 그 관념의 원인은 인간 신체 관념의 원인과 마찬가지로 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신체의 관념에 관해서 언급한 모든 논리가, 모든 사물의 관념에 대해서도 필연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여러 관념들은 대상 자체처럼 서로 상이하며, 하나의 대상이 다른 대상보다 훌륭할 수도 있다. (…)
(모든 물체는 운동하고 있거나 정지해 있다. 모든 물체는 어느 때는 천천히, 또 어느 때는 빨리 운동한다.)
물체는 운동과 정지 또는 빠름과 느림에서는 서로 구별되지만 실체에 관해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물체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일치한다.
모든 물체는 같은 속성의 개념을 포함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그리고 물체는 어느 때는 천천히, 또 어느 때는 빠르게 운동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물체는 어느 때는 운동하고 어느 때는 정지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운동하거나 혹은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다른 물체에 의해서 운동이나 정지로 결정되어야 한다. 또 이 물체도 다른 물체에 의하여 운동이나 혹은 정지로 결정되고, 또 후자도 역시 다른 물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렇게 무한히 계속한다.
물체는 개물이다. 그것은 운동과 정지로 상호 구별된다. 따라서 모든 물체는 다른 개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운동이나 정지 중 하나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 물체도 또한 (같은 이유로 인하여) 다른 물체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면, 운동도 정지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물체도 (같은 이유로 인하여) 다른 물체에 의해 결정되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한다.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다른 물체에 의해서 정지될 때까지 운동하고, 또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다른 물체에 의해서 움직여질 때까지 정지한다(관성의 법칙) (…)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모든 양식은, 움직여지는 물체의 본성과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물체의 본성에서 생겨난다. 이 때문에 같은 물체는,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물체의 본성이 서로 다르므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진다. 반대로 다른(相異) 물체는 같은 물체에 의하여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진다.
만일 운동하는 물체가 정지 중인 다른 물체에 충돌하여 운동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 그것은 튕겨나와 자신의 운동을 계속한다. (…)
개체 또는 복합 물체의 여러 부분은, 상호간 좀더 크거나 좀더 작은 표면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합의 정도에 따라, 결합된 부분들의 강제적인 위치 변경의 난이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결합된 개체 자체가 다른 형상으로 분리되는 난이도도 역시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면이 커다란 부분들에 의해서 결합된 물체는 단단하다(硬)고 하고, 표면이 작은 부분들에 의해서 결합된 물체는 연하다(軟)고 하며, 끝으로 여러 부분이 서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유동적이라 말한다.)
만일 많은 물체로 조직된 물체 혹은 개체로부터 얼마의 물체가 분리되고, 동시에 같은 본성을 갖는 등량의 다른 물체가 그 자리를 채운다면, 그 개체는 아무런 형상 변화도 없이 이전과 같은 본성을 지닐 것이다.
왜냐하면 물체는 실체에 관해선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
개체를 조직하는 여러 부분이 커지거나 작아진다 해도, 그 모든 부분이 이전과 같은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상호 유지하고 있다면, 그 개체는 아무런 형상의 변화 없이 이전과 같은 본성을 가질 것이다.
만일 개체를 조직하는 얼마간의 물체가 어떤 방향의 운동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자신의 운동을 계속하고 그 운동을 이전과 같은 비율로 서로 전달한다면, 그 개체는 아무런 형상의 변화 없이 자신의 본성을 지닐 것이다.
이렇게 조직된 개체가 전체로서 운동하거나 정지하거나 혹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운동하거나 해도, 각 부분이 자기의 운동을 유지하여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부분에 전달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본성은 유지된다. (…)
인간 정신은 대단히 많은 사물들을 지각하는 데 적합하다. 그리고 이 능력은 신체가 보다 많은 방법으로 영향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커진다.
왜냐하면 인간 신체는 대단히 많은 양식으로 외부의 물체에 의하여 자극되고, 또 반대로 외부의 물체를 자극하는 상태에 있다. 그런데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것을 지각하는데 적합하다. 그리하여 이 능력은 (인간 신체의 적성의 크기에 따라) 그만큼 커진다.
인간 정신의 형상적 존재를 구성하는 관념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 존재는 대단히 많은 관념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정신의 형상적 존재를 구성하는 관념은 신체의 관념이다. 그리고 인간 신체는 대단히 많고 복잡한 개체로 조직되어 있다. 그런데 신체를 조직하는 각 개체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신 안에 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 신체의 관념은, 이들 신체를 조직하는 여러 부분에 대한 대단히 많은 관념에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가 외부의 여러 물체로 말미암아 자극되는 모든 양식의 관념은, 인간 신체의 본성과, 아울러 외부의 여러 물체의 본성을 포함해야 한다.
어떤 물체가 자극되는 양식은, 자극되는 물체의 본성과 자극하는 물체의 본성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이들 양식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두 물체의 본성을 품고 있다. 따라서 인간 신체가 외부의 물체로부터 자극되는 모든 양식의 관념은, 인간 신체의 외부 물체의 본성을 포함한다.
인간 정신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매우 많은 물체의 본성을 지각한다.
외부 물체에 대한 우리들의 여러 관념은, 외부의 여러 물체의 본성보다도 오히려 우리들 신체의 상태를 보다 많이 나타낸다.
만일 인간 신체가 어떤 외부 물체의 본성을 포함하는 방법으로 자극된다면, 그 인간 신체가 이 외부 물체의 존재 혹은 현존 배제排除하는 자극을 받을 때까지, 인간 정신은 그 외부 물체를 현실적인 존재로서 혹은 자신 앞에 현존하는 것으로서 관상할 것이다.
(…) 바꾸어 말하면 정신은 외부 물체의 존재 혹은 현존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립하는 관념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정신은 신체가 외부 물체의 존재 혹은 현존을 배제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외부 물체를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혹은 현존하는 것으로 관상할 것이다.
인간 실체를 자극하는 외부의 물체가 가령 존재하지 않거나 현존하지 않는다 해도, 정신은 그것을 실제 현존하고 있는 것처럼 관상할 수 있다. (…)
만일 인간의 신체가 둘 또는 그 이상의 물체로 말미암아 동시에 자극되고 얼마 뒤에 정신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표상한다면, 정신은 즉시 다른 하나도 상기할 것이다.
정신이 어떤 물체를 표상하는 것은, 과거에 외부의 물체가 인간 신체의 어느 부분을 자극했을 때와 같은 자극 및 영향을, 신체가 외부 물체의 흔적을 통해 받는 일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에 의하면) 신체는 과거에, 정신이 두 물체를 동시에 표상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정신은 지금도 동시에 두 개의 물체를 표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상상할 경우 즉시 다른 것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억이란, 인간 신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의 본성을 포함하는 여러 관념의 어떤 연결이다. 이 연결은 인간 신체의 변양(변화상태)의 질서와 연결에 대응하여 정신 안에 생겨난다.
(…) 모든 사람은 사물의 상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결합하고 연결하도록 습관화됨에 따라, 어떤 하나의 인식에서 이러저러한 인식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인간 정신은 신체가 받는 자극(변양)의 관념만으로 인간 신체 그 자체를 인식하고, 또 신체의 존재를 인식한다.
왜냐하면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의 관념 혹은 인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관 념 혹은 인식은 틀림없이 다른 개물의 관념으로 변양(변체=변화)한 것으로 보이는 한의 신 안에 내재한다. 또는 인간 신체는 항상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이를 위해 대단히 많은 물체를 필요로 하고, 관념의 질서 및 연결은 원인의 질서 및 연결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 관념은 대단히 많은 개물의 관념으로 변양한 경우의 신 안에 내재할 것이다. 이런 신은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경우에 한해서가 아니라, 매우 많은 다른 관념으로 변양한 경우에 한해서만 인간 신체의 관념을 갖고 그 신체를 인식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를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체의 변화상태(변양)의 관념은,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한의 신 안에 내재한다. 따라서 인간 정신은 그와 같은 변화상태를 지각한다. 그 결과 인간 정신은 인간의 신체 그 자체를 지각하고, 그것을 실제 현존하는 것으로 지각한다. 그러므로 오직 이런 경우에 한해서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 그 자체를 지각한다.
신 안에는 인간 정신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이 있다. 그리고 이 관념 혹은 인식은 인간 신체의 관념 혹은 인식과 같은 방식으로, 신 안에서 생겨나고 또 신에 귀속된다. (…)
정신의 이 관념은 정신 그 자체가 신체와 합일되어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정신과 합일하고 있다.
(…) 정신의 관념과 정신 그 자체는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같은 속성, 즉 사유의 속성 밑에서 생각된다. 따라서 정신의 관념과 정신 그 자체는, 같은 사유 능력에서 같은 필연성으로 인하여 신 안에서 생겨난다. (…) 어떤 사람은 무엇을 알자마자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알고, 동시에 또한 그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계속된다.
인간 정신은 신체의 변화상태(변양)뿐 아니라, 이 변화상태의 관념도 지각한다.
변양(변화상태)의 관념의 관념은, 변양의 관념 그 자체와 같은 방법으로 신 안에 생겨나고 또 신에 귀속된다. 그런데 신체의 변양의 관념은 인간 정신 가운데에 있다. 곧 그것은 인간 정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 안에 내재한다. 그러므로 이들 관념의 관념은, 인간 정신의 인식 혹은 관념을 갖는 한의 신 안에 내재할 것이다. 즉 그것은 인간 정신 그 자체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정신은 신체의 변양뿐 아니라 그 변양의 관념도 지각한다.
정신은 신체의 변양(변화상태)의 관념을 지각하는 경우에 있어서만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정신의 관념이나 인식은 신체의 관념이나 인식과 같은 방식으로 신 안에서 생겨나고 신에 귀속된다. 그런데 인간 정신은 신체 그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 즉 인간 신체의 인식은 신이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신에 귀속되지 않는다. 바로 이 이유에서 정신의 인식도, 인간 정신의 본질을 구성할 때의 신에 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정신은 그럴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신체가 받는 자극(변양)의 관념은 인간 신체 그 자체의 본성을 포함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정신의 본성과 일치한다. 그런 고로 이들 관념의 인식은 정신의 인식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그런데 이들 관념의 인식은 인간 정신 그 자체 안에 있다. 따라서 인간 정신은 그럴 경우에 한하여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를 조직하는 여러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신체를 조직하는 여러 부분은 그 자신의 운동을 일정한 비율로 서로 전달하는 경우에 한해서, 신체 자체의 본질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여러 부분은 인간 신체와의 관계를 떠나 개체로서 고찰될 때 신체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 신체의 여러 부분은 극히 복잡한 구조를 갖는 개체이며, 신체의 본성 및 형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인간 신체에서 분리될 수 있으며, 또 자신이 운동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다른 물체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은 신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질서로 보아 이런 부분에 선행하는 다른 개물의 관념으로 변화(변양)된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이러한 여러 부분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신체를 조직하는 개체 자체의 각 부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를 조직하는 각 부분에 대한 인식은 다만 인간 신체의 관념을, 즉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관념을 가질 때가 아니라, 대단히 많은 사물들의 관념으로 변양(변화상태)한 경우의 신 안에 있다. 따라서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를 조직하는 여러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신체의 각 변양(자극상태)에 대한 관념은 외부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신체의 변양에 대한 관념은 외부 물체가 인간 신체를 일정한 방법으로 자극하는 경우를 한해서, 그 외부 물체의 본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물체가 본디 인간 신체와 관계없는 개체인 한, 그 관념 혹은 인식은-그 본성에서 보아 그 외부 물체 자체에 선행하는- 다른 사물의 관념으로 보이는 경우의 신 안에 있다. 그러므로 외부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은, 신이 인간 신체의 변양의 관념을 가질 경우에는 신 안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 신체의 변양(자극상태)의 관념은 외부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은 자기 신체의 변양의 관념을 통해서만 외부 물체를 실제 현존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만약 인간 신체가 외부 물체에 의해서 어떤 방법으로든 자극되지 않는다면, 인간 신체의 관념 즉 인간 정신도 어떤 방법에 의해서나 외부 물체라는 존재의 관념에 자극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 정신은 그런 외부 물체의 존재를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지각(파악)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인간 신체가 어느 외부 물체로부터 어떤 방법으로 자극되는 한 인간 정신은 외부의 물체를 지각한다.
인간 정신은 외부의 물체를 표상하는 경우 그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갖지 못한다. (…)
인간 신체의 어떤 변양(자극상태)의 관념은 인간 신체 그 자체의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신체의 어떤 변양의 관념은 인간 신체 그 자체가 일정한 방법으로 자극된다고 사고되는 경우에 한해 인간 신체의 본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신체가 다른 많은 방법으로 자극될 수 있는 개체인 경우 그 관념은 그렇지 않다.
인간 신체의 변양의 관념이 오직 인간 정신에만 관계되는 경우, 그 관념은 명료하고 판연한 것이 못 된다. 도리어 혼란스럽다.
인간 신체의 변양의 관념은, 외부 물체 및 인간 신체 그 자체의 본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신체의 본성뿐 아니라, 신체의 여러 부분의 본성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변양은 인간 신체의 여러 부분, 따라서 신체 전체가 자극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 물체의 충분한 인식과 인간 신체를 조직하는 여러 부분의 충분한 인식은, 인간 정신으로 변양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의 신 안이 아니라, 다른 여러 관념으로 변양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의 신 안에 있다. 즉 이 인식은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변양의 관념은 인간 정신에만 관계되는 한, 말하자면 전제 없는 결론과도 같다. 바꾸어 말하면 그 관념은 (그 자체로 자명한 것처럼) 혼란스러운 관념이다. (…)
인간 신체의 어떤 변양變樣(변화상태)의 관념에 대한 관념은, 인간 정신의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신체의 변양의 관념은 신체 그 자체의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는 그 본성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정신의 본성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관념의 관념도 또한 인간 정신의 본성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는다. 또는 그것에 관해 충분한 인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은 사물을 자연의 공통적인 질서에 따라 지각할 때 언제나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신체 또는 외부의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하고 기형적인 인식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정신은 오로지 신체의 변양을 지각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정신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정신의 신체의 변양의 관념에 의해서만 자신의 신체를 지각한다. 그리고 또 정신은 그 신체의 변양의 관념에 의해서만 외부 물체를 지각한다. 따라서 정신은 신체의 변양의 관념을 갖는 경우 정신 자체에 관해서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도, 외부의 물체에 관해서도 충분한 인식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기형적이고 혼란한 인식만을 가질 뿐이다.
정신은 자연의 공통적 질서에 따라 사물을 지각할 때마다, 바꾸어 말하면 외면적인 사물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이것저것을 관상하게끔 결정될 때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신체 및 외부의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혼란하고 기형적인 인식밖에 갖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많은 물체를 동시에 관상하는 것처럼 내부로부터 결정될 때처럼 사물의 일치점, 차이점, 반대점을 알게끔 결정될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이 이런저런 방법에 따라 내면적으로 결정될 때마다 사물은 명료하게 관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신체의 지속에 관하여 매우 불충분한 인식만을 갖고 있다.
우리들 신체의 지속은 신체의 본질에 의존하지 않는다. 또 신의 절대적 본성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체는 다른 원인에 의하여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되도록 결정된다. 이 원인도 다시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결정되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그러므로 우리들 신체의 지속은 자연의 공통적 질서와 사물의 배열 상태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인식은, 인간 신체의 관념만을 갖는 경우의 신 안에서가 아니라 모든 사물의 관념을 갖는 경우의 신 안에 내재한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들 신체의 지속에 관한 인식은, 인간 정신의 본성만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일 때의 신 안에서는 매우 불충분하다. 다시 말해 이 인식은 우리의 정신 안에서는 지극히 불충분하다.
우리는 우리의 외부에 있는 개물의 지속에 관하여 매우 불충분한 인식밖에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각 개물은 인간 신체처럼 다른 개물로 인하여 스스로의 존재와 작용에 있어 일정한 방법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또 이 개물도 다른 개물에 의하여 결정되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 즉 우리는 개물의 지속에 관하여 매우 불충분한 인식밖에 갖지 못한다.
모든 개물은 우연적이며 소멸 가능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물의 지속에 관한 충분한 인식을 하나도 가질 수가 없으며, 바로 이 이유로 말미암아 사물의 우연성과 소멸 가능성을 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의미가 아니고서는 우연인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관념은 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는 참된 것이 된다.
신 안에 있는 모든 관념은, 그것의(대상, 바꾸어 말하면) 관념화된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관념은 참(眞)이다.
관념 안에는 그 관념을 허위로 만들 만한 적극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만일 이것을 부정한다면-가능하다면- 오류와 허위의 형상을 구성하는 사유의 어떤 적극적인 양태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사유의 양태는 신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 그렇게 생각될 수도 없다. 따라서 관념 안에는 그 관념을 허위로 만들 만한 적극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들이 갖는 절대적이며 충분하고 완전한 모든 관념은 참된 것이다.
우리들 안에 완전하고 충분한 관념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들 정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 안에 충분하고도 완전한 관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곧 이런 관념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허위는 불충분하고 기형적이며 혼란된 관념이 포함하는 인식의 결핍에 있다.
관념 안에는 허위의 형상을 구성하는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없다. 그런데 허위는 (인식의) 절대적인 결핍에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못되거나 기형적이라고 말할 때, 그 대상은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기 때문이다. 또 허위는 절대적인 무지 속에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무지와 오류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위란, 사물의 불충분한 인식, 혹은 불충분하고 혼란된 관념을 포함하는 인식의 결핍에 있는 것이다. (…)
불충분하고 혼란스러운 관념은 충분하고 명료한 관념과 같은 필연성에 의해서 생겨난다.
모든 관념은 신 안에 내재한다. 그리고 그 관념은 신과 관계를 맺는 한 참된 것이며, 또 충분하다. 따라서 그 관념은 어느 인간의 개별적인 정신에 관계되는 한 불충분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므로 모든 관념은, 그것이 충분한 관념이든 불충분한 관념이든 모두 같은 필연성에서 생겨난다.
모든 사물에 공통적이며, 부분 안에서나 전체 안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결코 개물의 본질을 구성하지 않는다. (…)
모든 것에 공통적이며 부분에서나 전체에서나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인간 신체 및 항상 인간 신체를 자극하는 몇 개의 외부 물체에 공통적이며 특유한 것, 그리고 이들 각 물체의 부분에서나 전체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 이런 존재물에 대한 관념도 또한 정신 안에서 충분하다.
(…) 신체가 다른 여러 물체와 함께 공통적인 점을 좀더 많이 가질수록, 정신도 그만큼 충분히 여러 가지 사물들을 지각할 것이다.
정신 안의 여러 충분한 관념에서부터 정신 안에 생겨나는 모든 관념은 언제나 충분하다.
우리가 인간 정신의 내부에 있는 충분한 여러 관념들 중에서 하나의 관념이 정신 안에 생겨난다고 말할 때, 그 관념은 무한한 경우의, 또는 대단히 많은 개물의 관념에 의하여 변양된 경우의 신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 정신의 본질만을 구성하는 경우의 신을 원인으로 하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이 관념은 신의 지성 그 자체 안에 존재한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그러므로 그것은 충분해야 한다). (…)
제1종(의견oponio 혹은 표상imaginatio)의 인식은 허위(오류)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에 반하여 제2종(이성), 제3종(직관지直觀知scientia intuitiva)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참된 인식이다.
불충분하고 혼란한 모든 관념은 제1종의 인식에 속한다. 따라서 이 인식은 허위의 유일한 원인이다. 제2종, 제3종의 인식에는 충분한 관념이 따른다. 그러므로 이들 인식은 필연적으로 참이다.
우리들에게 허위와 참의 구별을 가르쳐 주는 것은, 제1종의 인식이 아니라 제2종과 제3종의 인식이다. (…)
참된 관념을 갖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이 참된 관념을 지니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의 진리를 의심할 수 없다.
우리들이 갖는 참된 관념은 신의 내부에, 즉 인간 정신의 본성에 의하여 설명되는 경우의 신에 내재된 충분한 관념이다. (…) 따라서 충분한 관념을 갖는 사람은, 바꾸어 말하면 사물을 참되게 인식하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인식에 대한 충분한 관념 혹은 참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는 동시에 그것에 대하여 확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실제 빛이 빛 자신과 어두움을 밝혀 주는 것처럼, 진리는 진리 자신과 허위와의 규범 역할을 한다. (…) 참된 관념이 허위의 관념에 대해 가지는 관계는, 존재가 비존재에 대해 가지는 관계와 동일하다. (…) 우리의 정신은, 사물을 참되게 지각하는 경우에 한해서 신의 무한지성無限知性의 일부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정신의 명료하고 판연한 관념은 신의 관념과 똑같이 참된 것이다.
이성의 본성은 사물을 우연적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관상한다.
이성의 본성은 사물을 참되게 지각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사물을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서 지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과거와 미래에 관하여 우연적인 것으로 관상하는 현상은 오로지 표상력에 의존한다. (…)
이성의 본성은 사물을 어떤 영원한 상像 아래에서 지각하는 것이다.
이성의 본성은 사물을 우연적인 것이 아니고 필연적인 것으로 관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은 사물의 필연성을 참되게, 즉 그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지각한다. 그런데 사물의 이 필연성은 신의 영원한 본성의 필연성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이성의 본성은 이 영원의 상 아래에서 사물을 관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성의 기초는 개념이다. 그 개념은 모든 사물의 공통적인 것을 설명하고, 어떤 개물의 본질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 개념은 시간과 아무런 관계없이, 어떤 영원한 상相을 근거로 (상 밑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물체 혹은 개물에 대한 관념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현존하는 개물의 관념은, 그 개물의 본질 및 존재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개물은 신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개물은 자신이 그 양태로 되어 있는 속성 밑에서 생각되는 경우의 신을 그의 원인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물의 관념은 자신이 속해 있는 속성의 개념, 즉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필연적으로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는 지속이 아니다 즉 추상적으로 생각되는 경우의 존재, 이른바 일종의 양量으로 생각되는 경우의 존재가 아니다. (…)
모든 관념이 함유하는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관한 인식은 충분(타당)하고 완전하다.
가령 사물이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고찰된다 해도 그 사물의 관념은, 전체에 관해서나 부분에 관해서나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관한 인식을 주는 것은, 모든 사물에 공통적이며 부분에서나 전체 안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인식은 충분한 것이다.
인간 정신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관한 충분한(타당한) 인식을 갖고 있다.
인간 정신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체와 외부 물체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지각하는 여러 관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간 정신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관한 충분한 인식을 갖고 있다.
(…) 모든 것은 신 안에 내재하며 신으로 말미암아 생각되기 때문에, 그 결론으로서 우리는 이 인식에서 충분한 인식을 이끌어내고, 따라서 제3종의 인식(직관지)을 형성할 수 있다. (…)
그러나 사람들은 신에 대해서는 공통 개념보다 더 명료한 인식을 가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신을 물체처럼 상상할 수 없으며, 신의 명칭을 자신들이 습관적으로 보아온 사물들의 상상에 결부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인간에게는 불가피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외부 물체로부터 자극받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오류는, 사람들이 사물의 명칭들을 바르게 부르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원圓의 중심에서 원주를 향하여 그어진 모든 선線이 같지 않다고 말할 때,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틀림없이 원을 수학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잘못 계산할 때, 그것은 그의 정신 안의 수와 종이 위의 수가 다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만일 그대가 그의 정신을 본다면, 그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까닭은, 그가 종이 위의 수와 똑같은 수를 정신 안에 보유하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의 오류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
정신 속에는 절대적인 의지, 즉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정신은 이것저것을 의도하게끔 하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결정되고, 이 원인은 또 다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다시 이것은 다른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무한히 진행된다.
정신은 사유의 한 양태이다. 따라서 정신은 자기 활동의 자유원인이 될 수도 없으며, 또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하는 절대적 능력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정신은 이것저것을 의도하도록 원인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원인도 또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결정되고 그 원인도 역시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결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된다. (…)
정신 안에는 관념으로서의 관념이 포함하는 것 이외의 어떤 의지 작용도, 즉 긍정 및 부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의 내부에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하는 절대적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개의 의지작용, 즉 이것 또는 저것의 긍정이나 부정이 존재할 뿐이다. (…) 즉 의지작용은 관념 이외의 다른 무엇도 아니다.
의지와 지성은 같은 것이다.
의지는 개개의 의지작용이며, 지성은 개별적인 관념이다. 그런데 개별적인 의지작용과 관념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와 지성은 동일한 것이다.
허위(오류)란, 기형적이고 혼란스러운 관념이 내포하는 결핍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잘못된 관념은 허위이기 때문에 확실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이 잘못된 관념에 만족하여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확실한 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혹은 그의 표상을 흔들리게 하는 원인(그가 그것을 의심하는 원인)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잘못된 관념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불과하다. (…)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허위의 관념을 끝까지 고집한다고(즉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해도, 우리는 그가 그것에 대해 확실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확실성을 어떤 적극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회의의 결핍으로 이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확실성의 결핍을 허위로 이해한다.
(…) 의지란 모든 관념에 적용되는 무엇인가 보편적인 것, 또 모든 관념에 공통적인 것, 바꾸어 말하면 긍정만을 의미하는 어떤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가 이처럼 추상적으로 생각되는 한 의지의 충분한 본질은 모든 관념 안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볼 때, 의지의 본질은 모든 관념에 대하여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물론 의지가 관념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에 한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개별적인 긍정은 관념 그 자체처럼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원의 관념이 내포하는 긍정과 삼각형의 관념이 내포하는 긍정은, 원의 관념이 삼각형의 관념과 서로 다른 것처럼 서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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