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지장(智將) 덕장(德將) 맹장(猛將)
장수를 흔히 지장(智將)과 덕장(德將), 맹장(猛將)으로 나눈다. 지장은 불가기(不可欺)니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다. 덕장은 불인기(不忍欺)라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못 속인다. 맹장은 불감기(不敢欺)니 무서워서 감히 못 속인다.
智將은 워낙에 똑똑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처방해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조직을 이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상황을 장악한다. 대신 조직은 리더의 결정만 쳐다보고 있어 수동적이 된다. 능력으로 판단하므로 인간미가 부족하고 구성원 간의 결속력이 약하다. 때로 리더의 판단이 잘못되면 조직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德將은 품이 넓어 아랫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부드럽게 감싸 안아 조직을 융화시킨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 조직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자칫 줏대 없이 사람 좋다는 소리나 듣기 딱 좋다. 덕만 있고 위엄이 없으면 속없이 잘해줘도 나중엔 아래에서 기어오른다. 중심을 잘 잡아주지 않으면 조직이 우왕좌왕 목표를 잃기 쉽다.
猛將은 불같은 카리스마로 화끈하게 조직을 장악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일사불란한 장점은 있지만 아랫사람이 좀체 기를 펼 수가 없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경우 대책 마련이 어렵다. 비상시라면 몰라도, 평상시에는 조직의 창의성이 발휘되지 못한다. 때로 놀라운 성과를 내서 기염을 토한다. 늘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지장과 맹장은 위엄만 있고 덕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덕장이 위엄까지 갖추기란 쉽지 않다. 덕장은 인화를 바탕으로 원만한 성과를 이룬다. 지장과 맹장은 자기 확신이 강해 아랫사람의 생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큰 문제도 큰 성공도 종종 이들이 이끄는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조직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결과는 반반이라 위험 부담이 크다.
속이려야 속일 수 없는 지장은 인간미가 없다. 차마 못 속이는 덕장은 민망한 구석이 있다. 감히 못 속이는 맹장은 너무 사납다. 이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능한 것이니 족히 말할 게 못 된다. 문제는 덕과 위엄의 조화다. 가슴과 머리와 실력이 균형을 갖춰야 한다. 좋은 것만 찾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모험만 즐기면 뒷감당이 어렵다.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성웅 이순신 장군은 지장이면서 용장이었고, 백성들의 신망이 매우 두터운 덕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난중일기 등 사료를 보면 그 만큼 엄격한 장군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하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자주 내렸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 말단 군졸로부터 군관에 이르기까지 임무수행을 게을리 하거나 군율을 어기는 자에게는 군법을 다스릴 수 있는 최고형벌을 내렸다. 병선과 병기관리에 소홀하거나 민가의 개를 훔쳐 잡아먹는 군졸에게는 80대의 곤장 형을 명해 엄히 다스렸고, 탈영병 같은 중죄인은 참수해 효시했다고 한다. 장군을 분류할 때 덕장이다 지장이다 맹장이다 어느 한 가지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裕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