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왕성한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여수룬
유혹을 이기려면
야고보서 1:13-18
제가 지난 주 일본에서 한국 선교사님이 개척하여 30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월요일 밤 12시 쯤 교회에 도착했는데도 방 마다 청년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차 운전을 해 준 청년이 대학생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는 병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일본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들 자녀를 그 교회에 보내라고 했습니다. 호랑이를 기르려면 광야에 내 보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요일과 주일날 교회에 출석하는가만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일본이 유혹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관리해 주고 쉬는 날도 교회에 와서 행사를 하게한다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회에 수백명의 젊은 이들이 모여 2시간 넘게 기도회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직장과 학교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혹만 이겨도 아이들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유혹 이기지 못하여 롯의 아내, 게하시, 아간, 유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성공했습니다.(창13:8,창14:19-20,창14:22) 성에 대한 유혹 이기지 못하여 다윗(삼하11:2,삼하11:6-13), 암논과 하몰의 아들 세겜(창34), 야곱의 아들 르우벤(창35:22), 삼손이 망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창39:9) 성에 대한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명예에 대한 유혹에 발람(민22:12), 야고보와 요한(막10:37)은 실패했지만 기드온(삿8:23)은 성공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유혹을 에서는(창25:27-34) 실패했지만 다니엘(단1:8)은 성공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잠의 유혹, 이성의 유혹, 오락의 유혹만 잘 극복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가정 생활하는 부부도, 직장인도, 목회자도 유혹을 이겨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청문회를 보면 유혹을 한 때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유혹만 잘 이기면 인생을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유혹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은 명확하게 우리에게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교훈해 주시고 있습니다.
1. 구체적인 유혹을 받기 전 평소에 유혹에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갖고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
건강도 병을 들기 전에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혹을 받기 전에 잘 준비하면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2-12절까지 시련으로 다가오는 시험에 대하여 말씀하고 13절부터는 사탄이 주는 유혹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당시 흩어진 신앙인은 많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만 부인하면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먹을 것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얻을 수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유혹을 이기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성공적인 신앙 생활의 필수요소인 유혹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먼저 13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시험을 받거든”이라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14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험은 당연히 사람들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 1년 한 사람도 20년 한 사람도, 새신자도 장로님도 목사님도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유혹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속입니다. 네가 유혹의 대상이 되었다는 자체가 이미 죄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모두 유혹을 받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시험은 테스트로서의 시험이 아닙니다. 유혹으로서의 시험을 말씀합니다. 테스트로서의 시험은 하나님께 오는 시험입니다. 유혹은 사탄에게 오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는 시험은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를 훈련시켜 더 성숙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으로부터 오는 유혹은 우리를 넘어뜨려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혹은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왜 나만 이런 유혹을 받느냐”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할 때 사탄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라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시험을 받는 것을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혹받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새가 우리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다윗은 깨어 있지 못하여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과거에는 자신이 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정도 나라가 안정이 되자 부하들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데 자신은 잠을 자고 잠에서 깨어나 한가하니까 여인의 몸을 보고 유혹받아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정지된 물은 썩게 되어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되었다 할 때 쉽게 유혹에 쓰러집니다. 열심히 노력해 놓고 사업이 어느 정도 되면 바람 피워 가정을 파탄 만드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신앙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유혹을 받으면 핑계대지 말고 유혹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고 의사에게 가지 않으면 치료할 길이 없습니다. 의사에게 가면 의사가 첫 번째 하는 것은 진단하는 것입니다. 상태를 육안으로 살펴보고, 증상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기계를 통해 촬영을 해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고장난 부분을 찾아야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혹 처방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유혹에서 이기려면 유혹의 분명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유혹의 출처를 바로 알아 대처해야 합니다. 유혹받을 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고 안으시고 시험하시지도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를 유혹하지는 않았습니다. 아간을 유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탄에게 유혹당한 것입니다. 다윗을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초대교회에 전답을 팔아 감추어 놓고 헌금하다 죽었습니다. 아간은 전쟁터에서 금과 옷을 훔쳤다가 자신과 온 가족이 돌에 맞아 비참하게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험입니까?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폭풍을 만났고 결국 바다에 빠뜨림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혹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능력의 사람 삼손이 눈이 뽑혀 연자 맺돌을 돌렸습니다.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살지 못하고 도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첩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아고 끝없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이 아닙니다. 그들의 욕심 때문에 당한 유혹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물질의 탐욕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까지 속이려는 탐욕이 결국 그와 그의 가정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의 정욕은 결국 우리아와 그의 아들을 죽이는 비극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요나의 편협한 애국심이 결국 폭풍을 만나게 하고 물에 빠뜨리움을 당하였습니다. 정욕을 피하지 못한 삼손의 잘못된 힘이 그를 결국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은 모세의 혈기가 결국 그를 도망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한 아브라함의 타협적인 생각이 결국 중동의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유혹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유혹당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자신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슬로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소속 욕구(사랑/관계 욕구), 존경 욕구(자존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5단계로 설명을 합니다.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욕구가 죄가 아닙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죄가 아닙니다. 존경받고, 명예를 누리고 싶고, 권력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죄가 압니다. 만약 그런 욕구들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제는 이 욕구가 지나쳐 일정한 선을 넘어 욕심이 될 때 유혹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차가 자신의 레일을 가야 되는데 레일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아내를 탐내었습니다. 이것은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욕심이란 말은 "...을 갈망한다"라는 말입니다. 죄악된 인간 본성으로 악에 대한 열망을 말합니다. 욕심의 배후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탄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 2:16)"
우리를 유혹하기 위한 사탄의 도구는 두 가지입니다. 에베소서 2:1-3절에 잘 나와 있지 않습니까?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밖으로는 세상 풍속 안으로는 육체의 욕심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예수님이 얼마나 이 사실을 정확히 말씀해 주시는가 성경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유혹의 핑계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제 3자에게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 탓, 어머니 탓, 교회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이 유혹에 빠지고는 하나님이 주신 여자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창3:12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니 혼자 살게 하지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주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캐나다 선교사인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긴 사람입니다. 3.1운동 때는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했던 분이십니다. 한국에 대하여 대단한 애정을 가진 그분이 한국 사람을 평할 때 `하우매니 핑계'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가장 큰 단점은 핑계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에 빠지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성령의 생각으로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3. 유혹에 빠졌다면 유혹의 과정을 잘 알아 유혹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면 달콤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끝이 좋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끝이 좋지 않습니다. 끝이 파멸입니다. 끝이 죽음입니다. 오늘 야고서를 통해 하나님은 욕심에서 출발한 유혹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네 단계로 본문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욕심에 끌리는 발전 단계입니다.
마음에 욕심의 씨앗이 떨어지면 그 욕심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욕심에 끌리게 만듭니다. "끌려"라는 말은 마치 물고기가 낚시 밥의 꾀임에 빠져 자신의 은신처 밖으로 나온 것처럼 사람이 죄의 유혹을 받아 죄의 길로 마음이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낚시꾼들은 낚시를 할 때 죽은 죽은 새우보다 살아 있는 새우를 사용합니다. 살아 있는 새우가 낚시 바늘에 꿰여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그 속에 있는 날카로운 낚시는 보지 못하고 살아 있는 새우를 보고 끌리게 됩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기려면 마음이 동하는 단계를 차단해야 합니다. 욕심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끌리는 것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끼에 끌리지 않게 차단하는 것입니다. 죄의 길로 들어 서지 않도록 유혹을 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궤도가 이탈되면 욕망의 포로가 됩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행동학 연구소는 바에서 유혹적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배우를 촬영한 필름을 남자들에게 보여 주고 여배우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단추를 누르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 여배우가 한 번 쳐다본 것만으로도 남자들의 8%가 단추를 눌렀습니다. 두 번째 쳐다보자 또 다른 11%가 단추를 눌렀습니다. 보고 듣는 것 차단해야 할 것을 차단해야 합니다. 요셉이 중년 여성의 유혹을 받을 때 피해 버렸습니다. 아들과 딸을 함께 재우는 것, 잔치가 있어 일가친척이라고 해서 남녀 함께 재우는 것 처음부터 피해야 합니다. 유혹이 발전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어 주지 말아야 합니다. 유혹받을 수 있는 회식 자리 아애 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미혹으로 전개되는 단계입니다.
미혹이라는 말은 “미끼로 물고기를 잡다. 올가미로 사냥하다”라는 말입니다. 미끼에 속은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리듯 죄의 유혹을 받은 사람이 마침내 죄에 사로잡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유혹에 끌려가면 마침내 미끼를 덥석 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사용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나 삼손은 이성이 약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 욕이 약점이었습니다. 모세는 성급함이 약점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 관리를 하지 못하면 결국 유혹에 끌려 미혹되게 되어 있습니다. 유혹의 미끼를 물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죄된 인간의 본성이 사람의 마음을 죄악의 길로 인도하여 결국 그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상태가 되게 합니다.
세 번째는 잉태하고 성장하는 절정의 단계입니다.
사단의 간계와 인간의 욕심이 어울어져 죄를 낳는 단계입니다. 욕심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개인의 의지와 죄된 본성이 합치되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한 용어입니다.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듯 욕심이 잉태하니까 결국 죄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혹의 결과입니다. 미혹되면 결국 죄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밖으로 표출되기 전에는 자신과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밖으로 나와 행동화되면 자신과 하나님 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물건처럼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확장성이 있습니다. 아주 강력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한 번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늪과 같습니다. 장성하는 단계에서는 죄된 행동이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완전히 장악하여 습관적 반복적 행하게 합니다.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일중독, 성중독, 오락 중독, 돈 중독, 명예, 권력 중독이 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욕심의 결과로 발생되는 죽음의 단계입니다.
미끼를 문 물고기는 결국 튀김판에 올려져 튀겨집니다. 인생도 후라이펜에 올려져 튀겨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죽음이란 단절을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됩니다. 믿는 사람은 생명의 단절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살게되면 교제가 단절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감각이 무디어 집니다.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선택의 자유는 주었지만 결과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유혹이 올 때는 항상 결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이 유혹에 못이기는 체 하고 넘어갔다면 한 때 권력자 부인을 통해 즐기고 약간의 이익을 얻을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총리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유혹 거리가 다가오면 우리 성도님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유혹에 빠지면 어떻게 우리 성도님들에게 설교할 것인가? 가정을 생각합니다. 유혹에 빠지면 그 결과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파멸입니다. 죽음입니다.
4. 유혹을 이기려면 근본적인 방법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성경에 여러 가지로 나와 았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을 주의하는 것, 마음을 관리하는 것, 피할 것은 과감하게 피하는 것,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처신 하는 것, 신전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 말씀으로 물리치는 것 등 여러 가지 대처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방법 다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오늘 성경은 제시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속지 말라는 말입니다. 무엇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까? 사단이 가져다 주는 잘못된 사고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사탄은 유혹받으면 좋은 것 줄 것으로 자꾸 속입니다. 아담에게도 그랬고 예수님에게도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에게 유혹되면 더 좋은 것, 더 기쁜 것, 더 유익한 것, 더 감동적인 것, 더 지루함을 해결해 주는 것, 더 보장되는 삶이 있을 것이라고 속입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은 누가 주십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것, 온전한 선물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 늘 나를 감시하는 분, 나를 포기하신 분, 항상 하지 말라고만 하시고 잘못 하면 벌주시는 분, 내게 쇠고랑만 채우시는 분, 거룩한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시고 항상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사탄은 속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와야 참 자유와 멋진 삶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들은 유혹하는 사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빛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로서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유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첫 열매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 복음으로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듭나게 한 방법은 진리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막4:14 벧전 1:25) 우리는 패배를 위해 부름 받은 자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 부름 받은 자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좋은 은사를 주시는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12,17,18)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