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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말년의 신학_ 『신앙해설』을 중심으로 _ 황대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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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생명과말씀 2018. 12
http://www.reformedlifetheology.org/
츠빙글리 말년의 신학 :『신앙해설』을 중심으로
황대우 교수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이 논문의 목적은 생애 말년의 츠빙글리 신학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생애 말년의 모든 작품을 분석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지 1530년의『신앙 해설』만 분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신앙해설』은 츠빙글리가 1530년의 아우크스부르크제국회의에 제출한 그 자신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그는 황제 칼 5세에게 취리히 종교개 혁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했다.
『신앙해설』은 츠빙글리 신학의 전체적이고 압축적인 요약이다. 그의 종교개혁 신학은 전기와 후기에 별반 차이가 없다. 이전처럼 그의 신학적 요소는『신앙해설』에서도 변함없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고 그 성찬에 대한 상징설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츠빙글리 신학의 특징은 그가 성부 하나님의 섭리와 성자 예수님의 구원과 믿음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취리히 종교개혁자는 그리스도께서‘속성의 교류’덕분에 부활 이후 성찬에 육체적으로 임재하실 수 있다는 루터의 견해 를 거부한다. 대신에 ‘믿음의 명상’을 통해서만 그리스도께서 성 찬에 임재 하신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주제어: 『신앙해설』, 츠빙글리, 아우크스부르크, 루터, 신학, 종교개혁
Ⅰ. 들어가는 말
츠빙글리는 루터와 더불어 1세대 종교개혁자들을 대표한다. 16세기에 루터의 비텐베르크와 츠빙글리의 취리히는 모두 도시로 분류되지만 전자는 독일 작센의 강력한 통치자 선제후의 지배 아 래 있었던 반면에 후자는 통치권이 시민들, 즉 해마다 시민들이 선출하는 시정부 인사들에게 있는 칸톤(canton)이었다. 이와 같은 정치 구조의 차이는 독일의 종교개혁, 즉 루터교회의 종교개혁과 스위스의 종교개혁, 즉 개혁교회의 종교개혁 사이의 차이를 이해 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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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Bernd Moeller, Reichsstadt und Reformation (Berlin: Evangelische Verlag- sanstalt, 1987). 영어 번역은 다음 참조. Imperial Cities and the Reformation, ed. & trans. by H. C. Erik Midelfort & Mark U. Edwards, Jr. (Durham: Labyrinth Press, 1982). 독일어 원서에는 저자의 서문과 논문 3편, 그리고 논문에 대한 후기가 첨부되어 있는 반면에, 영어번역은 편집자의 서문과 더불어 저자의 논문 3 편만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 뮬러는 중세적 전체주의에서 개별적 국가주의로 정치체제가 전환되는 시기였던 16세기에 구원과 신앙을 개인의 문제로 본 루 터의 견해와 그것을 도시 전체의 문제로 본 츠빙글리와 부써의 견해를 구분하고 전자를 근대적 정신으로, 후자를 전근대적 정신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조 방식과 결론은 정치 역사의 구도와 흐름에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특히 구원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 종교의 자유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이런 의미의 종교 자유란 16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종교의 자유는 개인의 의지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16세기 유럽 에서 종교는 기독교 하나뿐이었고 기독교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사회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정점으로 형성된 기독교공동체(Corpus Christianorum) 였다. 그래서 신성로마제국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반역죄보다 더 심각한 범죄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고, 신성모독죄 가운데 최고의 중범죄는 기독교의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세르베투스처럼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는 사람에 대한 화형은 16 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종교를 개인의 선택적 자유라고 규정하는 현대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다.
그렇다고 16세기가 구원이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집단적이라고 가르쳤던 시대는 아니었다. 성인숭배와 연옥 교리를 가르친 중 세조차도 집단적 구원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기독교의 구원은 성 경의 가르침에 따라 개인적인 것이다. 중세교회는 구원이 개인의 선행 즉 공로에 달린 것이라고 가르친 반면에 종교개혁자들은 그 구원이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것을 믿는 개인의 믿음에 달린 것이 라고 가르쳤다.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 교리는 모든 종교개혁자 들의 공통 신학이다. 기독교 교리의 역사에서 이신칭의는 종교개혁을 통해 비로소 구원론의 핵심 교리가 되었다. 이신칭의 개념은 루터가 발견한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그것은 루터신학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츠빙글리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1520년 중 반부터 시작된 성찬 논쟁을 통해 성찬론뿐만 아니라 기독론에서도 루터와 츠빙글리는 각기 다른 길을 갔던 것이 사실이다. 2) 츠빙글리 신학의 근본 토대는“하나님의 주권” 이다. 3) 즉 “츠빙글리 신학의 중심은 하나님, 즉 그리스도와 대립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과 대립되는 하나님이시다.” 4) 루터 신학의 이신칭의라는 점에서 루터는 인간에게서 출발하지만, 츠빙글리는“이러한 최고의 신적 존재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라 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5) 한 마디로 츠빙글리 신학의 중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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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찬 논쟁의 역사와 관련하여 두 종교개혁자의 신학적 차이점을 가장 학문적으로 잘 제시한 것은 발터 쾔 러의 저술이다. Walther K ö hler, Zwingli und Luther: Ihr Streit ü ber das Abendmahl nach seinen politischen und religi ö sen Beziehungen II. Vom Beginn der Marburger Verhandlungen 1529 bis zum Abschluß der Wittenberger Konkordie von 1536 (G ü tersloh: C. Bertelsmann Verlag, 1953).
3) W. Peter Stephens, 박경수 역,『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30.
4) W. Peter Stephens, The Theology of Huldrych Zwingli (Oxford: Carendon Press, 1986), 80:“The centre of Zwigli's theology is God -not God as opposed to Christ, but as opposed to all that is not God.”
5) Walter K ö hler, Hvldrych Zwingli (Leipzig: Koehler & Amelang, 19542), 223;“ ‘Dieses h ö chste g ö ttliche Wesen, das mein Gott ist’ , der Gott der Vorsehung, der weise kluge, ü ber das kosmische All disponierende Gott, und mein Gott, der mich in Christus erl ö st hat-... Von der Rechtfertigungslehre, Luthers Herzst ü ck, sagte Zwingli nichts. Verleugnet war sie darum nicht, aber sie paßte nicht in den Rahmen, sie schaute von Menschen aus, Zwingli von Gott aus - ein Unterschied lutherischer und reformierter Religionsbetrachung auch sonst.”
6) 참조. Gottfried Wilhelm Locher, Zwingli's Thought: New Perspectives, trans. Milton Aylor & Stuart Casson (Leiden: E.J. Brill, 1981), 168-180. 특히 230:“The characteristics of the Zurich reformation are as follows: a theocentric and theo- cratic way of thinking combined with a pneumatological Christology;...”
과연 이와 같은 츠빙글리의 핵심 사상이 생애 말년까지도 유지되는 것일까? 또한 그의 성찬론 역시 변함없는 것일까? 이런 점 들을 확인하기 위해 본 논고는 츠빙글리의 생애 말년에 작성된 신앙고백적인 글,『신앙해설』(Fidei ratio) 7) 의 작성배경과 신학적 내 용을 분석하고 평가할 것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 츠빙글리 말년의 신학이 어떤 내용인지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의 신학적 표현들에 대한 신학적 평가도 이루어질 것이다.
Ⅱ. 아우크스부르크제국회의(1530년)
1530년을 전후하여 종교개혁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모든 적대세력을 물리친 후 대관식을 통해 절대 통치자의 면모를 갖추게 된 황제 칼 5세가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종교개혁을 원천 봉쇄하기로 결정한 기간일 뿐만 아니라, 스위스 종교개혁이 로마가톨릭 진영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약화된 기간이기 때문이다. 황제는 1529년 제2차 슈파이어제국회의를 통해 1526년 제 1차 슈파이어제국회의의 결정, 즉 각 지역의 통치자에게 종교를 개혁할 수 있는 권리를 주기로 한 결정을 철회하고 1521년의 보름스제국회의 결정인 종교개혁 금지령을 재천명했다. 이 결정에 반대하는 자들은 탄원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여 황제에게 제출했는데, 서명자들 모두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정치지도자들로서 때문에 ‘항의자들’ (protestantes) 이라 불리게 되었고, 바로 여기서‘개신교’ (Protestant; Protestantism)라는 용어가 생겨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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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기서‘해설’ 로 번역된 라틴어‘라티오’ (ratio) 는‘이유, 설명, 법칙, 계산, 이성’ 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 츠빙글리의『신앙해설』의 영어 번역과 독어 번역 및 한글 번역은 다음 참조. Jaroslav Pelikan & Valenrie Hotchkiss, eds., Creeds and Confessions of Faith in the Christian Tradition Volume II Part Four: Creeds and Confessions of the Reformation Er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249-271; Thomas Brunnschweiler & Samuel Lutz, eds., Huldrych Zwingli Schriften IV (Z ü rich: Theologischer Verlag, 1995), 93-131; 김영재,『기독교신앙고백: 사도신경에서 로잔협약까지』(수원: 영음사, 2011), 384-412.
1529년의 슈파이어제국회의는 신학적인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던 반면에 1530년의 아우크스부르크제국회의는 황제가 저항자 들의 탄원서를 감안하여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자리이기 때문에 종교개혁 신학을 중 점적으로 다루었다. 이 때 종교개혁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 다. 이유는 루터와 츠빙글리가 성찬론에 관한 오랜 논쟁 끝에 합의를 위해 1529년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만났으나 분명한 차이만 재확인했을 뿐, 서로의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헤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성찬을 둘러싼 종교개혁자들의 신학논쟁 때문에 종교개혁을 지지하던 정치세력도 루터진영과 츠빙글리진영으로 분열된 상태로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제국회의를 맞았던 것이다.
1530년을 전후하여 종교개혁은 신학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정치적 분열을 겪어야 했고, 결국 정치적 수모까지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1529년에 프랑스와 교황의 연합군을 상대 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맺은 평화조약으로 제국 내부를 평정했을 뿐만 아니라, 위협적인 이슬람 군대의 퇴각으로 외세침입의 위기를 잠시 모면하게 되자, 1530년에는 교황의 손으로 치른 황제대관식을 통해 명실상부한 신성로마제국의 절대통치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제 그에게는 그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대관식을 마친 칼 5세는 곧장 제국회의를 개최하기로 예정된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로 향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종교개혁은 내부적으로 신학적 분열 이후 정치적 분열의 진통까지 겪고 있었다.
1529년 연말에 개최된 마르부르크 종교담화이라는 결정적인 화해의 기회를 놓친 종교개혁은 사분오열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워온 루터진영과 츠빙글리진영의 불화는 아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를 앞두고 정치적 분열로 이어졌고, 그들의 화합을 위해 중재하려는 부써의 중간진영이 새롭게 부상 했다. 중간진영은 아우크스부르크제국회의에 제출할 신앙고백을 독립적으로 작성했는데, 이것이『4개 도시 신앙고백』(Confessio tetrapolitana)이다. 8 4개의 도시가 이 신앙고백의 작성자는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써와 볼프강 카피토(Wolfgang Capito)이었다. 당시 가장 민감했던 성찬에 관한 내용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중간입장을 취한 부써의 제안이 최종적으로 수용되었다.
한편 츠빙글리는 1529년 스위스에서 벌어진 16세기 최초의 종교내전인 제1차 카펠전투에서, 즉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칸톤과 로마가톨릭을 고수하는 칸톤 사이의 전쟁에서, 종교개혁 진영이 승리하자 종교개혁의 복음적인 설교를 할 수 있도록 구교 진영에 요 구했고, 이것을 실행하지 않는 칸톤을 식량 봉쇄라는 강력한 정책으로 압박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구교 진영이 1531년 10월 9일에 신교 진영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것이 제2차 카펠전투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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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신앙고백에 서명한 4개 도시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콘스탄츠(Kon- stanz), 메밍겐(Memingen), 린다우(Lindau)였다. 1530년에 황제에게 제출된『4 개 도시 신앙고백』의 필사본은 독일어와 라틴어로 작성되었다. 독일어와 라틴어 필사 원본의 비평편집 대조 인쇄판은 다음 참조. BDS 3, 36-185.
이 전투에서 츠빙글리는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1529년에 츠빙글리는 구교 진영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부르크 종교담화에서도 자신이 승리했다고 확신했는데, 혹 이것이 그를 너무 지나친 자신감에 취하도록 했던 것이 아닐까? 1530년 1월 21일자로 황제는 독일의 제국회의 의원들과 고관 대작들을 1530년 4월 8일에 개최될 아우크스부르크제국회의에 초대했다. 제국회의 석상에서 황제는 종교개혁 진영과 구교 진영의 목소리를 함께 듣기를 원했으나 구교에 충성하는 그의 신앙 때문에 객관적인 결론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독일 정치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들도 종교개혁의 신학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 츠빙글리는 이런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기민한 움직임에 편승하지 않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츠빙글리는 자신의『신앙해설』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아우 크스부르크 제국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황제의 공식 초대장을 기 대했으나 받지 못했다. 10) 당시 취리히는 종교개혁을 지지하는“기독교 도시연맹” (Christliches Burgrecht) 11) 의 중심도시였고 4개 도시 신앙고백서에 서명한 스트라스부르와 콘스탄츠도 여기에 가입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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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카펠전투의 발발 배경과 과정 및 결과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Ulrich G ä bler, 박종숙 역,『쯔빙글리: 그의 생애와 사역』(서울: 아가페출판사, 1993), 135-138; Gottfried Wilhelm Locher, Die Zwinglische Reformation im Rahmen der europ ä ischen Kirchengeschichte (G ö ttingen & Z ü rich: Vandenhoeck & Ruprecht, 1979), 344-363, 502-542.
10) Huldreich Zwinglis s ä mtliche Werke VI/2, ed. Emil Egli, Georg Finsler, Walther K ö hler, Oskar Farner, Fritz Blanke, Leonhard von Muralt, Edwin K ü nzli, Ru- dolf Pfister, Joachim Staedtke, Fritz B ü sser (Z ü rich: Berichthaus, 1968), 790. = Corpus Reformatorum 93/2, 790. = Z 6/2, 790.
11) 츠빙글리가 서문 초두에 언급한“urbes Christianae civitatis” 는 문자적으로“기독교 도시 국가들” 을 의미하지만 또한“기독교 도시연맹” 을 의미하기도 한다. 츠빙글리의 작품 편집자들은 후자의 의미를 지지하는데, 친절하게도 당시 이 연맹에 가입한 도시들은 당시 스위스와 독일 남부 도시들인 콘스탄츠(Konstanz), 베른(Bern), 성 갈렌(St. Gallen), 비엘(Biel), 뮬하우젠(M ü lhausen), 바젤(Basel), 샤 프하우젠(Schaffhousen), 스트라스부르(Straßburg), 취리히(Z ü rich) 등이었다고알려준다. 참고. Z 6/2, 790.fn.4.
황제의 초대를 받아 스트라스부르의 대표 자격으로 제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그 해 5월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한 시 장관 야곱 슈투름(Jakob Sturm)은 츠빙글리에게 서신으로 도시 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알리면서 그의 입장을 표명하도록 요청했다. 12) 츠빙글리는 1530년 7월 3일에 출간된『신앙해설』이라는 문서 를 제국회의에 제출함으로써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밝혔다. 13)
Ⅲ.『신앙해설』의 구조와 특징
츠빙글리의『신앙해설』은“정의의 신성 황제 칼” (Carle iustitiae sacer Caesar)에게 호소하는 짧은 서문으로 시작한다. 이 문서는 츠빙글리가 1530년 6월 24일 혹은 25일에 쓰기 시작하여 6월 27일 에 완성한 일종의 신앙고백인데, 7월 3일에 출간된 후, 아우크스 부르크로 보내어져 7월 8일에는 콘스탄츠의 주교이자 독일의 종교담당 부대법관 발타자르 메르클린(Balthasar Merklin)에게 전달 되었다. 14) 츠빙글리는 비록 개인적인 신앙고백 형식으로 작성한 문서지만 한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이 아닌,“그리스도의 전체 교회 를 위한”것임을 천명함으로써 서문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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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Z 6/2, 791.fn.1. 당시 야곱 슈투름이 츠빙글리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 참조. Huld-
rych Zwingli's Werke. Erste vollst ä ndige Ausgabe VIII, ed. Melchior Schuler und Johannes Schulthess (Z ü rich: Fridericus Schulthessius, 1842), 458-459, 465-
470. 슈투름은 루터의『슈바바흐 조항』(Schwabacher Artikel)과 에크(Johannes von Ecken)의『404개 조항』(404 Artikel)도 츠빙글리에게 보냈다. 참고. Z 6/2, 791.fn.5-6.
13) 전체 책 제목은 다음과 같다. Ad Carolvm Rom. Imperatorem, fidei Hvldrychi Zuinglij ratio. Eiusdem quoqeu ad illustrißimos Germaniae Principes Augustae congregatos Epistola (Z ü rich: Officina Froschoviana, 1530) 1530년에 출간된 책의 속지 제목 아래는 마태복은 11장 [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말씀의 라틴어 인용문이 있다.
서두의 짧은 인사말과 인사말보다 두 배 긴 맺음말을 제외하 면『신앙해설』의 내용은 12 가지의 주제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 되어 있다. 1530년에 아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에 제출된 종교개혁 진영의 세 신앙고백 가운데『4개 도시 신앙고백』만 설교를 위한 최고의 권위로 성경을 제시하면서 시작하고 다른 두 가지, 즉 루터 진영의『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츠빙글리의『신앙해 설』은 하나님에 관한 설명인 신론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셋 가운 데『신앙해설』의 분량이 가장 짧다.『4개 도시 신앙고백』은 이보다 조금 길고『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가장 긴데, 후자는 전자의 두 배 정도 긴 분량이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1부에서 교리를, 2부에서 예배와 관습을 구분하여 다룬 반면에, 15) 츠빙글리의『신앙해설』은 이런 구분 없이 첫 째부터 열두 번째까지 사실상 교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예식이나 의식에 대해서는 아주 짧게 언급한다. 12가지 주제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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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Z 6.2, 756.
15) Die Bekenntnisschriften der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G ä ttingen: Vandenhoek & Ruprecht, 19522), 50-137. 여기에 제시된『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는 독일어와 라틴어 원문의 대조본인데, 각주를 통해 다른 사본들에서 상이하게 표기된 단어를 알려주는 본문비평적인 원문이다.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 셋째는 구원과 선택, 넷째는 아담의 타락과 인류의 범죄, 다섯째는 두 번째 아담 그리스도, 여섯째는 교회, 일곱째는 성례, 여덟째는 성찬, 아홉째는 기독교 예식, 열째는 설교, 열한째 는 세상 정부, 열둘째는 연옥과 마지막 심판. 이 중에서 교회와 성례, 특히 성찬에 관한 설명이 가장 길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가장 먼저, 츠빙글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설명하기 시작한다.“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하시다는 것, 그분이 본성적으로 선하시고 진실하시고 강력하시고 의로우시며 가시적이고 불가시적인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관리자이시라는 것,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세 위격이시지만 그 분들의 본질은 하나 이시며 단순하시다는 것을 나는 믿고 안다.” 16) 츠빙글리의 신론은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이시라는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기독교 교리에 충실하다. 그래서 그는 이어서 삼위일체 하나님 에 관한 니케아신경과 아타나시우스신경의 설명을 지지한다고 선언한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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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Z 6.2, 792:“credo et scio unum ac solum esse deum eumque esse natura bo- num, verum, potentem, iustum, sapientem, creatorem et curatorem rerum omnium visibilium atque invisibilium; esse patrem, filium et spiritum sactum, personas quidem tres, sed essentiam horum unam ac simplicem.”
17) 여기에 언급된‘아타나시우스 신조’는 500년경에 출현한 것으로 아타나시우스와 무관한 문서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특이하게도“흠이 없고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 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 18) 이것은 마리아 숭배를 위한 중세교회의 ‘무흠수태’ 교리와 직결된 표현이다. 츠빙글리의 이런 표현이 덜 개혁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종교개혁 신학은 마 리아를 예수님처럼 죄가 없는 분으로 주장하는 로마교회의‘무흠 수태’교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츠빙글리가 마리아숭배에 대해 어떤 비판적 첨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데, 이것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유독 츠빙글리만의 문제가 보긴 어렵다. 개신교 교리는 마리아가 성경의 신실한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녀가 우리와 동일한 죄인 이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성경적 진리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격의 통일성을 가진 완 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즉 성자의 위격에서“나눌 수도 없고 분리할 수도 없으며 쪼갤 수도 없 는” (inseperabilis, indivisibilis et indissociabilis) 사람이시다. 19) 그리스도의 양성 즉 신성과 인성은 각각 자신의“성품과 속 성” (ingenium et proprietas)을 유지하게 되겠지만 그 양성이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두 본성의 구별된 속성들과 사역들 이 인격의 통일성을 쪼개지 못한다.” 20)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그리스도의 인격이 오직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는 그와 같은 표현은 그리스도의 양성에 대한 츠빙글리의 견해를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이단적 기독론으로 간주한 루터 진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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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Z 6.2, 793:“..., vere ex immaculata perpetuaque virgine Maria adsumpserit...”
19)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려는 경향을 이단으로 정죄한 칼케 톤 신경의 전형적인 이중 부정 형식인데, 이것을 츠빙글리가 삼중적 부정 형식으 로 강조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고 있다.
20) Z 6.2, 793:“... naturarum distinctae proprietates et opera personae unitatem non dissociant.”
츠빙글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양성의 결합을“사람 안에서 영혼과 육신이 두 인격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 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영혼과 육신은] 너무 다른 본성에 속한다. 그래서 [영혼과 육신은] 다른 속성과 사역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혼과 육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두 인격이 아닌, 하나의 인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은 한 분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하나의 인격, 한 분 그리스도이시며, 완전한 하 나님, 완전한 인간이시다.” 22) 과연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 의 결합이 영혼과 육신의 결합과 유사한 것인지, 또한 영혼과 육신이‘두 인격’ 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영혼과 육신이 결합해도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유지된다는 점은 비유로 적합하다.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인격으로 통일된다는 츠빙글리의 주장에서 강조점은 두 본성이 결코 혼합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에 흡수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방식이 아니라, 각 각 자신의 고유한 성품과 속성을 유지면서 연합되는 안디옥 학파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츠빙글리에 따르면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셨다는 점에서 우리와 동일하시지만 죄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 모든 죄와 벌을 짊어지셨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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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츠빙글리에 대한 루터주의자들의 이런 오해에 대해서는 다음 참조. K ö hler, Zwingli und Luther II, 82.
22) Z 6.2, 793:“Non magis quam in homine animus et caro duas personas consti- tuunt (ut enim ista natura diversissima sunt, ita diversis quoque proprietatibus et operationibus pollent; attamen homo, qui ex his consistit, non duae personae, sed una est). Ita deus et homo unus est Christus,... Una persona, unus Chris- tus; perfectus deus, perfectus homo.”
또한 지상 사역에서 신성적인 기적들과 인 성적적인 고난과 죽음 모두 동일하신 한 분, 한 인격의 그리스도 께서 행하시고 경험하신 것이므로 구분될 수는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이것이 츠빙글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이다.
두 번째로, 츠빙글리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분,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단 한 번의 눈길로 우주를 통찰하시는 분이시며 삼라만상을 자유롭게 정하시고 관리하시는 섭리자시다. 즉 모든 것을 아시고 예견하시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타락하게 될 인간을 만드셨지만 공정하게도 타락을 회복하실 자신의 아들에게 인성을 입히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bonitas)과 긍휼하심(misericordia)과 공의로우심 (iusticia)이라고 강조한다. 23) 선하신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죄인을 긍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죄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처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동시에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분이 바로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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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Z 6.2, 796. 여기서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선과 긍휼과 공의라는 세 가지로 요약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구원 사역 모두를 이 세 가지 속성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츠빙글리에 따르면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 하시는‘긍휼’과 잘못과 죄를 정당하게 처벌하시는‘공의’는 모두‘선하심’ 이라는 하나의 속성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선하신 사랑이요, 하나님의 공의는 선하신 공의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반문한다.“누가 그와 같이 세상을, 즉 인류를 사랑하셔서 그들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신 하나 님의 선하심의 부요와 은혜를 충분히 찬양할 수 있겠는가?” 24) 이것 을 츠빙글리는“복음의 근원이고 혈관” (euangelii fontes ac venas) 이라 부르고 또한 그런 복음을“시들어버린 영혼의 유일무이한 약제” 로 간주한다.
2. 그리스도의 구원
세 번째 신앙고백은 구원과 선택의 문제, 즉 중보자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츠빙글리는 죄를 용서 받기 위한 제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무이한 중보자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따라서 어떤 죄인도 자신의 공로로 의롭게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 받은 자 들만의 전유물이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들을 선택하시되, 자신의 아들을 통해 친히 택하셨던 것과 같이 선택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인자하시고 긍휼하신 것처럼 거룩하시고 의로 우시기 때문이다.” 25)
츠빙글리에 따르면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를 드 러내듯이 하나님의 선택에서도 그와 같은 긍휼과 공의가 나타난다.“그분이 원하시는 자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선하심에 속하 지만 선택된 자들을 친히 자신의 아들을 통해 양자로 삼으시고 그 들과 연합하시는 것은 공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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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Z 6.2, 796:“Quis divinae bonitatis opes et gratiam satis miretur, qua sic dilexit mundum, hoc est humanum genus, ut filium suum exponeret pro illius vita?”
25) Z 6.2, 796:“...; quos enim ille elegit ante mundi constitutionem, sic elegit, ut per filium suum sibi cooptaret. Ut enim benignus et misericors, ita sanctus et iustus est.”
아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에 하나님의 공의의 희생제물이 되셨다.”여기서 하나님의 공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죄인을 대신하여 죄 없으신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못 박으신 십자가는 분명 하나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실현 된 장소라는 것이다.
네 번째로, 츠빙글리는 죄의 문제를 다룬다. 최초의 타락 사건에 대해 그는 첫 조상 아담이 악마의 속임수 때문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대항 하는 죄를 짓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장 죽음으로 처벌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 보다 나은 노예 상태로 처벌하셨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아담의 모든 후손은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다. 츠빙글리에게 “원죄” (peccatum originale) 는 오직 첫 조상 아담이 지은 죄를 의미한다. 26) 그 후손들은 아담과 같은 원죄를 짓지 못한다. 다만 그들은 원죄 때문에 노예 신분인 진노의 자녀로 태어나고 죽을 수밖에 없다.
츠빙글리는 원죄를“질병과 상태” (morbus et conditio)로 정의 한다. 이것은 “죽음의 필수조건” (necessitas moriendi)이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으므로 영광이 없다.” 는 말씀에서‘영광’ 이 없는 것을 츠빙글리는“하나님의 선하심과 관대하심” (bonitas et liberalitas)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모든 범죄는 원죄라는 질병과 상태, 그리고 출생(nativitas)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최초의 타락 때문에 아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죽음이 도래 했다. 우리가 아담과 같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죽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아담이 받은 죽음의 저주, 즉 노예의 신분과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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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Z 6.2, 797:“Hic de originali peccato sic sentio: Peccatum vere dicitur, cum contra legem itum est.”
다섯 번째로, 츠빙글리는 어떻게 첫 아담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되는지 설명한다. 27) 아담 속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죽은 죄인을 다시 살 리셔서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신 것이다. 여기서 츠빙글리 는 구원이“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 때문” (propter electionem dei liberam)이라고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이 “믿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선택을 따른다.” 28)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항상 사람의 믿음에 선행하는 것이요,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의 선택은 믿음의 결과가 아니다.
여기서 츠빙글리는 유아의 신앙 문제를 논하는데, 구원에 있어서 선택이 믿음에 우선한다는 원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선택 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유아의 구원 문제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당시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유아에게 세례 베 푸는 것을 부당한 일로 판단하여 유아세례를 거부한 재세례파의 가르침에 대한 반론이다. 재세례파와 달리 츠빙글리에 따르면 모든 유아는 그리스도인의 아이든 이방인의 아이든 믿음을 입으로 고백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저주의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그리스도인들의 유아들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백성의 교회에 속한 것이요, 하나님 교회의 일부이며 지체이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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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Z 6.2, 797-798.
28) Z 6.2, 799:“..., quae non sequitur fidem, sed fides electionem sequitur;...”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교회 안의 유아들을 성인과 같은 택한 백성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변한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유아들이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택된 자들로 판단하는 그들의 수에 속한 것이 확실하다.” 30) 재세례파 교 회의 유아들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기 전까지 그리스도 밖에 있게 되는 반면에 츠빙글리파 교회의 유아들은 행복하게도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기도 전에 태어나자마자 그리스 도 안에 있게 된다.
3. 교회
여섯 번째로, 츠빙글리가 다루는 주제는 교회다. 교회란 “저 선택 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영원한 생명에로 예정된 자들” 을 의미한다. 이처럼 흠도 티도 없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의 지체인 자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받은 자요 이 첫 교회의 지체라는 것을 안다. 물론 자신들 이외의 다른 지체들에 대해서는 모른다.” 31) 여기서‘첫 교회’ 란 초대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만 알려진 교회를 의미한다. 사도행전 13장 48절을 근거로 츠빙글리는 믿는 자들이 곧 영원한 생명에로 정해진 자들이라고 결론 내리는데, 여기서 믿는자란 참 신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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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Z 6.2, 799:“...quod Christianorum infantes, quotquot sunt, de ecclesia populi dei sunt eiusque ecclesiae partes et membra.”
30) Z 6.2, 800:“Christianorum igitur infantes, cum non minus sint de visibili ec- clesia Christi quam adulti, constat non minus esse de eorum numero, quos nos electos iudicamus quam parentes.”
츠빙글리에 따르면, 참 신자들만의 모임인 교회와 달리,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성례에 참여하는 자들이 모두 속한 지상교회 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싫어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가롯 유다 같은 사람도 이 교회의 일원으로 간주된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누가 자신의 백성이고 누가 악마에게 속한 자인지 아신다. 그와 같은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지상교회요, 지역교회다. 이것은 “사람의 판단에 따른 하나님의 교회” (hominum iudicio ecclesia dei)이 며,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것처럼“하나의 보편적이고 인식 가능한” (universalis sensibilis unam) 교회다. 32)
츠빙글리에게 하나의 교회, 보편적인 교회라는 개념은 인식 가능한 가시적 지상교회, 지역교회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믿는 부모의 자녀인 유아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그들이 하나님 가족의 참된 유아들이라는 확신을 그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성령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의 교회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또한 이것이 교회들의 첫 열매에 속한다... 나는 이삭과 야곱과 유다라는 유아와 아브라함의 씨에 속했던 모 든 유아가, 교회의 첫 열매들 가운데 사도들의 설교로 그리스도의 편으로 넘어간 부모들의 모든 유아가 이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믿 는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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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Z 6.2, 800:“...; pro electis istis, qui dei voluntate destinati sunt ad vitam aeternam. ... Sed nihilominus qui huius ecclesiae membra sunt, seipsos quidem, cum fidem habent, electos et primae huius ecclesiae membra esse norunt; verum alia a se membra ignorant.”
32) Z 6.2, 801-802. 여기서 츠빙글리는 그와 같은“교회”를“로마교회, 아우크스부르크교회, 리용교회와 같은 보편적이고 인식 가능한 교회의 모든 개별 모임”(ec- clesia pro quovis praticulari coetu huius universalis ac sensibilis ecclesiae, ut ecclesia Romana, Augustana, Lugdunensis)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츠빙글리는 그 모든 유아들을‘첫 교회’ , 즉 하나님께만 알려진 불가시적 교회에 속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유아들이 세례의 성례로 인침을 받도록 했 기 때문이다. 그들을 부모가 하나님께 약속함으로 바쳤다는 것이다. 츠빙글리에 따르면 신약의 교회에 주어진 유아를 위한 세례 약속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할례 약속보다 훨씬 풍성하다.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공통분 모 때문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츠빙글리의 주장에는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재세례파의 논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게 나타난다.
4. 성례: 세례와 성찬
일곱 번째로 츠빙글리는 성례를 고백하는데, 세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츠빙글리는 로마교회의 성례 교리인‘사효성’ (exopere operato), 즉 성례 자체가 은혜를 베푸는 능력이 있다는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왜냐하면 은혜란 하나님의 영으로 생 성되고 주어지는 것과 같이 그 선물로서 오직 성령께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자나 통로는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능력이요 전달[수단]이시기 때문이다.” 34) 이 말은 은혜의 임재와 효력이 성례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성 례가 무가치하다거나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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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Z 6.2, 802:“Hic igitur credo unam esse ecclesiam eorum, qui eundem habent spiritum, qui eos certos reddit, quod veri filii familiae dei sint; et haec est eccle- siarum primitiae... Credo infantem Isaac, Jacob, Judam et omnes, qui de semine Abrahae erant, eos quoque infantes, quorum parentes inter ecclesiae primordia praedicantibus apostolis ad Christi partes concedebant, de hac esse ecclesia.”
츠빙글리는 은혜의 성령과 성례의 물질을 극단적으로 대조시 킬 뿐만 아니라, 서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리하길 원한다. 성례 의 은혜가 성령의 역사 때문인가, 아니면 성례의 물질(세례의 물, 성찬의 빵과 포도주) 때문인가? 츠빙글리의 대답은 의심의 여지없이‘성령의 역사’ 다. 은혜는 오직 성령께만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은혜는 사실‘성례 없이’ (extra sacramentum)도,‘성례 전에’ (ante sacramentum) 받는다는 것이다. 성례가 집행되기 전에 이미 성령께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 기 때문에, 사실상“성례란 모든 개인에게 먼저 임하는 은혜의 공적 증거로 주어지는 것이다.” 35)
성례가 먼저 임한 은혜의 공적 증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츠빙글리는‘믿음’ , 즉 세례 받기 전에 요구되는 신앙고백을 제시 한다. 성인이 세례 받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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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Z 6.2, 803:“Nam gratia, ut a spiritu divino fit aut datur..., ita donum istud ad solum spiritum pervenit. Dux autem vel vehiculum spiritui non est necessarium; ipse enim est virtus et latio, ...”
35) Z 6.2, 804:“...: sacramenta dari in testimonium publicum eius gratiae, quae cuique privato prius adest.”
유아세례의 경우에는 아이 대신에 부모의 대답이 요구된다. 성인세례든 유아세례든 하나님의 약속이 선행한다. 이 약속에 근 거한 세례는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로 받아들인 사람을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의식이다.“따라서 세례란 은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받은 사람에게 은혜가 주어졌음을 교회에 확증하는 것이다.” 36)
츠빙글리에게 성례는“이미 받은 은혜의 표징” (factae gratiae signum)이고“불가시적 은혜의 가시적 형태 혹은 형식” (invisibilis gratiae visibilis figura sive forma)이며“가시적 모범” (visibile exemplum)이요,“공적인 증거” (testimonium publicum)다. 즉 은혜는 불가시적인 것으로 성례 이전에 이미 받았다는 점과 성례는 이미 받은 은혜를 공적으로 인증하는 의식에 불과한 것이므로 결코 은혜의 전달 통로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츠빙글리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성례의 가치에 대해서는 성례가 은혜를 베풀 수는 없지만 불가시적으로 이미 교회에 받아들여진 사람들을 가시적으로 교회와 연합하게 해준다고 본다.
“여덟 번째로, 나는 감사의 만찬에 그리스도의 몸이 믿음의 명 상을 통해 임재 한다고 믿는다.” 37) 여기서 ‘감사’ 는 ‘유카리스티아’ (eucharistia) 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감사기도’ 혹은 ‘찬양기도’ 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츠빙글리가 성찬을 말할때 유별나게 그 의미를 고집할 정도로 좋아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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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Z 6.2, 805:“Non ergo adfert gratiam baptismus, sed gratiam factam esse ei, cui datur, ecclesiae testatur.”
37) Z 6.2, 806:“Octavo credo, quod in sacra eucharistiae (hoc est: gratiarum ac- tionis) coena verum Christi corpus adsit fidei contemplatione, ...”이러한 주장은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에 의해 부활 이후 그리스도의 몸이 어디든지 동시에 계실 수 있다는 부활체의‘무소부재’를 주장하는 루터의 공재설에 대한 반박이다.
여기서 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츠빙글리 성찬론의 핵심은“믿음의 명상” (fidei contemplatio)이다. 성찬이란 성자 안에서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 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성찬은“그리스도를 통해 수행된 모든 일이 믿음의 명상을 통 해 마치 현존하듯이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38)
여기서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이 성찬에 현존한 다는 교리를 부인하고 반박한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세 가지 방 법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인용한 말씀을 근거로 상대의 주장을 공격하는 것 이다. 마지막으로는 고대 신학자들, 즉 교부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츠빙글리에 따르면 하나님만이 무소부재하시다. 그렇다면 성자의 신성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기 때문에 무소부재하시지만 인성은 한 곳에만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은 한 장소에만 계신다. 그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한 곳에 있지만 만물을 소성하게 하는 태양에 비유한다.
츠빙글리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은 지금 아버지 우편인 하늘에 계시고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루터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부활 전에 몸과 달리 무소부재하신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에,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 전과 후에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 츠빙글리에게 부활하신 그 리스도의 몸은 도마가 만진 것처럼 만질 수 있는 것이요, 제자들이 있는 곳에 친히 찾아오신 것처럼 한 장소에만 계실 수 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무덤에서 한 천사의 말을 인용한다.“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 마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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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Z 6.2, 806:“... sic omnem rem per Christum gestam illis fidei contemplatione velut praesentem fieri.”
성찬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를 츠빙글리가 부인하는 것은 단지 교황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비록 츠빙글리가 루터의 성찬 교리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가 인용한 많은 성경구절과 반박하는 논리는 사실상 루터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육은 무익하니라.” ( 요 6:63)는 말씀을 인용 한다. 이것은 츠빙글리가 루터와 논쟁할 때 인용한 주요 구절 가운데 하나지만 반대로 루터는 성찬과 무관하다며 인용을 거부한 구절이다. 츠빙글리는 주장하기를,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으로 먹어야 생명을 얻는다. 또한 영은 영에서 나는 것이므로 그것을 영적으로 먹어야지 육적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츠빙글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성찬에서 제공되는 빵, 즉 그리스도의 몸을“자연적인 몸” (naturale corpus) 이 아닌,“영적인 몸” (spirituale corpus)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이것은 내 몸이다” (hoc est corpus meum)에서“몸” 을 “상징적인 것으로” (sumbolikwj = symbolice) 이해한다. 39) “즉 영혼을 정결하 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례전적인 먹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즉 영적인 먹음이다. 그것의 이 외 적인 것들은 상징과 모형이다.” 40) 이것은 교황주의자들의 화체설 (Transubstantiation)과 루터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반대하는 츠빙글리의 전형적인 상징설(Symbolis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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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Z 6.2, 811.
40) Z 6.2, 812:“Puta, non quod sacramentalis manducatio mundare animum pos- set, sed fides in deum per Jesum Christum, quae spiritualis est manducatio, cuius externa ista symbolum est et adumbratio.”
5. 예배
아홉 번째로 츠빙글리는 예식과 예배의 문제를 다룬다. 41) 미신적이지 않고 신앙과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예식이라면 무엇이든 사랑으로 관용할 수 있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그 동일한 사랑으로 그 예식들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예배를 위해 악용되는 성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드시 철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예배와 무관한 그림이나 조각은 하나님의 은사로 간주한다.
열 번째로, 츠빙글리는“예언이나 설교의 직무가 가장 거룩한 것” (prophetiae sive praedicationis munus sacrosantum esse)이라 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 설교를 통 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믿음은 오직 성령께서만 일으키시는 것이다. 따라서 “외적인 복음 설교” (externa euangelii praedicatio) 를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은 “성령의 결핍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42) 복음 설교자들이 있다는 것은“하나님의 은혜의 표징” (signum gratiae dei)인 반면에 그들을 거부하는 것은“두려운 진노의 표 징” (signum imminentis irae)이다.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뿐 만 아니라, 성례를 집행하고 병자를 심방하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위해 교회는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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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Z 6.2, 812.
42) Z 6.2, 813:“..., quod spiritus penuria usu venit.”
6. 정부
열한 번째로, 츠빙글리가 다루는 주제는 세상 정부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부와 법이다. 43) 다른 종교개 혁자들처럼 츠빙글리도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은 악한 통치자든 선한 통치자든 반드시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친히 그들을 세우시고 폐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폭군을 떠나 도피하는 것은 가능하다. 선지자, 즉 목사가“하늘의 지혜와 선함을 위한 사역자” (coelestis sapientiae ac bonitatis minister)인 것처럼 세상 통치자도 역시 “선함과 공의의 사역자” (bonitatis ac iusticiae ministrer)다. 하나님과 같이 믿음과 온유로 다스리는 것은 선함이요, 불의한 자들의 무모함을 제압하고 무죄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은 공의다.
7. 우주적 심판
마지막 열두 번째로,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는데, 여기서 로마교회의 연옥 교리가 허구라고 지적하면서 연옥 교리 가 타당하다면 그리스도의 죽음도 믿음도 모두 헛된 것이라고 공격한다. 44) 물론 그가“지옥” (infernus) 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최후 심판, 즉 “우주적 심 판” (universale iudicium) 후에 “영원한 불” (ignis sempiternus)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츠빙글리가 지옥을 끝없이 영원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이유는 지옥이 영원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재세례파의 잘못된 주장 때문이다. 지옥은 악마와 그의 수하들, 불경건한 자들, 사기꾼들, 이웃 사랑이 없는 자들이 들어갈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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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Z 6.2, 814.
44) Z 6.2, 814-815.
8. 마지막 당부
츠빙글리는 여기서 설명한 신앙해설이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 은 모두 거짓인데, 이런 거짓으로 무장한 자들이 황제와 군왕들 주변에도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츠빙글리는 자신이 순수한 복음 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복음의 열매인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고백한다.“우리를 통해 주 하나님을 듣는 교회들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므로 거짓과 부정직함이 사라지고, 교만과 사치가 줄어들며 비난과 다툼이 떠났다.” 45) 마지막으로, 순수한 복음의 선포를 통해 무너진 공의를 다시 세우도록 힘쓰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도록 당부한다.
Ⅳ. 나가는 말
츠빙글리 생애 말년의『신앙해설』을, 조용석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루터주의와 대립되는 자신의 종교개혁 사상을 정리한”것 으로 간주한다. 46) 『신앙해설』은 1530년에 황제 칼 5세가 소집한 아 우크스부르크 제국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츠빙글리가 급하게 작성 한 자신의 신앙고백이요, 취리히 종교개혁의 신학적 근거와 이유이다. 그것은 비록 급하게 작성된 것이지만 취리히 종교개혁자의 신학 사상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글로써 전혀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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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Z 6.2, 817:“Profecto sic receperunt verbum domini ecclesiae, quae dominum deum per nos audiunt, ut mendacium et perfidia contrahantur, frangantur autem fastus et luxus et contumelia ac vitilitigatio ekpodwn facessant.”이러한 현상을 츠빙글리는“신적 영감의 참된 열매들” (veri fructus divini adflatus)로 간주한다.
『신앙해설』에서 츠빙글리 신학을 관통하는 섭리론이 변함없이 강조되고 있다. 츠빙글리의 초기 신학과 후기 신학이 내용상 큰 차이가 없고 또한 그의 신학적 특징이나 강조점도 별반 달라진 것 이 없다. 츠빙글리 신학의 특징은 섭리하시는 성부 하나님과 구원 하시는 성자 하나님,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령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논조는 말년의 『신앙해설』에서도 확인된다.
15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찬논쟁을 통해 루터의 공재설과 다른 츠빙글리의 상징설, 기독론에서도 루터와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 이런 신학적 특징 역시 『신앙해설』에 그대로 반영된다.“속성의 교류” 에 의해 부활 이후 그리스도의 몸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루터의 주장과 달리, 츠빙글리는 부활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인성이 여전히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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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조용석,『츠빙글리: 개혁을 위해 말씀의 검을 들다』(서울: 익투스, 2015), 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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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Theology of Zwingli in the Last
Phase of His Life:
Focused on His Fidei ratio
- Hwang, Dae Woo Professor -
(Kosin University, Historical Theology)
This article aims to study the theology of Zwingli in his last life. In order to reveal it correctly, it is necessary to analyze all of his works in the last phase of life. But this study will here analyze only one of them,“Fidei ratio”in 1530. For it was Zwingli's confession that was submitted to the Imperial Parliament of Augsburg in 1530. He should have explained the emperor Karl V why Zurich accepted the Reformation.
Zwingli summarizes his whole theology compactly in An Account of Faith. There is no essential difference of his reformational theology between early and latter. As before, his theological elements remain unchanged in An Account of Faith. For he consistently emphasizes the sovereign works of triune God and maintains a symbolistic doctrine of Lord's Supper.
It is the distinct feature of Zwingli's theology that he stresses the providence of the Father and the salvation of the Son, an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who makes us believe. The reformer of Zurich rejects Luther's opinion that Christ after his resurrection can be bodily present in the eucharist by virtue of‘communicatio idiomatum’ . Instead he constantly insists on the presence of Christ in the eucharist only‘contemplatione fidei’ .
Key-words: Ratio fidei, Zwingli, Augsburg, Luther, Theology, Reformation