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고 싶은 영화(1)
‘겨울빛’과 ‘바베트의 만찬’
최 화 웅
나는 언제부턴가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고 또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도 맘에 들면 소장을 해두고 남에게 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요즘은 영화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시네마의 홍수시대를 이루지만 그 마늠 좋은 영화를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람마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양하고 기호가 달라서 영화를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아무튼 나는 엄격한 수행의 ‘위대한 침묵’과 사랑의 새로운 길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부터 영화를 보고 또 보는 버릇이 시작되었나 보다.
나는 인문학의 길을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로 걷는다. 영화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보거나 하루에 몇 편이고 달아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사전에 나의 기준을 충분히 고려하여 영화를 선택하고 상영관을 찾게 된다. 지나간 영화는 DVD를 구입하거나 영화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받아 소장한다. 나는 삼복더위에 영화를 사랑하는 한 동호인의 추천으로 두 편의 귀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한 편은 스웨덴의 예술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연출한 흑백영화 ‘겨울빛(Licht im Winter, 1963)이고 다른 한 편은 덴마크의 가브리엘 액셀 감독이 연출한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이다. 두 영화는 관객에게 화약 냄새를 풍기거나 베드신으로 시선을 끌어들이지 않고 우리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겨울빛(Licht im Winter, 1963, 스웨덴)
영화 ‘겨울빛’은 어느 작은 교회의 목사를 중심으로 주일 하루의 일상을 보여주는 러닝타임 81분 의 흑백영화다. 이 영화에는 다섯 명의 주요 인물 이 등장한다. 아내 잃은 병약한 목사 토마스, 자신과 결혼하자고 집요하게 손을 내 미는 초등학교 교사 마르타, 자살하려는 어부 요나스 프레송과 그의 부인, 그리고 집사, 그들은 각자 나름의 공포와 문제를 안고 목사를 찾아온다. 그러나 목사는 그들을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실존마저 의심 하는 등 자신의 신앙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텅 빈 교회에 드리운 겨울빛이 희미하게 자리를 지킬 뿐 침울한 북유 럽의 분위기에 빠진 어느 날 독실한 신앙을 가진 집사의 말을 듣는 가운데 빛을 보게 된다. 장엄한 분위기 속에 배우의 절제된 연기와 대사가 영화 전 편을 지배한다. 단순하고 냉랭한 잿빛 세트와 로케이션은 이 영화에서 한 가닥의 희망과 긍정마저도 찾아볼 수 없게 한다.
오직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과 자신의 믿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영화다. 신자들이 기계적으로 부르는 찬송가, 제대에 걸린 기괴한 예수상, 삶을 포기하려는 요나스 프레동, 심지어 낫지 않는 토마스 목사의 감기는 고통스럽다. 목사도 신자도 “하느님!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친다. 신은 존재하는가?, 왜 인간을 창조한 신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는가? 신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할 뿐이다.
*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1987,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1987년 덴마크 출신의 여류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네 번째 소설을 가브리엘 엑셀 감독이 영상으로 담아낸 걸작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쓴 이자크 디네센은 본명 카렌 블릭센으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여주인공이 바로 그녀다. 악셀은 영화의 배경은 해풍이 거센 덴마크의 유틀란드 해안의 어느 가난한 갯마을로 설정했다. 사랑과 신앙과 예술에 관한 따뜻하고 재치 있으며 지혜로운 고찰인 이 영화의 전반부는 파리의 그 이름난 엉글레 카페의 전설적인 수석 셰프, 바베트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진탕길 과 오두막이 있는 소박한 갯마을에 수염을 하얗게 기른 목사는 독실한 목사이자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다. 아내를 잃은 목사는 홀몸으로 아름다운 두 딸과 함께 살아 간다. 목사가 집을 나설 때나 교회를 갈 때면 두 딸이 복사처럼 나란히 앞서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딸이 있다. 큰 딸에게는 기병대 장교가 청혼을 하고 목소리가 좋은 둘째 딸에게는 파리의 오페라 가수 파핀이 연정을 품고 레슨을 제의하지만 순결하고 금욕생활을 지키려는 자매들은 세속의 유혹에 물들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사양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오페라 가수 파핀의 편지를 품에 안은 바베트가 나타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모든 걸 다 잃고 이곳에 피신한 전설의 요리천재 바베트는 신앙심 깊은 마르티네와 필리파 두 자매 집에 머물면서 복권당첨금 만 프랑으로 정통프랑스 요리를 만들어 동네사람들의 신앙심과 사랑을 되살리는 우화 같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명예욕과 과시욕, 애정욕구 와 식욕, 시기와 질투까지를 우아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바베트가 준비한 두 자매의 아버지, 목사의 생신 100주년 기념예배 때 저녁만찬을 정통 프랑스식 정찬으로 내놓는다. 만찬이 있는 12월 15일은 눈이 내렸다. 젊은 날 마르틴느에게 청혼했던 기병장교가 장군이 되어 참석한다. 테이블 크로스를 다림질하는데서 정찬의 분위기를 잡는다. 식전주로 스페인 셰리주의 일종인 ‘아몽틸라도’가 나오고 메인 요리 ‘까유 엉 사코파쥬’가 테이블과 식공간을 품격 있게 연출한다. 영화 전편에 깔린 강한 종교적 색채 속에 생애 마지막으로 차려내는 특별한 만찬과 초대된 마을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가 마음 편하다. 신앙과 음식과 사랑이 하나가 된 거룩한 만찬, 그 속에 화해, 용서, 사랑을 아우르는 이 영화는 요리가 예술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만찬이 끝나고 나온 동네 사람들은 손을 잡고 우물가에 둘러서서 노래부른다. 이를 지켜본 두 자매는 “별들이 더 가깝게 보이네.”라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첫댓글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바베트의 만찬 감동있게 몇년전에 2번 보았는데 또 보고 싶어지네요~
내일은 아들하고 마지막 4중주 보러 갑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상영하는 곳이 1군데 밖에 없고 흥행성때문에 종료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번주 일요일까지 한다고 합니다.
소개하신 영화중 콰르텟.송포유.아무르는 다운 받아서 볼 수있는 곳이 있어서 주일에 보고요.
겨울빛은 다운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네요.ㅠ.ㅠ
이렇게 좋은 프로 소개해주셔서 제가 수고 없이 명화를 볼 수있게 되어서 행복해집니다.
감사하고도 고맙습니다^^*
니체든가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던 사나이! 신의 구원과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가르는 경계의 모호함! 신은 과연 인간을 구원할까요? 겨울빛 왠지 무거울것 같은 흑백영화 꼭 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움 님께서 소개한 영화를 보면 시간의 손실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잘못 선택한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소비된 시간이 아까울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