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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과 ‘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
극장 M의 대안 춤, 춤꾼들의 혁명적 발상이 어우러진 춤잔치
2007년 1월 31일부터 2월 11일까지 포이동 M극장에서 ‘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 ‘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 은 제목처럼 기획의 참신성, 대안 춤의 현주소, 춤꾼들의 혁명적 발상이 어우러진 대장정의 춤 잔치였다.
M극장의 춤 반란 혹은 변방의 춤이 주류로 부각되는 ‘극복의 춤’ 들이 선보인 춤잔치에는 13편의 창의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대부분 안무와 출연을 동시에 했고, 교차 출연해주는 너그러움과 스튜디오 춤의 정신을 살리고 있었다. 그 단평을 적어본다.
●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
2월을 여는 작품들은 외부의 골든 시선을 우회하여 ‘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31∼2월 4일·M 극장)에서 선보이는 주제에 걸 맞는 안무가들의 작품들이다. 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비전을 제시해주는 작품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에 차별화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은 골드 러쉬 행을 꿈꾸며 블록버스터 뮤지컬로 방향을 전환한 댄서들과 상아탑에 안주하려는 숱한 무용학도들에게 예술 춤의 기본정신과 정형을 보여준 춤 잘 추는 안무가들의 작품들이어서 주목할만하다.
프로 춤꾼들의 그랑제꼴 무용전용극장 M이 1부에서 선보인 이태상 안무의 『수평선(Horizen)』, 정연수 안무의 『삶의 조건(The Bondage of A Man)』, 김수정 안무의 『팝콘 2(Popcorn 2)』는 오늘날의 춤꾼들이 탈(脫)구속 자유 춤을 어떻게 추는지를 보여준다.
이태상은 『수평선』에서 사색하는 춤꾼 김혜숙과 호흡을 맞추며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스타일로 부조리한 현실을 직선과 사선으로 행동반경을 설정하고, 길 위에 서 있는 커플의 이지러짐과 찢어짐, 감정과 치유의 과정을 귀뚜라미 소리 사운드에 이입, 지루할 정도로 긴 기다림을 세묘(細描), 표출시킨다.
춤의 도발에서 발아되었던 반란은 이태상과 김혜숙의 야생에서 싹을 틔운다. 자유로움은 시공의 제약으로 한정된 무브먼트로 심리묘사를 감행하고 인간의 마음과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함축한 보덴의 종이들이 찢어지며 내레이션을 대신한다. 사랑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뜻하는 워터링(watering)으로 암전되며 귀뚜라미 소리도 사라진다.
정연수의 독무 『삶의 조건』은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과 서머셋 모엄의 『인간의 굴레』의 테마의 근간을 이룬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패널티 킥을 맞고 있는 골키퍼의 불안’과 같은 심리에 대비한다. 시각미와 리듬감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트레이닝복, 양말, 내의, 삭발과 같은 보통사람들의 현실과 대칭시킨 도발 춤에 경악한다.
고락이 수반된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여정, 그 과정 속에서 삶의 무게는 예측불허의 흥분과 묘미가 있다. 다양한 삶의 조건 속에 자신의 존재, 방향성, 삶의 철학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발상 전황은 기회이다. 삶의 조건은 현재진행형의 자문(自問)이다.
삶의 무게는 가변성을 갖고 있다. 존재의 경중, 권태와 집착 등의 유형으로 돌출된다. 자유와 자연을 갈망하며, 요나 콤플렉스를 느끼는 자유인 앞에 놓인 명제 ‘삶의 무게’는 『삶의 조건』을 낳았다. 예술가들이 언제나 봉착하는 제1관문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인다.
밀고 당기는, 혹은 서로 사육시키는 편안한 몸, 그 몸의 유연성으로 유기적 에너지가 소통되며 하나의 점에서 두개의 점을 형성한다. 부자연스러움, 부조화는 하나의 조화를 만들고 또 다른 형태의 조건을 갈망한다.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갈등의 정도는 다르고 행복의 크기 또한 다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위해서 꿈을 꾸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침을 뱉고 흘리는 행위는 강한 이미지와 메시지가 있다. 정상적인 성인들은 눈을 뜨고 활동 할 때 침을 흘리지 않는다. 이성을 통해 사회에 대한 복잡성을 인식하고 행위 제한을 하는 것은 삶의 무게감을 절제하면서 산다는 증거이다. 침을 뱉는 일상 행위를 무대로 옮김으로서 관객들의 이질감을 극대화시키고 관객들에게 삶에 대한 진솔한 질문을 던진다.
몸, 마음, 숨을 통하여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고 삶에 대한 치열한 탐구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고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돌아감을 깨닫게 된다.
『극』 『창』 『사물의 윤회』와 같은 ‘순환’ 연작인 이 작품에서 정연수는 많은 무용가들이 선호하는 바흐의 모음곡 G장조 프렐류드와 미뉴엣, 기그의 현의 변화와 일렉트릭 사운드로 삶의 조건을 발전시키고 삶의 권태와 세상의 무게, 계절의 변화 등을 이미지 댄스로 적나라하게 밝혀낸다. 공존을 필요로 하는 클래식과 현대 산업 음악도 대조적이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오감을 자극, 몸과 감성의 일체를 이끈다.
김수정의 『팝콘 2』는 그동안의 『팝콘』의 묘미를 보완 발전 진행시켜 나아가는 작품이다. 인간의 사랑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팝콘과 바나나, 랜턴같은 상징물로 기호화 시키고,정제시킨 관능 춤으로 현대를 관통시키면 온갖 형태의 춤들이 생활에서 샘솟듯 피어난다.
인간의 본성을 껍질 벗기듯 벗겨 나가면 사다리 타듯 욕망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합에 이항되는 변수들을 생각하는 세 주인공들의 코믹한 춤 연기는 가발처럼 가려진 욕망의 영역들이 특수 섹슈얼리티가 아닌 보편성이라는 것을 안무가는 드러내고자 한다.
크로스오버에서 오는 무리한 해석과 장르 마찰에서 오는 불협화음, 부적절한 음악사용 노출, 여백이 없는 사운드와 이미 실험이 아닌 코리안 로칼 엑스페리멘탈리즘, 정제되지 않는 혼돈 그 자체, 참신함이 사라진 존재를 위한 춤들이 대작 일월 춤에 걸쳐있었다.
이월 춤은 ‘2007 떠오르는 안무가전’은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로운 영역을 점령하고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춤의 언어를 개발하고 리듬과 움직임의 철학을 우리의 전통과 정서, 신체구조에 맞게 변형하고 있다. 춤 보존의 가치를 알고 미래를 여는 창조 춤의 여러 갈래를 제시하는 이번 춤은 또 새 역사가 되고 있다.
●포이동 M극장의 춤 반란
3일과 4일 아이디어가 충만한 안무가들의 M극장에서의 춤 반란이 있었다. 도발과 혁명을 앞세운 작은 춤들의 큰 뜻은 과히 질풍 노도(Strum und Drang)의 함성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방법론을 제시한 일군의 안무가들은 손영민, 이보경, 김유미, 김우석이었다.
춤 장르를 초월해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 있는 파격과 품격, 묘미를 겸한 작은 춤의 제전에는 기성 춤들의 가사상태를 꼬집는 다양한 실험작들이 자유로움을 수반하여 등장했다. 해탈의 경지를 여는 듯한 춤들은 코믹성과 창의력을 겸비, 친밀감을 주며 심각하지 않았다.
즐기듯 춤춘 그들의 춤에는 춤꾼 이상으로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클래식에서 현대 음악에 이르는 음악사용과 창과 랩이 혼재된 공간에는 이질적 요소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퓨전의 역사가 탄생되었다. 당대의 코리언 포스트 모던이즘이 춤으로 정립되고 있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의 노골적 상징은 표출은 손영민의 『커피, 담배, 그리고 그녀,Coffee, Cigarette, And She』에서였다. 기호와 인식, 색감과 탈리(脫離)의 변주는 상상과 진전의 세러머니에 흡족한 것이었다. 손영민의 눈에 비친 일상사는 웨인 왕의 『스모크』에 크로스 된다. 일인칭 시점으로 살펴본 몸, 시간, 감정에 대한 에세이에서 ‘세상은 여전히 살아볼 만한 곳이다.’
이보경의 『거짓 웃음 Ⅱ,Shadow Woman Ⅱ』는 『거짓 웃음』에서 진일보한 세련된 메터퍼로 사랑과 괴리의 진한 그리움의 아픔의 실체를 찿아 이를 마음속으로 삭이고 즐기며 극기하는 노련함이 포착된다. 이 작품은 세상을 조금은 이겨낸 여성의 진지한 사랑을 꿈꾸는 여성다움이 베어있는 페미니즘의 실체를 읽게 해주는 담백한 작품이다.
반란의 실체는 상황에 대한 해답을 알고 해결해나가는 모습이었다. 기성세대들의 매너리즘을 탈피하여 목표를 정하고, 꿋꿋하게 태풍의 핵으로 뛰어드는 안무가들, 그들은 위기를 감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춤의 전사인 그들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들을 하고 있었다.
김유미는 진주교방굿거리춤을 회고하며 그 전통 숨 사위의 주인공과 자신을 대비, 오늘을 반추하는 『숨은 꽃,A Hidden Flower』으로 예인의 능란한 전향적 자세를 선보였다. 이현진, 임승인, 김미애, 박성식과 환상적 하모니로 전통과 창작의 묘미를 한꺼번에 보여준 이 작품은 특히 자신감에 바탕을 둔 구성으로 현란한 하이테크닉 코리언 모던 클래식의 진수를 낳을 수 있었다.
춤 인식에 대한 스타일과 타입의 변화는 비쥬얼의 변화로 이어졌고, 그래서 춤꾼들은 관객들의 풍경이 되었고, 악기가 되었으며, 시가 되었다. 수직과 수평, 영역과 공간, 고정관념을 타파한 춤은 현대 춤에 가야금이 등장하고, 한국 창작춤에 전자음을 사용하게끔 만들었다. 크로스오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반란군들의 춤에서 원은 직선이고, 부드러움은 독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혼돈을 초래할 정도의 자유로움을 차단한다. 끊고 맺음을 조절하는 수완과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야말로 프로성을 띄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우석의 『훔친 사과, The Stolen Apple』는 원죄설을 모티브로 하여 사과에 상징성을 부여한다. 설익은 사과는 풋풋함이 있어서 좋다. 그의 컨테이너는 사랑의 진정성을 채워 넣기에 넉넉하다. 그가 전개한 사랑의 수사법은 김정미와의 조화로운 파트너쉽의 대입 항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프레임을 흔드는 사랑에 관한 독특한 발상은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춤 반란군들이 그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정진하여 제자리를 잡을 때, 우리 춤은 세게 춤으로 성장하여 있을 것이다. 이들의 불굴의 노력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대안 춤으로 부각된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
7일(수),8일(목) ‘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원숙한 안무가들의 현주소를 읽게 해주는 뜻 깊은 공연이었다. 집중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폐단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대안 춤이었기에 그 의의는 더욱 크다. 그들이 시대의 우울을 낭만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오히려 담담하였다.
안산컨템포러리 무용단 상임안무자로 춤으로 시를 쓰는 김은희, 독일, 스위스, 멕시코 초청공연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경실, 툇마루 무용단 안무자로 『겨울이야기』의 주역 무용수 김형남이 빚어낸 이틀간의 주옥같은 춤의 향연은 관객과 춤꾼이 완전한 호흡을 이룬 격정적 무대였다. 새로운 팬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춤들이었다.
김은희 안무․ 출연의 『주홍빛 화음, A Scarlet Harmony』, 최경실 안무의 『물 좀 주소, Give Me Some Water, Please!』,김형남 안무․ 출연의『낙서,Scribbling』는 창작 춤의 묘미와 춤 미학의 정체성 탐색에 걸 맞는 작품이었다. 세 안무가들의 춤은 삼십 단체의 의례적 댄스트루기를 훨씬 능가하는 품격과 오락성을 띄고 있었다.
대형 스타들의 실험 춤 참여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소극장에서의 창작 춤은 그 비용뿐만 아니라 제한된 공간에서 오는 거리감 때문에 땀방울과 먼지까지도 감지되고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안무와 춤을 병행하는 추세에서 최경실은 약간 비켜서서 안무만 담당했다.
김은희는 『주홍빛 화음』에서 ‘사랑과 이별의 풍경’을 격정적 서정으로 담아내었다. 갈매기와 파도소리가 조율하는 가청범위 무한의 바닷가에서 여인은 그리움을 탄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사랑에 목마른 여인은 바닷가에 묻힌 ‘빠삐옹’의 죄수가 된다.
빠른 흐름으로 격정적 그리움을 회화적 이미지로 고조시키지만 언제나 푸른 바다와 서정적 톤은 유지된다. 바닷가에서 같이했던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시절들은 빨간 로프 전구로 강약이 조절된다. 함축미 있고 다양한 수사학이 구사된 단편 춤의 특질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친구들을 투사하는 장치는 그들의 동경과 그리움을 담은 동화같은 몸짓에서 나타난다. 친구들을 연기해낸 성아름, 강현옥, 박희진, 윤선희의 조무(調舞)는 진한 향수와 그리움을 잉태하는 유닛들이다. 머쉰이라고 불리워지는 전문 춤꾼들은 로봇 이상의 정확성을 소지하면서도 서정성과 리듬감, 다양한 움직임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
헌화에서 흩어지는 꽃잎들은 적, 백의 꽃가루로 무심히 가버린 청춘을 상징한다. 다시 맞는 계절과 재회하기 전에 긴 기다림을 마무리해야 한다. 한 송이 꽃처럼 스포트 안에 동질감을 확인한 여인들은 몸으로 사고하는 길고도 심도 있는 음악 속에 하나가 된다.
그레고리안 성가 톤에 진행되는 의식 속에서 김은희는 ‘남쪽나라 바닷가의 따뜻한 모래가 하얀 까메리아 꽃을 그리워 하듯 그리움을 성스런 물의 제례로 대체한다. 청춘이 담긴 꽃들이 떨어지고 그녀는 순수로 탈의(脫衣)한다.
김형남은 독무인『낙서』로 의식이 정리 없이 흘러가다 머무는 순간의 움직임 그 몽환의 세계를 형상화시키면서 자신이 춤의 도구가 되어 있음을 알린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움직임, 그 기억들을 찿아 발레리노의 품새로 누워있는 그의 몸, 손은 작은 스크래치 소묘를 시작한다.
‘낙서’는 삶에서 잊혀져가는 순간의 파편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서글픔,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기 위한 가벼운 움직임이다.
독어 소음 도플러 오버랩, 그 속에 조명을 벽을 쫓아가고 벽에도 낙서가 진행된다. 전음유희(電音遊戱)와 샹송을 위한 현의 유쾌한 질주는 김형남의 ‘장님들의 코끼리’(촉감과 소회)란 화두를 심화시킨다.
언제나 바쁘게 살아가야 되는 현재 삶에서 잊고 있던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하듯, 그렇게 ‘낙서’ 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다.
탁자와 사다리를 소도구로 사용하고, 수평과 수직, 사선의 블로킹을 롤링과 점핑, 좌우 상하의 거리감과 공간감으로 채워 넣는다. 적절한 무대분할과 더불어 착의(착의)에서 상황 전개는 흑고니의 검정과 릴리의 백색, 모던 수묵의 분위기로 품격을 견지하면서 조명으로 문인화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낙서’의 메시지가 언제,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쓰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형남에게는 현시점에서 다시금 생각해야 되는 운명 같은 만남인 것이다.
‘낙서’는 순간을 잊지 않으려하는 것과 최소한의 몸짓 그리고 시간에 시간을 더하고 나서야 순수한 호흡이 있던 곳으로 이동하게끔 허락해 주는 듯하다.
군더더기 없는 춤은 시대의 우울을 반추하며, 움직임 하나하나가 몸체화(畵)의 정석을 밟아 나간다. 불안이 엄습하는 불확실성의 그늘, 이끼긴 공간이 그에게 엄습한다. 그는 ‘이 시대의 나의 삶을 진지하게 의식하는 시간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깨어 있어야 한다. 바람직한 예술가의 삶은 현재의 삶의 가치를 진지하게 드높이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최경실의 『물 좀 주소』는 바람직한 사회의 희망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삼인무로 표현한 모던댄스 이다. 깨어있는 자들의 절규를 세 개의 의자를 주 소품으로 활용하여 나타낸다. 김현주. 이명훈, 김희중의 저돌적 춤은 빠른 몸놀림으로 위험을 감내하는 파격적 다이내믹 리듬감과 고난도의 테크닉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춤으로 풀어보는 무언극에 가세하는 타악과 현, 리듬과 율동을 조절하는 박은 모던 댄스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겨울성의 비밀’과 같은 신비감에서 일상의 평범으로 급선회하는 비급을 안무가는 잘 전수한다. 의자가 춤의 무기가 되고 한대수의 ‘물 좀 주소’가 주 모티브가 되어 움직이고 구르고 뛰고 구부리는 뻗치고 사랑을 표현하고 갈증들을 재현, 재창조 해내는 작업은 세 개의 잔에 물이 채워 질 때 까지 계속된다.
비보이의 춤이 원용되고, 바닥을 두드리는 리듬감, 급제동의 묘미와 코믹성 표출, 간결미와 통일성 소지, 연습량과 비례한 팀 웍이 살아있는 이 작품은 함성을 축약한 일체음 ‘야’에 따라 붙는 하이 키 조명과 같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춤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춤전용 소극장 ‘M’ 에서 우리시대의 안무가들이 춤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의식을 진솔하게 보여준 용기있는 작업이었다.
●변방의 춤이 주류로…‘극복의 춤’ 세 편
‘극복의 춤’ 세 편이 포이동 M극장에서 장르를 초월한 평론가들의 열광적 관심과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 속에 2월 10일(토),11일(일) 막을 내렸다. 자발적 참여와 선험적 필요성에 의해 변방의 춤이 주류로 바뀐 이번 춤은 매니아 관객들을 창출시키며, 안무가들의 춤 인식, 제작 방식의 변화, 스타일 추구로 춤 진화의 과정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윤수미 안무의 『이끼,Moos』, 김혜숙 안무의 『매혹,Temptation』, 이해준 안무의 『의식,Consciousness』은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품격을 업그레이드한 춤 철학, 세기로 연마된 몸, 촘촘히 짜여진 구성, 공간에 적합한 무브먼트, 창조적 조명, 효율적 소품 활용, 음악을 포함한 사운드의 편집과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 등 가시적 성과물을 낳았다.
자기 목소리를 담고, 상상력을 극대화한 이번 극복의 춤 선집 공연은 제도와 편견이 잉태한 이 땅의 춤들에게 희망의 몸짓을 닮으라고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진부한 형식과 문제점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들은 스튜디오 춤 활성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었다.
뉴 코리안 댄스 웨이브는 현대인 고독과 소외, 서로에게 섬처럼 우뚝 선 소통단절에서 아울렛을 찾는 방식과 방법론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상외로 강박관념과 스트레스를 풀어 헤치는 독특한 양식과 정신분석학적 스펙트럼까지를 어우르고 있었다.
주제의식과 표현양식을 잘 살린 윤수미의 『이끼』는 어둡고 아픈 현실에서 ‘희망’으로 항해하는 콜럼부스적 모험을 옷고름에 숨기듯 간결한 상징을 담아 퇴폐의 숲, 얼룩진 현실에서 극기하는 모습을 자연주의적, 신비주의적 춤사위로 역어낸다.
춤 스타일리스트 윤수미는 『이끼』에서 양발 등에 탄생 코드인 촛불을 달고 우보를 시작한다. 만물이 정지된 가운데 신비감 충만(舞瞞)한 도입은 집중을 요한다. 세월의 흐름과 시간의 경과를 뜻하는 행위는 공간 이동으로 대체되고 촛불이 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숲 속의 신비를 찾아 흥겨움에 취한다. 말을 타고 헤맨 숲 속, 그 속에서 가벼운 놀라움과 흥분으로 꿈같이 보낸 밝은 날들은 회한과 추억으로 내려앉는다. 기억에서 반추되는 말소리, 파이프 음을 생각한다. 이끼 낀 툰드라의 땅에서 그녀는 가벼운 물소리를 듣는다.
2007년의 <이끼>는 99년 솔로 작을 사인무로 재구성한 새로운 버전의 이끼시리즈 이다. 정해년 벽두에 윤수미의 제(祭)에 올려진 염원은 ‘잃고 아쉬워하는 것들에 대한 복원’. ‘난관 극복에 대한 의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 ‘삶의 비밀’을 알아가는 그녀의 이끼는 내공을 뜻한다. 그녀에게는 하늘이 있었고, 자신을 일깨운 숲이 있었고, 자신을 성숙시킨 마법적 의식이 있었다. 초록과의 만남, 그것이 심화된 이끼를 춤으로 풀어내면서 윤수미는 숲 속의 전설을 완성시켰다. 이끼를 뿌리면서 그녀는 고수임을 입증했다.
자신이 매혹의 코드인 김혜숙은 미완의『매혹』에서 그녀가 제시하고자 한 방향성과 실체를 풀어헤친다. ‘매혹’은 대상과 실체의 개념이며, 어떤 관계적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매혹할 수 있고 매혹 당할 수 있는 존재이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가지고 그것의 방향성과 움직임의 단순화된 순차적 반복성이 이끌어내는 결과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반전되며,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반복되는 시도가 그녀를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게 한다. 그래서 이 공연에서는 짧은 시간 속에서 반전을 시도했던 진행에 집중하는 무용수들과 관객 간에 서로 오가는 질문들이 있게 된다. 그 인식의 주체 역시 순간 다른 상황에 놓여있을 수 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라처럼 일렁이는 자신의 열정은 시간성과 직접적인 방향성을 의미하는 천정에 메달려 있는 긴 봉 (棒)‘바’이다. 견고한 ‘자신’이란 성(城)의 성주가 휴가를 감행함으로서 얻을 행복의 언로와 자신감을 조용히 탐색하고자 한다.
무대 중앙 바닥에 깔린 한 장의 시각형의 흰색바닥, 그 위에 새로운 자신을 그려 넣고 싶은 것이다. 현재 그녀가 있는 공간성과 중력을 의미 한다. 중력은 그녀의 지금이고 방향은 그녀의 길이다.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은 감금과 정지, 혹은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성을 띤 매혹의 상태를 향해 간다.
느린 걸음으로 바라보는 세상, 자신의 주변에 서성이는 남자(이태상), 첼로 음처럼 부드러운 세상, 이성을 감지해내고 싶은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인형극 하듯 살고 싶은 것이다.
‘사각의 세상위에 원과 선의 만남, 부드러운 선율이 채워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가정은 점강의 수사로 춤을 채워 넣는다. 손에서 몸을 터치하고 발로 세상을 느끼며 일렁이는 남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인, 변화하는 ‘여인들의 오늘’은 부조리가 아니며 게임이다.
김혜숙은 한 곳에 고착된 시 공간이 아닌 인식하는 주체에의 운동성에 따라 그 의미와 질이 달라짐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녀가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 때 그녀의 시간과 공간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매혹적인 꿈의 세계로 향할 것이다. 이것이 이 작업의 궁극적 방향이며, 그녀로 하여금 보다 간절히 희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좀 더 세부적인 작업이 보완되고, 그녀 스스로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진솔하게 시도한다면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총체적 안무가 이해준은 춤 구성과 무대 연출에 해박한 식견을 갖고 있는 만능 춤꾼이다.그는 『의식』에서 상위개념의 춤철학의 실체를 간결하게 구성하고 있다. 다소 난해한 제목을 춤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면 구성과 조명의 분할화를 통해 네오탄쯔 메소드를 활용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타르코프스키의 영상철학을 쫓아가다보면 의식의 저편, 깨어있는 정신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수한 반란과 반동, 혁명의 기운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하고, 썩은 사회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 넣는 창조적 동인이 된다.
이보경, 손영민, 김준영, 손나예는 스폿으로 박힌 원의 움직임, 사운드의 변화에 따라 총체와 개별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빠른 몸동작과 일체감이 현대성을 다양하게 표출시키며 강조와 반복, 관능과 생동감을 경쟁적으로 얻어간다.
의식의 강조, 언어유희, 책에 대한 풍자가 시작되며, 책에 대한 향수가 살아난다. 책을 읽으며, 따라하고, 찢기도 한다. 춤은 문자가 되고, 문자는 춤이 된다. 책에 대한 지루함은 무극(舞劇)을 위한 사랑놀이로 변한다. 복합구성의 철학적 테제는 현대를 재빨리 훑어내는 빠른 박의 타악들이 감정을 이입시킨다.
어두운 곳에서도 다이아몬드가 빛을 내듯 이해준은 예술가의 삶을 지혜롭게 감내하면서 춤철학의 상위개념의 빈 부분을 채워가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투박함이었을 때 더욱 값진 이해준의 춤은 ‘훌라걸스’의 정석과 일맥상통하다.
‘우리는 춤으로 말해야 하는가? 우리의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낭만이 그 대답이 아니던가? 해답은 무엇이 되어도 좋다. 웃자!’라고 춤은 해답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세편의 ‘극복의 춤’들은 기댈 것 없는 실체에 대한 기다림보다는 야생의 생존법을 익히려는 몸짓이다. 관객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미학을 추구하는 작품들이다. 이번 공연은 관습을 깨고 일어서는 작품들이 춤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장석용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