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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권하는 책들은 도대체 어떤 책들이어야 하나?
처음에 저희들은 아이들에게 권해 줄 만한 '성장소설'을 권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청소년기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성장기'라는 소박한 생각에서였습니다. 여기에 지난 세기에 우리나라는 농업화와 산업화, 정보화라는 세 개의 커다란 사회 변화를 단숨에 경험했다는 점을 중시하였습니다. 사회와 자신이라는, 겹으로 다가오는 변화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해 가기가 매우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장소설'이란 말을 간단하게 쓸 수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장소설이란 서구 소설에서 정착된 개념과 용어로서 근대시민사회의 출현과 맞물려 생각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서구의 경우 성장소설이란 근대시민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저변에 깔려 탄생한 소설 형태로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성장이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가며 그려진다는 성장소설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근대화 시기에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역사의 파행을 심각하게 경험한 우리 현실에서 서구적 의미의 성장소설들을 찾기란 힘들다는 것이지요.
많은 논의 끝에 일단 서구의 성장소설들에 해당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나 노발리스의 『푸른 꽃』,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디킨즈의 『데이빗 커퍼필드』, 『위대한 유산』 등의 성장소설들은 제외하고자 합니다. (별 고민 없이 권장도서목록의 자리에 서구 고전을 손꼽는 것은 진지하게 이야기해볼 주제이며, 이런 소설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혀질까 전국의 선생님들께서 신중하게 살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또한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아픔과 상처를 그리며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도 제외하였습니다. (왜 이런 류들 있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등. 열악한 현실을 호소하는 차원에 머물렀을 뿐 자아의 온전한 성장을 보여 주지 못하였지요.) 덧붙여 『연어』와 같이 동화의 구조에 기대어 성장을 다룬 소설들도 제쳐놓았습니다. 책/따/세 내부에서 이런 소설들이란 적당한 교훈과 달콤한 언어로 기묘하게 뒤섞은 '성장소설(?)'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이 소수지만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우리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만나게 되는 고민과 갈등, 혼돈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 실제로 해결에 도움을 받을 만한 소설들을 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책/따/세 선생님들이 자신의 빈약한 독서량을 탓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찾아 본 작품 가운데서 대표작들을 몇 개 고르고 지도 방법들을 소개한 다음, 다시 몇 가지 읽을거리를 덧붙여 보고자 합니다. 책/따/세 선생님들의 개성이 담긴 문체와 글의 형식을 따로 손보지 않았습니다. 형식과 문체도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책을 권하는 일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2. 우리 아이들에게 권해 줄 만한 책들은?
1)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사계절출판사, 중1부터, 843
시대적, 사회적 배경이 달라서 아이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좋아한 책이다. 190쪽 분량에 활자도 빡빡하지 않아 금새 읽힌다.
주인공인 로버트는 셰이커교도라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데다가 집안도 가난하다. 주인공과 50살 정도 나이차가 나는 아버지는 성실하고 노련한 돼지 도살꾼이지만 문맹이라서 투표조차 할 수가 없다. 아이는 한 집안의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해내면서 살고 있다. 12살이 된 로버트는 우연히 이웃집 암소의 출산을 돕고 암소 목에 있는 혹을 떼어주기까지 한다. 그 대가로 어린 돼지 핑키를 받아서 씨받이돼지로 키울 꿈을 키우며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핑키와 함께 뒹굴며 자라난다. 그러나 핑키가 새끼를 낳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로버트는 혹독한 가난 때문에 유일한 친구였던 핑키를 아버지가 도살하는 것을 쓰라린 마음으로 돕게 된다. 다음 해 봄이 오면서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이는 이제 13살의 가장으로서 자기 앞의 삶에 대해 맞서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란 도살꾼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면서, 힘든 경험을 통해 이제는 정신이 부쩍 커버린 로버트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려운 현실을 수용하고 자기 몫의 삶을 감당해 내려는 소년의 의젓한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놀랍다.
못 배우고 가난한, 그러나 성실한 아버지의 모습은 수필 <아버지의 손>을 떠오르게 한다. 이 글을 읽은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아버지의 삶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유의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면 좋겠다. 또한 이 글이 자전적인 것임을 일깨우면서 이 가난한 13세의 아이는 그 뒤 어떤 과정을 거쳐 작가로 성장하였을까 상상하여 써 보게 할 수 있다.(이 때 일확천금이나 후원자 등의 우연적 요소가 너무 부각되지 않도록 유의한다.) 가난한 시골아이가 작가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손춘익이 쓴 아동소설인 『땅에 그리는 무지개』(창작과비평사)를 더 권해 줄 수 있다.
홍진숙 (석관중 국어교사 keunfam@hanmail.net)
2)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터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 , 중2부터, 843
이 책의 원제는 주인공의 인디언식의 이름을 빌린 '작은 나무의 교육'인데, 번역하면서 붙인 멋진 제목으로 인해 읽기 전부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언제였을까? 혹은 언제일까. 의심을 품지 않고, 이해와 배려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꿈꾸던 시절이 있기나 한 걸까. 감수성이 예민하기는 했지만 조숙했던 나에게 성장기는 잘 견뎌내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던 시기였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나는 지금, 불안한 마음으로 삶의 길 입구에서 서성이는 성장기 친구들에게 이 '좋은' 책을 권하는 기쁨이 크다.
이 책은 미국 체로키 인디언의 후예인 저자가 일찍이 부모를 잃고 인디언이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일화식으로 서술한 일종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세상의 모든 헛똑똑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디언의 자연철학을 생활로 풀어내시는 작은 나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 지혜로운 어른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였다. 탈콘 매가 무리에서 처진 메추라기를 잡아채는 것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일러주시고, 그 이치가 혹독한 겨울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더욱 튼튼히 자라게 하는 것임을, 주변을 위해 거름이 되는 삶을 말해주시는 할아버지는 나에게도 성장의 본이 되는 어른이었다.
이 책의 끝부분에 미국 인디언의 강제이주의 역사가 담겨있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었을 때의 충격으로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 역사적인 인간으로서의 성장보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지혜를 통해 한 인간으로 자라는 작은 나무의 섬세한 내면이 잘 그려진 소설이다. 자연 속에서 풍요로워지는 대목에서는 시튼의 『작은 인디언의 숲』(두레)과 산 속에서 야생생활을 한 소년 이야기 『나의 산에서』(비룡소)가 겹치기도 한다.
밑줄 그을 부분이 참 많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딸아이의 동화책 『할머니가 남긴 선물』(시공주니어)에서 죽음에 임박한 할머니돼지가 잔치를 벌여야겠다며 손녀돼지와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과 따스한 흙냄새를 맡는 장면이, 『여름이 준 선물』(푸른숲)에서는 우연히 만나게된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한층 성숙해지는 세 소년의 얘기가 생각났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나에게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중반 이후에 잠깐 나오는 학교 풍경이었다. 인디언의 가치관과는 대척점에 선 교사의 몰이해, 학대받는 섬세한 내면의 소유자 작은 나무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동녘)의 제제와 『당나귀귀』(문원)의 레이몽이었다. 이 책을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에게 권한다.
서미선 (서울사대부속여중 국어교사 lechat84@hanmail.net)
3) 봄바람
박상률 지음, 사계절 출판사, 중1부터, 813
따스함이 실린 봄바람이 불 때면 대지에서는 겨우내 잠들었던 만물은 두터운 껍질을 힘겹게 벗으며 새싹을 틔우고 한살이를 시작한다. 이 점에서 봄이라는 계절과 그 때 부는 바람은 생명력이고 희망인 셈이다. 우리 인간도 인생에서 10대 청소년기를 봄의 계절로 간주한다. 10대의 별칭인 청춘이나 성숙 단계를 일컫는 사춘기라는 단어에서도 여지없이 봄이 들어있다. 결국 인생에서 10대 청소년기는 희망과 생명력이 넘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해 껍질을 깨고 허물을 벗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듯이 우리 인간도 모든 면에서 무지하고 미숙한 10대 청소년기에 성숙을 위한 고통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
『봄바람』은 섬마을 소년 훈필이가 성숙을 위해 겪는 희망과 좌절, 떠남과 돌아옴을 다룬 이야기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어지는 2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은 13살 어린 훈필이가 보고 느끼는 사랑과 그리움,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반감과 도전의 의지를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내용 전개가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오영수의 〈요람기〉와 유사한데, 〈요람기〉를 수업하면서 함께 읽고 내용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쉽게 읽힌다. 그 만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좌절과 방황 속에 조금씩 성숙하는 훈필이의 모습이 아니다. 이보다는 부조리한 현실과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의 괴리에서 방황하며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어린 영혼들의 순수한 열정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과 의지가 이 사회의 생명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훈필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했지만 교사로서 학생들의 고뇌와 방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아이에게 실제로 표현은 안 했지만 '부족한 것 없는 녀석이 이러는 건 사치야!'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난 봄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훈필이처럼 꿈이 깨지고 현실의 무게에 힘들어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그들에게 무모한 일탈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떠나는 순수하고 건강한 일탈을 유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지난여름 학기말 고사기간, 사춘기를 힘들게 보내고 있던 우리 반 중현이가 바람을 쐬겠다고 잠시 가출을 했다. 강촌 강가에서 텐트를 치고 혼자 지내던 중현이는 이상하게 여긴 그 곳 관리인 아저씨의 연락으로 3일만에 귀가했다. 가출에서 돌아온 중현이에게 나는 "바람 괜찮았어?"라고 물었고, 중현이는 그냥 빙그레 웃는 것으로 답했다. 방학을 몇 일 앞두고 나는 그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여름방학 개학날 나는 중현이에게 "별 일 없었지?"하고 물었다. 이때도 중현이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중현이는 그 날 이후 말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효석 (숭문중 국어교사, CHEKTTAS@hitel.net)
4) 아홉 살 인생
위기철 지음, 청년사, 중1부터, 813
여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학생들에게 책을 권하면서도 늘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곤 한다. 혹시 아이들의 코드와 나의 것이 엄청 차이가 나지나 않나 싶어서이다. 그래서 곧잘 활용하는 방법이 딸아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다음의 글은 딸아이가 최근에 적은 독후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고작 중 1때라 몰랐지만, 다시 찬찬히 책을 훑어보려니 제목부터 맘에 걸린다. 아홉 살이란 말 뒤에 인생이라니, 어쩐지 이상하지 않은가? 인생이란, 모름지기 성인이 되어서의 신산함 같은 게 밴 말이 아닌가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의문은 곧 풀렸다. 책 속에서, 아홉 살 아이 역시 어른처럼 세상에 부대끼며 나름대로 심각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민이는 산동네 아이다. 그리고 ‘숲에 살지 않는 사람이 숲을 가지는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른스런 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소설에서는 가난한 아이를 매질하는 교사나 악랄한 집주인, 혹은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떠밀려지는 소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조숙하다고는 해도 주인공이 아홉 살 아이인 만큼, 이 이야기들도 큰 틀에서 보면 여민이의 아홉 살 인생 중에 일어난 일의 하나로 처리될 뿐이다. 이 소설의 빛나는 점은 오히려 여민이가 삶에서 건져 올린 교훈에 있을 것이다. 소설 앞자락에서 여민이의 어머니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다’같은 것이 그런 교훈이다. 때때로 내 처지를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으로 보곤 하던 나에게는 가슴이 뜨끔한 말이었는데, 비단 이 부분뿐이 아니라 허영심에 가득 찬 여민이의 짝 우림이나 우연찮게 받은 미술상 때문에 거짓된 그림을 그리게 된 여민이의 모습도 내 자신 이렇게 되지도 않게 나를 포장하고 산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딱딱한 이야기는 제쳐두고서라도, 아홉 살 인생은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그 시절 9살 아이와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가며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널리 읽혀져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선망해 마지않던 여민이의 힘세고 정의로운 아버지, 나를 무서움(?)에 떨게 했던 골방 철학자, 그리고 여민이와 그 친구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덜너덜해진 딸아이의 책 『아홉 살 인생 』을 보면서 우리 학교도서실에서 이것을 구입해도 아깝지 않겠다 싶어서 책을 구해 놓았다.
서경은 (중앙여고 사서교사 snose@hitel.net)
5) 등대 아래서 휘파람
임철우, 한양출판, 1993, 고1부터, 813
이 책은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간 후 과거의 잿빛 추억들과 화해하는 얘기이다. 과거와 화해한다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면서 동시에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특히 과거의 삶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온통 고통과 좌절․숱한 생채기와 깨진 무릎뿐일 때, 과거의 추억들은 언제든지 기억 속에서 튀어나와 현재 삶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기에 과거와 화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나도 그렇다. 돌이켜 보면 내세울 것보다는 감추고 싶은 것, 후회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도 마찬가지다. 바람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그래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버지, 뼈빠지게 고생만 하다가 결국 쓸쓸하게 죽어간 어머니, 어릴 때 침을 잘못 맞은 후유증 때문에 한 살 정도의 지능으로 살다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죽은 작은 누나 ‘은매’,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공장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일만 하다 오는 큰누나 ‘은분’. ‘나’의 추억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하나같이 쓸쓸하고 뒤틀린 인생들이다. 결국 ‘나’는 세상에서 우리 가족만 버림받았다는 절망감, 증오심, 무력감만 가득 안은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러기에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아버지를 포함한 자신의 잿빛 추억들과 화해하는 장면은 다른 어떤 현실보다 더 감동적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특히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아 자꾸 외부 세계와 부딪치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내가 얼마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그 아이들을 판단해 왔는지, 아이들이 가진 쓸쓸한 추억들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뒤틀리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삶이 밤바다를 떠도는 다른 배들을 비춰주는 등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15년이 지나서야 과거와 화해할 수 있었던 주인공처럼 아직도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한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이 읽는다면 더 좋겠고. 아마 그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참, 이 책을 읽을 때는 꼭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를 같이 보았으면 한다. 임철우가 쓴 똑같은 제목의 소설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바로 작가의 유년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등대 아래서 휘파람』이 작가의 소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삶의 궤적을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한 작가의 삶의 역정을 연관지어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장면들 중에 영화에도 그대로 나오는 장면이 더러 있어서, 훨씬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실감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성렬 (인천 문일여고, begin-92@hanmail.net)
6)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문예출판사, 고1부터
정말이지 학교에 다니기가 싫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출을 꿈꾸고 실제로 가출도 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도 없이 다시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졸업 말고는 학교를 벗어나는 길이란 영영 없는 것 같았다. 교실 뒷자리에 웅크리고 닥치는 대로 외국 소설들을 읽어 댔다. 늘 마음은 외롭게 외국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국어 교사가 되어 우리말과 글, 우리 생각과 느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은 내 영혼의 푸른 초상화 같다. 그래서 나는 문제아 홀든을 사랑한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문제아들을 따스하게 감싸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문제아들은 홀든의 또다른 분신들이다. 그리고 나의 젊은 분신들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문제아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집에 돌아가기까지 2박 3일 동안의 방황의 기록이다. 네 번째 고등학교에서도 쫓겨난 홀든의 퇴학 사유는 성적 불량. 물론 성적 불량이란 표면상의 이유일 뿐, 그 심층에는 성년의 삶으로 성장하는 젊음의 위태로운 방황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방종과 훼탕으로 젊음을 소진하는 쓰레기 인생이 아님을 방황의 틈틈이에서 보여 준다. 이를테면 수녀들의 봉사에 감동하고, 연못이 얼어붙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걱정하는 등 따스한 인간적 면모를 보여 준다. 또한 그는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진정으로 좋아한다.
그는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 '허식, 무신경, 약육강식, 비속함' 등을 증오한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 뾰족히 해결할 능력도 아직 없는 그는 여동생 피비에게 말한다. 법률가가 되는 대신, 호밀밭에서 노는데 정신이 팔려 벼랑에서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아이들을 붙잡아 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 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일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호밀밭의 파수꾼』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는 날은 참 기분이 좋다. 우선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거나 앞서와 같이 읽을 만한 대목들을 타이핑해서 나눠준다. 국도를 가로지르는 홀든의 행동과 심리 묘사, 예수께서 진정으로 좋아할 사람은 오케스트라에서 작은북을 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의 진정성, 마지막으로 가출을 꿈꾸는 홀든의 혼잣말 등등 아이들에게 직접 권해 줄 만한 대목은 많다. 직접 찾아보라는 것도 좋다.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 정우성 주연의 ‘비트’, 또 최근 영화인 ‘눈물’ 등의 영화와 엮어서 지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은 10대 때의 얘기를 하면서 '나'를 솔직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홀든을 읽고 나를 읽는다. 나도 아이들을 읽는다! 우리들 모두는 어느새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다!!
허병두(숭문고 국어교사, wisefree@dreamwiz.com)
7) 19세
이순원, 세계사, 중3 12월부터, 813
중학교 졸업을 앞둔 희석이에게
2000년을 자축하는 폭죽을 터뜨린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참 세월 빠르다. 세월의 속도는, 자신의 나이만큼 경사진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것과 같다던데. 그렇게 친다면 나는 32도, 너희들은 17도의 경사진 길을 쉼 없이 내려온 게 되는구나. 속임 없이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 주고 있는데도 너희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외치고 있으니, 그 나이가 아니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나 보다.
희석아, 겨울방학 동안 왼쪽 귀를 뚫었더구나.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던 은귀걸이는, 네 내면에 들끓고 있는 반항, 아니면 갈등의 흔적이었니. 참, 어른이 되고 싶었나 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나 보다.
은귀걸이말고도 희석이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깨어있는 시간이 드물 정도로 공부에 뜻을 보이지 않던 네가 열심히 참여했던 지난 가을의 독서시간 말이다. 엇비슷한 시기의 고민들을 담은 『나는 아름답다』(사계절)와 『짜장면』(열림원)중에서, 좀 야하다는 입소문을 듣고 골라 왔던 『19세』. 하룻밤에 후딱 읽어 치운 것도 놀랄 일이지만, 처음으로 정성스럽게 써 온 독서감상문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처럼 나도 일제 5백cc 혼다 오토바이를 사서 폼나게 몰아 보고도 싶었다. 교복을 불태우고 학교를 뛰쳐나가 나도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주인공처럼 배추밭 5천평과 감자밭 2천평을 빌려 농사짓는 ‘엽기적인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다. 주인공처럼 13세에서 19세까지 종횡무진 누비며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터뜨리며 '어른연습'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무엇을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었다. 될수록 빨리. 하지만 이젠 어른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
너희들의 일상을 들춰보면, 늘 비슷비슷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PC방으로 몰려가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고 시원 또는 애통해 하고, 텔레비젼과 씨름하며 스타들의 사생활에 웃고 욕하며 그렇게 즐겁고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들 있겠지.
그렇지만 기억하렴. 일상은 늘 해피엔딩도 아니고, 세상이 날 위해 움직여 주는 것도 아니란 것을. 언젠가 누군가가 네게 묻는 날이 올 것이다. 그건 오랜 친구와 결별한 슬픈 저녁일 수도 있고, 텔레비젼을 보며 한참을 웃다 그만 허탈해진 주말 아침일 수도 있다. 그 물음은 느닷없이 네게 찾아올 것이다.
"넌 정말 누구이니?"
"넌 진정 무엇을 하고 싶니?"
"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그 때가 말이다. 네가 그토록 갈망해 오던 '어른'의 문턱에 들어서는 때란다. 그 정답이 뭐냐고. 물론 나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란다.
정윤혜 (백운중 국어교사 bartican@hitel.net )
8)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푸른나무, 고1부터, 813
이 책이 나온 1988년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고3이 되자 우리 반에는 예닐곱 씩 하루 내내 엎드려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남 방해되게 떠들지만 않으면 자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으셨다. 6월쯤이었나, 갑자기 대학입시에 자신이 없어져서 나도 자리를 뒤로 옮겨서 잠자는 친구들에 끼어들었는데, 한 일주일 잠을 자고 나니 잠자는 것도 곤욕이었다. 한 세 시간쯤 자면 더 이상 잠이 안 오는데, 정신은 대충 멀쩡한데 계속 엎드려 있자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워지는 날씨라 팔뚝과 볼 사이에는 땀이 미끈거리고, 그래서 일주일만에 자리를 앞쪽으로 옮겼다.
그 뒤로 나는 하루종일 잠자는 친구들에게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가져다주었다. “야, 잠도 오지 않으면서 엎드려 있으면 뭐해? 답답하기만 하지. 이거 읽어봐.” 그 당시 내 친구들에게 내 책은 꽤 인기가 있었다. 사나흘에 한번씩 선생님에게 내 책이 한두 권씩 압수되어서 되찾아오곤 했으니 말이다. 책을 빼앗아가신 선생님은, 그래도 빨간 책이나 무협지가 아니라고 한 마디씩 인생얘기를 덧붙이고는 모두 돌려주셨다. 그때 뒷자리에서 돌아다니던 책 가운데 지금 생각나는 것이, 정도상이 지은 『열아홉 살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녹두), 『10대들의 쪽지』, 유동우가 쓴 『어느 돌멩이의 외침』, 김용옥이 쓴 『태권도 철학의 구성 원리』(통나무) 들이다. 얼굴만 어렴풋이 떠오르고 지금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약간 노는 애였는데도 책을 꽤 많이 읽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태백산맥』을 읽은 감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는 그 시절 뒷자리 아이들에게 최고로 꼽히던 책이다. 이 책은 부제가 ‘젊은 활동가들의 성장 체험기’인데,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험해도 너무 험한 인생들이었다. 보통 뒷자리에서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잠을 자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꽤 고초를 겪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린나이에 남들보다 험한 꼴도 많이 보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자기만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이거 속된 말로 쨉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때 친구들 반응이, 이 책을 읽고 나면 ‘하-’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공부를 좀 하는 친구에게 학교 도서실에서 이 책을 권했다가 욕을 먹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였던가, 책을 반이 조금 못 되게 읽은 친구가 이게 뭐냐고 나에게 욕하듯이 말을 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무난하게 사는 학생에게 고생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까닭모를 위협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모처럼 모범생보다 뒷자리 아이들이 더 잘 읽는 책이다. 정해진 길을 순탄하게 밟지 않았다는 데서 묘한 자부심을 느끼며 헐벗는 아이에게 더 센 힘으로 콧대를 팍 눌러주어 정신을 차리게 하는 책이다.
송승훈 (광동종합고등학교 국어교사 / gurumbae@nownuri.net)
9) 지상의 숟가락 하나
현기영, 실천문학사, 고1부터, 813
오래전부터 ‘성장소설’하면 으레 헤세의 『데미안』을 들었습니다. 본디 삐닥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그런 평가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데미안』의 문학적 미덕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에 의구심이 많은 편입니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작품이 형상화하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도대체 알을 깨고 나와 비상하는 삶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은 이 작품을, 성장소설의 간판스타로 추켜세우는 것은 무리라 싶었던 것입니다. 고작『데미안』만을 추천하는 관례에 불만이 많았던 저에게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그야말로 가뭄 끝에 만난 단비 같았습니다. 아! 드디어, 『데미안』보다 더 뛰어난 성장소설이 나왔구나. 봐라! 친구들이여, 내가 그동안 왜 『데미안』을 비판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목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습니다.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4․3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씨줄로 삼고 제주도의 자연을 젖줄삼은 한 소년의 서정적 성장사를 날줄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두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하나는 제목입니다. 왜 지상의 숟가락 하나일까요? 저는 그것이 숟가락 하나만 있어도 먹여주고 키워줬던, 마치 어머니 같았던 제주도의 자연을 돋을새김하기 위해서였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왜 이 작품이 장편소설이면서도 마치 조각보를 잇듯 잘개 쪼개진 에피소드 묶음으로 씌어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자신의 기억에 오랫동안 침전돼 있던 추억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던 작가의 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소설적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그 소중했던 빛나는 이야기들을 작품이라는 그릇에 다 쏟아 붓고 싶었던 것이죠. 이제 아이들이 『데미안』만 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작품보다 더 빼어난 우리의 소설이 있음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곤 이 땅에 숟가락 하나만 들고 있어도 충분히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영혼이 성장한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권우 (출판저널 편집장 016-771-8752)
3. 우리 모두의 성장소설들을 기대하며
앞서 우리의 경우 서구적 의미의 성장소설들이 나올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서구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청소년의 성장을 중점적으로 다룬 소설들을 찾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식민과 전쟁, 분단, 독재 등 너무나 암울한 시대 현실 속에서 젊은 영혼들이 어떻게 고민하며 성숙해가는가를 보여 주는 작품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한 틈새를 서구의 성장소설들이 메꿔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서 소개한 서구 소설들 말고도 우리 교사들에게 상당히 낯익은 작가인 헤르만 헷세의 성장소설들이라 할 『데미안』과 『페터 카멘친트』, 『유리알 유희』 등을 비롯하여 뚜르게네프의 『첫사랑』,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고리끼의 삼부작(『유년 시대』, 『사람들 속에서』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작가들이 점점 더 성장소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이문열의 경우 『젊은날의 초상』에서 아름답고 슬픈 젊은날의 방황과 성숙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눈덮인 이화령을 넘어가는 장면에서 독자는 어느덧 작가와 주인공 모두와 동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책/따/세 내부의 일부 의견: "하지만 그의 고뇌는 우리의 엄혹한 역사 현실에서 곧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난 다음 다시 읽어 보았을 때는 참으로 이문열의 문장이 조악하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내가 성장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맥락에서 특히 소설가 최시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문학과지성사)은 매우 값진 성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등학생 가운데 이를 제대로 읽어갈 학생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성장소설과 관련한 우리의 여러 상황에 비춰 볼 때, 이런 수준의 성장소설이 나왔다는 것은 참 놀랍습니다.
아직도 다양한 수준과 내용의 성장소설들이 많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정도의 문학적 완성도를 갖추고 중학생과 고등학생들, 그리고 여러 갈래의 인생을 꿈꾸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성장소설'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고 다시 학교와 사회도 올곧고 아름답게 성장할 것입니다.
4. 참고 자료
성장소설에 대해 자료를 찾다가 <씨네21>에서 다룬 성장 영화, <출판저널>에서 다루었던 성장소설, 중학교 및 고등학교 수준에서 더 권할 수 있는 성장소설 목록을 모았습니다. 아래에는 관련 목록만 실었고, 자세한 내용은 책/따/세 홈페이지와 국어교사모임 자료실에 올려놓았습니다.
<중학생에게 더 권할 만한 성장소설 목록>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모르․알리야모르겐스턴, 웅진 - 엄마와 갈등을 빚는 여학생에게
『봉순이 언니』, 공지영, 푸른숲 -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나의 산에서』, 진C.조지, 비룡소 - 내 방식으로 살고 싶은 학생에게
『너도 하늘말나리야』, 이금이, 푸른책들 - 부모에게 불만이 많은 학생에게
『땅에 그리는 무지개』, 손춘익, 창작과비평사 - 의지가 강한, 혹은 약한 학생에게
『할머니』, 페터 헤르틀링, 비룡소 -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학생에게
『나는 아름답다』, 박상률, 사계절 - 문학을 꿈꾸는 학생에게
<고등학생에게 더 권할 만한 성장소설 목록>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최시한, 문학과지성사 -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봄비 내리는 날』, 김한수, 창작과비평사 - 어려운 처지의 학생에게
『외딴 방』, 신경숙, 문학동네 - 차분한 여고생에게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김별아, 이룸 - 여성의 성에 관심있는 학생에게
『전태일 평전』, 조영래, 돌베개 - 삶이 늘어져 있는 이에게
『희망 1-2』, 양귀자, 살림 - 누구에게나
<출판저널> 274호 (2000년 2월 20일자)에 실린 성장소설 목록『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괴테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최시한
『19세』, 이순원 『지상의 숟가락 하나』, 현기영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초승달과 밤배』, 정채봉
『여름이 준 선물』, 유모토 가즈미 『불쌍한 꼬마 한스』, 백민석
<성장을 다룬 영화들> 출처 : 씨네 21 (2000년 5월 31일자) 「나의 장미빛 인생」 「캐리」 「귀여운 여도적」
「대니의 질투」 「키즈 리컨」 「그들만의 계절」
「브랙퍼스트 클럽」 「길버트 그레이프」 「정복자 펠레」
「400번의 구타」 「푸줏간 소년」 「금지된 장난」
「개같은 내 인생」 「시네마 천국」 「로빙화」
「파리대왕」 「죽은 시인의 사회」「레올로」
「양철북」 「토토의 천국」 「추억은 방울방울」
「피터팬」 「아이다호」 「열입곱」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어메리카」
- 『함께여는 국어교육』 2001년 봄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