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강좌 목차를 봤을 때, 가장 재미없을 것 같았던 강좌가 3주차의 <현장에서 본 ESG 평가제도의 허와 실>이었습니다. 일단 제목에 들어간 "ESG"라는 개념부터, 많이 들어는 봤는데, 한국어로 대체되는 말이 없어서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뜬구름잡는 소리같고, 왜 형용사+형용사+명사 조합인지도 모르겠고 등등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기대없이 참석했는데, 배경과 개념부터 시작해서 문제점과 대안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셔서 너무 재미있었고, 배운 것도 많았고, 생각할 거리도 생겨서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좋은 내용 준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장려하기보다는 점수가 목적이 되어버린 ESG 평가 제도를 보니, 배움이 본질이 아니라 시험이 본질이 되어버린 교육 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잘 살자고 만든 법이 교묘한 방법으로 악용되는 것과도 겹쳐집니다. "그럼에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씀에 공감하면서도, 제도나 법 없이도 각자 알아서 잘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아서 잘 하고 있는 파타고니아의 진정성과 철학은 다른 기업들이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사례이자 대안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파타고니아와 같은 "좋은" 기업이 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파타고니아 옷을 새로 구매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가 입던 옷을 입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파타고니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소비를 줄이라는 의미에서 <DON'T BUY THIS JACKET> 이라는 광고를 남긴 적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이 광고 후에 파타고니아의 매출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사업영역을 음식으로 넓혔다는 파타고니아가 "지속가능한" 육류와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놀라움과 실망을 느꼈습니다. 육류와 해산물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파타고니아에서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을 구매하는 것이 좋겠지만, 아예 구매하지 않는 것이 지구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삼성과 현대가 각종 ESG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경영을 추구하는 "좋은" 기업이 된다고 해도, 80억 지구인 모두가 "좋은" 삼성 노트북, 휴대폰, TV, 세탁기, 건조기, 청소기와 "좋은" 현대 전기차를 구매하면 지구가 남아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구가 살려면 우리 모두가 덜 소비해야 하고, 기업이 살려면 우리 모두가 더 소비해야 하는데요, 이것이 양립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생물은 성장에 한계가 있고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되지만, 기업에게는 성장의 한계도 없고 자연적인 죽음도 없어서, 그 철학이 무엇이든 결국은 존재와 성장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기업이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와 실제 행위가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비영리조직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다 우위에 둘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동네 단위에서는 가능할 것도 같지만 국가나 세계 단위의 기업에서는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1강과 2강도 너무 재밌게 들었고요, 처음 알게 되고 고민하게 된 것도 많았는데요, 미루다 보니 3강이 끝나고 나서야 후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좋은 강좌 및 자리 준비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참석하신 분들이 남겨주신 후기들도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들도 기대됩니다!
첫댓글 도진님이 말씀하신 바에 100프로 동감합니다.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는.. 세계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내 몸의 동선이 있는 그곳(말씀하신 동네, 마을, 맺고 있는 관계, 모임 등) 바로 세계 아닐까요? 우리가 하고 있는 모임으로 우리가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엄청난 혁명입니다. ’이미 들어선‘ 걸음임을 깨닫고 다음 걸음도 사뿐히 같이 걸어가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