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 =“내가 어디 가서든 좀 놀 줄 안단 말이요” =“노래라먼 내가 놈한테 뒤지지 않소” “나도 진도 바깥으로 나가먼 노래 좀 한다는 소리 듣제 동네에서는 입 못 벌리제라” 이렇듯 소리깨나 하고 재담 하나를 붙여도 ‘뭣이 틀리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궁금증이나 비밀을 풀어주는 패스워드 혹은 핵심문장처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는 말이다. ‘진도 사람’이라. “노래라먼 내가 놈한테 뒤지지 않소” 또는 “내가 어디 가서든 좀 놀 줄 안단 말이요”하는 말을 줄여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난 4월7일, 점심을 먹고 좀 나른해질 시각의 담양 오일장. 장구잽이 백금렬을 앞세우고 마이크잽이 지정남이 장꾼들의 입을 벌리고 다니는데 “옳거니 바로 그거야!”하는 콘텐츠가 나오질 않는다.
“얼씨구다!”하면서 반가워하는 분들도 많고, 즐거움 가득한 막춤꾼들도 제법 나타나긴 하는데, 시원스러운 소리는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와따 오늘 장시(장사) 안되네”하면서 팍팍해 할 때쯤 청량제 같은 선수가 출현하곤 한다. 카메라가 다가서자 “요놈 잔 벗어불고 하제 와따 더와 죽겄네”하며 기세좋게 윗도리를 벗어제낀 이는 젓갈 좌판을 펼쳐놓은 김명자(53)씨다.
애타는 남의 속도 모르고 유행가를 두 곡이나 불러대던 김씨. 목이 풀렸는지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김치도 맛있고 젓갈도 맛있네/ 재성이엄마네 젓갈이 맛있다/…/ 여보쇼 날좀 보소 이렇게도 맛있는 젓갈이 또 있을까/ 이리저리 오세요/ 맛있는 젓갈이라도 퍼주께 오씨요/ 그래야 친정에 가서 자랑해서 다음장에 나오셔…”
<진도아리랑>을 창의적으로 변주하는 솜씨가 여간내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더니 이 아짐 “와따 어지께 선동열이하고 나하고 결혼하는 꿈을 끼였등만(꿨등만) 염병하게 좋네”하고 야무진 입담을 붙인다.
“염병하게 좋네”소리를 두 번이나 하더니 “내가 진도 사람이요. 친정어메 탁해서(닮아서) 이렇게 까불라. 우리집 가서 추어탕에 밥먹고 가씨요이. 꼭!”
이렇듯 소리깨나 하고 재담 하나를 붙여도 ‘뭣이 틀리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궁금증이나 비밀을 풀어주는 패스워드 혹은 핵심문장처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는 말이다. ‘진도 사람’이라. “노래라먼 내가 놈한테 뒤지지 않소” 또는 “내가 어디 가서든 좀 놀 줄 안단 말이요”하는 말을 줄여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은연중에 드러내는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은 짐작이 가는데, 그 연원은 어디에 있을까.
성장환경 자체가 신명나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 그동안 만난 진도 사람들의 증언이나 전문가들의 근거논리를 들어봐도 “진도에 가서 소리 자랑마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이 찾아지지 않는다. 가장 공감되는 관점은 진도 지산면에서 태어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이윤선 연구교수의 말이다.
“복합적인 요인으로 봐야겠죠. 진도 사람들이 노래 잘하고, 뭘 배워도 금방 배우고, 확실하게 다른 지역 사람들하고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나오게 된 구체적인 상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구요.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학습된 결과일 수도 있고, 유전인자 자체가 타지역과 변별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진도가 육지로부터 떨어진 섬이나 유배지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근거는 좀 애매하다고 봐요. 분명한 것은 진도에서는 성장환경 자체가 그렇게 신명나서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라고 보죠.”
일종의 모태(母胎) 민중문화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진도만 그랬을까. 섬이나 유배지여서라면 신안, 완도도 있잖은가. 진도가 그 지역보다 도드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인데, 왜 진도일까.
어떤 속설이나 소문이든 밖에서 본 일반화된 시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볼 일이다. 요컨대 “벌교의 주먹자랑”이든 “해남의 시인자랑”이든 “진도의 소리자랑”이든 모든 벌교와 해남, 진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인즉슨 어떤 속설과 이미지가 형성된 현장을 더듬어보면 그 실체와 맥락을 좀더 소상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진도 밖에서 막연한 눈으로 보면 모든 진도 사람들이 예술가의 후예들로 여겨질는지 모르지만, 진도에만 포커스를 좁혀놓고 보면 ‘진도 속의 진도’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지산면(智山面)을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이 현격하게 강세를 띠고 동쪽(고군면·군내면)일수록 덜하다는 사실이다.
“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역사적으로 짚이는 데가 있어서 하는 소리다. 지산면은 조선 말엽인 1895년(고종 30년)에 생겨난 이름이고, 그 이전에는 목장면(牧場面)이었다. 목장면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내내 국가에서 관리하는 말 목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거기에는 감목관(監牧官)과 관마청(觀馬廳)이 딸려 있었다. 현재도 지명이 그대로 있는 관마리(觀馬里)가 바로 목장면의 소재지 마을이었다.
목장면에는 농민 계급보다 낮은 목부(牧夫)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은 유교적 신분체제의 그늘 속에서 신분을 세습하며 혼인관계를 맺었으며, 훨씬 더 민중적인 삶의 조건을 영위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는 누대로 신분을 세습하면서 기층 민중예술의 꽃을 피운 <진도씻김굿>의 전승 맥락과 유사하다.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진도강강술래> <진도상여소리>…노래의 밭 콤플렉스가 없는 명인명창(名人名唱)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신분적 이유이든, 신체적 이유이든, 성격적 이유이든 모든 사람이 갖고 있게 마련인 콤플렉스는 예술이라는 장르에서 폭발적인 힘을 지니는 것 같다.
여성 명창들이 좌중을 압도하는 절창을 선보일 때 당신들의 작달막한 ‘신체적 콤플렉스’는 발견되지 않는다. 작은 거인으로 보일 뿐이다. 신명풀이를 향해 점차 고조되는 <진도아리랑>을 주고받는 진도 민중들의 가창 모습에서 그네들의 과거 신분을 들먹이거나 유추해 보는 것은 구성없는 짓이다. 터져나오는 말 한마디, 쏟아지는 노랫말을 즐기고 맛보면 그뿐.
큰 소리꾼들을 훑어봐도 그렇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남도들노래>의 소리꾼 조공례(1997년 작고) 할머니가 그 보배 같은 소리를 쏟아내던 곳도 지산면 인지리(독치마을)였고, <진도씻김굿>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은 박병천 명인 역시 지산면 인지리가 터전이었다.
여하튼 진도에서도 소포만을 중심으로 한 지산면 일대가 ‘진짜 진도’라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큰인물들이 무대로 옮겨가는 동안 생명력있는 진도 소리의 터전은 같은 지산면이지만 인근 소포리로 옮겨간 듯하다.
지산면에 인접한 임회면 봉상리가 친정인 하귀심(61·진도 지산면 소포리)씨의 말이다. “같은 진도라 해도 마을마다 틀려. 내가 친정에 있을 때는 맨 유행가 그런 것만 했제. 소포에 시집와서 배운 것이 많았제. 취미가 있응께 너 하겄다 하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따라댕기다 봉께 <강강술래>고 <육자배기>고 <흥타령>이고 한자리썩 하제.”
진도 사람들끼리 노래 부를 땐 미묘한 탐색전도 그런데, 궁금한 점이 남는다. “진도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필경 다른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일 텐데 정작 진도 사람들끼리는 어쩐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진도에서 당신네들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이다. 답은 쉽다. 이미 입을 벌려본 사람들끼리는 평가가 나오지만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보지 않았을 때는 조심스러운 탐색전을 벌이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가 보다.
소포리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 김병철 이장의 말이다. “판이 벌어지면 마을 안에서도 긴장감이 있죠. 소리깨나 한다는 사람들도 아주 자신있게 내놓는 사람이 아니면 탐색전을 하죠. 관객들도 수준이 높기 때문에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먼 오금이 저리지 않겄어요? 오금이 저리면 절대 좋은 소리가 안나오는 법이라,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싶을 때 훨씬 더 기량이 발휘되는 법이죠.”
<진도 씻김굿> <진도 다시래기> <진도 강강술래> <진도 상여소리> 등 이미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타이틀을 갖지 못했을 뿐, 녹슨 기량을 묵힌 채 살아가고 있는 야인들 사이에서도 자존심이 성성하다는 얘기다.
그런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 소포리의 경로당이다. 광주 화순 담양 장성 나주 등 내륙지방에서는 온 동네들을 ?탈 털어도 한두 명이 부를까 말까한 <육자배기> <흥타령>이 우글우글, 바글바글 나온다. 그것도, 옆에 사람이 뭘 메기나 예의주시하면서, 내가 기우는 것은 아닌가 서로서로 견주면서. 밭 자체가 그런 왕대밭이니 거기서 난 죽순들이 어떻게 입을 벌리겠는가. “나도 진도 바깥으로 나가먼 노래 좀 한다는 소리 듣제, 동네에서는 입 못 벌리제라.” 소포리에서 젊은 축에 드는 조정심씨의 말이다.
‘나름대로 진도 사람’이라 또래 사람들보다는 입좀 벌리고 사는 김민우(진도 고군면 출신, 광주 풍암동에서 ‘강청’비누공장 운영)씨도 같은 의견이다. “진도를 벗어나면 오금 들 일이 없죠. 이미 겁나는 상대가 없으니까요. 모두다 진도 사람이라면 떠받들어주고 알아봐주는 판이잖아요. 방송국을 가든, 공연장을 가든, 축제 현장을 가든, 진도를 벗어나면 확실히 진도 사람들이 끝내주게 잘 놀제라.”
좌중 평정하고야 마는 <육자배기> <흥타령> 지난 4월 초, 광주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우리 동네 소리꾼을 찾아라》 출판기념회 때도 똑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요즘 진도 소포리에서 대외적으로 여성민요를 대표하는 곽선자 곽순경 하귀심씨가 <흥타령>을 한 바퀴 돌리자 좌중이 ‘평정’된다. 한껏 자신감을 얻은 그녀들이 <육자배기>를 한바퀴 돌리자 모든 관객들이 경탄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이런 판이 진도 소포리에서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진도의 노장들이 순순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도 밖에서 빛나는 진도의 노래여, 사방 군데 다니며 때락때락 자랑하고 노십소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 =“내가 어디 가서든 좀 놀 줄 안단 말이요” =“노래라먼 내가 놈한테 뒤지지 않소” “나도 진도 바깥으로 나가먼 노래 좀 한다는 소리 듣제 동네에서는 입 못 벌리제라” 이렇듯 소리깨나 하고 재담 하나를 붙여도 ‘뭣이 틀리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궁금증이나 비밀을 풀어주는 패스워드 혹은 핵심문장처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는 말이다. ‘진도 사람’이라. “노래라먼 내가 놈한테 뒤지지 않소” 또는 “내가 어디 가서든 좀 놀 줄 안단 말이요”하는 말을 줄여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난 4월7일, 점심을 먹고 좀 나른해질 시각의 담양 오일장. 장구잽이 백금렬을 앞세우고 마이크잽이 지정남이 장꾼들의 입을 벌리고 다니는데 “옳거니 바로 그거야!”하는 콘텐츠가 나오질 않는다.
“얼씨구다!”하면서 반가워하는 분들도 많고, 즐거움 가득한 막춤꾼들도 제법 나타나긴 하는데, 시원스러운 소리는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와따 오늘 장시(장사) 안되네”하면서 팍팍해 할 때쯤 청량제 같은 선수가 출현하곤 한다. 카메라가 다가서자 “요놈 잔 벗어불고 하제 와따 더와 죽겄네”하며 기세좋게 윗도리를 벗어제낀 이는 젓갈 좌판을 펼쳐놓은 김명자(53)씨다.
애타는 남의 속도 모르고 유행가를 두 곡이나 불러대던 김씨. 목이 풀렸는지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김치도 맛있고 젓갈도 맛있네/ 재성이엄마네 젓갈이 맛있다/…/ 여보쇼 날좀 보소 이렇게도 맛있는 젓갈이 또 있을까/ 이리저리 오세요/ 맛있는 젓갈이라도 퍼주께 오씨요/ 그래야 친정에 가서 자랑해서 다음장에 나오셔…”
<진도아리랑>을 창의적으로 변주하는 솜씨가 여간내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더니 이 아짐 “와따 어지께 선동열이하고 나하고 결혼하는 꿈을 끼였등만(꿨등만) 염병하게 좋네”하고 야무진 입담을 붙인다.
“염병하게 좋네”소리를 두 번이나 하더니 “내가 진도 사람이요. 친정어메 탁해서(닮아서) 이렇게 까불라. 우리집 가서 추어탕에 밥먹고 가씨요이. 꼭!”
이렇듯 소리깨나 하고 재담 하나를 붙여도 ‘뭣이 틀리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궁금증이나 비밀을 풀어주는 패스워드 혹은 핵심문장처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는 말이다. ‘진도 사람’이라. “노래라먼 내가 놈한테 뒤지지 않소” 또는 “내가 어디 가서든 좀 놀 줄 안단 말이요”하는 말을 줄여서 “내가 진도여(진도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은연중에 드러내는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은 짐작이 가는데, 그 연원은 어디에 있을까.
성장환경 자체가 신명나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 그동안 만난 진도 사람들의 증언이나 전문가들의 근거논리를 들어봐도 “진도에 가서 소리 자랑마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이 찾아지지 않는다. 가장 공감되는 관점은 진도 지산면에서 태어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이윤선 연구교수의 말이다.
“복합적인 요인으로 봐야겠죠. 진도 사람들이 노래 잘하고, 뭘 배워도 금방 배우고, 확실하게 다른 지역 사람들하고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나오게 된 구체적인 상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구요.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학습된 결과일 수도 있고, 유전인자 자체가 타지역과 변별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진도가 육지로부터 떨어진 섬이나 유배지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근거는 좀 애매하다고 봐요. 분명한 것은 진도에서는 성장환경 자체가 그렇게 신명나서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라고 보죠.”
일종의 모태(母胎) 민중문화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진도만 그랬을까. 섬이나 유배지여서라면 신안, 완도도 있잖은가. 진도가 그 지역보다 도드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인데, 왜 진도일까.
어떤 속설이나 소문이든 밖에서 본 일반화된 시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볼 일이다. 요컨대 “벌교의 주먹자랑”이든 “해남의 시인자랑”이든 “진도의 소리자랑”이든 모든 벌교와 해남, 진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인즉슨 어떤 속설과 이미지가 형성된 현장을 더듬어보면 그 실체와 맥락을 좀더 소상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진도 밖에서 막연한 눈으로 보면 모든 진도 사람들이 예술가의 후예들로 여겨질는지 모르지만, 진도에만 포커스를 좁혀놓고 보면 ‘진도 속의 진도’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지산면(智山面)을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이 현격하게 강세를 띠고 동쪽(고군면·군내면)일수록 덜하다는 사실이다.
“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역사적으로 짚이는 데가 있어서 하는 소리다. 지산면은 조선 말엽인 1895년(고종 30년)에 생겨난 이름이고, 그 이전에는 목장면(牧場面)이었다. 목장면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내내 국가에서 관리하는 말 목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거기에는 감목관(監牧官)과 관마청(觀馬廳)이 딸려 있었다. 현재도 지명이 그대로 있는 관마리(觀馬里)가 바로 목장면의 소재지 마을이었다.
목장면에는 농민 계급보다 낮은 목부(牧夫)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은 유교적 신분체제의 그늘 속에서 신분을 세습하며 혼인관계를 맺었으며, 훨씬 더 민중적인 삶의 조건을 영위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는 누대로 신분을 세습하면서 기층 민중예술의 꽃을 피운 <진도씻김굿>의 전승 맥락과 유사하다.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진도강강술래> <진도상여소리>…노래의 밭 콤플렉스가 없는 명인명창(名人名唱)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신분적 이유이든, 신체적 이유이든, 성격적 이유이든 모든 사람이 갖고 있게 마련인 콤플렉스는 예술이라는 장르에서 폭발적인 힘을 지니는 것 같다.
여성 명창들이 좌중을 압도하는 절창을 선보일 때 당신들의 작달막한 ‘신체적 콤플렉스’는 발견되지 않는다. 작은 거인으로 보일 뿐이다. 신명풀이를 향해 점차 고조되는 <진도아리랑>을 주고받는 진도 민중들의 가창 모습에서 그네들의 과거 신분을 들먹이거나 유추해 보는 것은 구성없는 짓이다. 터져나오는 말 한마디, 쏟아지는 노랫말을 즐기고 맛보면 그뿐.
큰 소리꾼들을 훑어봐도 그렇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남도들노래>의 소리꾼 조공례(1997년 작고) 할머니가 그 보배 같은 소리를 쏟아내던 곳도 지산면 인지리(독치마을)였고, <진도씻김굿>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은 박병천 명인 역시 지산면 인지리가 터전이었다.
여하튼 진도에서도 소포만을 중심으로 한 지산면 일대가 ‘진짜 진도’라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큰인물들이 무대로 옮겨가는 동안 생명력있는 진도 소리의 터전은 같은 지산면이지만 인근 소포리로 옮겨간 듯하다.
지산면에 인접한 임회면 봉상리가 친정인 하귀심(61·진도 지산면 소포리)씨의 말이다. “같은 진도라 해도 마을마다 틀려. 내가 친정에 있을 때는 맨 유행가 그런 것만 했제. 소포에 시집와서 배운 것이 많았제. 취미가 있응께 너 하겄다 하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따라댕기다 봉께 <강강술래>고 <육자배기>고 <흥타령>이고 한자리썩 하제.”
진도 사람들끼리 노래 부를 땐 미묘한 탐색전도 그런데, 궁금한 점이 남는다. “진도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필경 다른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일 텐데 정작 진도 사람들끼리는 어쩐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진도에서 당신네들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이다. 답은 쉽다. 이미 입을 벌려본 사람들끼리는 평가가 나오지만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보지 않았을 때는 조심스러운 탐색전을 벌이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가 보다.
소포리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 김병철 이장의 말이다. “판이 벌어지면 마을 안에서도 긴장감이 있죠. 소리깨나 한다는 사람들도 아주 자신있게 내놓는 사람이 아니면 탐색전을 하죠. 관객들도 수준이 높기 때문에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먼 오금이 저리지 않겄어요? 오금이 저리면 절대 좋은 소리가 안나오는 법이라,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싶을 때 훨씬 더 기량이 발휘되는 법이죠.”
<진도 씻김굿> <진도 다시래기> <진도 강강술래> <진도 상여소리> 등 이미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타이틀을 갖지 못했을 뿐, 녹슨 기량을 묵힌 채 살아가고 있는 야인들 사이에서도 자존심이 성성하다는 얘기다.
그런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 소포리의 경로당이다. 광주 화순 담양 장성 나주 등 내륙지방에서는 온 동네들을 ?탈 털어도 한두 명이 부를까 말까한 <육자배기> <흥타령>이 우글우글, 바글바글 나온다. 그것도, 옆에 사람이 뭘 메기나 예의주시하면서, 내가 기우는 것은 아닌가 서로서로 견주면서. 밭 자체가 그런 왕대밭이니 거기서 난 죽순들이 어떻게 입을 벌리겠는가. “나도 진도 바깥으로 나가먼 노래 좀 한다는 소리 듣제, 동네에서는 입 못 벌리제라.” 소포리에서 젊은 축에 드는 조정심씨의 말이다.
‘나름대로 진도 사람’이라 또래 사람들보다는 입좀 벌리고 사는 김민우(진도 고군면 출신, 광주 풍암동에서 ‘강청’비누공장 운영)씨도 같은 의견이다. “진도를 벗어나면 오금 들 일이 없죠. 이미 겁나는 상대가 없으니까요. 모두다 진도 사람이라면 떠받들어주고 알아봐주는 판이잖아요. 방송국을 가든, 공연장을 가든, 축제 현장을 가든, 진도를 벗어나면 확실히 진도 사람들이 끝내주게 잘 놀제라.”
좌중 평정하고야 마는 <육자배기> <흥타령> 지난 4월 초, 광주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우리 동네 소리꾼을 찾아라》 출판기념회 때도 똑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요즘 진도 소포리에서 대외적으로 여성민요를 대표하는 곽선자 곽순경 하귀심씨가 <흥타령>을 한 바퀴 돌리자 좌중이 ‘평정’된다. 한껏 자신감을 얻은 그녀들이 <육자배기>를 한바퀴 돌리자 모든 관객들이 경탄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이런 판이 진도 소포리에서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진도의 노장들이 순순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도 밖에서 빛나는 진도의 노래여, 사방 군데 다니며 때락때락 자랑하고 노십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