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도 어김없이 월간 시민시대 9월호가 시골집에 도착하였습니다.
8월 초에 기고하였는데, 마침 그때 모픽에 '666의 비밀'이라는 소설을 연재할 때였습니다.
그 소설을 모티브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시골작가의 웹소설 도전기
이인규/소설가
지난 7월 초에 부산 소설가협회가 해마다 개최하는 ‘여름 소설학교’에 다녀왔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에서 열렸고, 회원을 포함한 참석자는 대략 47명 정도였다. 고향, 부산과 뚝 떨어진 지리산, 산청에 살다 보니, 협회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못하였다. 이게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그동안 만나지 못하였던 회원 대다수를 보아 정말 다행이었다.
숙소, 음식, 풍광 등 모든 게 훌륭하였는데, 이중 나는 그날 저녁에 열린 세미나(소설의 변화와 소설가의 고민)에 집중하였다. 여러 중견 작가분들이 나와서 이 시대,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게 가슴에 와닿았다. 대충 두 가지로 주제를 요약하면 첫째, 여러 어려움 가운데 진중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다 보면 분명히 성과가 있을 것이란 의견과 둘째, 이제 어느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어 토론 후반에 나선 어떤 중견 여류작가의 경험담은 가뜩이나 어려움에 놓인 우리 소설계의 실상을 밝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그녀는 이 작품이 몇 년간 치열하게 쓴 장편소설이고 출판사 또한 이례적으로 마케팅과 홍보에 매진하였으며, 각종 지역 커뮤니티의 반응이 좋아 이번엔 제법 잘 팔리겠다고 자신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고 쓸쓸히 고백하는 모습에 나까지 몹시 안타까웠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작가의 말대로 시와 소설이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잘 팔리지 않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2009년 필자는 첫 소설집(내 안의 아이) 모두에 소개하였는데,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미국의 소설가 필립로스는 ‘향후 25년’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들며 ‘앞으로 소설은 소수의 컬트적 취향을 가진 매니아들의 전유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공언했다는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5~6년 정도 남은 시점에서 그의 말은 사실이 되고 말았으며, 전체 소설가 중 서울 및 수도권의 유명 작가 1%만의 작품이 알려지고 독자에게 유통되는 실정이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문학은 호황기였고, 여러 이름 있는 작가를 배출하였지만, 현재는 몇 작가를 빼고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더는 독자들에게 소설가는 경이롭게 보는 대상도 아니고, 그냥 그쪽 매니아에게나 통용되는, 과장되게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잉여 직종을 가진 사람들로 치부되는 것이다. 시의 경우, 역시 경·부·울의 많은 시인이 열정적으로 창작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유명 시인을 제외한 다수의 시집은 가족이나 친지 혹은 자신이 속한 문학회, 동호회 안에서만 읽히는 현상으로 고착되고 있다.
그런데도 웹툰과 흔히 말하는 장르(웹) 소설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거대 플랫폼과 전문 출판사에 의해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먹히고 있어 소위, 순수문학(본격문학)을 하는 창작자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문학(소설)에 관하여 지금까지 가져온 고정관념, 즉 창작의 고통, 예술혼, 장인정신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시대성과 상업성을 지나치게 무시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고 싶다. 시대가 바뀌었고, 농업조차 6차산업을 강조하며, 모든 영역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미 들어섰음에도, 문학의 대표적인 두 장르인 시와 소설을 창작하고 바라보며 비평하는 시선은 그대로인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사실, 대략 5년 전, 필자는 ‘소설의 변화’라는 야심 찬 모토 아래, 국내 최대 장르 소설 플랫폼 공모전에 도전하여 입상은 못 하였으나, 결심에 진출한 기록이 있다. 또한 몇 년 전, 어떤 온라인 플랫폼에 출품한 작품이 모 영화사에 픽업되어, 결과적으로 무산되었지만, 영상화될 뻔한 기회도 있었다. 그러기에 필자는 소설의 변화를 순수 소설의 문학성과 장르 소설의 대중성을 합친 스토리 문학으로 보고 2년 전, 경부울 문화연대 스토리위원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세월이 흘렀다. 나 역시 60대에 접어드니 소설에 대한, 스토리 문학에 대한 의욕이 많이 꺾였다. 그러던 참에 이번 부산 소설가협회의 세미나는 내게 다시금 소설 창작에 관한 변화와 모색에 큰 힘이 되었다.
여름 소설학교에 다녀온 이후, 필자는 모 온라인 플랫폼에 웹소설(666의 비밀/모픽/판타지, 미스터리)을 연재하고 있다. 이미 그쪽 시장은 기득권화 되어 있고 젊은 장르 소설 작가들이 바글거리는 그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뒤로 하고 어떻든 완결을 목표로 한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미약하나마 조회수가 늘어가고 있고, 즉석에서 “이분, 신인이 아니죠? 스토리가 탄탄합니다. 굿!”하고 재미있는 댓글도 달린다.
물론 결과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필자는 부산 소설가협회 세미나의 ‘변화’라는 키워드를 받아들이고, 쟁쟁한 젊은 웹소설 작가들 속에서 ‘중견 소설가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우리 집, 아내와 아이들의 비웃음과 상관없이 슬슬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인규
경부울문화연대스토리위원장
등단 :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작품집 : 장편소설 '사랑과 절망의 이중주' 등 다수
음반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창작곡 '비와 그대' 등 8곡 수록)
leeingu6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