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허락된다면
(김일중)
시간이 허락된다면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담양읍에 가 보고 싶다
죽세 공예품을 구경하고 싶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걷고 싶다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겠지
허기가 찾아오면
그 대통 밥 한 그릇에
떡갈비 한 대
동동주 한 사발 들이키면서
식도락 하리라
시간이 허락된다면
고서초등학교에 가고 싶다
모교 운동장을 밟아 보고 싶다
살금살금 밟아야지
삼십 여 년 전보다
두 배 세 배 늘어난
우리의 몸무게를
버텨 낼 수 있을까
추억이 잠든 어린이 운동장이
교문을 빠져 나오면
문방구, 빵집, 자전거포 등은
사라졌지만
우리 눈에는 다 보인다
선명하게 다 보인다
지금도 고향을 지키는
양회네
낚시용품 가게에 들러
그 친구 아들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그 옛날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광주호로 갈 것이다
직육면체로 높이 세운 돌 판에
엄청나게 크게 새겨진
추상같은 권위의 상징인
‘광주호’라는
박모 대통령 글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그 때
바다를 꿈꿨었다
원대한 꿈을 잉태케 한
그 인공 호수는
친구요 스승이요 미래였다
그 때 그 콘크리트 수로에
새겨 두었던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그 사랑의 맹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 호수의 물줄기를 따라
역류하다 보면
식영정이 반긴다
송강도 미인도 사라진 곳이지만
우리 사우인곡으로
분위기 있는 대중가요 한 곡씩
즐겨 부르자
그래도 ‘가사문학관’ 관람 시에는
옷맵시 단정히 하고
목소리 낮추고
그 문학의 향기에 젖어 보자
소위 선비시 양반이시 하는
오만한 남성들만 누렸던
‘소쇄원’의 향취와 풍류를
우리 모두 혼성으로
누려 보자
청풍명월이
겁나게 좋아 불구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빛고을 수호신
무등산에 올라 보자
되새김질하고 앉아 있는
소 등허리 같이
든든하고 평등한
그 산에 들어가 보자
사람은 왕후장상 사농공상
계급 없이 모두 평등 하단다
산의 음성이 들려 온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무등산 수박을
우리 모두 임금이 되어
먹어 보자
오메 겁나게 맛있능 거
굳이 정상에 오르려고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명색이 무등산인데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 산 속을 찾아
헤매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다
우리
순수하고 정겨운
유년의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