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
김은진
종합사회복지관 과장, <한 번쯤 고민했을 당신에게> 저자
제가 일했던 기관에서 월 1회 의무적으로 슈퍼비전 회의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대부분 복지관이 이렇게 슈퍼비전을 진행할 겁니다.
보건복지부 평가 때 점수를 잘 받기 위함일 수도 있고, 후배를 잘 돕기 위한 기관 방침일 수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어찌나 빨리 돌아오던지. 후배가 슈퍼비전 계획서를 결재 올리면
그 계획서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슈퍼비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후배가 미리 써서 제출한 슈퍼비전 계획서를 살펴보아야 슈퍼바이저인 나도
어떤 내용으로 슈퍼비전 줄 것인지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배는 늘 기한을 넘겨 겨우 작성해 왔고
그 내용은 ‘슈퍼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 나누기에는 다소 난감한 것들이었습니다.
후배에게 물어보니 슈퍼비전 받을 ‘질문’이 생각나지 않는답니다. ‘질문’이 없다고 합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궁금하고 고민하는 일이 한 달에 한 번도 없다니 말이지요. 한 달에 최소
160시간을 일하면서 어떻게 궁금한 일이나,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했던 일이 하나도 없었을지 의아했습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속상하기도 하고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저 또한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월 1회 해야 한다는 ‘의무’와 각종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행정 절차’가 질문을 휘발해 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때는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자기 일에 관심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의무로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 함께하고 있는 후배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저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첫째, 절차를 간소화하기
이는 사실 후배를 포함한 직원 개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는
관장님이나 부장님, 부서장과 같은 관리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2024년 현재 보건복지부 평가 지표에는 내부 슈퍼비전의 경우 월 1회 진행하여야 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복지관에서는 월 1회 내부 슈퍼비전을 정례화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가항목 | C1-2. 사례관리 인력의 전문성 |
평가내용 | ② 사례관리자는 내·외부 슈퍼바이저를 통해 정기적인 슈퍼비전을 받고 있다. |
인정범위 | ○ 정기적인 슈퍼비전이란 내부의 경우 월 1회 이상, 외부의 연 2회 이상의 슈퍼비전을 의미 하며 내·외부 슈퍼바이저 하나만 해당해도 점수 부여 |
평가항목 | C3-1. 지역조직화 실행체계 |
평가내용 | ③ 충분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 슈퍼바이저를 통해 정기적인 슈퍼비전을 받고 있다. |
인정범위 | ○ 정기적인 슈퍼비전이란 내부의 경우 월 1회 이상, 외부의 경우 연 2회 이상의 슈퍼비전을 의미하며, 내·외부 슈퍼바이저 하나만 해당해도 점수 부여 |
<2024년 경기도형 사회복지시설 평가 사회복지관 평가지표>
기관에 따라 상황이 다르겠지만 슈퍼비전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절차가 있습니다.
제가 전에 일하던 기관에서는 슈퍼비전 체계를 새롭게 만들며
「사회복지 슈퍼비전의 이론과 실제(안정선·최원희, 도서출판 신정, 2016.)」 책에 있는 서식을 참고하였습니다.
슈퍼비전을 시작하기 전에 ‘개별 프로파일’과 ‘자기성장계획서’를 작성합니다.
영역별로 어떤 내용으로 슈퍼비전이 필요한지 ‘교육적 사정결과 요약지’도 작성합니다.
이를 토대로 ‘슈퍼비전 욕구수렴 및 합의 질문지’를 쓰고 ‘개별 슈퍼비전 계획서’에 맞춰
슈퍼바이지는 월 1회 업무에 대한 고민과 질문 등을 적은 ‘슈퍼비전 요청서’를 작성합니다.
슈퍼비전은 회의 형태로 말로써 이루어지고 슈퍼바이지는 이를 정리하여 ‘슈퍼비전 기록지’로 남깁니다.
전체 슈퍼비전 과정 중간쯤에 ‘중간평가’도 하고 연말에는 ‘슈퍼비전 평가서’도 작성했습니다.
저는 슈퍼비전 체계를 만드는 기획팀에 속해 준비 과정을 함께했고,
실제 위의 과정으로 슈퍼비전을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직원은 앞선 일련의 과정 자체를 힘들어했습니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여러 종류의 서식은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있으나,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를 압도합니다.
후배 중에 슈퍼비전 자체를 어려워하기보다는
이렇게 서류를 만들어내는 데 쏟는 시간과 노력을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절차상 필요 없는 서류는 없겠으나 실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정리하고 꼭 필요한 서류만 남긴다면
시작도 전에 지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생각을 생각하기
일을 하면서 고민 한 번, 질문 한 번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내가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발견·통제·판단하는 정신작용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그리고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자신의 생각(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자기 인지 능력을 뜻합니다. (위키백과사전 ‘메타인지’ 참고.)
분명 바쁘게 일을 하는 동안 수만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겠지요.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오해했을 겁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다들 한 번쯤은 그런 적 있지 않나요? 귀로 듣거나 눈으로 읽었을 때는 다 이해하고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내 목소리와 내 언어로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막막해지는 순간이요.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진짜 아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런 순간들이 꽤 많았습니다.
분명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던 일들 말이지요.
진짜 앎과 가짜 앎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진짜 앎을 위한 방법에는 학습일 수도 있고 선배에게 받는 슈퍼비전일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익숙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짜 앎인지 제대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안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다시 정리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셋째, 기록하기
궁금함이 있었는데 생각나지 않을 때, 기록합니다.
저는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일을 하면서 어느 기관을 방문하기로 했거나, 당사자를 만나기로 했거나,
어떤 일을 언제까지 끝내기로 했다면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제 손에는 늘 노트가 들려 있습니다. 노트가 손에 없다면 휴대전화 메모 기능이라도 사용합니다.
바로 적어두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려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과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다 문득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메모합니다.
일하면서 드는 궁금증을 바로 선배에게 물어보면 좋겠지만, 우리의 선배들도 늘 일이 바쁩니다.
지금 물어봐도 좋을지 동태를 살피다 바빠 보이니 나중에 물어보자며 말을 삼키고 마음에 담아둡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선배에게 물어볼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내가 궁금했던 게 있었는데 뭐더라?’라며
기억의 바다를 표류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이 질문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그때의 짧은 ‘기록’ 덕분입니다.
기록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글 한 편 쓰자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떠올릴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단어나 한 문장 정도라도 좋습니다.
그렇게라도 써놓으면 질문할 수 있을 때, 질문하게 됩니다.
정말 궁금한 점이 하나도 없을 때, 기록합니다.
문득 떠오른 질문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만남과 일의 과정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기록의 중요성은 이미 앞선 많은 책에서 작가들이 언급해 왔기에 사족을 붙이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현장에서는 자기 실천을 기록하는 사회복지사가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면 느끼겠지만, 현장에서는 늘 똑같은 고민, 똑같은 질문이 반복됩니다.
이미 현장에서 오래 일한 선배라면 후배가 지금쯤, 이 연차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겠다고 짐작이 가기도 합니다.
궁금한 점이 없었더라도 내 실천을 기록하게 되면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보입니다.
성찰하게 됩니다. 글을 쓰다 보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실천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내 실천에 대해, 내가 만나는 당사자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질문을 잘하려면 내 관점이 필요합니다.
질문이 없고 궁금증이 없다면 사회복지사로서의 자기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록을 통해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사회사업 하기를 바라는지, 당사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사회복지에 대한 철학, 자기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수업 후에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 질문 있나요?”하고 물었을 때를 상상해 보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유독 질문을 힘들어하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이 변화를 이끈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궁금증은 더 나아지려고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더 나아지기 위한 질문은 어떤 질문이든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로 성장하려면 질문하고,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질문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