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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Haeparang Trail)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면서
너와 내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총 길이 770km의 걷기여행길이다
2010년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해파랑길을 선정하였으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구계항
구계리(龜溪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로 구계천이 바다로 흘러든다
구계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 앞 바위의 모양이 마치 새우가 물에 떠 있는 형상과 같아
하부(鰕浮)라 하다가 변하여 구배, 구계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이고
깊은 계곡이 있어 구계(龜溪)라고 했다고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구계, 농방웃골, 불당골, 머시밭골, 백맛골, 웅굴골마을 등이 있으며
구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농방웃골마을은 농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마을은 불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머시밭골마을은 모시밭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백맛골마을은 백마산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웅굴골마을은 우물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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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연휴 며칠동안 비가 계속 내리더니
해파랑길 잘 하라고 응원을 해 주는 듯
오늘은 흐리기만 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일기예보를 보니
종일 흐림으로 나온다
비오지 않음이 다행이라 생각하고
며칠전 굴업도 비박에서 섬공기를 과하게 마신 탓인지
별로 좋지 않는 감기를 친구로 델꼬 와 아직도 떠나 보내지 못한체
무거운 마음으로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짙어진 초록잎새에
이팝나무꽃과 아카시아꽃이 눈꽃처럼 피어있는
눈부심에 시선을 두는 사이 구계항에 도착하다
간단하게 체조를 하고 회색빛 가득함 속에서 시작한다
파도소리에 못이겨 방파제에 오르니
처얼썩~ 처얼썩~~우렁차게 쉴새없이 포말을 그려댄다
남호해수욕장
강구면과 남정면 경계점 7번 국도변에 위치하며
삼사해상공원과 강구항에 인접 해 있다
약 600m정도의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이며
면사무소에서 서비스가 좋은 소규모의 해수욕장이라고 소개 되어 있다
남호리(南湖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로, 조선시대에 역전(驛前)으로 불렸다
냄불, 남역불, 내무뿔로도 불렸는데 이는 남역 앞에 있는 벌(모래사장) 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목불(川木沙) : 개척 당시 바닷가 중간에 내가 흐르고 양 주변에 큰 버드나무가 번성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 예보가 분명 없었는데 한방울씩 비가 내린다(우산 쓸 정도는 아니지만....)
비가 굵게 내리기 전에 우의를 입고 진행한다
파도소리 담느라 열공~~~
날씨가 맑았으면 더 멋질텐데~~그래도 파도소리는 끝내준다
그럴 것이다
더 좋은 것은 그 파도 위에서 춤을 추며 즐기는 것.....
빨간장미가 이쁘게 응원을 해 준다
갯메꽃.....햇빛이 없어서 활짝 피지 못하고 있다
남정항
파도가 세게 쳐서 자칫하면 발에 물이 들어 올 수도 있는 길을 걷고
지난 태풍의 안타까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벌노랑이
검색을 해 보니
세가지의 종류가 있다
벌노랑이는 꽃송이가 3개씩 달려 피고
서양벌노랑이는 5개
갯벌노랑이는 2개씩 달려 핀다
렌즈에 빗물이 묻을 줄도 모르고서.......
아주 약하게 한방울 한방울 내리던 비는 제법 내린다
갯완두
어릴때 시계 만들었던 토끼풀
강구면(江口面)
경상북도 영덕군의 남쪽에 있는 면으로 북쪽으로 영덕읍, 서쪽으로 달산면(達山面)
남쪽으로 남정면(南亭面)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강구면은 조선시대 원래의 오보면(東面, 元烏保面)의 하저(下渚), 금진(金津), 소하(小下)의 3개 동과
중남면(中南面)의 상검(上劍), 하직(下直), 상직(上直), 화전(花田), 소월(素月), 삼사(三思), 강구(江九)의
7개 동이 합쳐져 10개 법정리로 강구면으로 새로이 탄생한 면이며 면 소재지는 오포리이다
강구항이 있고 오십천 물이 강구항을 통해 바다로 유입한다
이때 면 이름은 강구항이 있는 강구리 명칭을 땄는데 강구리는 오십천 하구라 해서
강구(江口)라고 불렀다
'해동지도'(영덕)에 '강구진(江口津)' 명칭이 표시되어 있다. '여지도서'(영덕지도)를 보면
이곳을 삼강(三江)이라는 지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오십천과 두 개 소지류들이 이곳에서 합쳐지기 때문에 '서망'이라고 한 것 같다
삼사리(三思里)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리(里)이다
오십천이 남동쪽의 바다로 흘러드는 해안지역으로 논농사와 수산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신라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숨어 살았다 하여 삼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삼시랑, 넓적방우, 늘팽잇골, 주막거리, 효자각모퉁이마을 등이 있다
삼시랑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삼사리의 그것과 같다
넙적방우마을은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늘팽잇골마을은 늪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주막거리마을은 주막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효자각모퉁이마을은 효자각의 모퉁이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영덕 삼사 해상 산책로
233m의 삼사 해상 산책로는 2011년에 완공되었다
바다 위를 걸어보는 묘미와 산책로 끝에서 조망해 보는
삼사리와 망망대해가 볼 만한 곳이다
삼사항
골목길을 오르면
탐스럽게 피어있는 공조팝나무
삼사공원입구이다
삼사해상공원(三思海上公園)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에 있는 해상공원으로 1988년부터 개발된 종합 유원지이다
9m 높이의 인공폭포를 비롯하여 20m/t 급의 천연 공작 매화석, 기둥 분수와 연못
이북 5도민의 망향을 달래기 위해 1995년에 세운 망향탑,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높이 420㎝, 지름 250㎝, 무게 약 29t의 '경북대종(慶北大鐘)' 등이 있다
경북대종 아래 1만 900㎡ 규모의 삼사 해상 테마랜드에는
통나무 방갈로 11채와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1997년부터 해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면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안으로 들어간다
지나온 길 내려다 보고
이북도민 망향탑
씀바귀
아카시아꽃향이 폴폴~~~참 좋다
공사관계로 빙 둘러서 간다
하산 김한홍 선생 해유가비
광화문 육조거리 잡초가 무성하고 / 보신각 옛집 앞에 검은 옷이 횡행이라
북악산 늦은 송백 만상이 서글프고 / 자하동 호른 물은 여울 소리 목메이네(중략)
분하다 을사년에 국권추락 이 웬일고 / 영사관 협회부를 어렵쟎게 철폐하니
분기충장 이 같은 일 호소할 곳 어데런고 / 분통한 맘 서름겨워 통탄하고 돌아서서
서둘러 짐을 꾸려 미국 땅을 들어갈 새...
김한홍(金漢弘) 선생은 1877년 영덕군 강구면 하직리 태생으로
1894년 향중의 시회(詩會)에서 장원을 하는 등 일찍부터 한시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국운이 기울자 전국을 방황하다 26세 때인 1903년 진주에서 하와이에서
일할 노무자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기에 지원하여
그 길로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에서 노무자로 일하다 대한제국 주(駐) 하와이 영사관에 발탁되어 협회부 서기로
근무했으며 1905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로 진출하여 장사를 하다가 1908년 귀국
향리에서 칩거하다 일생을 마쳤다
'해유가(海遊歌)'는 김한홍이 1903년 12월부터 1908년 8월까지
미국 하와이로부터 시작되는 외국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한양대 국문학과 박노준 교수가 한국 학회에서 발행하는
한국 학보 64호에 가사의 전문을 실어 '미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보고 쓴 국내 유일의
국한문혼용 미국 기행기사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바다의 빛
산과 바다 강이 삼위일체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광의 고장, 영덕
유구한 역사와 향기 높은 문화를 창조해온 영덕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파도를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영덕군민의 꿈과 희망,
영광을 상징하였으며 자연과 문화를 소중히 가꾸는 고장, 영덕의 미래가 하늘과
땅끝까지 영원히 밝게 빛나길 기원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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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봄을 생각하면서
경북대종
경상북도 개도(開道) 100주년(1996)을 맞아 도민의 단결과 조국 통일 및 민족화합을
염원하며 환태평양 시대의 번영을 축원하는 삼백만 도민의 큰 뜻을 담고 있다
종의 모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을 본(本)으로
삼아 천인상과 비천상을 새겨 넣었다
대금부는 천인상은 문화예술의 고장을, 사과를 든 비천상은 경북의 풍요로운 결실을 상징한다
총 사업비는 18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종각은 대지 2,410㎡ 규모가 지상 1층 66.1㎡
지붕은 십자형 합각(合閣, 八作)으로 꾸몄으며 대종은 지름 250Cm, 높이 420Cm
무게 7,700관(약 31톤)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중 무게 칠천칠백관의 칠천은 남북한 겨례 칠천만을 뜻하고
칠백은 경상도의 명칭이 정해진 고려 충숙왕 원년으로부터 칠백 년을 가늠한다
종각이 세워진 이곳은 경북 영덕 삼사해상공원으로
동해의 찬란한 아침 햇살이 영원히 비칠 영지(靈地)이며
대종에서 울려 퍼지는 장엄한 종소리는 온누리에 평화와 사랑의 축복을 영겁에 전하리라
그리고 이곳 삼사(三思)'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하나는 '통일신라 시대에 세 사람이 시랑(侍郞) 관직을 지냈다'해서 '삼시랑(三侍郞)'이라 하고
또 하나는 '세 번 생각한다'라고 해서 '삼사(三思)'라고 부르는데
이는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한다'라고 한다
들어 갈려다 뒤돌아선다
아카시아향기랑 이팝나무향기 가득 맡으면서 도로따라 걷는다
공사때문에 빙 둘러서 오면 만나게 되는 갈림길
왼쪽으로 내려가서 해안따라 걷는다
강구 방파제의 등대가 보이고
애기노랑토끼풀
오포리간이해변
오포리(烏浦里)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리(里)이다
마을 뒷산의 형상이 ‘까마귀머리’ 같다 하여 오포(烏浦)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 지역으로서 오개 또는 오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강구(新江口)와 합쳐져 영덕면으로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강구면이 신설되자 강구면에 이속되었고, 1988년 동(洞)이
리(里)로 개칭되어 오포리가 되었다
동쪽의 오십천(五十川)을 가로질러 오천리와 강구리를 잇는 강구대교와 강구교가 놓여 있으며
서쪽으로는 화정리와 원직리, 남쪽으로는 삼사리, 북쪽으로는 금호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괘방과 신강구 등이 있다
오포리에는 강구면 사무소와 강구 시외버스터미널, 강구 초등학교 그리고 강구 5일장이
열리는 강구시장과 일명 강구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오포리 해수욕장이 있다
분홍낮달맞이꽃
오포3리
오십천 우측 주차장 위 2층에 길게 조성되어 있는 길로 올라간다
오십천
강구파출소옆에서
19코스 마지막이자
20코스 시작점 스탬프를 찍는다
오포리에서 오십천을 건너 강구리를 연결하는 구)강구교는
노후로 철거되고 2026년까지 신강구대교가 건설된다고 한다
강구대교를 건너기 위해 직진해서 간다
강구대교
범선(돛단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마치 범선을 타고 강구항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 되었다고 하며
6,800여개 전등을 달아 야간에는 빛의 향연을 벌인다고 한다
저 다리를 건너서 간다
강구대교
영덕 오십천(盈德五十川)
경상북도 영덕군의 지품면·영덕읍·강구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이다
지품면 북서쪽 끝 기사리의 주왕산국립공원 내에서 발원하여, 지품면을 관통한 뒤
영덕 읍내 외곽을 거쳐 강구항에서 바다로 빠져나간다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하천이며 유역 충적 지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대서천(大西川), 신안천, 관동천, 덕곡천 등 소하천들이 합류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십천은 현의 성 서쪽에 있다
그 근원은 둘인데 하나는 임물현(林勿峴, 지금의 지품면 황장리 황장재)에서 나오고
하나는 달로산(達老山, 지금의 달산면 봉산리에 있는 산)에서 나온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현에서 지품원(知品院)에 다다를 때까지 (강을) 50번 건너야 하는데서
그 이름이 생겼다."라는 기록도 있다
한편 예전에는 영덕 오십천의 하류를 부르는 별도의 명칭이 있었다
『여지도서』(영덕)에 '포내천(浦內川)'으로 기록되어 있고 오십천의 하류라는 설명을 달았다
'포내천'이라는 명칭은 이곳에 있던 포구 '오포(烏浦)'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 『광여도』(영덕)에는 '남천(南川)'으로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남쪽에 있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오십천변엔 풍물대게 회센타가 쭉 있다
건너와서 본 강구대교
강구대교를 건너 강구리로 들어서서
대게음식점이 즐비한 대게거리를 걷는다
강구리(江口里)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리(里)이다
오십천이 남동쪽의 바다로 흘러드는 해안지역에
강구항이 있어 수산업이 주로 이루어지며
논농사도 행해지는 곳이다
강어귀가 되므로 강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강구, 아릿마, 웃마, 항구, 못골, 전기회사 마을 등이 있다
강구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강구리의 그것과 같다
아릿마마을은 강구 아래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웃마마을은 강구 위쪽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항구마을은 항구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못골마을은 못이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전기회사 마을은 전기회사가 자리한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영덕 블루로드 스탬프 찍는 곳에서 좌측의 골목길로 가야
고불봉으로 갈 수 있는데 지나쳤다(집에 와서 검색 해 보니....)
강구항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대게로 유명한 곳이다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의 대게 철에는 수많은 대게잡이 어선들이 이곳에 집결한다
대게 위판장이 운영되며 일명 ‘대게 거리’로 불리는 식당가가 3km에 이른다
은어낚시로 이름난 영덕의 주요 하천 오십천(五十川)이 강구항 남쪽을 통해 바다로 빠져 나간다
오십천이 동해로 유입되는 강어귀에 자리하여 '강구'라 부르게 되었다
2011년 3월 9일 국가어항에서 항만인 연안항(지방 관리 연안항)으로 승격되었으며
한국 관광의 중심지이다
주변은 영덕대게거리(강구항대게거리), 영덕해파랑공원, 삼사해상공원, 오포해수욕장 등 관광 명소가 많다
천하일미 영덕대게
영덕대게의 맛을 어찌 몇 줄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맛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맛이랍니다
붉고 하얗게 쭉쭉 갈라지는 살점은 눈이 먼저 맛을 보고 침을 삼키게 됩니다
입에 넣으면 퍼지는 쫄깃한 식감과 대게 특유의 향긋한 맛
과연 천하일미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다 먹고 난 뒤면 어찌나 서운한지 그 어떤 것으로도 허전함을 채울 수 없는 바다가 주는
행복한 맛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덕대게는 바다의 맛입니다
권근이 지은 《양촌집》을 보면 930년 태조 왕건이 안동 하회마을 부근 병산 전투에서
견훤 군사를 크게 무찌를 때 안동의 지배세력과 영해부의 토호세력들이 왕건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왕건은 경주로 갈 때 영해와 영덕을 들려서 갔습니다
이때 영덕대게를 처음 맛본 왕건은 돌아가서는 그 맛을 잊지 못했고 그러한 연유에서 영덕대게는
고려 개국 이후에도 궁궐 진상품으로 수라상에 진상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게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 중 하나가 '죽해'라는 이름인데 대나무를 닮은 게란 뜻입니다
대나무 섬에서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대나무를 닮은 마디가 여섯인 게
혹은 이상한 벌레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도 합니다
조선말 문신이자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던 최영년은 자신이 저서 《해동죽지》에
"영덕에서 나는 게가 가장 맛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화에 등장하는 게는 갑각류의 대표주자로서 갑(甲), 즉 천간의 첫째라 장원급제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준비생들에겐 게를 많이 먹인다고 합니다
대게는 지방함량이 적어 맛이 담백하고 소화가 잘 되 기력이 보강된다고 합니다
껍질에 많이 든 키토산은 체내 지방축적을 방지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작용으로
다이어트에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대게거리....딴세상을 거닐고 있는 듯 하다
계속 직진을 한다
비상하는 비둘기떼와 영덕대게를 소재로 만든 조형물
화장실도 특이하게....
금진리
나루 뒷산에서 구리쇠가 많이 났으므로 쇠날기라 하다가 변하여
쇠나리 또는 금진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지금부터 약 4백년 전인 16세기 후반에
김해허씨와 밀양박씨가 마을을 개척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소하동을 병합 금진동이라 하여 오보면에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고
현재 행정동으로는 금진1,2리고 분동되어 있다
금진리의 위치는 동은 동해에 임하고
서는 금호리 남은 강구리 북은 하저리가 있으며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강축(江丑)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소하도:금진 남쪽에 있는 마을
아릿마:쇠나리 아래에 있는 마을
웃대마: 쇠나리 위에 있는 마을
비 맞은 갯메꽃
하저리
바닷가 백사장에 위치한 마을인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부터 약 6백여년전 순흥안씨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고
임리라고 하다가 그 뒤 기계유씨와 밀양박씨가 차례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 지역으로써 동해 바닷가의 전형적인 해안마을로
1914년 임리를 병합하여 하저동이라 하고
오보면에 속했다가 1934년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다
위치는 동은 동해,서는 고불봉 고개를 넘어 영덕읍 우곡리
남은 금진리,북은 해안을 낀 강축도로를 따라 영덕읍 대부리가 있다
방학중 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 출신으로 8도를 두루 돌아 다니면서 많은 일화를 뿌렸고
이것이 민담이 되어 우울하다가도 방학중의 이야기만 나오면 웃음이 터지고
근심 걱정이 씻은 듯 사라졌다고 한다
숲밭(임리) : 하저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숲이 많은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저교를 건넌다
하저리 해수욕장
강구면 해안도로 변에 위치한 백사장 길이 약 1Km 정도의 해수욕장으로
갯바위가 많아 낚시꾼들이 사시사철 많이 찾는 곳이다
갯메꽃
하저항
계속 바람에 비는 내리고 있다
대부리
16세기경 안씨가 터를 잡았으며 그 뒤 송씨가 들어와서 제당을 짓고
동명을 태고진이라 했다가 태부를 거쳐 다시 대부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 지역으로 태부라 하였는데
1914년 태부동으로 하여 오보면에 소속 시켰다가 1934년 대부동으로 하여 영덕면에 편입시켰다
대부리의 위치는 영덕읍 소재지에서 동북 해안쪽으로 7km 거리에 있는 해안마을로 동은 동해에 닿고
서는 삼계리와 남은 강구면 하저리,북은 창포리가 있다
샛것마을 : 대부리 동쪽에 있는 마을
아릿것마을 : 대부리 아래에 있는 마을
웃것마을 : 대부리 위에 있는 마을
모래지치.....바람에 흔들려 제대로 담지 못했다
오늘은 파도축제날인 것처럼 엄청나게 친다
대부리 마을은 꺠끗하게 벽화를 이쁘게 그려 놓았다
2013년 사람사랑 봉사단이란는 단체에서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나가고 생기를 잃어가는
어촌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약 2년간의 수고를 통해
대부리 담장 구석구석을 생기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파도가 엄청난데 낚시를 하는....
버스승강장 안으로 들어가서 휴식겸 간식을 먹는다
어촌마을다운 소박한 해양경찰서
창포리로 접어든다
창포리
유래는 이 마을은 붓꽃이 많이 피는 갯가가로'붓개'또는 창포라 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기인 7세게경에 임씨기 개척 17세기경 임경업장군의 후예가 정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대한제국 때에는 영덕군 동면,1934년 영덕면에 편입되었다
영덕은 대게뿐만 아니라 청어의 고장으로도 유명한데
영덕읍 창포리 앞바다에는 옛부터 청어가 자주 출몰하여 마을 토박이들은 청어를 잡아서 먹었는데
여러가지 방법으로 청어를 요리해 먹었다고 합니다
파도는 쉴새없이 포말을 그리고
무섭게 치는 파도
해당화
선박모양으로 만든 해양체험관
대양의 빛
거대한 게를 두손으로 들고 있는 높이 10m의 조각상으 로
작품의 제목은 "대양의 빛" 으로 영덕의 화합에너지가 大洋의 빛을 담아
세계적인 명품 영덕대게를 힘차게 들어올리는 형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이들에게 동해의 잠재된 에너지와 거대한 기운을
담아드린다는 해설이 붙어있다
창포말등대
1984년 6월에 영덕읍 창포리 끝단인 ‘창포말(菖蒲末)’에 세워진 등대로
42km 떨어진 바다에 6초에 한 번씩 불빛을 비추며 동해안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특히 창포말등대는 처음에는 보통 등대와 같이 원통형 흰색 콘크리트 등대였으나
2006년 해양수산부가 실시한 ‘조형등대 현상공모전’에서 통영 도남항의 연필등대,부산 송도해수욕장의 고래입표
(입표 : 암초, 노출암 등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설치하는 등화가 없는 주간용 경계표)와 함께 당선 돼
독특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영덕의 상징인 대게의 집게발이 24m 높이 등탑을 감싸고 올라가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색 등롱(燈籠)을 잡으려는 모습으로 디자인된 창포말등대는
현재 영덕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발전했다
특히 2019년 10월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이달의 등대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해안에서 가장 선명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해안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약 1억 5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화강섬록암이 분포하고 있다
이 암석에서는 단열구조, 포유암, 침식구조 등 여러 지질구도들이 관찰된다
단열이란 자연적인 힘에 의해 암석이 갈라진 구조를 말하며, 약속바위는 단열구조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명소이다
화강섬록암에서 관찰되는 얼룩무늬는 화강섬록암을 만든 마그마와
다른 성분의 마그마가 섞여서 만들어진 '포유암'이다
이곳에서 관찰되는 침식구조는 파도의 힘으로 암석이 깎여 형성된 것으로
마당바위는 화강섬록암이 편평하게 깎여서 만들어졌으며
곳곳에 분포하는 돌개구멍들은 파도에 쓸려 움직이는 자갈이
암석의 표면을 깎으면서 만들어졌다
강축도로 준공 기념비
강구와 축산항을 연결하는 해안도로의 준공을 기념하는 조형물
영덕 해맞이공원
1997년 산불로 황폐해진 곳을
자연 그대로의 공원으로1998년 착공 2002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해맞이 공원은 64km 청정해역이 펼쳐지는 강축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전면의 푸른 바다와뒷면 넓은 초지
해송조림지로 열린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오늘 계획은
구계항~삼사해상공원~강구대게거리~고불봉을 찍고 되돌아 나와서
영덕환경자원관리센타 입구 삼거리에서 마치게 되어 있는데
고불봉 들어가는 곳을 찾으면서 비바람에 정신없이 걷다보니
20코스 끝지점과 21코스 시작점까지 와 버렸다
아뿔싸~~~
버스도 택시도 거의 없는 곳이라
산악회 버스 있는 곳으로 갈려면 황당한 상황이다
전화를 한다
마무리하고 이쪽으로 와서 태우고 간다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스탬프 찍는 곳 옆에 간이매점이 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계속 오기에
어쩔 수 없이 사정을 이야기 하고 그 안에서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다시 전화를 한다
아직 후미가 다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끊고 기다리던 중
매점 아주머니의 친구분이 오셨다
죄송하지만 산악회 버스 있는 곳까지
좀 태워달라고 부탁을 드려 편안하게 이동한다
도착하니 아직도 후미는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텐데
그 아주머니 덕분으로 잘 왔다는 생각이다
후미가 다 온 후 뒷풀이까지 하고 출발한다
**
종일 비랑 파도랑 바람과 동행하면서
20코스를 끝까지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해안길을 걸었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 해안길을 잘 걸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 해파랑길이었다
다음 코스때는 맑은날씨를 기대 해 보면서
이번에도 많은 사진으로 그날의 흔적을 남겨 보면서
비오는날 함께 하신 모든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3. 5. 7(일)
첫댓글 남의 떡에 설 쇤다는 옛말에 실감
강구항부터 볼거리가 더 많은것 같습니다
산길은 비슷하여 특별이 기억에 남지 않는데
샘터님 후기를 보니~~나도 알바 할것~~
즐감하였습니디
와^^
대단하시네요~~
구석 구석…
내가 못 간 구간이 너무나 많아요…
존경합니다.
거기다~~
자세한 해설까지
고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