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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16: 1~31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다른 공관복음에는 없는 비유로 대표적 난해 비유이다.
아마도 추측컨데 비유해석의 어려움으로 다른 제자들이 쓰지 않은 것을 세심한 누가만이 기록한게 아닐까 한다.
신학자들 사이에도 해석이 명확하지 않은 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보면 같은 주제를 연결시켜 놓으신 것이라 쉽게 이해 할수 있다.
일단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줄거리와 시대 상황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면,
어느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다. 이 시대 부자들은 청지기를 두어 자신의 재산 및 집안의 살림을 총괄 관리하게 했다.
구약의 아브라함의 종이었던 엘리에셀이나 보디발의 집사장이었던 요셉이 그런 청지기 였다.
그런데 이런 부자들은 집을 떠나 타지에 있을 때가 많았기에 청지기를 고용할때 무엇보다 정직한 성품을 먼저 보았는데, 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생각할 정도로 신임했던 엘리에셀도 그렇지만, 한낱 소년 노예에 불과했던 요셉을 보디발이 가정총무로 발탁이 되었던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창39:3절에서 보디발은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항상 형통함을 보고 가정총무를 삼고 자기재산을 맡겼는데, 이는 요셉이 다른 노예와 달리 항상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정직했고, 그런 성품은 일을 항상 옳은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요셉과 달리 많은 청지기들은 주인 몰래 재산을 빼돌리거나 권세를 남용하여 소작농을 착취하는 등, 온갖 부조리를 행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이처럼 본문 비유의 주인 또한 자신의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래서 주인은 대노하여 청지기를 불러 해고를 통보하고 '네 보던 일을 셈하라' 며 지금껏 청지기가 맡아 했던 모든 일에 대한 회계보고를 명령한다.
청지기는 이런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지금까지 주인인 양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며 주인재산을 펑펑 쓰고 편하게 살았는데, 쫒겨 났으니 이제 큰일이 난것이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았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지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즉시 주인에게 빚 진자를 다 불러내어 자기 마음 대로 빚을 탕감해준다. 기름 백말을 빚진자는 오십말이라 채무증서를 다시 쓰게 하고, 밀백석은 팔십석이라 고쳐 써주며 장부도 조작한다. 그리고 자기가 청지기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자기 덕을 봤으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책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 스토리로 봐선 누가 봐도 이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을 끝까지 사기 쳐 먹은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며,
빛의 아들들보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지혜롭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이중장부를 적으면서 양심에 꺼리긴 해도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생각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글을 본적 있다.
하지만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그렇게 문자 그대로 보고 부조리를 정당화 해선 안되는 게 이 비유는 철저히 상징적이며 영적인 비유이기 때문이다.
우선 비유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이 불의한 청지기는 이 시대의 믿지 않는 재력가들을 상징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과 권세는 하나님 것인데, 이 시대 재력가들은 마치 원래 자기것인 마냥 남용을 한다.
그리고 그 재물을 언제까지나 누릴 것 처럼 행세를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는 필히 죽음을 맞게 되있고, 그 때에는 더이상 그 재산은 자기의 것이 아니게 된다.
이 비유로 예전에 읽었던 이문열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다니는 주인공 엄석대는 늙고 구태의연한 담임에게 받은 반장이란 권력으로 자기가 속한 반을 자기왕국으로 만든다.
아이들은 모두 엄석대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공부잘하는 애들은 시험지를 바꿔치기 해주고, 좋은 물건을 갖다 바치는 등, 엄석대에게 철저히 복종한다.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공 한병태는 처음엔 이런 부조리한 체계에 맹렬히 저항하지만 엄석대의 지속적인 핍박과 왕따로 그 권력에 굴복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젊은 선생이 부임함으로 그 철옹성 같았던 엄석대의 왕국이 붕괴 되고 엄석대는 선생에게 흠씬 두드려 맞은 후, 초라하게 퇴출당한다는 줄거리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인데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영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든다.
그 소설처럼 이세상의 마지막 날, 새로운 왕이 오실때, 부패한 왕인 사단과 그 조무래기 세력가들 또한 그렇게 처참하게 몰락 할 것이다.
현재, 세계엔 그런 엄석대들이 얼마나 많나.
본 주인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사단을 필두로 그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권세가들, 또는 대부호들,
굳이 그리 멀리 외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최근 마약사건으로 유명해진 배우의 술 한상이 몇천만원이라니, 마약이 한국에선 불법이라 그 배우는 개인적으로 심판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쥐고 있는 귄력과 부가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이 불의한 청지기는 다행히 자신에게 닥칠 종말과 심판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이 더이상 자기 것이 아님을 깨닫고, 구원을 얻기위해 주인의 재산을 남을 위해 사용한다.
어차피 주인의 돈이니, 아낄 이유도 없이 사람들에게 선을 베푼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불의한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다고 칭찬하신 것이다.
또한 이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자녀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신 이유는 빛의 자녀들은 이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은 청지기자리에서 쫒겨나지 않는다 생각하니, 천국은 어차피 내것이라 생각하니, 손에 쥔 재물을 성급히 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모든 재물은 하나님것이라 말하지만 여전히 마음과 행동으론 지켜야 할 자신의 소중한 보물이기에 빚을 탕감하거나 선을 베풀더라도 아주 심사숙고하고도 인색하다.
또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이 말씀의 '불의한 재물로 사귀는 친구'는 구제해야 할 가난한 자들을 뜻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의 제자가 행한 구제는 결코 상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해석도 틀리진 않지만 그 친구는 예수님을 의미한다고도 본다.
마25:31~46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지극히 작은자에게 한 구제가 곧 자신에게 한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의한 재물로 예수님을 사귄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
사실 돈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다.
믿음은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하는 말이 삯군 목사들이 성도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흔히 쓰는 단골멘트이기도 하지만, 사실 실제로 그렇다.
연인이나 부모자식간이나 돈을 아낀다면 사랑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예전에 자기 애뫈견을 곧잘 교회에 데려오는 집사님이 있었는데 참 형편이 어러운데도 애완견에겐 많은 돈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비싼것을 샀어?" 하고 물으면 "이상하게 얘한테 쓰는 돈은 안 아까워." 하고 대답했다. 그 집사님은 진정으로, 온 마음 가득하게 그 애완견을 사랑한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 다음으로 중요시 여기는 것이 돈이다.
그래서 자기가 사랑하는 자에게 돈을 쓴다.
그 대상이 자신이면 자신에게, 자식이면 자식에게, 하나님이면 하나님에게...
돈 때문에 한국목사들이 부패한것도 사실이지만 선교사업 등, 하나님나라의 확장도 성도들이 하나님을사랑해 내놓은 이 돈 때문에 우리나라가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라는 지금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돈은 이 세상에만 쓸모가 있는 것이라 하등 애착을 갖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때 코로나로 경기가 어려울때 나라에서 한시적으로 쓸수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나눠준적이 있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돈이라, 그 기간에 왕소금카페 회원조차도 그 돈을 안 쓰고 아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그런 기간이 지나면 사라질 돈에 집착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천지이다.
내 주변인 중, 남편이 자린고비처럼 쓸돈 안 써가며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 사고로 죽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모은 돈과 보험금 몇억을 마누라가 새 남자를 사귀어 흥청망청 써서 홀랑 말아먹는 경우를 봤다. 도대체 그 남편이란 사람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모은 걸까.
심심잖게 TV뉴스에 나오는 대부호들의 자녀간의 재산 싸움도 그렇다.이미 가진돈만 하더라도 평생쓰고도 남을 돈이 있으면서도 그 돈을 더갖고자 형제끼리 소송을 걸고 못할 짓을 하며 산다.
이는 모두 쫒겨나면 아무런 권한이 없을 재물이나 채무증서를 손에 꼭쥐고 있는 어리석은 청지기의 모습 아닌가.
다음 10~14절을 말씀 또한 같은 의미의 말씀이다.
"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으로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 '불의한 재물', '남의 것'은 곧 곧 사라질 이 세상의 재물을 뜻하며 '큰것', '참된 것'은 '너희의 것'은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보화를 뜻한다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그래서 이 곧 사라질 세상의 재물은 본디 가치없고, 불의하고, 또한 남의 것이지만, 그 재물을 하나님나라에 충성되게 쓰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큰것, 참된 것, '우리의 것'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음 13절에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라. 너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히 섬길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우리가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못을 박으셨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말에 비웃던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은 난데없이 갑자기 이혼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라."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부자와 거지나사로에 관한 비유이다.
옳지 않는 청지기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서로 같은 주제의 재물에 관한 말씀인데 왜 예수님은 갑자기 생뚱맞게 이혼 얘기를 가운데 껴 넣으신걸까.
예수님은 이때외에도 마태복음 19장 9절에서도 음햄한 연고외에 이혼을 금하시는 말씀을 하시긴 하셨다.
그러나 이 시대의 여자의 신분과 인식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문자그대로 해석해서 현재에도 이혼한 크리스찬의 재혼을 이유불문하고 정죄하는건 좀 무리가 있다.
실제적으로 배우자가 이단에 빠져 가즹을 등한시 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핍박을 받는 등,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다 어쩔수 없이 이혼을 한 후, 좋은 신앙인을 만나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많다.
모든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니 여자 목회자는 커녕 성가대도 옛날 중세처럼 거세를 한 카스트라도들이 나와 서야 하고, 옷도 두벌옷을 가지지 말라 했으니 주구장창 옷 한벌로 밤에 빨아 아침마다 입어야한다.
여하튼 여기 18절의 말씀은 실제의 이혼을 말씀하신게 아닌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 혼인관계 대한 순결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맘몬신과 결혼하는 것과 같이 간음을 하는 것이며, 버리운 이, 하나님과 참성도들이 버린 맘몬신에게 마음을 뺏기는 것 또한 영적 간음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어지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또한 자신의 정욕만을 위해 물질을 사용한 것에 대한 경종의 말씀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그 물질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구제를 행했지만 부자는 종말이 되어서도 깨닫지 못한 미련한 자이다.
한 평샘 그렇게 자기만을 위해 먹고 마시고 놀며 밖의 거지 나사로가 배고파 죽건 말건 자기의 안위와 쾌락만을 위해 살다 결국 지옥불에 던져 지는 것이다.
그때가 된 후엔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청지기 직분을 박탈 당해 쫒겨난 후로는 그 어느누구의 빚도 탕감해주며 선심을 쓸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16~21의 말씀 또한 위의 두 비유와 같은 주제의 말씀이다.
누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곡식 쌓아 둘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자가 이와 같으니라"
우리모두 곧 사라질 이 세상의 허망한 돈을 영한한 보화를 얻기위해 사용하는 그런 지혜있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주님의 산 ㅡ 나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