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선생이 내 점토판을 읽고 "빠뜨린 게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책임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입을 벌렸느냐?"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렷다.
규율을 담당한 선생이 말했다. "왜 내 허락도 없이 일어섰느냐?" 그는 회초리로 때렸다.
문지기가 말했다. "내 허락도 없이 어딜 나가느냐?"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맥주 항아리 관리자가 말했다.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마셨지?"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수메르어 선생이 말했다. "어째서 아카드 말(바빌로니아.앗리아 지방을 포함하는 동부 지방의 셈어)을 썼지?"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담임선생이 말했다. "너는 글씨가 악필이야!"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고대 필경사들은 읽기와 쓰기만이 아니라 목록, 사전, 달력, 서식과 표를 사용하는법도 배웠다.
이들은 뇌가 사용하는 기법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목록을 만들고
검색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기법을 공부해서 자기 것으로 익혔다,
뇌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자유롭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새 집의 담보대출에 서명하러 가면서 우리가 함께 살았던 첫집을 떠올린다.
이 기억은 뉴올리언스 신혼여행을 연상시키고,
여행은 악어를, 악어는 용을, 용은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상시킨다.
어느덧 나는 이 악극에나오는 지크프리트 곡조를 무의식적으로 헝얼거리고는
은행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관료제에서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위한 서랍이 하나, 결혼증서를 위한 서랍이 하나,
세금 기록용 서랍이 하나, 소송용 서랍이 하나, 이런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뭔가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나 이상의 서랍에 속하는 것, 예컨대 바그너의 악극 같은 것은 골칫거리다
(이것을 '음악' 또는 '연국'이란 범주로 분류할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야 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서랍을 추가하고 지우고 재배렬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한다.
그런 서랍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기를 중단하고 서기나 회계사로서 사고체계를 다시 정착해야 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서기와 회계사는 인간이 아닌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캐비닛에 파일을 분류하듯이 사고한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그들의 서랍은 뒤죽박죽이 될 테고,
자신이 속한 정부나 회사, 조직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업을 것이다.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203-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