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韓牛)라는 이름의 수난
조선 초 세종(世宗)대. 재상 황희(黃喜)가 길을 가다가 두 마리의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묻기를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가느냐?” 고 하니, 농부는 황희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로 “이쪽 소가 더 잘 갑니다.”라고 하였다. 황희가 이상히 여겨 “어찌하여 그것을 귓속말로 대답하느냐?”고 재차 물으니, 농부는 “비록 미물(微物)일지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니 한 쪽이 이것을 질투하지 않겠습니까?” 소의 영리함을 비유해서 전해오는 일화다.
(韓牛)라는 이름으로 일컫는 우리의 소는 수천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독특한 품종이다.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영리하다. 오래전에는 소를 생구(生口)라 하여 가족을 뜻하는 식구(食口)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도 도와주고 농사(農事)일도 거들었다. 재산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어느 날이다. 운전 중, 교차로 신호대기에 잠시 멈춰있는 동안 차창을 통해 지붕이 없는 대형차량에 실리어가는 여러 마리의 소(牛)들을 보게 된다. 그 중 흔들리는 차간에서 네발로 버티고 서있는 어린 송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만의 눈 맞춤이다. 젖어있는 검은 눈동자가 유독 커 보였다. 초점을 잃은 듯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이도 나만의 생각이다.
이내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짐작케 하는 것은 애써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소(牛)가 무리를 지어 드넓은 푸른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그들만의 대지에서 넉넉한 한 때를 즐기는 평화로운 초원의 정경을 떠올린다. 이제는 지난날의 목가적(牧歌的)인 그림일 뿐이다. 소는 채식동물이다. 뼛속까지 순수한 자연산이다. 순자연산이라는 이름의 모든 먹 거리는 곧바로 몸보신에 좋다는 건강식으로 매뉴얼(manual)화 되었다. 육식에 맛들린 사람들은 더 맛있는 연한 육질의 고기를 찾는데 익숙해졌다.
최근의 일이다. 사료 값이 턱없이 올라 송아지를 키워봐야 경제성이 없어 사육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야 어떻든 양질의 고기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맑은 햇살이 비추이는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생애를 즐기는 우공(牛公)의 여생을 허용하지 않았다.
초원을 떠난 소는 삶을 잃었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소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싱싱한 풀만 먹던 그들은 단시일에 체중을 부풀리기 위해 칸칸이 막힌 축사에서 사육된다. 싫든 좋든 인공사료를 먹고 살을 찌운 소는 인간의 탐욕스런 식탐(食貪)을 위해 생을 마친다.
소의 수명은 대략 15년에서 18년쯤 된다. 건강하게 잘 지내면 30여 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다. 가장 맛이 좋다며 도축되는 소의 나이는 겨우 세 네살 정도의 송아지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곁을 떠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된 생태계의 보고(寶庫)문명은 날이 갈수록 발달된다. 덕분에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편리함 뒤에는 그에 따른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된다. 는 고연에 숙고해야 된다.
‘앞으로 우리아이들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를 결코 먹을 수 없을 것이다.’ 라는 포 피시(Four Fish)의 작가 폴 그린버그(Paul Greenberg)의 예언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양식이든 축산이든 인간에 의한 사육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한우(韓牛)라는 이름의 수난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다음차례는 우리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