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특훈 5기 안철환입니다.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남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모든 이들의 조건이 다 같지는 않고, 또한 여러 선입견이 개입될 수도 있고…..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된것 같아 조심스럽게 남겨봅니다.
처음 코치님과 one to one 미팅 할때가 생각납니다. 2010년 11월 중순쯤인데… 그당시 저는, 혼란의 시기였어요. 꽤 오래 다니던 학원을 더 이상 다닐수 없데 되자, 그동안 터득한 노하우로 독학을 하려고 했는데,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계획대로 진행된것 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즈음에 코치님 수업을 알게되었고 , 수강 두번째 달에 상담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날 저는 몇가지를 등에 메고 손에 들고 가는데, 제가 보려고 또는 공부하려고 샀던 책들, 자료들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코치님께 물었죠. 제가 제일 먼저 해야 되느것은 뭘까요? 그 질문전에 발음, 리듬에 대한 테스트도 강의실에서 받았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리드림훈련 수업과, 리듬튜닝 그리고 시냅스였습니다. 나머지 자료들은 소리훈련이 되고 난 후에 하셔도 늦지 않아요…..
저는 바로 그날 소리드림교재,자료를 제외한 영어에 관한 모든것들을 창고로 옮깁니다. 그리고 그날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게됩니다. 직장인에게도일년간의 약속을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관심을 가져 보았지만 직장인이라는 구속으로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가지 목표가 생겼네요. 그당시도 스터디는 하고 있었어요. 스터디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던거죠… 처음으로, 리듬감을 올리세요에 도전한 날, 뉴스 두문장으로 일요일 반나절을 보냈어요. 그때는 입만 크게벌리고 소리만 지르면 되는줄 알고 했었는데…. 지금 들어보면 손발이 오르라들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직합니다.
드디어 그날이 옵니다. 일년간의 약속 5기 공고가 났어요. 저는 이미 코치님 개인상담받은 직후에 지원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시간되면 카페에 올리력고 했는데, 누군가가 시간도 되기전에 미리 올렸어요. 아쉽게도 제일 먼저 지원하지는 못했어요. 그럼 저는 왜 일년간의 약속에 지원했을까요?
5기 쏘영팀 특훈시작한후, 4기가 엠티가는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SURVIVAL ENGLISH 라고 했습니다. 영어는 제게 올라갈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꼭 넘어서야 하는, 그렇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었어요. 그때는 2011년 2월쯤 인데,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죠? 상황이 바꿨나요?
어느해 12월, 제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영어 커큐니케이션이 거의 안되는 시기에 꽤 큰 미팅에 참석합니다. 아시아 각지역의 사장들이 한국 사무실에 모여서 2007년 영업전략과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회의를 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의 재무책임자라는 이유 만으로 그 회사에 불러들어갑니다. 그때 제 능력은 Yes, No 만 영어로 할 수 있는 실력입니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회의에서 엑셀에 숫자를 입력해서 기본적인 영업목표와 예상 손익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이미 본사에서 엑셀 서식을 받았고, 회의참석자들의 발표/이야기를 듣고 입력만 하는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네요. 듣지를 못하니까 입력도 못하고, 입력 안하고 뭐하니 라는 얘기만 듣고. 그얘기도 들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 중에 한 명이 그 자료를 다시 만들어 제 숫자와 비교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회의후에 근사한 식당에서 회의참서자들과 술과 함께 고기를 먹는데,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네요. 그 회의후에 큰 결심을 하게 되죠.
특훈 5기는 2011년 1월 부터 12월 31일, 정확히 1년 365일 입니다. 5기는 경쟁률도 대단했고, 최종합격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했었는데, 그 때 당시는 뽑아만 주면 무엇이라도 다 할것 같은 그런 시기였어요. 그 초심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5기가 되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2011년은 나에게 주어지는 영어에 대한 마지막 기회라고…. 그리고 꽤 열심히 했어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로는
일지를 한번도 누락하지 않고 365일 기록했다. 그리고 책으로 받았다. 내년에도 또 할꺼다.
문장구조 과제를 누락하지 않고 다 완수했다.
일년을 꾸준히 한 곳을 목표로 삼고 그것만을 보고 달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직장인들의 입장에서는 더 어렵겠죠. 직장에서의 일, 가족에서의 역할 아빠, 남편, 아들 … 무엇하나 만만한 것은 없어요. 저는 그 역할 중에서 많은 것을 내려 놓았어요. 찔끔찔끔 하느니, 끝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덤볐습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발음, 리듬의 습관때문에 잘 고쳐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울렁증. 토요일 40분 훈련후 발표하려고 단상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시냅스가 덜 된게 분명합니다. 직장인은 평일에 녹음3개가 기본. 3시간 확보는 신의 직장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데, 종일반 학생들과 비교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게 되고. 3시간이나 잘 할 것이지 ㅉ ㅉ. 어쨌거나,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서, 회사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연차휴가를 냈어요. 5월 중순 쯤 부터 시작해서 특훈 끝날때까지. 이때 안양천도 몇 번 가 봤구요. 휴가가 꽤 많더라구요. 그러나 그런 부하직원을 좋아하는 상사는 없겠죠. 그러나 저는 했습니다. 연말에 받은 저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였지만, 저의 비젼카드에는 이미 다른 목표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휴가인 수요일에는 복습과 문장구조 과제를 보충했습니다. 일요일에도 새벽에 일어나 대학교 강의실, 학원에서 훈련과 과제를…..일기의 단어수도 꾸준히 늘려서 8월 중순에 목표하던 1,000자를 돌파합니다. 몇명의 특훈생과 조촐한 식사도 함께.
제 부모님, 와이프 부모님 생신때도 양해를 구하고 평일 저녁에 잠깐 다녀왔지요. 그렇게 집중해서 햐려고 했지만, 좀 하다보면 슬럼프가 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이 방법이 맞아?, 효과가 있을까? 등등
이런것들은 남이 나에게 주는 경우가 적은 것 같아요. 오히려 보다 내가 나의 슬럼프를 조장하고, 합리화하고, 멘붕에 빠지고…. 그럴때면 동기부여 동영상을 봤어요. 이 나이에 무슨? 아닙니다. 사람은 다 똑 같아요.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같지요. 저는 귀가 참 얇아서 잘 넘어가지요. 그렇지만 한 번 시작하면 꽤 오래합니다. 그런건 자신있어요. 꾸준히 오래 하는 것…..코치님과 그의 교수법, 앞만 보고 걸어온것 같아요.
그리고 직장에서의 변화, 뭔가가 달라져야 하는데 말이죠. 앞에서 언급한 어느해 12월 이후에도 그런 회의들은 매년 몇번씩 있었죠. 제게도 프리젠테이션 기회가 생깁니다. 특훈 하기전에는 원고 작성하고 그 대본 외우고, 뭐 그런 방밥을 했죠. 누구나 그렇게 하죠. 다만 문제는 외국인 높은 분들이 영어로 질문을 한다는 거죠. 항상 발표시간보다 질의 응답시간이 더 깁니다. 전에는 질문을 못 알아들으니까 답변도 못해요. 그럼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끝나면 제가 발표 계속하고…. 분명 내 발표자에서 나오는 질문이고 토론인데 발료자인 나만 벙어리로 있고…. 혹시 그들이 결론을 잘 못 내리고, 틀린 의사결정을 하면 어떻하지? 물러보지도 못하고…. 그럼 내 발표자료는 쓰레기인가?.... 항상 생각하게 하는 일들….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 했어요. 전에는 그랬었죠.
2012년 9월 어느날, 영업전략회의에 참석합니다. 아시아 각국의 지사장들, 미국 총괄 사장 그외 중요한 시니어 매니지먼트이 참석. 저에게 한 시간이 할당 됩니다. 발표자료 준비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가 없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전달하고, 그들이 내 발표자료를 가지고 왈가왈부할때 코멘튿도 주고, 그들이 틀린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조언도 하고… 이미 저는 준비가 다 되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끝났습니다. 제 발표를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참석자들 대부분이 회의끝나고 저에게 자료에 대한, 토론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일년과 올해 9개월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 눈물이 눈가에 핑….
7월말경, 미국 뉴욕에 다녀옵니다. 단순한 여행은 아니였고, 2주동안 뉴요커가 되려고 떠났습니다. 환승도 두번씩 하면서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해서 2주…. 처음엔 약간 두려움도 있었지민, 와이프가 딸 아이 모두 다 나만 믿도 있기에 힘을 내서…. 이것이 계기가 돼서 딸아이와는 더 가까와졌죠. 아빠의 영어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두번 생겼어요.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기로 했는데, 중국인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했어요. 미국인 네이티브 가이드가 인솔한다고 해서 선택… 영어의 자신감이 없었으면 못했게죠… 방문하는 곳마다 가이드가 약간의 설명을 곁들이는데, 딸아이는 나에게 한국어 번역을 부탁해서 다소 당황했지만….두번째는 의도하지 않은 경우인데, 귀국하는 비행기가 취소돼서 티켓팅을 다시 하고, 숙소도 알아봐야 하는 멘붕….. 델타항공에서는 명확한 지침도 없이…. 하지만 해 냈습니다. 출밯하지도 않은 비행기에서 4시간 대기, 밤 12시에 티켓예약하고 새벽1시에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영어의 벽을 넘고… 그사이에 벌어진 택시회사에 전화했는데, 가용할 택시는 없다기에, 항공사에 다른 택시회사 연락처 알아보고, 택시기사 만나서 숙소에 도착했지만, 숙소는 이미 만원,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반복….
요즘 저는 뭐하고 있을가요? 이제는 영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요. 하던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제 일상생활에 녹아들었어요. 영어로 일기쓰고, 스카이프하고, 툼틈히 원서읽고, 특훈하기전에 좋아했던 영화 액팅하고, 영어로 생각하려고 해보고, 영어로 많이 말해보고,… 우리 딸 영어 도와주고……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부양해야할 가족도 없고, 나이도 글쓴이님 보다 훨씬 어린데도, 정말 저는의지가 약한것 같네요. 열심히 하는모습 본받을게요.
대단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햇는지.. 그 절실함이 느껴지네요. 헬퍼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제가 다 뭉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