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연중 제6주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 20)
-류해욱 신부
행복 선언과 피리 부는 사나이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그 임금님은 절대 권력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고, 젊고 똑똑한 왕자, 예쁜 공주, 충직한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그 런데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무엇일까요? 바로 행복이었어요. 그는 다른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데 ‘행복’만은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속 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임금인 자기는 모든 것을 지녀야 하는데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임금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슬프고 싫어졌어요. 그러니 임금님은 아주 불행할 수밖에요. 그는 결심했어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 기필코 행복을 갖고 말리라.’ 임금님은 궁정대신을 불러서 말했어요.
“나는‘행복'을 갖기를 원한다. 그대는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줘라. 그대가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면 내가 상으로 큰 부를 줄 것이지만 만약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리라.”
궁정대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는 임금님이 행복하지 않다니! 그리고 임금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니! 그러면 자기가 어떻게 임금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과연 누가 임금 님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가? 그는 임금님에게 아뢰었어요.
"폐하, 제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제가 모든 경전을 다 뒤져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다른 신하들과 함께 밤새도록 경전을 연구하면서 행복을 얻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 법은 경전의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어요. 아무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런데 그 는 궁리 끝에 아주 그럴듯한 묘안을 찾았어요. 그는 임금님께 아뢰었지요.
“폐하, 드디어 임금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폐하께서 지닌 위엄이 바로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폐하께서는 행복한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의 속옷을 입으시면 행복해 지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은 기뻤어요. 절대 권력을 지닌 그가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구해 입는 일이야 그야말로 식은 죽 먹 기라고 생각한 그는 명령했어요.
“어서 가서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가져오도록 해라.” 궁정대신과 신하들은 서둘러서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구하러 나갔지요. 먼저 부자들을 찾아가서 전후사정을 이야기 하면서 속옷을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부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말했어요.
“임금님께서 원하신다면 속옷이야 얼마든지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이제 부터 하인들을 시켜서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구해야겠습니다. 사례는 후하게 드릴 테니 행복한 사람을 찾거든 저에게도 알려 주십시오.”
궁정대신과 신하들은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요.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했어요.
“임금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속옷이 아니라 목숨이라도 바치겠지만, 저희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하지 않 으니 저희의 속옷은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궁정대신은 자기가 내었던 묘안이 결국 덫이 되어 자기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어요. 그런 데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행복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대감께서도 그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겁니 다. 그는 밤이 되면 강가로 나와서 피리를 불지요. 그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음률에 모두가 행복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평화롭고 행복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궁정대신과 신하들은 밤을 기다렸다가 강가로 나갔습니다. 정말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피리를 불고 있 었습니다. 피리 소리는 너무나 행복에 넘친 평화롭고 아름다운 음률이었습니다. 궁정대신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지요.
“아, 드디어 이제 행복한 사람을 찾았다.”
그들이 그 피리 부는 사람에게 다가가자 그가 피리 부는 것을 멈추고 말했지요. “어서들 오시지요.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궁정대신이 물었어요.
“당신은 행복하시지요?" 그가 대답했지요. “물론이지요. 저는 행복합니다. 사는 것이 즐겁고 기쁘답니다. 그런데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궁정대신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말했지요. “당신의 속옷이 필요합니다. 임금님을 위해 당신의 속옷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피리 불던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궁정대신이 다시 말했지요. “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오? 당신의 속옷을 주시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소.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속옷이 필요 하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속옷을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속옷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당신들은 저를 잘 볼 수 없을 테지만 저는 지금 벌거벗은 채 앉아 있습니다. 저는 속옷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원하신다면 제 목 숨이라도 내어드릴 수 있지만 속옷은 제게 없으니 드릴 수가 없습니다.”
궁정대신이 말했습니다. “아니, 속옷도 없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있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지요. 그런데 속옷조차 없게 되자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되었지요. 속옷이 없어도 이 피리 하나로 저는 행복하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새 번역 성경에서 '행복하여라'로, 공동번역에서 '행복하다'로 옮긴 부분은 '복되어라'로 옮기고 싶습니다. 희랍어 원문 에서 '마카리우스'라는 단어는 어원적으로 '신들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누리시는 기쁨이라는 의미로 그 기쁨을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말하지요.
원문에서 이 부분은 서술문이 아닙니다. 우리말로 치면 탄성을 지를 때 쓰는 감탄사에 가깝기 때문에 ‘행복하다’보다는 새 번역 성경의 ‘행복하여라’가 더 옳은 번역이고 알맞은 표현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산을 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깊은 연민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슬프고 온유하고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메세지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나 강요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은 가난하고 마음이 슬프고 정의에 목마르고 박해를 받지만 이제 여러분의 앞날에 희망의 빛이 비칠 것입 니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산으로 갔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인 산에서 그들은 위로와 평화를 얻었고 기쁨에 넘쳐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행복한 사람의 속옷 못 구하셔도 슬퍼하지 마세요. 예수님도 속옷이 없으셔도 행복하셨다는 것 잊지 마시고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유한 사람들에게 ‘불행하여라’고 외치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말씀의 자구에만 매이면, 예 수님이 사람들한테 저주를 퍼부으시는 것으로 잘못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은 축복을 주시는 분이지, 저주를 퍼부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그 축복을 거부하면 그것이 바로 그한테 저주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당신의 축복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예수님 마음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치셨고, 그것은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묵상 안에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연민과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깨닫습니 다.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류해욱 요셉 신부님/예수회 영성 지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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