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경제위기와 노동운동의 대응 시간: 2008년 12월12일 오후 3시 ~ 6시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이병훈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발표: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임영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소장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 *****************************************************************************************************
***************************************************************************************************** 발표 *****************************************************************************************************
이병훈: 제69차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그동안의 노동포럼 중에 오늘처럼 성황리에 진행된 예가 굉장히 드문데요. 오늘 주제가 워낙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고민케 하는 것이고, 또 오늘 나오신 분들이 노동운동의 앞으로 활로를 찾는 데 나름대로 좋은 말씀을 주시리라는 기대 속에서 많은 분들이 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 토론회는 주 발제 없이 여러 선생님들께서 집담회처럼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할 텐데요. 말씀을 각각 듣고 오신 분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면서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을 함께 찾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먼저 김종각 본부장님께서 발표해주시죠.
김종각: 반갑습니다. 저희들 고민도 이제 시작입니다. 오늘의 토론이 현 상황에 적합한 대응방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지금 발표하는 건 조직 내에서 공식적으로 정리된 입장은 아니고 토론회 참여를 계기로 개인적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지금의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 금융위기가 실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벌써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2009년 상반기 정도에 극에 달할 것이라고 하는 전망들이 있습니다. 그 규모나 폭이 어느 정도 될지는 지금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울 텐데요. 오늘 점심에 제가 금융권에 있는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은행 사정을 들었더니, 전체적인 건 아니지만 굉장히 심각하다, 아마 10~15% 정도의 구조조정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노사 간에 의견을 타진하고 있는, 교섭까지는 아직 안 가고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그런 것들이 첨예화되고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환율이 올라도 수출이 늘지 않는 상황
각 기관들이 내놓은 2009년 경제전망 예측치를 보면 2008년 10월경에는 3%대로 전망됐고, 이후 점점 낮아져 가장 극단적인 경우 UBS는 -3.0%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한국은행은 2.0%로 전망하고 있더군요. 한국은행은 중국만 한 7% 성장하고 나머지 전 세계 대부분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단적인 예로, 통상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은 좋아지는 게 상식입니다만, 지금 환율이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뛰었음에도 경제성장은 마이너스입니다. 물건을 싸게 내놔도 안 팔린단 얘깁니다. 자동차산업 같은 데도 파장이 가고 있는 상황이고요.
한국은행이 1999년부터 ‘금리정책’을 시행했습니다. 1999년 이전에는 ‘총통화정책’이었습니다. 즉 돈 풀리게 되면 돈 묶고 필요하면 풀고 이런 형태에서, 금리를 통해서 통화량을 조절해보자는 것으로 바뀐 거죠. 그리고 한국은행은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에 초점을 두는 기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날짜로, 한국은행이 금리정책을 시행한 이후 가장 낮은 금리인 3%로 내렸습니다. 이것은 한국은행조차도 물가를 포기하고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고 판단을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겁니다.
경제위기라고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우리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다가옵니다. 업종으로 보면 현재 건설과 조선 등이 자금 문제가 있고, 자동차 같은 경우는 시장 수요가 문제고요. 크게 보면 이렇게 세 개 업종이 문제지만, 아시다시피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고 연관되어 있는 산업이 다 영향을 받는 방향으로 갈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정부가 아니죠.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하겠다고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그게 종합돼 2008년 11월3일 ‘경기종합대책’으로 발표됐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시장을 살리면 그 효과가 밑으로 내려갈 것이다, 대기업·금융·기업·대기업·중소기업·가계·소비자 이렇게 내려갈 것이다, 라는 게 이명박 정부의 기본 경제 패러다임임이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이나 기업 지원을 통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하고 있고, 종합대책 지원 규모를 대략 14조 원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중에 직접고용 지원 사업에 쓰는 건 6천억 정도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13조 4천억에 해당하는 것이 결국은 기업 지원입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금이든 대기업에 대한 지원금이든.
그런데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투자증가의 고용유발 효과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고용탄력성을 보면 2008년 3/4분기 같은 경우 0.153으로 1년 전의 0.249에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고용탄력성은 1% 성장할 때 고용 증가율은 얼마냐는 건데, 고용탄력성이 0.153이라는 건 1% 성장하면 15만 명 정도 고용 증가가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아마 더 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10억 원 투자했을 때 고용효과가 얼마나 있느냐를 봤을 때도 2005년에 14.7명인데, 1995년에는 24명, 2000년에는 18명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더 떨어져 있을 겁니다. 그만큼 경제성장을 하고 투자를 해도 고용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적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정부가 현재의 패러다임대로 돈을 쏟아 붓는 정책을 펴더라도 소위 트리클다운(trickle down), 즉 아래로 과실이 내려가는 효과는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같은 경우도 내년에 24조 8천억이 책정이 되어 있습니다. 금년보다 무려 26.7% 증가한 금액인데, ‘건설공화국’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드러냅니다. 차가 다니지 않는 6차선 지방도로가 뻥뻥 뚫리고, 놀게 될 지방공항들을 엄청난 돈을 들여서 건설하는 현실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용으로 연결되지도 않을 사업들만 벌이고 취약계층 및 고용에 대한 직접 지원이 없다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장기불황으로 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 지난 10년 동안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쿠폰 형태로 현금을 나눠주는 정책을 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가 워낙 위축되니까 정부가 직접 쿠폰을 지급했는데 그것도 쓰지 않고 은행에 저축하는 악순환이 발생했죠. 우리의 경우도 자칫 이런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할 정도로 엄중하고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기업 살리기가 아니라 사회서비스 일자리 만들기
그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2009년에 정부는 비정규직법의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법정 최저임금도 어떤 형태로든 삭감해 기업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도 2010년 시행을 앞두고 법 개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고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치적 대응을 해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그래도 어쨌든 우리 노동조합운동은 고용을 최우선하는 사업방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합니다.
2009년의 가장 큰 문제가 임금과 고용이라고 한다면 임금을 다소 양보하더라도 고용을 확보하는 것이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서 고용을 유지하고 이것을 노동시간 단축과 연동해서 가야 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소득 감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잔업이나 특근이 축소가 되면 이 또한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러나 정부 및 자본 차원에서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며 들어오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저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만 경기불황 상황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수세적이고 방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폭발적일지는 의문이 듭니다.
앞에서 고용 전망이 어둡다고 말씀드렸는데, 특히 현재상황에서 ‘기업 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정말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회적 일자리나 공공부문에서 만들어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상당히 작기 때문에, 공공부문을 좀 더 확충해서 고용창출과 아울러서 사회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특히 복지서비스나 교육, 보건의료는 굉장히 취약합니다. 서비스 질 자체도 취약하고 인력도 그렇고요. 문제는 재원인데 이런 것들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시장 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조세나 사회보장분담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느 정도 세금 상승은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고용보험제도나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당장 사각지대라고 얘기하는 비정규직들의 사회안전망,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국민연금, 이런 것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지금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 상한선을 올리고 기간을 늘려서 실업자들의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합니다. 물론 비용 분담을 분명히 해야 할 겁니다. 실업자들의 훈련 부분도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낸 고용보험료보다 더 많은 훈련비용을 받고 있습니다만,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들 실업자들 같은 경우는 본인들이 냈던 것만큼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개선해야 할 것이고요. 또 기업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 정부가 재정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들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텐데, 건강보험을 실업자에게 1년 정도 연장해서 적용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한 쪽에서는 투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사회적 대화 체계를 통해 채워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사회적 대화 시스템이라는 것이 일정 부분 타협을 전제로 하는 것이겠고 노동조합이 나서서 구걸하듯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노사정위원회 기능을 더욱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병훈: 바로 이어서 김태현 실장님께서 민주노총의 입장, 여러 가지 대응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김태현: 김종각 본부장님께서 정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큰 흐름의 방향과 관련해 몇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 경제위기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식으로 전망과 대안을 만들어갈 것인가 모색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현재의 조건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합니다. 기존의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이전에 몰락한 상황이고, 신자유주의도 파산했죠. 다만 세계적으로는 기존 신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인식 속에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는데, 현재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감세나 규제완화, 각종 MB 반민주 악법 등을 추진하면서 대립전선을 더욱 강화하고 한국의 위기 상황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내 금속의 경우를 보면 70%가 자동차 부문인데, 몇 주 전에 보니 250여 개 사업장 중에서 100개 정도가 휴업이나 조업단축을 진행했고, 이는 더 늘고 있습니다. 건설 같은 경우도 건설 수주가 20% 이상 감축됐고 그나마 안정적 일자리인 공공부문은 내년에 10% 이상의 인력감축이 예정되어 있는 등 전 방위적으로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복수노조 등과 관련된 법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신자유주의적 법제화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1996~98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과 경제위기를 한 데 엎쳐 놓은 조건이 10년 만에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중층적으로, 공세적으로, 연대적으로 대응해야
여기에 대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민주노총이 상당히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게 현실입니다. 10년 전의 위기 상황 때에 비해서 현장의 동력도 죽어 있고 조직 내부의 지도력이 신뢰를 모아내는 힘이 상당히 한정돼 있습니다. 의견조직들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지도부가 지도력 모아내는 데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조건하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제 개인적 생각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는데요. 먼저, 10년 전에는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들을 사업장별로 분산적으로 진행했는데, 이번 위기를 맞아서는 이것들을 총연맹, 산별, 단위사업장의 통일적인 전선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어쨌든 현재 위기의 근원이 신자유주의의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세적인 대응을 넘어 공세적으로 구조적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자리가 핵심적인 문제겠지만, 단지 조합원들의 고용불안만을 매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및 여성 등 고용위기가 집중되는 취약계층 노동자문제를 노동운동이 내부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 받아 안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김종각 본부장님이 사회적 대화 말씀을 하셨는데, 현재 비정규직법이나 최저임금법과 관련된 노사정위원회 진행상황을 보면 사회적 대화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그나마도 무력화되어 있는 조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투쟁 등을 통해서 정부로 하여금 강제할 만한 힘이 없을 경우에는 대화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민주노총이 총 전선을 힘 있게 치는 부분이 필요한 거고, 이를 위해서는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나누기, 실업대책 등의 공세적인 제도개선 투쟁과 요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제위기의 대기업·재벌 책임론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9년 1월에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예정돼 있는데, 그 이전에 전국적인 수련회 등을 통해서 우리의 인식과 요구를 통일시키고, 이를 통해서 선전 투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아마 2009년은 임단협 자체보다 고용보장을 위한 투쟁이 전면에 서게 될 것이고, 이런 부분들을 조기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절 이후 5월, 6월에 본격적으로 투쟁해야 되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총연맹 차원에서 요구의 핵심은 총고용에 대한 보장과 확대, 또 이에 따른 사회안전망 확보라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현재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은 어쨌든 1차적으로 현재 밀려들고 있는 구조조정의 저지를 의미할 테고, 더불어 고용보장이 단지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까지 포함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때만이 의미 있는 전선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나누기 관련해서는 공공부문은 주로 일자리 확대, 제조업 부문에서는 실질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에 비정규직법의 개악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하고 대규모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합니다. 한편, 이 기회에 금융과 재벌 규제를 위한 연대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산별노조 부분 관련해서, 저는 산별노조 중앙이 단위사업장에 대한 지도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속, 보건 등의 산별노조들이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비정규직 포함한 총고용 보장’ 관점에서 단사에 대한 지도력을 관철해야 한다는 겁니다. 산별고용안정기금 얘기도 지속적으로 나왔는데 다시 한 번 공세적으로 제안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고요. 민주노총이 총자본에 대한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면, 산별노조들은 산업별로 이런 산별 고용보장 요구와 투쟁들을 전개할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금속의 경우 교대제 개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이 가능할 텐데, 산별노조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용보험법상의 지원이라든가 직업훈련, 원하청 원가 문제해결 등의 요구들을 제기할 수 있을 겁니다. 건설 같은 경우는 체불임금 문제, 직업훈련 문제들이 되겠지요. 공공 같은 경우 그야말로 공공서비스 분야 일자리 확대 등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고요. 이런 부분들을 산별로 모아 기업 단위를 뛰어넘는 투쟁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업장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고용보장 협약을 중심으로 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런 것과 관련된 요구안들은 각 조직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확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이명박 반신유주의 전선으로서 ‘민생연대 국민회의’ 강화
한편, 지금 현재 노동만의 투쟁으로 이끌어가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고 임시국회에서도 감세 논쟁이 붙고 있습니다만, 그런 측면에서 반이명박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더욱 확대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민생민주 국민회의’가 민생 관련 여러 기자회견과 투쟁들을 했는데, 이런 부분들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실업문제 같은 경우는 노동뿐만 아니라 자영업이나 중소상인, 중소기업가들까지 포함한 투쟁들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 조직의 단결을 굉장히 어렵게 하는 측면들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보연대도 수년간의 지루한 논쟁 속에 여전히 절름발이 상태에서 놓여 있고요. 이 위기 속에 진보세력들의 통합적인 총단결과 관련해서,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구체적인 고민들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계기들을 통해 통일단결 노력들이 가시화되고 민생민주국민회의가 범국민 운동체로서 강화된다면, 이명박 정부에 맞선 전체 노동자와 서민들의 대중전선을 토대로 하여 민주노총이 총연맹부터 단위사업장까지 일관된 투쟁전선을 만들어서, 새로운 대안 만들기나 위기의 돌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씀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이병훈: 바로 이어서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님으로부터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여성노동운동 입장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임윤옥: 이런 자리에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사회자께서 노동운동이 다시 희망을 주는 운동으로서 설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기를 요청했는데요. 저는 전체 노동운동은 잘 모르겠고, 제가 속해 있는 여성노동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적 일자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의 연대단위로 ‘한국 사회적경제연대회의’라고 있습니다. 어제 거기서 워크숍을 했는데 실업빈곤과 관련해 현장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될 건가, 또는 정부에 끌려 다니지 않고 정세를 주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화두는 2009년 한국경제의 위기가 어느 정도로 진행될 것인가였는데, 모임에서 발표를 맡아주신 우석훈, 노대명 두 선생님 말씀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한국경제는 빅뱅이다, 내년 말에 우리가 살아남아서 다시 이런 얘기 한다면 성공이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말씀하시더군요. 하나는 빈곤률이 두 배로 치솟을 것이라는 건데요. 그 얘길 듣고, 지금 차상위계층까지 합쳐서 우리가 빈곤률을 15%로 잡고 있는데 빈곤률이 30% 정도 된다면 정말 기아를 걱정해야 되지 않을까 혹은 폭동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을 했고요. 두 번째는 아마 파업하면 긴급조치 때릴지도 모른다는 거였는데, 최근에 전교조 교사 해임하고 그런 거 보면서 그게 지나친 얘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먼저 드리는 거는 내년 경제위기를 정말 비상하고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여성, 지역, 환경 세 개의 화두를 가지고 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상한 시국, 노동빈민이 어떤 선택 하는가가 중요해
첫째, 지금 경제위기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 위기일 거라는 데 대부분이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저는 상당히 긴 호흡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구조라는 건 ‘틀’이잖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대책들이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거나 어떤 것을 증대시키고 감소시키는 거였는데, 이런 게 아니라 틀을 흔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틀을 바꾼다고 했을 때 한국사회가 어떤 틀로 가야될 것인지에 대해서 큰 그림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대안이라는 것이 장기적이고 구조적일 수 없겠죠. 때문에 지금 시점은 이 틀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러스틴이라는 학자는, “현재 체제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들어설 체제는 자본주의는 아니겠지만 더욱 극단화되고 위기화된 더 나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적이고 더 좋은 것일 수 있는데, 그것은 주체들의 투쟁에 달려 있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모든 가치를 다 사치스런 가치로 취급하고 무조건 참아라 하면, 저는 파시즘이 다시 대두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둘째, 그런 측면에서 운동 주체의 재구성이 절실히 필요하고 또한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 알다시피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위기 극복을 위해 여성이나 비정규직 같은 취약계층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걸 ‘내부 식민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던데요. 어쨌든 현재 근로빈곤층, 노동빈민층은 매우 부실한 사회안전망의 복지 대상자로 전락해 있거나, 아무리 일을 해도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노동자회 와서 상담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월수입이 100만 원 미만이라는 분들이거든요. 그 수입으로 가계 전체를 꾸려가는 거예요.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의 지경에 와 있는 거거든요.
근데 역설적으로 이 분들이 계급이해를 가지고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명박 정부 지지층이 되었다는 것에 저는 우리 진보세력의 비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노동빈민이 정말로 어떤 새로운 체제를 향해서 폭동이든 뭐든 변혁 세력으로 갈 것인지, 즉 불만을 갖고 뭔가 조직화된 움직임으로 갈 건지, 아니면 체제순응화해서 국가 경제발전 논리의 동원대상으로 다시 갈 것인지가 향후 관건이 될 것이고, 여기에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실제로 이러한 노동빈민 계층이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싸울 수 있도록, 인적·물적 지원을 해야 되고 조직적 구심체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생활세계의 거점인 ‘지역’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시민사회단체 따질 것 없이 지역 속에서 그런 거점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한, 사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정부의 신자유주의 논리에 다 포섭되었는데, 이를 끊어내고 새롭게 채울 수 있는 우리의 내용이 뭔가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환경입니다.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환경은 이제 그냥 우리가 고려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규정짓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는 진보세력의 답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더 이상 개발이냐 환경이냐를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은 이미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너지 위기나 식량 위기에서 나타나듯이. 그리고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오면서 우리 사회는 경제, 승자독식, 효율 이런 이데올로기가 구성원의 일상과 영혼을 규율하고 있습니다.
어느 신문기자와 얘기하다가 만일 이사를 간다고 하면 어떤 조건을 가장 고려할 것 같냐고 그랬더니, 그 기자가 한참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얘기하면 집값이 얼마나 오를까 하는 생각을 할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그 곳이 정말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가를 보는 게 아니라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이걸 먼저 생각한다는 거죠. 말하자면 우리는 돈벌이에 종속된 삶을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때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속에서 일자리 문제나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들어가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경제위기일수록 돌봄 노동의 제도화 확보돼야
지금 여성노동자 현실은 너무 잘 아실 것 같아요.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 비정규직, 근로빈곤, 저임금, 사회보장, 이런 용어로 여성노동자 현실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2004년 기준으로 했을 때 중위임금 2분의 1에 여성노동자 21%가 해당됩니다. 여성노동자가 바로 ‘88만원 세대’입니다. 또한 가사·간병·보육 이런 여성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아예 적용 제외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안전망에도 들어 있지 않고, 여성노동자들의 조직률은 5%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 경제활동인구 성장률도 굉장히 둔화되고 있고, 여성 일자리 증가폭은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성노동자들이 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있었는데요. 그런 부문의 일자리들이 감소되면서 직격탄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경제위기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여성노동의 현실은 지난 2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저희들의 진단입니다. 왜 바뀌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진단이 있는데요. 하나는 가족의 임금 문젠데, 여전히 사회통념상으로는 남성 단일 생계부양자 모델이 지배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이건 무너진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여성노동은 가족 생계에서 부차적이고 보조적 위치라는 이러한 사회통념 때문에 여성의 저임금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둘째, 임신·출산·육아에 대해서 성별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모성권이 제도화되기는 했지만, 비정규직 여성 등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결국 누가 아이와 노인, 가족을 돌볼 것이냐는 ‘돌봄의 문제’가 있는데, 이와 관련된 공공사회서비스 인프라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안정적인 노동시장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고, 들락날락하면서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고용형태가 계속 하락하는 그런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여성은 그래서 경제활동 참여 자체도 어렵고, 고용형태도 비정규직이고 기업규모에 있어서도 굉장히 열악한 그런 규모에 취업할 수밖에 없으면서 다수의 취약계층을 형성하게 되는 거죠. 이는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여성노동의 문제는 가족 생계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의 문제로 봐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전략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여성 중 고용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비중이 25% 정도인데 이를 확장할 수 있는, 이중화된 노동시장을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정책들이 추진돼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공공서비스를 확충하고, 그걸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적용 제외되어 있는 가사·간병·보육 등의 비공식부문 노동자를 공식 영역으로 통합하고, 보다 중요하게는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통합적인 복지전략과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실업과 일자리 관련해서는 정말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우리는 쪽배를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쪽배가 아니라 이게 힘이 되는 배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함께 해서 힘이 나는 연대를 조직해야 하는데, 연대 회의에 나가보면 힘이 나기보다는 아직도 어떤 개별조직의 이해관계나 이런 것 때문에 별로 힘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뛰어넘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디에 있나 이것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어느 회의에서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운동은 있고 경제는 없다, 뭔가 막 요구는 하는데 살림살이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그것으로부터의 운동은 없는 것 같다, 사업은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인다, 개별조직은 있는데 관계는 없다, 개별 단체는 있는데 지역은 없다, 등등. 그런 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연대, 소통하는 연대 이런 것들이 저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이병훈: 다음 순서는 참여연대의 김민영 사무처장님을 모시려고 하는데요. 시민사회에서 바라는 노동운동의 연대에 대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영: 반갑습니다. 사실 시민운동도 잘 못하고 있는 주제에 노동운동 얘기를 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연구소 부탁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하도 강권을 하시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이야기가 잘 정리되지 않아서 중구난방이라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 국민 경제학습의 시대, 한국 진보진영의 정책역량은?
최근 경제위기를 보면서 ‘전 국민 경제학습 시대’가 열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종의 ‘미네르바 열풍’ 같은 게 벌어지고, 이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미네르바가 썼던 200편의 글을 열 번씩 베끼는 공부를 하는 분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저희도 최근 열었던 시민경제교실에 상당히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정말 국민들이 경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상황이 지난 20여 년간 신자유주의 이외에 무슨 대안이 있느냐 했었던 주장과 실천의 결과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 한국 경제의 구조도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투기와 거품 위주의 경제라는 것, 그리고 건설업, 토목공사에 목맨 경제라는 게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고, 이것을 국민들이 서서히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진보진영이 본격적인 대안모델을 만들어내고 국민들과 이야기하고 공유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게 한편으로는 전 국민 경제학습 시대가 열렸다는 것과도 연계가 되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언론에서 ‘한국의 100대 싱크탱크’를 선정했는데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전 분야에서 단연 1등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진보진영의 싱크탱크라고 하는 건 굉장히 수공업적이고 어떻게 보면 영세하기 짝이 없는 실정인 것 같아요. 전 틈나는 대로 민주노총 산하에도 몇 개의 연구소가 있고 한국노총도 몇 개가 있고 그런데 차라리 이걸 하나로 뭉쳐서 좀 경쟁력 있는 연구소를 만드는 게 맞지 않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차제에 진보진영의 SERI를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실제로 돈이 많이 들 텐데, 이를 가장 재정이 튼튼한 민주노총이 대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게 안 된다면 어떤 형식의 정책생산 네트워크라도 가동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싱크탱크들만이 아니라 각 조직의 정책을 다루고 있는 단위들이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이명박의 경제정책에 대응하는 국민적 경제대안을 만들어내고 이걸 국민들의 요구로 만들어 가는 것, 이게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민생민주 국민회의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제반 단체들의 정책들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경제정책들을 다 끌어 모아서 만든 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연석회의에 내놓았던 ‘3대 방향 10대 과제’거든요.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현 단계 한국 진보진영이 만들 수 있는 경제정책의 압축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갈 거냐가 중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노동운동의 과제에 대해서는 워낙 제가 모르니까 두서없이 몇 가지만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력감축이나 노동조건 악화에 맞서 싸우는 건 기본이 될 것 같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용과 실업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는 것일 텐데요. 이번 10대 정책요구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첫째, 고용보험의 확대입니다. 즉 청년실업자와 신규 진입 실업자, 자영업 폐업자, 비정규노동자들을 실업급여의 대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고, 실업급여의 기반과 급여액 자체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둘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서 상당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고용유지뿐만 아니라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이 되고 쏟아져 나올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수용할지에 대한 대안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총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200만 정도의 비정규노동자를 정규직화 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그게 한 6조 원 정도 들 거라고 얘기하는데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면 될 겁니다.
셋째는 사회적 일자리인데요. 저희는 사회공공서비스 쪽에서 연봉 2000만 원의 100만 개 일자리를 만들자,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결국은 고용보험을 확대하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연봉 2000만 원의 100만 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이 돈 때문에 지금 예산안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고요. 한국 정치사에서 예산을 놓고 국회가 저렇게 진지하게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기존에 ‘예산 국회’라고 했던 것은 다른 법안을 중심에 둔 갈등에서 예산을 볼모로 하는 싸움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고용이나 실업대책, 서민지원을 위한 예산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쪽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최초로 예산투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현 시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 고리, 대중적 예산투쟁
그런데 이게 민주당의 헛발질로 굉장히 어려워지고는 있는데요. 어쨌든 이번에 예산안이 처리된다 하더라도, 2010년 예산을 놓고 벌어질 2009년 정기국회 싸움을 겨냥하든 추경을 요구하든 곧바로 예산투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마 노동운동과 시민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중요한 연대의 고리가 될 텐데요. 그러려면 고용과 실업대책이라고 하는 것이 국민적으로 설득력 있고 공감할 만한 내용이어야 하고,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이 요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방안들, 운동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성운동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2008년 3·8 여성대회 때는 아마도 ‘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오지 않겠느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은 각계각층이 요구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요구를 제기하는 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체로 하나의 국민적 대안으로 모아져야, 힘을 갖고 소위 MB식 정책, 보수정책이라고 하는 것과 국민적 경제대안이라고 하는 게 맞붙어서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냐, 우리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거냐를 놓고 전면적인 싸움이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은 정치의 문제겠죠. 어차피 경제의 문제도 정치적 문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정치의 전선이 무력해져 있다는 것 다들 느끼실 것 같고, 특히나 민주당 같은 무기력한 정당이 83석이나 가지고 있는데 이게 참 골칫거리 중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민주당을 여러 형태로 끌어내서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MB악법 그리고 예산 문제에 있어서 제 역할 다 하도록 밀어붙이는 게 단기적으로는 중요할 것 같고요. 길게 보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진보나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들에게 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의 삶도 팍팍해지지만 비전이 안 보이는 그런 상황으로, 보수의 집권이 보다 장기화되는 그런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시작해야 될 때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에 맡겨 놓을 문제는 아니다. 전체 사회운동이 정치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전략을 짜고 공동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 의존 넘어서는 사회운동의 정치기획이 있어야
좀 상상을 해본다면 이런 거죠. 민주당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나라당 이외에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의 정치세력이 지방선거에 있어서 일정한 공조를 할 수 있도록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가하는 것, 그런 아래로부터의 시민정치운동 혹은 국민정치운동 같은 게 벌어져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지방선거이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 연합이라고 하는 것이 수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소위 공천에 있어서 지역별로 조금 분할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지금 정당들이 하는 대로 놔두면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지 않겠습니까? 민주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각각의 후보들이 난립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필패가 분명한데요. 이것들을 어떻게 공정하게 엮어갈 것인가가 사회운동에서의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를 위한 정치기획이 지금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이 점을 좀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병훈: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어서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임영일 소장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임영일: 임영일입니다. 앞의 분들 말씀 들어보니까 다 동의가 되는,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다 합쳐서 대안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고민들이 나왔는데 오늘 주제가 노동운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사실 제일 갑갑한 주제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지금 경제위기는 글로벌 수준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이 글로벌 수준에서 폭발하는 것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어느 사람들은 세계자본주의 자체가 파산하는 ‘파국의 국면’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안을 생각할 필요도 별로 없기 때문이죠.
지금 여전히 우리의 고민이라는 게 현재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집권세력,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더해서 재벌 등등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이들이 그런데 이 위기 상황을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가장 안이하고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려고 한다는 게 고민의 출발점일 것 같습니다. 적어도 유럽이나 미국 정도만 하더라도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위기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고, 특히 좌파정치나 좌파 정부의 경험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축적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대처를 보면 적어도 케인스주의적인 접근 정도는 보이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권이 출범을 하게 되면 미국도 대체로 그런 모습으로, 미국 방식의 케인스주의로 나가게 되겠죠.
그런데 앞에서 다른 분들도 얘기하셨듯이 지금 이 나라의 집권세력들의 경우에는 더 많은 신자유주의로 극복을 하겠다는 대담무쌍한 발상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케인스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유효수요를 다시 확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정책이 무엇이냐는 것이 초점이 되겠지만, 지금 아시다시피 이 정부가 제기하는 정책은 여전히 투입을 극대화하고 산출을 극대화하고 그러기 위해서 규제를 완화하고, 이 생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국회에서 싸우고 있는 예산안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는 상황이죠. 다들 그런 우려들을 함께 하시고 어쨌든 거기에 맞서서 길게 보면 대안적인 경제사회모델들까지도 우리가 합의해서 내용을 채워 가고 국민적 공감대의 폭을 넓혀가는 이런 과정까지도 밟아야 되겠다는 문제의식들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스톱’시키는 것
그런데 운동적 차원에서 보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내년에 과연 도전을 맞아서 제대로 싸워서 저지라도 할 수 있을 건가에 대한 불안감이 다들 마음속에 있으신 것 같아요. 저는 오늘은 아마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토론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굉장히 갑갑하고 그렇긴 합니다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뭐냐고 하면, 우리의 대안은 이거다 저거다,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죠. 환경적 가치 집어넣고 여성적 가치 집어넣고 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일 것 같습니다. 옛날에 이런 토론에서 어떤 분이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대안은 ‘스톱’시키는 거다, 스톱시키지 않고 가고 있는데 대안을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이야긴 것 같습니다. 다른 정책도 마찬가집니다만 사회경제정책이라는 게 진행되면 다시 뒤로 돌리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거든요.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 그걸 스톱시킬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게 주어진 것이죠.
위기가 왔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안돼 스톱하자”, 그러면 “어디로 가자고 스톱하자는 거냐” 이런 얘기 하겠죠. 어쨌든 일단 어디로 가자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발걸음을 멈추는 게 필요한 상황을 98년에도 겪었고 지금 다시 겪고 있는 건데, 스톱시킬 정도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에 민주노조운동이 흘러온 역사와 경험, 이런 것에 비춰보면 지금 노동운동의 주체역량이 거의 바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총연맹을 중심으로 단결투쟁을 하는 것에 자신이 없는, 보기에 따라서는 지금 민주노총은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원장 감옥에 들어가도 뭐 그냥 그렇고요. 그럼 밑에 산별연맹·산별노조의 상태는 어떤가 봐도 오십보백보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걸 텐데요.
노동 이외에 대중적 위력을 가지고 스톱을 외치고 실제 힘으로 거기에 전선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이 어디에 있겠느냐 보면 하나밖에 없죠, 다시 한 번 촛불이 타오르는 것밖에는. 조직화된 사회세력으로서 같은 입장과 방침을 가지고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단위가 얼마나 될 것인가, 다들 각개 약진하는 조직들이야 물론 많이 있겠지만, 위력적인 전선을 만들 수 있는 단위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노동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2009년에 스톱이라도 요구하는 전선을 만들어내려면 역시 조직노동 부분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조직노동을 보면 공공과 민간제조업 양쪽, 민주노총 조직 기준으로 보면 공공운수연맹과 금속노조인데 양쪽 다 조직력이나 지도력이 바닥 수준에 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과제를 보면 이쪽에서부터 먼저 노동 쪽 전선을 떠맡는 역할을 해야 되고, 이게 전체 노동전선의 핵심으로 서야 2009년의 상황을 넘길 수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해야 민중연대전선이라고 해도 좋고 민생연대라고 얘기해도 좋고, 그런 정치연대전선도 내용을 가지고 성립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제 상층단위에서 성명서 내고 기자회견 하고 합의했다가 뒤집어지면 책상 치고, 이런 모습 이상을 만들어 내는 게 가능하겠는가 이런 생각입니다.
무기력한 조직노동, 계파 넘어 활동가들이 단결해야
그러면 초점을 좁혀서 보면 민주노총 안의 공공이나 금속 같은 경우에 그런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현재 주체적 역량이 거의 바닥상태에 있다는 건 대부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봐도 못 합니다. 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방법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으려면 시간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아까 김태현 실장님이 완곡한 표현으로 노동 쪽의 의견그룹이나 이런 것들의 단결을 말씀하셨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은 주도적 병력도 바닥에 와 있는 수준이고 노조 조직에 대한 현장들의 중앙 결집력이나 이런 것도 바닥인 상태에서 이 틀을 만들어 낼 수 있으려면, 지금 여러 정파나 계파, 의견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노동운동 내부의 활동가들이 비상한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시간적으로 보면 활동가 그룹들이 비상한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선에서 지금부터 움직이고 있어야 되고, 적어도 1~2월 안에 이 틀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야 될 것이다, 이런 생각입니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런 이야기들을 일부 활동가들이 내부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보고 활동가그룹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구체화되고 공론화되기 시작하면, 공조직에서도 그런 요구들이나 논의들을 받아 안아서 빠른 시간 안에 노동전선을 재편해서 내년을 대비할 수 있는 틀을 갖춰야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노동운동의 ‘빅뱅’이 오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이마저도 잘 안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겠죠. 어쨌든 그런 정도의 모습이라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고, 그것도 안 됐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다음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냐면 2009년에는 노동 쪽이 어떤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2010년 이후 지난 1987년 이후 20년 이상 계속되어 온 민주노조운동의 전체적 틀 자체를 본격적으로 재편하는 단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빅뱅’입니다. 노동운동에서도 빅뱅의 상황으로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이 바뀌면 노동조직도 변할 수는 있는데, 중요한 건 자기 전통을 그 다음의 역사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게 어떤 질서 있는 운동의 흐름을 잡아주지 않으면 그 ‘빅뱅’이라는 건,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일본하고 비교를 해보면 총평 해소 후 렌고로 재편되는 과정과 유사한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생각이 되기 때문에 우려를 하는 것이죠. 2009년의 상황이 이렇게 비상하다는 걸, 지금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노동운동이 그런 단계로 가고 있다는 그런 비상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활동가들과 활동가 그룹들이 2009년의 실천을 어떻게 합의하고 계획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병훈: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김유선: 앞서 다른 분들이 말씀해 주셔서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보완 말씀 드리는 차원에서 김종각 본부장께서 제출하신 자료를 참고로 하면서 몇 가지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는 다들 말씀하셨지만 저 역시 상당히 깊고 길게 안 좋은 상태가 전개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은행에서 어제 오늘 성장률 전망을 2%로 내놓았는데, 저는 아마 2009년은 틀림없이 마이너스일거라고 생각합니다. 1960년 이후의 경제성장률을 놓고 보면 1980년에 한 번 마이너스가 있었고 1998년에 또 있었는데, 아마 2009년이 세 번째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60년 이래, 세 번째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해
요전의 외환위기 같은 경우는 동아시아 지역에 한정됐던 데 비해서 이번 위기는 미국발이면서 점진적으로 내수 자체가 위축되고, 특히 노동자들 같은 경우에는 소비할래야 소비할 만한 여력이 없게끔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그만큼 더 여력이 없는 상태죠. 또한 수출 같은 경우에도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이 거의 자동차, 조선 등의 내구재임에 따라서 오히려 이 부분에서 타격이 더 클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다 어렵냐면 그건 아닌 것 같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국내에서 수출과 관련해서 환율 때문에 상당히 즐기고 있는 상황인 것 같고요.
고용사정을 보면 최근에 전년 대비해서 고용 증가폭이 3만 명이 채 안 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이너스는 주로 자영업자에서 이뤄진 것이고요. 노동자들 쪽에서 보면 주로 임시직이나 일용직에서 보면 마이너스가 있었고, 상용직은 아직까지는 플러스로 보이는데 내년 3~4월 정도 가면, 더구나 정부에서 공기업들은 10% 잘라내라 이렇게 나가는 상태에서는 상용직도 내년 되면 마이너스로 가지 않겠나, 이렇게 보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경우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쁜 건, 수구꼴통 비슷한 정부를 만나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 이게 우리한테는 좀 더 나쁜 사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노동운동 대응 차원으로 와서 약간 보완 말씀 드리면, 아까 큰 그림이 필요하다, 보다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하셨는데, 이것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우리가 근년에 부족한 게 있고 메워 나가야 될 게 있을 거라고 보입니다. 위기 내지는 실업난 이런 것과 맞물려서 노동운동 차원에서 쓸 수 있는 정책은 사실 10여 년 전에 백화점식이나마 어떤 식으로든 상당히 다양하게 나와 있고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상급단체들도 그렇고 단위노조로 가서도 상당한 정도로 우리 노동운동 내부의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이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양한 경험이나 정책들 중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서 얼마나 적절하게 구사를 하느냐 하는 문제이고, 그런 면에서 과거의 경험이 앞으로의 대응에 도움은 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이 정부가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을 건드리고 나오고, 거기다 공기업 구조조정 얘기까지 하고 나오는데요. 이 사람들이 도대체가 구체적인 조건의 변화나 이런 것을 고려 않고 애초에 갖고 있던 이념적 사고의 연장에서 정책들을 밀어 붙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진짜 무지해서 그런 건가 하다가도, 그야말로 노동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 자체가 없다 보니까 원래 갖고 있던 것들 쪼가리 쪼가리를 모아서 아무 생각 없이 추진하는 것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정책들이 설령 자기들 뜻대로 관철된다 하더라도 자기들한테 전혀 득이 될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걸 자꾸 하는지 전 진짜 모르겠는데, 어쨌든 상대방이 저렇게 나오니까 노동운동으로서는 어떤 차원에서든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실업급여 부분을 포함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노동운동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 제시하고 계십니다만, 현재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3개월에서 많아야 7개월이거든요. 7개월 동안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만 50세가 넘은 준고령자여야 하고, 그러면서 근속년수가 10년 이상이 되거나 장애자거나 이런 경우만 7개월분을 받는 거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3~6개월 사이에서 근속년수 등에 따라서 왔다갔다 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체로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이 내년 상황에서는 실직자가 되면 반 년 만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3~7개월 가지고는 버티기 힘든 것 아니냐, 그런 면에서 실업급여 지급기간도 대폭 확장해야 합니다. 전체 임노동자 1,600만 중 실업급여 가입자가 900만인데, 실직 전 18개월 동안 6개월분 정도의 실업급여를 낸 사람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적용 비중은 600만 이하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업급여의 적용대상을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자영업자까지도 확대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으로 일자리 부분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만, 사회서비스업 부분의 비중이 OECD 평균은 25% 가까이 나오는데 우리는 12% 정도로 절반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일자리 확충이 이쪽 영역에서 가능하겠다, 이렇게 보입니다.
저들의 ‘최고임금’을 공격하자!
한편, 민주노총 같은 경우 2009년 임금인상 요구로 물가 상승분을 만회하는 방향을 얘기하셨는데, 임금요구안은 그렇게 나갈 테지만 실제 진행되는 건 아마 대부분 동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다면 단순히 임금동결 이것뿐만 아니라,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가끔 했습니다만, 최저임금과 연동해서 ‘최고임금제’를 오히려 들고 나오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최저임금이 내년에 월 80만원 정도 된다면, 그 열 배를 잡아서 최고 월 800만 원 이상은 안 되게, 그 이상을 아예 깎자는 거죠. 대통령 연봉이 1억 4천 정도 된다는데 그렇게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그럴 게 아니라 최저임금과 연동해서 상한선을 둬서 그 이상을 아예 토해내게, 그렇게 몰고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 그래야 최저임금 깎자는 소리도 좀 덜하지 않겠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제가 전에도 이런 제안을 드렸을 때 웃고 넘어갔는데, 요즘 오바마 쪽에서도 이런 걸 검토한다고 하더군요. CEO들 같은 경우 최고 직원 평균 임금의 몇 배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갖고 가야 임금 불평등도 완화하고 최저임금도 나름대로 보완해서 취약계층 같은 경우도 더 좋아질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에 아까 사회적 대화 얘기가 나왔는데, 제가 봐도 이 정부는 사회적 대화 같은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나서 얘기할 것 없이 엉뚱한 것만 벌이고 있는 상태에서 이건 사실 불가능한 일 아니겠나, 이렇게 보입니다. 일정하게 서로 간에 힘겨루기가 이뤄진 상태에서 상대방 힘에 대한 어느 정도 인식이 전제가 되어야 그 때 가서 이야기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런 면을 위해서라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양 노총 차원에서 사안별 공조라든가 이런 것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앞서 나온 것처럼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만 더 첨언을 드리면, 큰 그림 내지는 대안 같은 게 없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대략적으로 합의 볼 수 있는 부분은 있겠다고 생각하는데요. 2009년 수출도 상당 부분 막힐 거고 내수는 애초부터 막혀 있는데, 그런다고 할 때 그나마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건, 취약계층에게 어느 정도 생활을 안정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는 일정 부분 우리 안에서 전체적인 동의가 가능한 대안들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토론 *****************************************************************************************************
이병훈: 2부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2부 토론은 발표자 분들과 청중 분들이 상호 토론하는 시간으로 갖고자 하는데요. 그에 앞서 여섯 분의 발표자께서 현재 당면한 위기 상황에 어떻게 맞설지 제언한 과제들과 관련해서, 제가 진행자로서 몇 가지를 쟁점으로 던져보고자 합니다.
첫째, 일자리와 관련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비정규직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연대를 조직된 노동자들이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방안을 고민했으면 좋겠고요. 둘째는 사회적 대화와 관련된 쟁점입니다. 발표자들 중 한 쪽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면에 이런 시기에 더 필요하다는 분도 있었는데요. 찬성하는 분들에게 왜 필요한지,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예상들이 많은데 성사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들어보고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셋째, 진보정치세력의 힘을 어떻게 함께 끌어 모을 것이냐, 2010년에 예정된 지방자치선거를 계기로 해서 진보정치가 부활하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따져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넷째, MB정부의 반사회, 반시민, 반노동 공세에 대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어떻게 하면 굳건한 연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그러한 사회적인 연대의 과제에 대한 제언들을 받고 싶습니다.
다섯째, 산별노조가 현재의 조직을 추스르는 것을 넘어 산별다운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리라 생각하고요. 여섯째, 아울러 이런 엄중한 도전에 맞서는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동력을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일곱째, 지금은 위기 상황이지만 한편으로 위기를 추동한 신자유주의의 몰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을 만들어가는 작업, 즉 진보적인 연구역량의 네트워크 활성화와 강화의 과제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여덟째, 운동방식의 탈바꿈과 관련된 쟁점입니다. 촛불시위 등의 방식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포함해서 과거의 관성적인 방식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제기되는 것 같고요. 아홉째, 조금 엉뚱할 수도 있습니다만, MB정부의 공세와 일자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너나 없는 협력을 복원시킬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양 노총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민주노총 내 활동가 그룹간의 갈등이 사실상 소모적인 논쟁과 운동의 지체현상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활동가 그룹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진전시킬지에 대해서도 따져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서 발제자들이 청중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마무리발언을 하시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입장을 드러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청중들에게 발언기회를 넘기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 자리에 최근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의 모범사례로 제기된 KB국민은행지부의 관계자께서 와 계신데요. 무기계약직에게 노조의 문을 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먼저 들어보도록 하죠.
참가자: 이번에 무기계약직들을 노조로 조직하기 위해서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 기간을 거쳤습니다. IMF 구제금융 이후 비정규직이 조직 내 30%에 육박하게 되면서 같이 가야 한다, 연대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기득권을 가진 정규직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죠. 어쨌든 그러한 와중에도 비정규직들의 처우개선은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 합의를 본 것이 임금은 정규직의 70% 수준에 복리후생은 100% 수준에 맞추기로 하고, 3년 이상 일한 직원들은 고용불안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노조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 하위직군으로 편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어쨌든 이렇게 전환이 되면서 무기계약직들의 노조 가입이 현실적인 문제가 됐는데요. 다른 곳들에서 이 문제 관련 조합원 찬판투표를 해서 부결되거나 노노갈등이 야기된 경험들을 참고삼아, 우리 지부에서는 우선 정규직들을 설득하고 교육하자, 해서 올해 초 설문조사와 외주 연구조사를 통해 무기계약직의 노조 가입이 정규직에게도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러 다녔습니다. 그 결과 무기계악직의 노조 가입 허용 관련 찬반투표에서 87%의 찬성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무기계약직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오히려 찬성률이 높았죠.
그러나 아직까지 차별이 완전히 없어진 아니니까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텐데, 현재는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직급체계를 아예 정규직 직급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비정규직 딱지를 아예 떼야한다, 그런 생각입니다.
참가자: 김종각 본부장님과 김태현 실장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과거 한 때 논의 되었던 양대 노총 통합에 대한 전망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참가자: 내년 상반기 넘어가면서 실업률이 5%를 상회할 거라 예상되고 있는데, 실업자들에 대해서 양대 노총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직자 긴급구호 기금에 노동조합이 자금을 출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하는데요. 현실화될 대량실업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참가자: 금속노조에서 왔습니다. 금속노조를 포함해 민주노총 입장에선 이미 쓸 수 있는 건 다 써봤다, 그러니까 권총에 탄환이 3개 들어 있다면 첫 번째 탄환이 실탄인지 세 번째 탄환이 실탄인지 정부와 자본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공포탄을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금속노조 230개 사업장 중 130개 사업장에서 이미 일거리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다 아시다시피 쉬고 있고, 철강도 30~40%만 운영되고 있고요. 특히 중소업체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데, 중소업체 입장에선 어디다가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도 불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 아시다시피 우리 내부가 단결이 돼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도집행력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실질적인 제안이 필요한 것 같고요. 말 나온 김에, 지금은 정말 한국노총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명박과 붙어 볼까만 생각해도 벅찬데, 정말 많은 제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병훈: 이제 발표자들의 답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종각: 쟁점과 질문에 대해 답을 다 드릴 수는 없고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가 분명하게 대답해야 할 부분이 사회적 대화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사회적 대화에 대한 한국노총의 입장은 아시다시피 명확합니다. 그렇지만 전망은 어둡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이런 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없는 걸로 보입니다. 대화라는 건 당사자들의 의지가 있어야 진행되는 건데, 현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으로 위기를 돌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상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걸해서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으로 가는데 우리가 도와주겠다, 하는 식으로 임하지도 않을 거고요.
MB정부와 한국노총,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으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태도를 버리라고 압박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적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정부가 지금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요원하긴 합니다만, 위기 극복을 위한 요구의 한 방식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다음으로 양 노총 통합 문제와 관련해서, 희망은 합니다만 쉽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통합 이전에 공조라도 해야 할 텐데 지금은 공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직적인 공조 이전에 사안별 공조조차도 막혀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민주노총의 태도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결의를 통해 한국노총과의 공조를 막아놓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사업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양 노총이 함께 해오던 것인데 작년부터는 그것도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통합은 멀고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실업자 대책과 관련해서, 제가 발표 때 이야기한 것들이 사실상 그 내용들이었는데요. 그리고 참가자께서 말씀하신 실직자 긴급구호 기금에 노조가 출연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아이디어와 대책들이 실업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도록 하는 부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명확히 하는 걸 전제로 노동자 차원의 상호부조는 장려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노조 내부의 역량문제와 관련해서,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 정책공조를 하고 있는데요. 노총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명박 정부와 한국노총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들, 특히 최근의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법 개정 추진에 대해서 한국노총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만, 너무 곡해해서 바라봐주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임윤옥: 얼마 전에 소설가 조세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우리 가슴에 희망의 철기둥을 심자”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가슴이 뜨끔하면서 정말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정말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고 또 앞으로도 어려워질 거라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이 없다면 어떡하겠느냐 그런 의미였던 거 같아요. 사실 제 스스로가 계속되는 개악을 규탄하는 투쟁들 속에서 상당히 지쳐 있었는데, 그 글을 보고 우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진보 연구역량을 집중하고 대안사회에 대해 좀 더 구체화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요. 저도 여기에 동의하고 그걸 넘어 이걸 전파할 수 있는 언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잃어버린 10년’이란 담론 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희석되고 이분법화됐는데, 여기에 대항할 수 있는 우리의 담론 프레임을 만들고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고민하다가 ‘자연과 공생하며 고루 잘 사는 사회’라고 한 번 지어보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저들의 담론을 뛰어넘는 비전이 뭐라도 제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공동대응 문제입니다. 2009년은 정말 진보세력이 희망을 주는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가르는 시험대일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수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운동의 방식과 내용, 실력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고, 또 김민영 처장님이 제안하셨던 것처럼 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국민들이 함께 참여해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 네트워크라든지 지역 구심체 속에서 각 운동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을 구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2009년 2/4분기가 지나면 긴급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상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기 전에 우리들이 대안을 마련해서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연대를 구축해나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민영: 1997~98년 경제위기 때 노동운동은 구조조정 반대를 내걸고 싸웠고, 시민운동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며 싸웠습니다. 당시 양자 사이에 같이 한 게 별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 입장에서 당신들이 구조조정을 용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노동운동의 비판을 받았던 게 생각이 나네요.
다시 경제위기를 맞아 양자가 어떤 것으로 연대를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저는 불가피한 대량실업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연대의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고용보험 적용 확대, 실업수당의 확보, 일자리 만들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책 등이 연대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보고요. 문제는 이것이 노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절절한 요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대정부투쟁도 필요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건가에 대해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MB정책 대 국민적 정책의 ‘맞짱’으로 몰고 가야
촛불운동 과정에서도 국민들에게 직접 문제를 가져가고 직접 호소하면서 승기를 잡게 된 것일 텐데요. 저는 지금 국민들이 경제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이것이 바로 국민들의 요구다, 이명박이 하자는 대로 가면 다 망하는 것이고 우리가 하자는 대로 가야 같이 사는 길이다, 라는 점이 간명하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MB정책 대 국민적 대응이라는 구도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와 관련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지금대로 가면 2009년 4월 이후 보궐선거에서 진보 대 진보의 싸움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게 울산뿐만 아니라 전체 운동에게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차라리 다 망하는 꼴을 한 번 보고 그 이후에 연대를 재구축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되겠구나, 그런 기운들이 만들어져서 2010년 지방선거를 대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양대 노총 공조가 잘 안 되게 된 여러 계기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제3자가 중재하는 방안도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고용·실업문제에 대응하는 기구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양 노총이 들어와서 합의를 하고 같이 움직이는 방안이 있겠지요. 한국노총이 결심을 하고 민생민주 국민회의에 들어와서 거기서 합의하고 공동실행하는 방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결합할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 잘 사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산이 전국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하더라고요. 울산의 노동운동이 이런 높은 실업률을 방치하면 주민들의 신뢰를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등장하는 게 노동운동의 과제일 텐데,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의 역할을 보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전 국민 경제학습의 시대라고 하는데, 노동자들도 경제학습 열풍에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외로 한국 진보운동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잘 연구하지도 않고, 소위 ‘사회구성체 논쟁’ 이후에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시도가 거의 없었구나 하는 점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 최근 2~3년 사이에야 나오더라고요. 그 동안 뭘 가지고 운동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동운동도 조합원들과 함께 한국 경제와 사회에 대한 집단학습의 열풍을 만들어내서, 거기서 집단적 대안이 만들어지고 하는 흐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임영일: 얘기를 더 많이 해봐야겠지만, 활동가들이 나름의 긴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최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그 위기의식이라는 게 하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대응과 관련하여 활동가들이 느끼는 암담한 조건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주체로 끌고 왔던 과제들, 정치세력화, 산별노조운동 등이 다 좌절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산별노조운동도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는 왔는데, 2009년 교섭을 잘못하면 풍비박산 날 수 있다는 의식이 있고요.
장기적인 틀을 규정하게 될 2009년 상반기 투쟁
그 중심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핵심적인 건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정파 혹은 계파들 간에 불신일 텐데요. 최근에는 불신을 넘어서 MB에 대한 것 못지않은 적개심을 표현하는 경우도 봅니다.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하기 전에 노동운동 내에 활동가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까지 상당한 정도로 있는 게 사실이죠. 그런 불신을 떨쳐낼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 조직을 장악해서 우리 방식으로 했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라는 생각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다음 선거에서 우리가 조직을 장악해서 우리 식대로 해야지, 라는 걸 ‘대안’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당신들이 2009년 상황에서 지도집행력을 장악하면 정말로 잘해낼 수 있겠냐 잘 생각해봐라, 라고 하면 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누가 지도집행력을 장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고, 문제의 원인은 좀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거죠. 저와 토론을 해본 활동가들은 이러한 인식에 대부분 동의를 합디다. 실제로 제가 주로 만나본 활동가들은 조직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고, 잘 되면 다른 쪽에 공개적으로 논의를 제안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람직한 활동가 연대와 정파 연대를 구축하는 것을 통해 노동운동을 다시 추스르는 쪽으로 갈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조직을 잘 추스른다 한들 조직 밖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무슨 답이 될 수 있겠냐, 하는 질문이 가능한 상황으로까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산뜻한 해법이 없는 현실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할 테고요. 그렇지만 어쨌든 저는 지금은 어느 쪽이든 제대로 된 투쟁의 중심을 만들어서 일단 이명박 정권을 멈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2009년 상반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2009년 상반기에 이걸 저지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장기간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이라다면 다 같이 보조를 맞추는 게 필요하고,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도 이를 전제로 의미를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 문제만 봐도, 2009년에 오히려 더 갈등이 깊어질 텐데요. 그러한 상황에서 자본은 바보가 아닌 이상 될 수 있으면 대기업 정규직들을 안 건드리려고 할 겁니다. 즉 취약한 곳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고용문제가 심화될 텐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들은 그냥 내버려두면 안 움직이려고 할 겁니다. 실제 그렇게 진행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라는 것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고, 전혀 다른 내용의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노동운동의 사회적 정당성과 정치적 정당성은 이제 더 이상 어디 가서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두 진보정당들이 통합을 하든 말든 어떤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겁니다. 어쨌든 현재로선 제일 위력적으로 싸울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단위가 조직 노동이니까, 이걸 추스르는 데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투쟁 막는 위원장 직선 선출 유보하거나 폐기해야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때 비상한 위기의식 아래서 통합된 공동전선을 갖추는 쪽으로 대응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면, 이를 저해하는 조건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9년에 예정되어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직선 선출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계획된 스케줄대로 진행하려면 아마 모든 노동조직들이 상반기 중에 모든 싸움을 마무리 짓고 선거국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될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힘 있는 공동대응이 전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거죠. 그렇다면 직선제를 비상상황이라는 인식하에 유보하거나 폐지해서 내부의 결속을 해칠 수 있는 요소들을 통제하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정치방침에 있어서도 연대를 해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으면 제어를 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 쪽이 중심이 돼서 위력 있는 투쟁 전선을 만들어서 ‘적신호’를 넘어서 실제로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전제하지 않고서는 국민연대 같은 것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왔던 것처럼, 형식적인 것이 되기 쉽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태현: 이 시기의 핵심을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개별 사업장들로 대응을 맡겨둘 경우에는 기업이 망하는 데 어떡할 거냐, 라는 주장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산별, 총연맹 단위로 묶어서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묻는 여러 가지 투쟁을 끌어올리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그런 것을 전제로 해서, 대안이 있는 개별 사업장에서는 내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도 있고, 고용보험 적용 기간을 늘리고 하는 등등의 방법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의지’인 거죠. 그런데 활동가들이 개별 의견그룹의 이해에 휘둘리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장애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례로 예전에는 이상한 사건이 터지면 말이 많았어요. 쌍용자동차에서 비정규직문제를 원칙에 어긋나게 해결했을 때, 예전 같았으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을 텐데 요즘은 그런 얘기도 거의 없어요. 그런 원칙과 의지를 만들어가는 부분들이 정말 중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1997~98년 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게 됐는데, 지금은 그런 운동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10년이 지나서 보니 잘 사는 사람들은 계속 잘 살고 없는 사람들은 계속 당하고, 그런 경험들이 누적된 거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중요할 테고요. 한편으로, 노동자 간의 연대와 관련해서 기존에는 이런 주장이 제기되면 우리 내부에서 항상 ‘대기업 책임론’이니 하면서 (자본에게) 말리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의지가 잘 발동이 안 됐습니다만, 올해는 일정하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저들과는 가능하지 않다
다음으로 사회적 대화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법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한나라당을 통해서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힘을 통해서 강제하지 않고서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사회적 대화를 주장하던 사람들도 현재 상황에서는 투쟁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과의 연대, 간단합니다. 비정규직법,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 풀어가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아니다’ 했던 거거든요. 지금 문제가 더 심각해졌는데,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 정책공조를 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그런 얘기를 하면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양 노총의 공조를 요구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고요. 다만, 두 가지는 있습니다. 첫째, 정책 단위에서는 정책공조는 이미 필요에 따라 진행하고 있습니다. 둘째 양 노총만의 사업이 아닌 경우에는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이 함께 한다고 그 사업 포기할 것도 아니니까요. 최저임금연대 관련해서 최근 문제가 생겼던 것은 양 노총의 공동집회에만 국한되었던 거고, 사업은 예전과 비슷하게 진행이 됐습니다.
정치조직의 통일이나 정치 방침과 관련해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1월21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진보정치세력 간의 분열 속에서 민주노총이 통합적인 노력과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침 등이 논의될 텐데요. 그러한 자리와 정파들의 비공식적 논의들을 통해서, 지도부가 많은 부분 책임을 질 수 없는 조건이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단결을 만들어가도록 할 것입니다. 조직이 힘이 있는 상황이면 너네 상관없이 우리끼리 잘 하면 된다,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조건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니까요.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만이라도 단결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현장단위에서 활동가들의 의기투합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유선: 임영일 선생님이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를 유보 또는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하셨는데, 저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데 최근에 보면 오히려 ‘분열의 씨앗’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고, 그러한 면에 있어서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총연맹 위원장을 직선으로 뽑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고요. 그렇지만 이미 대의원대회를 통과된 사안이라 조직 안에 계신 분들이 반대하기는 어려울 텐데요.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정치방침과 관련해서, 저는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는 방침 자체가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분열의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지면서 현장 조합원과 간부들이 상당히 피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고, 이 역시 조만간에 풀어가기 위한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지향 구축으로 계파 갈등 완화해야
노동운동 내부적으로 갈등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들 하셨는데요. 한국노총에서 오신 분들도 계신데 민주노총 내부 이야기만 해서 미안한 감도 드는데, 어쨌든 1990년대 초반 전노협 시절에도 내부적으로 정파나 계파의 갈등이 존재했는데요. 당시에는 그렇다고 ‘민주노총 건설’ 등 큰 과제로 제기되는 것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개별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양보할 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총파업과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누구나 동의하는 과제와 명제 자체가 사라지면서, 이해관계에 급급해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활동가들끼리 잘해보자 하는 수준을 넘어서, 노동운동이 총괄적으로 지향할 수 있는 총체적인 과제가 명확하게 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임영일 선생님이 집행부 바뀐다고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여기에 동의하고요. 안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밖에서 보면 다 비슷비슷하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기회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들 하셨고, 실제로 노동운동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이 외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측면이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안들을 보면서 그 안에 ‘X맨(내부의 적)’이 있는 거 아니냐 싶은 생각도 했는데요. 누가 봐도 자신들에게 실익이 되지 않는 안들을 자꾸 내지르고 있는데, 그러한 면에서 우리 운동이 단결하고 문제를 풀어가도록 상기시키는 낙관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병훈: 마무리하기 전에 이 자리에 계신 노동운동의 원로, 김금수 선생님께 한 마디 청하겠습니다.
김금수: 짚을 건 다 짚었는데 손에 남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답을 얻기 위해 오셨을 텐데, 저는 오히려 물음을 갖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다섯 가지 될 텐데요. 먼저, 신자유주의가 파탄 날 것이냐, 파탄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파탄 났으니 사회주의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무장한 자본주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거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 전에 당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시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기극복 실천을 위해 근본적인 물음들을 되새겨야
둘째, 그렇다면 현 정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신자유주의 정권은 아니란 말입니다. 문제는 독재정권이냐 아니면 파시즘이냐 하는 건데, 제가 아는 재야 원로들도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파시즘이냐 하는 분들도 있고, 파쇼라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정말 파쇼라면 반파쇼 국민전선을 구축해야 할 텐데요. 어쨌든 이명박 정권의 본질이 무엇인가가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대응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민생민주 국민회의는 정부와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를 제대로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많이 모였는데, 뭐 때문에 모였는지 모른다는 거죠.
셋째, 지금의 분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현상은 활동가의 분열이 아니라 조직의 분열입니다. 정파는 이념이 우선해야 하는데 노선이 없고 파벌만 남았다는 거죠. 단병호 위원장이 민주노동당의 분열 사태에 대해서 이념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한 것도 그러한 맥락입니다. 언제 이념투쟁을 해 본적이나 있냐는 거죠. 왜 이념이 없는가? 공부를 안 하니까요. 제가 세계노동운동사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예전과 같지 않습디다. 공부 안 하고 비판만 하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일단 모이기만 하면 정세분석 해보자, 학습 해보자,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공부도 안 하면서 비판을 하기 위해 주장을 이념으로 포장하고 있는데, 그런 이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넷째, 그렇다면 어떤 원칙 아래서 단결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단결을 하려면 노동자 통일전선이 나와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파쇼가 대두될 당시인 1922년 코민테른 이후 모든 노동운동이 다 모였습니다. 결국은 깨졌죠. 어쨌든 지금 우리도 노동자 통일전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관련된 원칙을 세우고 각인시켜 나가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싸움으로 전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진보정당이 분열의 사태를 맞는 형국이죠. 현장 실천에 대한 방침도 부재한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지도 노선인데, 현장대장정도 그러한 측면에서 미흡했다고 봅니다. 대중 속에서 대중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핵심적인 물음들을 한 서른 개쯤 만들어서 현장대의원들과 6개월쯤 토론해보면 어디로 가야할지 답이 나오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정책과 제도를 기획하기 위해서 총연맹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정말로 총파업밖에 없는가, 사안마다 총파업으로 관철시키는 게 가능한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정책과 제도입니다. 노사정위원회 계속 안 들어가면서 정책과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집회만 할 건지, 조합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방침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이상의 물음들을 가지고 각자 조직으로 돌아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이병훈: 긴 시간 토론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제69차 노동포럼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